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윤석원입니다”2016년 4월 25일 by 신수경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교직에서 물러나면 후배 교수들에게 길을 터주고 본인은 농부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정말로, 그렇게 ‘농부’가 되었다.
지난 2월, 농업계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술렁였다. 평소 농업에 대한 일관된 신념과 철학을 펼치기로 유명한 “농업경제학자” 윤석원중앙대학교 교수가 정년을 2년 6개월 남기고 돌연 퇴직한 것.
“모든 농정의 핵심은 농민이다. 농정 중심에 농민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펼쳐왔고, “교직에서 물러나면 후배 교수들에게 길을 터주고 본인은 농부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정말로, 그렇게 ‘농부’가 되었다.
강원도 양양군 강선리. 설악산 대청봉이 눈 앞에 펼쳐지고, 고개를 돌리면 푸른 바다가 보이는 아늑하고 아담한 550평(1,818㎡)의 사과밭. 어린아이 주먹만 한 작은 사과 ‘알프스 오토메’ 품종 205그루가 있는 이곳이 윤석원 교수의 새로운 일터다. “양양로뎀농원”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아직 농막도 창고도 없다.
“일단 나무부터 심고 보자 했어요. 관수 시설이 아직 없어서 아랫집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데 수압이 약해 물 주는 데 온종일 걸려요. 그래도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나무를 잘 살리는 거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알프스 오토메 사과묘목 205그루를 심어 놓은 양양로뎀농원초보 농부인 윤 교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영농일지)를 쓴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그가 환하게 웃었다. 평생 머리 쓰는 일을 했던 터라 몸에 익지 않은 노동에 저녁때면 녹초가 되어버리지만, “요즘, 너무나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 교수는 현재 ‘양양친환경미니사과(알프스 오토메) 작목반’ 소속 농부다. 7명의 농부가 함께 친
환경농업대학 교육도 받고 서로 돕는다. 그는 최근 오랫동안 고집하던 2G폰을 버리고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교수일 땐 아무 불편함이 없었는데 농부가 되니까 모바일 커뮤니티 없이는 소통이 안 되더라고.
(웃음)”
농부로 산 지 이제 2개월여.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당연했던 것들이 당혹스러울 때
도 종종 있다고 했다.
“퇴비 한 포대가 20킬로인데 처음엔 좀 들겠더라고. 그런데 10포대 20포대를 나르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려 못하겠는 거야. 퇴비 회사에선 30킬로 단위로 만들고 싶어 하는데, 농민은 허리 다 나가요.전에는 이런 거 몰랐지.”
윤 교수는 30여 년간 농업경제학을 가르치고 연구했지만 정작 농업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며, 이
제는 농민의 시각으로 농업 농촌의 문제를 바라보고, 의미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봄길이 되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새로운 명함에 새겨진 ‘농부 윤석원’이라는 이름처럼, 길도 봄도 새롭다.
글 · 사진 신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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