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8

[이종석 칼럼] 요즘 북한이 굶지 않는 이유, ‘다수확 농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이종석 칼럼] 요즘 북한이 굶지 않는 이유, ‘다수확 농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이종석 칼럼] 요즘 북한이 굶지 않는 이유, ‘다수확 농민’

등록 :2019-01-06 18:41수정 :2019-01-07 09:27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실험 끝에 개인에게 특정 농지를 경작하게 하고 그에 따른 분배를 시행하는 포전담당책임제’를 정착시켰다. 이 제도는 생산과 분배의 단위가 개별 농민 수준으로 내려온 것으로서 북한 농업의 근본적인 개혁을 뜻한다.
사실상 생산 경쟁의 기본단위를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관심은 비핵화와 북-미 관계 부분에 쏠렸지만 정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농업부문의 성과를 평가하며 쓴 “다수확을 이룩한 단위들과 농장원들”이라는 표현이었다. ‘협동농장’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기존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농업 방식에서 생산·분배 단위로서 개인(농장원)은 존재할 수 없다. 집단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농장, 작업반, 분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북한 최고영도자의 신년사에 ‘다수확 농장원(농민)’이 등장했다. 무엇을 함의하는 것일까? 북한에서 개별 농민이 생산과 분배의 기본단위가 되는 구조적인 농업개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공식화한다는 뜻이다.

요즘 북한을 관찰하면서 가장 의아하고 궁금했던 것이 식량사정이었다. 불과 20년 전에 최소 수십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전국이 유랑 걸식하는 주민들로 넘쳐났던 북한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식량사정이 호전될 만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으며, 매년 대외 원조와 대규모 식량수입으로 겨우 아사 상태를 면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최근 몇년간 가해진 고강도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에서 극심한 식량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중단된 지도 한참 되었다. 지난 4∼5년간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옥수수나 밀을 대규모로 수입한 적도 없다. 게다가 주민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불법으로 조성했던 뙈기밭도 조림이 되거나 방치되면서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식량생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은 집단주의적 농업 방식에 기인한다고 진단해왔다. 이 방식으로는 농민들 속에서 생산 경쟁이나 생산 열의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에 식량 증산을 위해서는 중국처럼 개별 농가와 도급계약을 맺는 방식의 개체농 형태로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개인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산을 몰고 올 이러한 개혁을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정말 생산 증대를 목표로 ‘포전담당책임제’라는 농업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에서 ‘포전’이란 “알곡이나 그밖의 작물을 심어 가꾸는 논밭”을 뜻한다. 북한도 대단위 집단을 기준으로 한 생산·분배 시스템이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그동안 협동농장의 말단 생산·분배 단위를 15∼20명 정도로 묶은 분조 관리제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이 역시 식량 증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에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개혁적인 실험 끝에 개인에게 특정 농지를 경작하게 하고 그에 따른 분배를 시행하는 ‘포전담당책임제’를 정착시켰다. 이 제도는 생산과 분배의 단위가 개별 농민 수준으로 내려온 것으로서 북한 농업의 근본적인 개혁을 뜻한다. 사실상 생산 경쟁의 기본단위를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2018년부터 포전담당책임제를 언급하기 시작한 <노동신문>은 농장원별로 책임지는 포전의 규모를 능력에 따라 차등을 두며, 그에 따른 분배에서 차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분배에서의 평균주의가 농민들의 생산 열의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며, 이를 사회주의 분배 원칙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경계하고 있다. 같은 분조 안에서도 농민별로 생산량과 목표달성 여부에 따라 소득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이처럼 최근 북한은 농업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면서 식량 증산의 전환기적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북한의 식량사정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작년에도 64만여톤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지속적으로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농업개혁 의지를 추동하는 것은 경제발전에 대한 열망이다. 그는 신년사에서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공급하기 위해 그동안 소극적으로 허용했던 ‘개인부업축산’ 활동을 공개적으로 권장하였다. 그 배경은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하다면 집단도 개인도 모두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결국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복무하던 사회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전체가 하나가 지닌 개별적 능력을 평가하고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작했다. 이 변화는 향후 남북협력과 한반도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핵화 문제 못지않게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한 때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7203.html#csidxa80756860afa622b3557b5742cf01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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