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을 반대하며 통일운동 참가를 거부하는 황대권 선생에게
-남북 통일운동 아니라 남한의 자주화 및 반전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요청-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www.mindlenews.com)에 5월 26일 실린 생명평화운동가 황대권 선생의 “미친 소리”가 유감스럽습니다.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열렬한 중립화통일 운동가 고은광순 선생 때문”이라니 안타깝기도 합니다. 제가 5년 전 두 선생의 만남을 주선했으니 허탈하기도 하고요. 세 가지만 지적합니다.
첫째, 고은 선생은 ‘중립화통일 운동가’가 아니라 ‘한국중립화 운동가’입니다. 그가 황 선생에게 ‘한국중립화 추진운동’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지, ‘한반도중립화 통일운동’에 참가해달라고 요청한 게 아닙니다. 한반도를 중립화하며 통일하자는 게 아니라 미국에 종속적인 남한의 자주화를 통해 전쟁을 피하자는 것이죠.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나 운동가들 가운데 ‘중립’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꽤 크고 많은데, 중립은 전쟁 관련 용어입니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전쟁 당사국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가운데 입장에 서는 것이거든요.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요. 따라서 중립의 조건은 “전쟁에 참여하거나 지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하는 나라에게 어떠한 편의도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게 군사기지나 군사물자를 제공하지 않으며, 어느 국가와도 연합 군사훈련을 하거나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고요. 이렇듯 중립화 운동은 통일운동과 다릅니다.
둘째, 고은 선생은 “한반도의 영구중립과 평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대한 의존 또는 종속에서 벗어나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한국(남한)의 중립화’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겁니다. ‘한반도 중립’은 남북한을 포함하는 것이라 통일과 연결되지만, ‘한국 중립’은 북한과 관계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남한이 휘말리지 않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고은 선생이 조직하고자 하는 모임이 <탈미반전 한국중립화추진 시민연대>입니다. 작년 2023년 7월 고은 선생이 주도하고 황 선생이 적극 참여하며 제가 조그만 힘이나마 보탰던 <평택 미군기지 인간띠 잇기 행사>나 황 선생의 생애 전체에 점철되어온 ‘반제국주의’와 연결되는 것이죠.
미국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확장하며, 전쟁으로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지키느라,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해보고, 가장 좋아하며, 가장 잘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1775년 독립전쟁부터 2024년 현재까지 249년 동안 무려 230년 이상 전쟁에 치르거나 개입해왔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오다 이젠 미국-일본-한국 군사동맹까지 추진합니다.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인데 몹시 잘못 됐습니다. 미국은 1972년 중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중국은 하나만 있으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고 미국이 발표했지요.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느라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고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해놓고는 대만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대만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팔아왔습니다. 대만 민진당(民主進步黨)이 2000년부터 집권하면서 독립을 주장하고, 미국이 대만에 계속 무기를 판매하며 개입하자, 중국은 2005년 <반분열국가법(反分裂國家法)>을 만들어, 만약 대만이 국가를 분열시키는 독립을 추진하면 반평화적 또는 무력으로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중국은 대만과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되,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에 무력 수단을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죠. 2022년 공산당대회를 통해 이를 거듭 강조했고요. 시진핑 임기가 끝나는 2027년 안에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미국의 합의 위반과 이중성 때문에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만약 미국과 중국 간에 무력충돌이 빚어진다면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군도 동원될 수 있고,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세계 최대의 미군 해외기지와 중국을 감시하는 미사일방어체제가 한국 평택과 성주에 자리 잡고 있기에 한국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런 터에 고은 선생의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한국중립화 운동과 황 선생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바람직하겠습니까.
셋째, ‘통일운동’이 모두 ‘민족통일’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분단 때문에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니까 통일하자는 것이지, 남한과 북한이 한 민족 같은 핏줄이라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요즘엔 가족 중에서도 직장이나 교육 문제 등으로 부부 또는 부모자식 사이에도 떨어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남쪽 5,000만과 북녘 2,500만이 한 민족 같은 핏줄이라고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게 그렇게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특히 민족 때문에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일어난 것과 관련해,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해왔습니다. “이 세상엔 약 2,000종의 민족이 있고, 200개 안팎의 국가가 있으며, 20개 정도의 단일민족 국가가 있습니다. 모든 민족이 저마다 국가를 가지려 하면 앞으로 적어도 1,800번 이상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황 선생처럼 ‘반민족주의’까지 내세우진 않지만 민족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 인식을 가진 거죠. 따라서 같은 민족이라 통일해야 한다는 ‘통일운동’을 벌이는 게 아니라, 천문학적 군사비, 징병제, 전쟁 가능성, 미국에 대한 의존이나 종속 등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폐해가 너무 크고 많기에 통일하면 좋겠다는 ‘통일운동’에 몸담고 있는 겁니다.
황 선생은 “남북통일도 국가단위 또는 민족단위로 접근하면 이룰 수 없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고 했는데, 통일이 필요하면 미국과 중국을 활용할 수 있는 외교력을 키워야지, 두 나라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통일을 포기하라는 말인가요? 그리고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중국이 그 자리에 들어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고도 했는데, 남한에서 이승만 정권이 1960년 무너지고, 박정희 정권이 1979년 무너졌다고 미국이 그 자리에 들어서지 않았듯,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무슨 이유로 무너지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이 들어서지 중국이 들어설까요? 미국에 대한 남한의 자주성과 중국에 대한 북한의 자주성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황 선생이 생명평화운동가로 마을공화국 만들기 운동에 전념하겠다고 하면서, “지금의 국가시스템이 앞으로도 백년은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고 했군요. 적어도 100년을 내다보며 “민족을 넘어 지역에 뿌리박은 마을공화국” 체제를 만들겠다는데, 100년은커녕 앞으로 3-4년 사이에 전쟁을 겪어도 ‘마을공화국’을 제대로 진전시킬 수 있을까요? 황 선생이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의 평화입니다”고 했듯, 저는 마을공화국 만드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더 절박한 게 전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더구나 생명평화를 위한 마을공화국 운동과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중립화 운동은 조금도 상충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기에, 생명평화에 앞장서면서 중립화 운동에도 동참해주기를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5년 전 원광대학교 통일대담에서 황 선생과 고은 선생 그리고 제가 함께 만났듯, 6월 26일 14시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릴 <탈미반전 한국중립화추진 시민연대> 창립총회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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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민족이라 통일해야 한다는 ‘통일운동’을 벌이는 게 아니라, 천문학적 군사비, 징병제, 전쟁 가능성, 미국에 대한 의존이나 종속 등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폐해가 너무 크고 많기에 통일하면 좋겠다는 ‘통일운동’에 몸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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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없는 <평화관계 (운동)>이면 되지 왜 <통일(운동)>이 필요하다고 하는거지?
<한국중립화운동>이라고 하면 <통일운동>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관계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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