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7
[아무튼, 주말] '중산층'이 사라진다 30년 전 국민 75% "난 중산층"… 올해엔 48%로 뚝 - 조선닷컴 - 사회 >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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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중산층'이 사라진다 30년 전 국민 75% "난 중산층"… 올해엔 48%로 뚝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입력 2019.01.26 03:00
[박돈규기자의 2사 만루] '당신은 어느 계층에 속합니까' 2060 남녀 5037명 설문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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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300만명이 본 영화 '서치'는 실종된 딸을 찾아가는 아빠의 분투기다. 딸은 부재중 전화 3통만 남긴 채 연락이 끊긴다. 경찰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아빠는 딸의 노트북과 소셜미디어를 뒤진다. 그럴수록 절망한다. 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른바 '체감 중산층'이 급감하고 있다. 1989년 갤럽 조사에서는 국민의 75%가 "나는 중산층이오"라고 했다. 서울올림픽으로 대표되는 고도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이 계층 상승에 대한 낙관을 불렀다. 그리고 30년. 그들 상당수는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었다.
'아무튼, 주말'은 이달 초 SM C&C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20~60대 남녀 5037명이 응답했다. '당신은 고소득층·중산층·저소득층 가운데 어느 계층에 속해 있습니까'라고 묻자 2464명(48.9%)이 '저소득층'이라고 답했다. '중산층'(48.7%)을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고 '고소득층'은 2.4%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중산층이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우울한 신호다.
이 집단적인 실종 사건은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통계청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체감 중산층은 2003년 56.2%, 2009년 54.9%, 2013년 51.4%로 위축돼 왔다. 이젠 40%대로 떨어진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5~10년 전과 비교해 계층 변화를 묻자 '하락했다'(35.6%)는 응답이 '상승했다'(18%)를 압도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988년 4548달러에서 2018년 3만1000달러(한국은행 추정)까지 치솟았지만, 중산층은 거꾸로 세력을 잃은 셈이다. 풍요의 역설이다.
"나는 중산층 아니고 저소득층이오"
중산층 실종 사건을 추적하려면 중산층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보편적으로 고소득층·중산층·저소득층을 가르는 기준은 중위소득(국민이 100명이라면 소득순으로 세웠을 때 50번째 사람의 소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소득의 50% 초과~150% 이하를 중산층으로 본다. 4인 가구 기준으로 2019년 중위소득은 월 461만3536원. 따라서 월 소득 230만6768원 초과~692만304원 이하면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중위소득 50~150%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57.2%, 2014년 56.9%, 2015년 57.4%, 2016년 58.1%, 2017년 57.6%다. 이번 설문조사로 나타난 체감 중산층은 이 공식 중산층 수치보다 9%가량 낮다. 객관적 통계로는 중산층으로 잡히지만 주관적으로는 "나는 중산층이 아니라 저소득층이오"라며 부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중산층은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허리'다. 그들이 탄탄해야 사회 갈등이 줄어들고 경제 발전도 가능하다. 2013년 'OECD 기준 중산층과 체감 중산층의 괴리'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현대경제연구원은 "체감 중산층(51.8%)은 OECD 기준 중산층(61.9%)보다 훨씬 적었다"며 "우리나라 중산층의 정체성과 자신감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에 진행한 이메일 설문조사는 '근년 들어 소득에 변화가 있느냐?'로 시작됐다. '비슷하다'는 응답이 46.5%였고 '줄었다'(31%)가 '늘었다'(22.5%)보다 많았다. '앞으로 계층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느냐'고 묻자 '전혀 그렇지 않다'(13.6%)와 '그렇지 않은 편이다'(52.7%) 등 비관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이사는 이 결과에 대해 "정부가 2년 넘게 소득주도 성장에 힘썼는데 성과가 없다는 방증"이라며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유는 뭘까. 응답자들은 '정책 실패'(31.1%)를 1위로 꼽았다. '고용 부진'(27.9%), '세계적 불황'(22.4%), '복지 부진'(17%) 순이었다. 그런데 연령대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졌다. 20대와 30대는 '고용 부진'을 소득 양극화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한 반면 40대부터는 '정책 실패' 탓으로 돌리는 비율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상승했다. 앞으로 계층이 하락할 것으로 보는 배경으론 '소득 감소'(31.8%), '경기 부진'(23.9%), '양극화 진행'(19.2%) 등이 꼽혔다.
이미지 크게보기일러스트=안병현
30~40대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하다
영화 ‘서치’에서 아빠가 딸에 대해 모르는 게 많듯이, 중산층의 실체도 가늠하기 어렵다. 중산층 기준이 너무 헐렁하고 소득만으로 정의할 순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 박모(45)씨는 “4인 가구 월 소득이 300만원 이하라면 중산층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집이 한 채 있고 사교육을 어느 정도 뒷받침할 수 있으며 매달 책을 한두 권 읽고 해마다 가족여행이 가능하며 노후 대비도 안정적이라야 중산층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서 국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자산 6.6억원 이상, 4인 가족 기준으로 세금과 4대 보험을 제외한 월평균 가구 소득이 515만원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상적인 중산층과 현실의 주택 평수는 8.3평 차이가 났고, 월 생활비도 90만원 이상 격차가 있었다. 계층 갈등을 해부한 책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공저자 중 한 명인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30평 이상의 주택에 살고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에 괜찮은 생활을 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대중이 중산층을 바라보는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종의 ‘강남 증후군’이다. 너나없이 가난하고 평등하게 출발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고도성장을 경험하며 중산층에 올라탔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사회가 되면서 문이 닫혀버렸다.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이 꺾였다. 그래도 강남은 여전히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남 수준이 안 되면 ‘난 중산층이 아니야’라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특히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30~40대의 박탈감이 두드러졌다. 30대의 54.7%, 40대는 51.3%가 “나는 저소득층”이라고 답해 체감 중산층이 적은 연령대 1~2위로 나타났다. 이 시기의 삶이 한국 사회에서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현대경제연구원 오준범 선임연구원은 “이자 부담이 늘고 가용할 자산이 줄어들면 중산층이라도 저소득층이나 서민이라고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며 “30~40대는 자녀 교육 등 지출이 많아지는 구간인데 앞으로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으니 심리적으로 더 위축된다”고 했다.
직장인 민모(37)씨는 맞벌이를 하고 아이가 하나 있지만 “소처럼 일해도 나는 중산층은 못 되고 그냥 서민인 것 같다”고 푸념했다. 방송은 여행과 먹방, 연예인 일상을 다루고 소셜미디어는 ‘포장된 삶’을 보여준다. 포털 사이트에는 억대 연봉자들의 이야기가 넘친다. 민씨는 “돈이나 물질적 성공 스토리가 없는 삶은 실패한 것처럼 비친다”며 “남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기 쉬워진 만큼 자꾸만 내 삶과 견주어 평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2018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서 평균적인 가계의 살림살이는 이렇다. ‘한 해 가족이 버는 돈은 모두 합쳐 5705만원. 이 가운데 1037만원은 세금, 건강보험, 대출이자로 내고 4668만원으로 생활한다. 재산은 부동산·예금·주식 등 4억1573만원. 은행 대출과 임대보증금을 비롯해 빚도 7531만원 있다….’
새로운 중산층 모델 고민해야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됐지만 중산층 귀속감은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중산층은 논외로 하고 부자와 서민으로 양분하는 시각도 등장했다. 객관적 생활 조건은 나아졌지만 주위 사람들과의 격차를 더 크게 인식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중산층 의식의 소멸을 재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재열 교수는 지금 한국은 모든 걸 개인이 알아서 풀어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 모래알 사회라고 했다. 자식도 챙겨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하며 베이비붐 세대는 연로한 부모도 돌봐야 한다. 이 교수는 “서양 복지국가들은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며 “그 나라들은 낯선 사람을 돕는 데 내 세금이 쓰인다 해도 저항감이 없고 거꾸로 내가 어려울 땐 도움을 받을 거라는 신뢰가 공고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걸 개인이 해결해야 하니까 움켜쥐고 쌓아놓으면서도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사회라도 ‘낙오하는 사람은 돕는다’는 가치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학력은 계층 상승의 가장 쉬운 경로다. ‘믿을 건 교육뿐’이라는 베이비붐 세대의 학습 효과는 자식 세대에게 투사됐다. 시청률 20%를 돌파한 ‘SKY캐슬’에는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흥건하다. 대중은 이 드라마 속 강남 중산층의 사교육을 욕하면서도 시샘한다. 지위를 둘러싼 경쟁은 취업 시장에서 다시 재현된다. 양질의 일자리는 500만여 개로 거의 증가하지 않는 가운데 대졸 노동력은 1000만명 수준이라 청년 실업이 갈수록 태산이 된다.
1968~74년에 태어난 제2차 베이비붐 세대는 30대부터 저성장과 저금리, 아파트값 폭등이라는 짐을 떠안았다. 그 아래 ‘88만원 세대’는 방 한 칸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아파트 게임’을 쓴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중산층 부모는 노후 자금을 털어 무한 경쟁의 교육 시장에 뛰어들지만,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집을 담보로 아들의 집을 짓는 꼴”이라고 했다.
집이 한 채 있지만 가난한 ‘하우스 푸어’, 조기 퇴직 후 다시 일자리를 찾는 ‘반퇴 세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걸 인정하는 ‘수저계급론’ 같은 신조어에는 불안과 절망, 분노가 담겨 있다. 체감 중산층이 줄어드는 문제에 대한 정책 방향은 둘 중 하나다. 중산층을 늘리거나 저소득층을 줄이거나. 같은 얘기지만 방점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 70% 재건’ 공약을 이루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상승과 복지 확대로 저소득층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재열 교수는 “‘뉴 노멀(새로운 표준)’에 대한 합의나 사고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치적 포퓰리즘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대학 숫자와 정원이 폭증하면서 청년 세대가 취업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박해천 교수는 “가장이 4인 가족을 부양하는 과거의 중산층 모델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젠 맞벌이도 조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녀를 양육하기 어렵다”며 “비혼(非婚) 여성 가구를 비롯해 변형된 중산층 모델에 부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마지막 질문은 ‘현재 본인의 삶에 만족하는가’였다. ‘불만족’(56.8%)이 ‘만족’(43.2%)보다 우세했다. 체감 중산층 감소는 한국인의 행복을 위협하는 일종의 조난신호(SOS)다.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5/20190125019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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