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일상에 깊게 스며든 불평등…"차별은 반기독교적 행위, 계속되면 역사 심판받을 것"
평등법 제정 염원 포럼 5주 차…"평등법, 만능열쇠 아니지만 차별·혐오 문제 해결의 시작점"
기자명 이은혜 기자
승인 2021.07.27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 / 내가 말했어요 /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 주셨어요 /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 이번에는 나를 죽게 해 주세요 /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 그리고 내일 죽으렴!"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네팔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쓴 시를 엮은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삶창)에 실린 '고용'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시인 러메스는 한국인 사장을 '굶주림과 결핍의 신'이라고 부른다. 낯선 이국땅에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 사장은 실제로 이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 없게 만든 '고용 허가제'는 악덕 사장을 '신'으로 만든다. 고용주가 계약 내용에 없는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여성 노동자에게 성폭력을 가해도, 그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노동자는 '불법 체류자'가 된다. 고용 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라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이주 노동자를 옥죄는 '고용 허가제'는 인종과 출신 국가를 기반으로 한 차별을 용인하는 제도다. 유엔인권이사회·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서도 이 제도가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을 양산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주 노동자가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고용 허가제 자체도 차별적인데 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평등법(차별금지법)도 없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는 불평등한 현실을 어디 가서 호소하기 힘들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평등법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7월 26일 평등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주관한 '세상을 바꾸는 여름' 5주 차 온라인 강의에서도 이주 노동자, 난민, 결혼 이주 여성 등 다양한 이주민과 활동해 온 이들이 참석해 평등법 제정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평등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연 포럼 5주 차 강의는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를 주제로 열렸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충남 아산에서 활동하는 우삼열 목사(아산이주노동자센터)는 현재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며 이를 제재할 법이 없다고 했다. 우 목사는 "농·축·수산업에서의 이주 노동자 인권 침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국회는 올해 2월, 국제노동기구의 핵심 협약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핵심 협약에는 강제 노동을 금지하고 자유로운 단체 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한국의 고용 허가제는 비자발적인 부분이 많다. 국제사회가 평등법 제정, 고용 허가제 개선 등을 권고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삼열 목사는 한국교회가 평등법 제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며,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라 조언했다. 우 목사는 "차별은 폭력이며 반기독교적 행위다.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로 볼 때 용납하면 안 되는 행위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와 반대되는 모습에 앞장서고 있다. 갈수록 교회의 위상은 추락하고, 교회는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신 차리고 시대 가치에 맞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분명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혜실 공동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는 차별적 시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결혼 이주 여성의 가정에 '다문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슬람교에 대한 허위·왜곡·거짓 정보를 유통하는 등의 문제는 한국 국민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나누고, 아닌 사람을 차별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차별은 '혐오'라는 감정과 연결돼 있다. 정혜실 공동대표는 "혐오 발언은 편견을 강화시키고, 결국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구조를 강화한다. 어떠한 사람들을 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 집단에 대한 자의적 고정관념에 따라 이들을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가 차별이다. 이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등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난민을 대할 때도 '차별'과 '혐오' 이슈는 늘 따라다닌다. 특히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입국했을 때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어 아수라장이 지속됐다고 했다. 화우공익재단 이현서 변호사는 "평등법 제정이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법을 만들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첫걸음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차별과 혐오 근절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연대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도 오산이주민센터에서 사역하는 필리핀 출신의 존스 갈랑 선교사는 이주 노동자가 처한 임금 체불, 의료·법률 지원 등 다양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한다. 갈랑 선교사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겪고 어려움에 처한 이주민은 많은데 작은 공동체에서 그 모든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 이주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 줄 더 많은 동료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지속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참여와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들이 주최하는 '세상을 바꾸는 여름'은 이제 6주 차를 맞는다. '노동과 가난: 소외와 불평등을 넘어서'를 주제로 열린다. 8월 2일 온라인으로 열리며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소준철 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제 강연을, 정용택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손은정 총무(영등포산업선교회), 김희석 사무국장(평화누리)가 토론자로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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