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0

진리를 찾아



진리를 찾아






2. 주체의 사회주의



○ 고난의 행군때 공화국이 생존한 리유

(2008. 8. 28)

이북은 1980년대말 동유럽사회주의가 붕괴되고 1991년 12월 25일 쏘련이 붕괴되자 그동안 물물교환형태의 무역을 해오던 사회주의형제국들과의 무역거래가 끝이 나고말았다. 그때부터 이북은 휘발유를 비롯한 다른 필요한 물자들을 현금을 주고 사와야만 하였다. 거기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심으로써 대국상을 만난 이북민중들은 큰 슬픔에 잠겨있었다. 또한 1995년과 1996년 2년간 대홍수를 만났다. 여기저기 뚝이 무너져 논밭이 진흙으로 덮였고 공장들도 물에 잠겨 문이 닫겼고 전기가 부족하니 기차도 멈추어섰다. 그리고 97년과 98년 2년간 대가뭄이 들어 많은 지역에서 곡식들이 말라 타죽어버렸다. 이때 이북민중들이 심한 고생을 하였다. 이 시기를 이북에서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라고 부른다.

이때 이북은 참으로 어려웠다. 아마 다른 나라 같으면 수십번 망했을것이다. 이북의 안내원들이나 간부들도 아마 다른 나라 같았으면 벌써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백기를 들었을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아마 며칠을 굶고나면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인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을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런데 이북에서는 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어떤 폭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누구나 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하였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자연재해를 누구의탓으로 돌린단 말인가. 그것은 사회주의체제의 잘못도 아니고 정책이 잘못되여서도 아니였다. 이북민중들은 이 자연재해를 당하여 주저앉아 남을 비난이나 하고있지 않았으며 령도자와 당과 군대와 일심단결하여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하였다. 군대들도 앞장서서 어려운 일들을 다 맡아 재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들 이북민중들이 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진 리유가 무엇일가.

나는 그 원인을 객관적요인과 주체적요인 두가지로 나누어 찾아보았다. 우선 이북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사회이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북은 자본주의사회처럼 생산수단을 일부 개인들이 사유하고있는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공유하고있다. 농장도 우리 농장, 협동농장으로 토지는 나라가 소유하고있고 농사를 지은 곡물은 나라에 일부 바치고 농사를 지은 사람들에게 분배된다. 땅소유주들이 토지도 사유하고 농사를 지은 곡물도 사유하는 자본주의사회와 다르다. 공장도 마찬가지이다. 이북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우리 공장이지 내 공장이라는것은 없다. 집도 나라에서 지어 세대수에 따라 분배한다. 집을 사고 팔수 없다.

그러므로 이북사회주의사회에서는 어느 개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살수 있는 객관적여건이 허락되여있지 않다.

모든 인민들이 다 잘살면 다 함께 잘살고 못살면 함께 못살게 구조적으로 형성되여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북사회주의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주민모두가 평등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의 기본생활구조인 경제에서 차별이 있기때문에 인간의 《평등》을 아무리 웨쳐도 평등을 이룩하기가 힘들다. 요사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니 빈부의 격차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더 심화되고있다.

이북이 고난의 행군을 할 때 만약에 이남사회에서처럼 10%의 가진 사람들이 국가재산의 반을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는 상황이였다면 반드시 폭동이 일어났을것이다. 굶어죽을바에는 가진 사람들의 집을 털어서라도 가족들을 먹이려고 했을것이다. 그러나 이북에서는 사회구조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없이 평등하기때문에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을 때 도시와 농촌이 다 함께 어려움을 겪고 관리들이나 평민들이나 다같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때문에 이북에서 고난의 행군을 할 때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것이다. 고난의 행군시기 평양시를 비롯하여 도회지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북사회주의사회에 아무리 평등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이 형성되여있었어도 주체적인 요인인 인간자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고난의 행군때 붕괴될수도 있었을것이다.

사회와 력사의 주체인 인간이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객관적인 여건이 준비되더라도 력사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은 진리이다. 만약 고난의 행군시기 민중들이 고난의 원인을 잘못 인식하고 그 고난의 화살을 당과 지도자에게 돌렸다면 아마 이북정권이 견디여내기 힘들었을것이다.

만약 인민군대가 도저히 굶고 살수 없으니 사회주의체제와 정권을 바꾸자고 총칼을 휘둘렀다면 이북정권이 붕괴되였을것이다.

그러나 이북민중들은 령도자가 민중들을 하늘처럼 여기며 민중들의 뜻을 받드는 민중의 수령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고 관리들과 당원들이 민중들의 충복으로서 자신들보다 고난의 행군때 더 고생을 하고있는것을 실체험으로 목격했기때문에 상급기관에 항의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학습을 통하여 이북민중들이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에 대한 차이점을 잘 인식하고있었고 이북식 주체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리해를 가지고 그것을옹호해왔기때문에 고난의 행군을 잘 극복할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령도자와 당, 군대, 민중이 주체사상으로 일심단결하여 하나의 사회정치적생명체를 이루고있었기때문에 이북에 그처럼 극심한 자연재해와 동유럽권의 붕괴가 있었음에도 생존할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주체적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사상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상론을 중요시하고있다. 사회주의종주국이라고 일컬어지던 쏘련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있었지만 사상으로 일심단결된 주체를 강화하지 못했기때문에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붕괴되고말았다. 핵무기를 포함하여 최신식무기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고 사람이 다루는것이다.

나는 이북을 자주 방문하면서 이북사회에서는 우로 올라갈수록 높은 간부들이 겸손하고 소박하며 생활자체가 검소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빠트도 새로 완성되여 높은 간부들에게 옮겨갈것을 권하면 민중들에게 먼저 분배하도록 하고 오래된 아빠트에 그냥 거주하는것으로 알려져있다. 자본주의사회처럼 고관들이 대저택에서 사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한다. 나는 1989년 축전때 이북을 방문하여 수만세대가 살수 있는 현대식아빠트를 완공한 광복거리 완공식에 참석하여 아빠트들을 둘러볼수 있었고 1992년 통일거리가 완성되였을 때도 통일거리 완공식에 참석하여 아빠트들을 둘러볼수 있었다. 이남 같으면 강남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그런데 그 거주자들이 평범한 로동자들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지금도 재미동포들을 모시고 안내를 할 경우 광복거리와 통일거리를 지나면 꼭 저기 아빠트에서 나오는 주민들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고관들과 상류층들이 아니라 평범한 로동자들이였다. 이북사회를 자본주의사회의 자본의 론리로 잴수 없다고 내가 강조하는것은 이때문이다.

사회와 력사의 주인인 인간, 민중이 준비되여야 한다. 인간을 무엇으로 준비시킬것인가? 자주적사상이다. 자주적사상을 틀어쥐고 사상을 앞세워 인간개조를 해야 인간을 모든것에 대비할수 있도록 준비시킬수 있다. 주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모든것의 주인이고 인간이 모든것을 결정한다고 주석께서 철학의 원리를 밝혀주시였다. 인간중심의 사회, 인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회,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세계관을 가진 사회, 이북의 주체사회주의를 파괴할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심단결된 주체사회주의, 거기다 어떤 제국주의세력이 침략해도 물리칠수 있는 물리적억제력을 가진 객관적조건까지 갖춘 나라인 이북을 감히 침략할자는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바로 우와 같은 객관적요건인 사회적평등과 물리적억제력 그리고 주체적요인인 자주사상으로 일심단결된 힘을 가지고있기때문에 이북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극복할수 있었고 이제는 강성대국건설을 향하여 매진할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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