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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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통일경제포럼 ・ 2018. 12. 31. 18:47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1. 북미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




1) 북미 정상회담의 내용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첫 력사적인 수뇌회담”을 가졌다. 1948년 9월 북한 정부가 수립된 이후 70년 동안 지속적으로 적대 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 정상이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2018년 1월까지 서로 ‘핵 단추’를 언급하며 말 폭탄을 주고받던 터였다.



두 정상은 “수십 년간 지속되여온 긴장상태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로 합의하며,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과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안전 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인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북미 양 정상의 서명이 담긴 공동성명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주요 내용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한다. 둘째,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셋째,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한다. 넷째,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골 발굴을 진행”한다.



이러한 ‘6.12 싱가포르 선언’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다. 13년 전인 2005년 9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의 합의 사항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그와 관련된 계획을 포기한다. 둘째,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하지 않는다. 셋째,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한다. 넷째, 북한을 제외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남한 등 5개국은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며 경수로를 지어줄 수 있다. 다섯째, 6개국은 한반도 평화 및 동북아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



2)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6.12 세기적 담판’은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두 나라 최고지도자들이 친밀감과 신뢰를 드러내며 직접 합의하고 곧 이행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양국정상은 공동 합의문 서명에 앞서 회담장 주변을 통역 없이 산책하며 친밀감을 내보였다.


둘째, 1948년부터 지속된 북미 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70년 만에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큰 충격이나 상흔도 한 세대 남짓 흐르면 대개 치유되기 마련이다. 이런 터에 북한과 미국은 두 세대가 훌쩍 지나서야 적대관계를 풀고 국교를 정상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북미 수교를 전후로 북일 수교도 이루어지면, 197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어온 남북한 교차승인이 완성된다. 남한이 적대국이었던 소련과 1990년 국교를 정상화하고 중국과 1992년 수교했듯,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뜻이다.



셋째,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무려 68년 만이다. 1953년까지 3년간 싸우고 어정쩡하게 멈추거나 (停戰) 쉬고 있는 (休戰) 비정상에서 벗어나 65년 만에 종전 (終戰) 선언과 평화협정을 불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1979년 미국과 중국 그리고 1992년 남한과 중국에 이어 머지않아 남한과 북한 및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전쟁 같은 상황이 종식된다는 뜻이다.



넷째, 1993년부터 불거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25년간 한반도 안팎에서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갈등과 긴장을 불러온 최대의 쟁점을 물리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위협’도 없어지는 ‘평화의 터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2. 북한의 대미정책 및 미국의 대북정책




1) 김정은의 핵무력 완성과 대미정책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신년사를 발표했다. 대략 10쪽 안팎의 분량으로 2017년 이룩한 성과를 평가하며 2018년 계획을 보고한 것이다. 2017년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이 극도에 달해 유례없는 엄혹한 도전에 부닥쳤는데, 최악의 난관 속에서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력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위원장


‘핵무력 완성’ 및 대미 정책과 관련해 될수록 그의 말을 인용해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 되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 미국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 이 위대한 승리는 당의 병진로선 (竝進路線)과 과학중시사상의 정당성에 따른 역사적 장거이다.” 병진로선을 걷고 과학을 중시해 수소폭탄과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개발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병진로선’이란 군사건설과 경제건설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2013년부터 채택되었다. 김정일 시대엔 나라 안팎의 위기에 직면해 ‘선군 (先軍) 정치’를 내세워 군사력 강화에 집중했는데, 김정은 시대엔 경제 개발에도 힘쓰겠다는 취지였다. 2017년 10월 열린 조선로동당 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을 철저하게 관철할 것을 다시 확인했다.



2018년 신년사에서도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튼튼히 다져야 하겠다”며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철저한 관철을 다짐한 데 이어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핵무기와 미사일의 대량 생산 및 실전 배치를 강조한 것은 앞으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2) 트럼프의 중국 견제와 대북정책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직접적 군사 위협을 받지 않는 한 무력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고립주의 (isolationism) 대외정책을 천명했다. ‘고립주의’는 미국이 자국의 국가안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의 해외 파견을 자제하거나 이미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철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세계 경찰’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구체적으로 군사.안보 분야에서 해외에 배치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다. 특히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주둔비용을 전부 부담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김정은이 미치광이지만 인정은 해줘야 한다며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트럼프가 2017년 12월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NSS)>의 주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급속적인 경제 성장과 군사력 팽창을 바탕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해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가 ‘도전자 (challenger)’로 명시한 나라는 넷이다. ‘수정주의 중국과 러시아 (revisionist powers of China and Russia)’ 그리고 ‘깡패국가 이란과 북한 (rogue states of Iran and North Korea)’이다. 이슬람 성전주의자 (jihad)를 포함한 초국적 테러조직도 포함했다.



미국이 신경 쓰겠다는 지역은 인도-태평양, 유럽, 중동 등 세 곳이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가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따르면, 중국은 이 지역에서 막대한 투자를 앞세워 미국을 밀어내려 한다. 그리고 남중국해에 전초부대를 세우면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막고자 한다.



2017년 12월 18일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이에 미국이 마련한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일본과 호주 그리고 인도와의 4각 협력 (quadrilateral cooperation)을 증진시켜” 중국을 봉쇄한다. 둘째, 어떠한 상대도 저지하거나 패배시킬 수 있도록 전진 배치된 군사력을 유지한다. 셋째, 동맹국들과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한다.



그런데 미국이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빌미를 북한의 위협에서 찾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유엔 제재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며 압박해왔다. 중국 봉쇄의 명분을 찾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며 도발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7년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이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빌미로 삼아온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방치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국가안보전략 서두에서부터 ‘깡패국가 (rogue state)’ 북한을 16회나 언급하면서 주요 ‘도전자 (challenger)’로 꼽고 있다.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무자비한 독재정권 (ruthless dictatorship)’이 25년 이상 모든 약속을 저버리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왔는데, 이러한 무기들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김정은과 트럼프의 협상전략과 공생전략




1) 김정은과 트럼프의 협상전략: 벼랑끝 전술과 미치광이 전술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반년 앞둔 5월 트럼프 공화당후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정은과 대화할 수 있다. 그와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다.” 6월엔 더 나아갔다.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김정은과 회의 테이블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협상할 것이다. 북한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고 했다. 북한은 이를 반기면서, “트럼프는 막말 후보나 괴짜 후보, 무식한 정치인이 아니라 현명한 정치인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대통령 후보감이다”고 치켜세웠다.



그럼에도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미 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했다. 트럼프는 금세라도 북한을 폭격할 듯한 ‘코피 터뜨리기 (bloody nose)’를 포함한 ‘미치광이 전술 (madman strategy)’을 펼쳤다. 김정은은 괌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 때릴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벼랑끝 전술 (brinkmanship)’을 전개했다.



미치광이 전략은 미치광이나 정신병자처럼 말하거나 행동하며 전쟁을 비롯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상대방이 물러서거나 양보하도록 이끄는 협상술이다. 벼랑끝 전술은 벼랑 끝까지 나아가 상대방이 후퇴하거나 굴복하도록 이끄는 협상술이다.



최고수준의 말대말 대치로 이어졌던 2017년 북미간 핵위기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이기에 자신은 가장 적게 주며 상대방으로부터는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미치광이 전략이든 벼랑끝 전술이든 무력과 담력을 어느 정도 겸비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외교 방법이다. 힘이 강해도 죽음을 두려워하면 굴복하기 쉽고, 가진 게 많아도 손실을 우려하면 물러서기 마련이다. 수십 개의 핵폭탄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김정은이 적어도 수천 개의 핵폭탄을 보유한 미국 트럼프와의 ‘겁쟁이 경기 (chicken game)’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맞짱 뜰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라는 무력 없이 담력으로만 미국에 맞섰다면 김정은은 이미 이라크의 후세인 (Saddam Hussein)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Muammar al-Qaddafi)처럼 죽었을 것이다.



2) 김정은과 트럼프의 공생전략



2018년 12월 현재 북미 관계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김정은과 트럼프가 담판을 지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서로 상대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생 전략’의 이유나 배경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핵무력 건설과 경제 건설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병진로선 (竝進路線)’ 정책을 채택했다. 김정일 시대엔 충성심과 단결력이 강한 군대를 앞세워 나라 안팎의 위기를 돌파한다는 ‘선군정치 (先軍政治)’를 내세워 군사력 강화에 집중했는데, 김정은 시대엔 경제개발에도 힘쓰겠다는 취지였다. 2017년 9월 수소폭탄 시험 및 11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시험에 성공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2018년 4월 ‘경제발전 총력집중’ 정책을 선언했다. 군사건설을 끝냈으니 경제건설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적대 관계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대북제재를 풀 수 없고,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남한이든 중국이든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나 협력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이 직접 돈을 내거나 투자하지는 않더라도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IMF)을 통해 투자가 들어가고, 일본의 식민통치 보상이나 배상금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껴안아야 할 이유가 아닐까.



트럼프의 가장 큰 정치적 목표는 2016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러시아 스캔들’ 및 다양한 ‘성 추문’에 따른 탄핵 위기에서 벗어나고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탄핵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대통령 탄핵은 하원의원 과반수와 상원의원 2/3 이상이 찬성해야 되기 때문이다. 미국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경제문제다. 중간선거가 있었던 2018년 11월 미국의 경제 상황은 좋은 편이었다. 이에 덧붙여 ‘북핵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안보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둔다면 트럼프가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또한 북한이 억류하고 있던 한국계 미국인들을 2018년 5월 풀어준 것처럼, 1968년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해 대동강 주변에 전시해놓고 있는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 (Pueblo)도 다음 선거를 앞두고 되돌려준다면 트럼프에게 적지 않은 선물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하는 배경 아니겠는가.






4.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방안: 북한 핵무기와 미국의 핵위협 제거




이 글을 쓰는 2018년 12월까지 북한과 미국 사이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시험을 중단했고 미국은 남한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했을 뿐이다. 북한은 미국에게 한국전쟁 종식과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서로 간의 불신 때문에 상대방에게 먼저 행동하라고 요구하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1948년부터 적대 관계를 지속하고 강화해온 두 나라가 1990년대 초부터 불거진 ‘북핵 문제’를 하루아침에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한과 미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말을 즐겨 쓴다. 북한과 중국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한다. 남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북한과 중국은 미국 특히 주한미군의 핵능력도 같이 논의하자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합의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핵위협’은 미국이나 주한미군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단독으로 혹은 한국과의 합동군사훈련시에 한반도에 전개해왔던 각 종 핵전략자산들. 왼쪽에서부터 B-2 폭격기, F-22 랩터 폭격기, 핵잠수함, B-52 폭격기, 핵추진항공모함.


난 10여년 전부터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으로 다음과 같이 3단계 해법을 제안해왔다. 제1단계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전쟁 위협을 그만두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도록 한다.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거나 주장하는 이른바 ‘쌍중단’이다.



제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어 상호 신뢰를 구축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꺼려하고, 북한은 주한미군이 유지되는 한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이 가운데 내가 제안해온 제1단계 또는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은 이미 이루어졌다. 제2단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이 문제다.



주한미군은 본디 1953년 7월 정전협정 직후 8-10월 맺어진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950년 6월 시작된 한국전쟁을 1953년 7월까지 끝내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停戰) 잠시 쉬기로 (休戰) 했기 때문에, 전쟁이 재개될 것에 대비해 미군이 주둔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명목적으로는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거나 봉쇄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유지하거나 강화해야 하고, 그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북한을 적대국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북한이 오래 전부터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을 줄기차게 요구해도, ‘자유와 평화를 앞세우는’ 미국이 한사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배경이다. 크게는 미국의 중국 견제 및 봉쇄정책 때문에 작게는 주한미군 때문에 북미관계를 진전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주류 정치세력과 달리 2016년 11월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2017년 12월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NSS)>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핵심전략으로 태평양의 미국과 일본 및 인도양의 호주와 인도를 중심으로 ‘4각 협력 (quadrilateral cooperation)’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에 주한미군을 빼놓은 것이다.



미군의 시리아 철군에 반대하다 끝내 사임한 매티스 전 미 국장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의지를 '세계 3차 대전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막아왔던 매티스의 사임이 주한미군과 관련하여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미국의 군부세력과 군수산업세력이 연계된 군산복합체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주류 정치세력과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 세력들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비판하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거부한다. 이러한 진전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까봐 경계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는 2018년 7월 주한미군 감축마저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에 김정은과 북한이 잘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9월 초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는 관계없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할 때까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종전선언조차 반대하는 군산복합체와 주류 정치세력의 반발을 무마하며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핵무기 개발 관련 시설을 폐기하고 핵무기 목록 등을 미국에 건네주며,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과 경제제재 해제, 연락사무소 교환 등을 받아내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과 신뢰를 쌓은 후 완전한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철수, 국교정상화 등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남한의 준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대안




앞에서 얘기했듯,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냉전시대에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남한의 보수/극우 세력은 여전히 한맹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유지를 국가 목표처럼 간주한다. 한미동맹 약화나 해체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우려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거부하거나 반대한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과 필요성을 짚어봐야 한다. 첫째, 북한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필요 없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남북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라고 한 터에 북한을 겨냥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필요할까?



9월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남과 북이 각각 11개의 GP(감시초소)를 시범철수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상호 공동검증작업을 거쳤다.


둘째,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도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하다. 남한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1992년 국교정상화 이후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한중 교역량은 2003년부터 한일 교역량을 넘어섰고, 2004년부터는 한미 교역량을 초과했다. 2009년부터는 한미 및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역의 내용이다. 일본에겐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단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가운데 2017년 283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미국에겐 198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7년 179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중국에겐 수교 다음해인 1993년부터 흑자를 기록해온 가운데 2017년 443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남한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약 1/4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거의 절반을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을 겨냥해 남한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까.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군사정책을 전개하고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거부하는 군사정책으로 맞서며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의 제1 폭격 지역과 대상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 아니겠는가. 주한미군 때문에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로 남한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포함되는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한반도 중립화는 미국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하면서 구상하기도 하고, 북한이 지금까지 연방제 통일방안에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수/극우세력이 극심하게 반발하고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조차 거부하거나 반대할 명분이 적은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부터 추진하면 자연스럽게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이루어지고 여론이 조성되지 않겠는가.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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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작성자 통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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