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0

[이찬우의 일본 톺아보기]라인야후 사태와 일본의 경제안전보장 정책

[이찬우의 일본 톺아보기]라인야후 사태와 일본의 경제안전보장 정책



이찬우의 일본 톺아보기
라인야후 사태와 일본의 경제안전보장 정책
2024-05-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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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은 자유무역시대에서 보호무역시대로 바뀌고 있다. 1990년대 이후 2010년대 중반까지 30년 가까운 ‘탈냉전’ 시대에는 자유무역과 경제통합 분위기가 강했다. 이는 구소련이 해체된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협력하며 형성된 경제질서였다.

미국-대만-중국의 경제협력 체계는 반도체 및 전자산업 분야에서 맹위를 떨쳤다. 전자기기수탁제조(EMS)에서 나타나는 미국(팹리스)-대만(파운드리)-중국(현지생산) 분업의 효율 위주 국제협력이 그 사례다. 이를 경제시스템으로 최초로 구현한 이는 대만반도체제조회사(TSMC)의 모리스 창(張忠謀) 전 회장이다. 이 체계는 원청-하청이라는 수직적 분업체계를 수평적 분업 협력체계로 변화시켰다.

이 글로벌 공급망의 자유무역 체계에서 대만과 중국은 최대 수혜자였다. 반면 일본은 수직적 분업체계를 유지한 탓에 새 시대에 맞춘 기술개발과 마케팅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이 시기에 한국도 ‘북방정책’으로 한일관계보다 한중관계를 중시하면서 글로벌 분업체계 속에서 성공스토리를 만들었다.

필자가 1990년대에 몸담았던 대우경제연구소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시대적 사명감으로 중국 인도 베트남 미얀마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등 세계 신흥시장(emerging markets)에 주재원을 직접 파견한 최초의 연구소였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 경제안보 개념 등장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시진핑정권이 미국과 경합하는 별개의 글로벌 경제협력(유라시아-동남아-인도-아프리카 연계)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를 내놓은 것을 계기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2015년에 나온 ‘중국 제조 2025’ 정책은 중국이 중요 핵심 산업분야(IT 로봇 신에너지 바이오 신소재 등)에서 수입대체 국산화를 추진한다는 것으로 ‘반도체 굴기(2014년 이후)’와 더불어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2016년 대만에서 반중 독립 성향의 민진당정권이 등장하면서 중국-대만 관계도 대립하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미국정부가 발표한 국가안전보장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중국을 탈냉전 국제질서에 편입시켜 중국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으로 중국이 자유화된다고 생각했던 정책이 잘못이었다”고 단언했다. 이후 국제 경제에서 보호무역을 중시하는 ‘경제안전보장’ 개념이 화두로 등장했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다시 중요한 전략적 경제 파트너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 시기에 지난 5월 26~27일 4년반 만에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다자무역체계와 3국간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지지와 논의를 지속할 것을 합의한 것은 그나마 균형있는 노력이다.

일본은 미국에 맞추어 경제안전보장을 중시하는 법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2022년 5월에 제정된 ‘경제안전보장추진법(경제안보법)’이 그것인데, 올해 5월까지 2년에 걸쳐 시행령 등을 정비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본 경제안전보장 정책의 주요한 축은 다음의 4가지다. 즉 ①공급망 강화 ②핵심인프라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 ③중요 첨단기술 개발지원 ④특허출원 비공개화 등 4개 분야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이 앞의 두 항목이다. 우선 공급망 강화(2023년 시행) 차원에서는 22년 12월에 시행령으로 ‘특정 중요물자의 안정 확보’를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경제산업성은 로봇 항공기부품 반도체 배터리 클라우드프로그램 천연가스 영구자석 중요광물을 담당하고, 후생노동성은 항균성물질, 농림수산성은 비료, 국토교통성은 선박부품을 담당하도록 규정했다. 향후 우라늄과 첨단 전자부품 등을 중요물자에 추가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또한 핵심인프라의 안전성과 신뢰성 분야(2023년 11월 시행, 6개월 경과조치 후 2024년 5월 17일부터 제도 운영개시)의 기본지침은 사이버공격에 대한 방어다. 최근 한일간에 이슈로 된 ‘라인야후 사태’가 이와 관련해서 주목받고 있다.

핵심인프라 관련 대상 분야는 전기 가스 석유 철도 트럭운송 외항화물 항공 공항 전기통신 방송 우편 금융 신용카드 등 14개 분야다. 대상 사업자는 사이버공격에 대한 리스크 관리 책임을 진다. 사업자는 정부에게 핵심인프라 사업에 대해 설비·프로그램 공급자나 유지관리 수탁자의 명칭, 국적, 의결권 보유 비율, 제조장소, 외국정부와 거래가 있는 경우의 해당국 및 비율 등 상세 항목을 보고해 심사받아야 한다. 정부는 안정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 변경 또는 중지를 권고할 수 있고 사업자가 이를 응낙하지 않는 경우 변경 또는 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라인야후 사태’ 핵심은 경제안보 문제

한일 간에 문제가 된 라인야후주식회사는 경제안보법에 따른 전기통신 부문 사업자에 지정됐다(23.11.16). 라인은 일본의 1억2200만 인구 중 9600만명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로 그 위상은 압도적이다. 한국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라인(모바일 메신저 1위, 모바일 결제 수단 ‘라인페이’ 운영)과 일본 소프트뱅크(회장 손정의)의 자회사인 야후(검색엔진 1위, 모바일 결제 수단 ‘페이페이’ 운영)가 경영통합을 위해 50:50으로 중간지주회사인 A홀딩스를 설립하고, A홀딩스가 모회사로서 자회사인 라인야후를 2023년 10월 설립해 지분 64.5%를 갖는 구조다. 한일 간에 지분은 같지만 라인야후의 경영은 소프트뱅크가 지배(이사회 5인중 3명)하고 네이버는 기술개발을 책임지는 구조였다.

2023년 8~11월 한국의 네이버 클라우드가 해킹을 당해 네이버 사내 네트워크와 연결된 일본 라인의 사용자 정보 51만건이 유출된 사태가 발생했다. 그중 2만건 이상이 일본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비밀’에 해당됐는데 일본 총무성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라인야후의 보고를 받고 올해 3월에 1차 행정지도(권고)를 통해 통신비밀 보호 및 사이버 보안 강화를 요구했다.

이 시기는 경제안보법상의 핵심인프라 안전성과 신뢰성 항목이 운영개시 전 경과조치 기간이어서 개인정보보호법이 법적 근거로 작동했고 한일 간의 지분변경 등은 권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4월에 총무성은 2차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에게 “자본관계 시정을 포함한 대책을 7월1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라인야후와 네이버의 시스템을 분리하고 네이버의 라인야후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하라는 내용이다. 5월 17일 이후 운영되는 경제안보법상의 핵심인프라 안전성과 신뢰성 항목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이 2021년부터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에서 민간 거래에 대해서도 “국외의 적대자”가 제공하는 정보통신기술서비스에 관한 특정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정부가 라인야후 사태에 경제안보법을 적용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명백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흐름을 보면 라인야후의 지분 문제를 전기통신사업 핵심인프라에 대한 경제안전보장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같다.

정보관리 등에 대한 공동 기준 마련 시급

일본정부가 라인야후의 개인정보 해외유출 사태를 경제안전보장상의 문제로 인식하는 과정은 한일 간의 경제관계가 취약함을 말해준다. 한일 양국 사이에서 경제안전보장에 대한 공통의 합의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사한 사안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일본이 경제안전보장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공동협력이 오히려 필요하다. 경제안전보장만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정보관리 등에 대한 국제적인 공동규칙과 기준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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