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점령군' 논쟁, 역사학자들에게 물어보니···
탁지영 기자
입력 : 2021.07.05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두고 역사관 정쟁이 격화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5일 이 지사를 향해 “국민 분열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자 하는 매우 얄팍한 술수”라고 가세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날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역사관”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는 전날에는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했다.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야권에서 논란을 제기하자 “승전국인 미국이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이 지사가 “셀프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미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문제삼으며 “이념에 편향된 역사관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이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를 살펴보니 윤 전 총장의 주장과 달랐다.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적시돼 있다. ‘미 점령군’이라는 용어는 사료에 나온 역사적 사실이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7일 더글라스 맥아더 당시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은 포고령 제1~4호를 발표했다. 포고령은 각각 국어(한글·한자 병기), 일본어, 영어로 작성됐다. 제1호를 보면 국어로 “본일 북위 삼십팔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함”이라고 기재돼 있다. 같은 호 제3항에는 “점령군에 대해 반항 행동을 하거나 질서보안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영어로도 “the occupying forces”라 명시돼 있다.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는 기자와의 통화 등에서 “미군과 소련군 둘 다 점령군이 맞다. 모두 해방군을 자처하기도 했다”면서 “미군과 소련군 모두 각각의 포고에서 점령의 목적을 ‘일제로부터 식민지 조선을 해방·독립시킨다’고 표방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 전 총장의 말은) ‘소련은 해방군이라 올려주면서 은인인 미군에겐 어떻게 배은망덕하게 점령군이라고 격하 또는 폄하하냐’는 선동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미군과 소련군 둘 다 점령군이고 해방군”이라며 “포고령뿐 아니라 모든 미국 공식 문건에 ‘점령군’이라 적혀 있다”고 말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쓸 때마다 매번 거론되는 논쟁”이라며 “포고령에 미군 스스로 점령군이라 표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는 “당시 한국이 아니라 일제를 점령하기 위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했기 때문에 점령군이 맞다”며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 한국의 최고 통치자는 미 점령군 중장인 존 하지 장군이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이 지사의 “친일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해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서도 “역사왜곡”이라며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해방 이후에)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38선 이남만 단독선거·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한계가 있었다는 건 한국 현대사의 지배적 정설”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38선 이남 미 군정 체제에서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재생산하고 친미파로 변신했다는 ‘친일청산론’이 87년 민주화 이후에 지배적 학설로 자리잡았지만, 모든 현대사를 친일청산론으로만 재단할 수도 없다”며 “이런 심도있는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냉전·반공주의 프레임으로 선동하다 보니 학술계의 성과가 완전 외면되고 있다. 이 논쟁이야말로 대표적인 탈진실·반지성주의”라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8년에 설치됐다는 역사적 사실만 봐도 미 군정이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민특위도 결국 친일세력에 의해 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과 상관 없이 진영 논리로 역사를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점령군 등 당시 복잡한 여러 역사적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단어 한두 개를 끄집어다가 약 80년 후에 그 시대의 역사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역사에 대한 무지일 뿐 아니라 오독”이라고 말했다
한철호 교수는 “역사가 소설과 다른 점은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해묵은 논리, 특히 정권의 입맛에 맞추거나 정치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곡학아세하는 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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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53 m ·
일반의 오해와 달리 '점령군'은 멸칭 내지 비칭은 아닙니다. 꼭 부정적인 늬앙스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본래 '점령군'은 국제법적 용어일 뿐입니다. 일본제국의 일부이었다가 분리, 독립돼야 할 한반도의 영토를 전승국인 미-소가 점령을 하고, 원칙상 그 다음에는 '독립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제법적으로는 점령군에는 일련의 의무와 권리들이 있고, 미-소 양국은 이 법 조항들을 인지하면서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엄청나게 의식했죠. 예컨대 소련군은 1948년에 먼저 북에서 철수하자 미군도 머지 않아 빠져 나갑니다. 소련에 비해서 한반도에서 더 많은 통치력을 얻으려는 욕심을 보인다는 비판을 극적으로 피하려 한 셈이죠.
"사회주의", "민주주의", 이런 게 사실 "간판"입니다. 스탈린 시대의 사회는 "사회주의"와 별 관계 없었고, 미국에서는 주요 결정들을 "민의"대로 하는 시스템도 전혀 압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수백년 동안 형성된, 그리고 매우 보수적 백인 자산가 엘리트고, 소련의 경우에는 옛 귀족/자산가 엘리트들이 1917년에 망한 뒤로는 평민 출신의 신진 관료들이 새로운 지배층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으로서는 "친일" 여부와 무관하게 이남의 보수적 부유층을 파트너로 삼는 게 자연스러웠고, 소련으로서는 하층 출신의 혁명적 관료 후보군을 상대하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역동적인 하층 출신의 관리자들이 주도하게 된 이북은, 공업화에 있어서는 1970년대초까지 보다 보수적 이남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담에는 남한에 추월 당한 이유는 결국 1. 미국이 소련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기술을 그 후국에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2. 구미권/일본 시장의 규모는 동구권의 그것과 비교 안될 정도로 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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