2021-07-22

이종구 간첩으로 조작된 재일동포의 기록 : “장동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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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제목 : 간첩으로 조작된 재일동포의 기록 : “장동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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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는 지인이 6월 말에 도보출판(東方出版)에서 간행된 “장동(長東)일지 – 재일 한국인 정치범 이철(李哲)의 옥중기-”를 보내 왔다. 1948년생이며 고려대학에 유학 중이던 재일동포 청년 이철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11월에 영문도 모르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고문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자살도 실패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그는 시키는 대로 조서를 작성하면 풀어준다는 수사관의 말에 속아 북한을 두 번이나 왕래했다고 허위 자백을 했으나 사형수가 되었다. 심지어 한 달 후에 결혼할 예정이었던 약혼자도 간첩에게 포섭된 공작원으로 만들어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매일 죽음의 공포에 시다리던 이철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3년을 복역하고 제도적 민주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1988년에 석방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명동성당에서 늦은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는 친지들에게 인사하러 방일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귀국을 저지했다. 과거사 청산 절차가 시작되어 2015년 11월에는 대법원에서 이철의 재심을 마무리하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일본에서 태어난 이철의 부친은 자녀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여주고 애국가를 가르치는 민족의식이 투철한 민단 간부였다. 그러나 아들이 본국에서 간첩으로 체포되자 충격을 받아 급사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면회를 다니던 모친도 석방을 기다리다가 병사했다. 일본의 지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구출하는 모임”을 조직하고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석방된 약혼자와 그녀의 모친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투사로 변신하여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성직자들은 구속자 석방과 교도소 내부의 인권 상황 개선을 요구하는 가족들을 격려하고 지원했다. “장동일지”에 수록된 암울한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버티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민주화 운동의 진짜 역사이기도 하다.
 
- 군사정권 시절의 재소자는 인권이 없었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가 인권 외교를 강조하고 있으니 국내 양심수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은 사형수 이철을 묶어놓고 몇시간 동안 집중 구타했다. 대구교도소는 좁은 방에 재소자를 꾸역꾸역 밀어 넣어 고생시키는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을 구타해 몇차례 기절시키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만든 가혹 행위를 저질렀다. 대전교도소에서는 목욕을 오래 하지 못하게 만드느라 펄펄 끓는 물을 담아 놓은 욕조에 빠진 재소자가 전신 화상을 입고 즉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겨울에도 난방은 없었다. 외부로 나가는 서신은 검열을 받았다. 어느 사상범이 미국에 있는 누나에게 보내는 “가마니를 지급받아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게 되었다”는 편지를 검열한 교도관은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판단하고 통과시켰다. 그 편지를 받은 누나는 실태를 깨닫고 통곡했다.
 
- 유신정권 타도 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대학생들도 처음에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을 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양자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단식투쟁도 같이 하는 동지가 되었다. 구속 수감된 시인 김지하, 언론학자 이영희, 경제학자 박현채, 서예가 신영복 등을 비롯한 명사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또한 이철이 만난 미전향 장기수와 각종 좌익수의 얘기는 분단과 전쟁이 남긴 비극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동일지”에는 양심수만이 아니라 잡범도 많이 등장한다. 이철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아가며 전과 기록을 쌓아가는 누범자들을 보며 민중의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진짜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어와 국사를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철은 석방된 이후에도 일본에서 통일운동에 참가하며 “재일 한국 양심수 동우회”를 만들어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재심을 통해 권리를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는 서대문 독립공원이 된 옛 서울구치소 건물에 마련된 역사관에는 사형수 이철이 광주교도소로 이감되는 약혼자와 교환한 묵주가 전시되어 있다. “장동일지”는 박정희 정권에게 날벼락을 맞은 억울한 청년의 생애사이며 일반인이 모르는 교도소 내부의 참혹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중요한 사회사적 자료이다. 2019년 6월에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6You, 정승국, Yuriko Yano and 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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