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치지 못하는 일제식민지 말씨
[우리 말 살려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규 | 기사입력 2013/11/09
ㄱ. 그럼에도 불구하고 1
뿐만 아니라, 적어도 어른 자기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점에서 부모와 교사의 소원은 완전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나 교사가 어린이와의 관계를 맺고 지도를 하는 현장을 보면
《성내운-스승은 없는가》(진문출판사,1977) 42쪽
“뿐만 아니라”처럼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나 “이뿐만 아니라”나 “저뿐만 아니라”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이런 말투가 자꾸 퍼지고 글이나 책이나 신문에 실립니다. 이리하여 이 말투를 바로잡거나 올바로 쓰는 사람은 차츰 줄어듭니다. “어른 자기(自己)보다는”은 “어른인 이녁보다는”으로 손보고, “바라는 점(點)에서”는 “바라는 대목에서”로 손보며, “부모(父母)와 교사의 소원(所願)은 완전(完全)히 일치(一致)한다”는 “어버이와 교사는 서로 한마음이 된다”나 “어버이와 교사는 서로 똑같은 꿈을 꾼다”로 손봅니다. “어린이와의 관계(關係)를 맺고 지도(指導)를 하는 현장(現場)을”은 “어린이와 만나 가르치는 곳을”이나 “어린이와 어울려 가르치는 모습을”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불구(不拘)’는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를 뜻한다 하는데, 외따로 쓰지 않습니다. “-에도 불구하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로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렇지만 . 그러하지만
→ 그래도 . 그러하여도
→ 그러한데도 . 그러면서도
→ 그렇긴 하지만
…
국어사전에 나오는 보기글을 살피면 “몸살에도 불구하고”나 “끝내는 도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글월이 있습니다. 이 글월은 모두 “몸살이 났지만”이나 “끝내는 닿을 수 없는데에도”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인데도”로 다듬으면 됩니다.
우리 겨레 말투로 알맞게 쓰는 길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이나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하지만’이나 ‘그러하기는 하지만’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이들 올바르며 아름답게 가르치며 사랑하려는 어버이와 교사부터 우리 말투를 슬기롭게 깨닫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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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적어도 어른인 이녁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대목에서 어버이와 교사는 한마음이 된다. 그런데, 어버이나 교사가 어린이와 어울리며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2
그는 자기감정을 놀랄 정도로 잘 통제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서 울고 있는 그를 본 적이 있다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121쪽
‘자기감정(自己感情)’은 ‘마음’으로 다듬으면 됩니다. “놀랄 정도(程度)로”는 “놀랄 만큼”으로 손보고, “잘 통제(統制)하는”은 “잘 다스리는”이나 “잘 가누는”이나 “잘 추스르는”으로 손봅니다. “울고 있는”은 “우는”으로 손질합니다.
잘 다스리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잘 다스리는 사람이지만
→ 잘 추스리는 사람인데
→ 잘 가누는 사람이기는 하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일본 말투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제법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이런 말투를 안 쓰는 사람이 부쩍 늘었어요. 그러나 이런 말투는 이 말투 나름대로 말맛이 있다면서 끝까지 붙잡고 쓰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어느 한편으로는, 이 말투가 일본 말투인 줄 몰랐다고 하면서 놀라지만, 막상 ‘우리가 널리 쓰는데 일본 말투라고 하면서 못 쓰게 할 까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쓰건 안 쓰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이 말을 구태여 쓰려고 하는 사람들 생각은 다시금 돌아봐야지 싶어요. 잘못 들어와서 잘못 퍼진 말인 줄 환하게 드러났다면 이녁 입이나 손에 너무 굳어서 고치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모르되, 잘못된 말투를 그대로 쓰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어른인 나는 잘못된 말투를 그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사나 어버이가 이런 말투를 그대로 쓰면 아이들은 앞으로 이런 말투에 물들고 말아요. 어른들 말투와 말씨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들 말투와 말씨로 퍼집니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써야 글쓴이 글맛이 살아날 수 있을 테지요. 그러면, ‘그러나’나 ‘그렇지만’이나 ‘그런데’를 쓰면 글쓴이 글맛이 죽는가요? 이 보기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아예 털고 ‘-이지만’와 ‘-인데’와 ‘-이기는 하나’처럼 씨끝을 바꾸면 글쓴이 글맛이 살아나지 못할까요.
요즈음은 ‘고맙다’라 안 하고 ‘땡큐(쌩큐)’라 말하는 사람 많고, ‘좋아’라 안 하고 ‘굿’이라 말하는 사람 많습니다. 이런 말투와 말씨도 개성이라 한다면 개성일 텐데, 이러한 개성까지 살려야 글맛이나 말맛이 나는지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참말로, 글맛이나 말맛이란 무엇일까요. 글맛을 살리고 말맛을 살찌우는 길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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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음을 놀랄 만큼 잘 다스리는 사람이지만, 혼자서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ㄷ. 그럼에도 불구하고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 눈과 마음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천성산으로 보입니다
《지율-초록의 공명》(삼인,2005) 204쪽
‘지금(只今)’ 같은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오늘’로 손볼 수 있어요. “이 세상(世上) 모든 것이”도 그대로 둘 만하지만, “온누리 모두가”로 손볼 만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러나, 그러나
→ 그러나, 참말 그러나
→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 그러나, 그러하나, 그러하지만
…
우리 삶터가 한결 낫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간다면,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한결 낫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삶터가 자꾸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한다면,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자꾸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합니다.
보기글 첫머리에 ‘그러나’라고 썼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따로 덧달 까닭이 없습니다. 한편,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라고 써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짙다는 느낌을 힘주어 나타낼 수 있어요. “그러나…”처럼 써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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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참말 그러나, 오늘 제 눈과 마음에는 온누리 모두가 천성산으로 보입니다
ㄹ. 그럼에도 불구하고 4
아들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희생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들의 장기를 이스라엘의 아픈 아이들에게 내주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거두어 키웠다 … 아무 죄도 없는 아들이 살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이스마엘은 … 사람의 마음 안에 숨어 있는 짐승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가마타 미노루/오근영 옮김-생명의 릴레이》(양철북,2013) 53, 62, 127, 133쪽
“이스라엘군의 총격(銃擊)에 희생당(犧牲當)했다”는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았다”나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로 손봅니다. “이스라엘의 아픈 아이들에게”는 “아픈 이스라엘 아이들한테”나 “이스라엘에 있는 아픈 아이들한테”로 다듬고, “아무 죄(罪)도”는 “아무 잘못도”로 다듬으며, ‘살해당(殺害當)했다’는 ‘죽었다’나 ‘목숨을 빼앗겼다’로 다듬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숨어 있는 짐승에 대(對)해”는 “사람 마음에 숨은 짐승을”이나 “사람들 마음에 숨은 짐승 이야기를”로 손질하고, “서로 이해(理解)할 수 있음을”은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나 “서로 헤아려 줄 수 있다고”나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다고”나 “서로 어루만질 수 있다고”로 손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런데도 . 그러한데도 . 그런데 . 그러나 . 그렇지만
이 보기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네 차례 나옵니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인지 이 말투가 잇달아 나옵니다. 아무래도 일본 말투이니 이렇게 자주 나올 테지요. 그러면, 이 말투를 ‘직역’하지 말고, 한국 말투로 알맞게 풀어서 적어야 옳다고 느낍니다. 이 나라 어린이와 어른 누구나 옳고 바른 한국 말투를 책으로 읽고 글로 만나서 말삶 북돋우도록 도울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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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 장기를 아픈 이스라엘 아이들한테 내주어 … 그런데,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거두어 키웠다 … 아무 잘못도 없는 아들이 죽었다. 그런데도 아버지 이스마엘은 … 사람들 마음에 숨은 짐승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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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에서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를 꾸립니다.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뿌리깊은 글쓰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빛>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같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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