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7

[경제직필]한국의 모델은 한국이다 - 경향신문

[경제직필]한국의 모델은 한국이다 - 경향신문

한국의 모델은 한국이다
송기호 변호사
입력 : 2021.07.07 03:00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 2일, 한국을 선진경제로 그 지위를 승격하였다. 유엔이 1964년에 개발도상국의 개발을 목적으로 이 국제기구를 설립한 후 처음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에 국제적 역할과 책임에서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송기호 변호사

특히 한국은 기후 재앙이라는 인류적 도전에 대응하는 국제 규범 정립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 기후 위기는 선진국들이 만든 것이고 개발도상국들은 피해자이다. 그러므로 선진국들의 기후위기 대책은 개발도상국들에 부담을 주거나 비용을 지불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탄소중립 기술과 탄소국경세 규범이 개발도상국에 새로운 진입장벽이 되지 않도록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한국 모델을 국제사회에서 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나? 나는 개방 덕분에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164개의 회원국이 개방된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개방은 국리민복의 기본이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가 <라진선봉 투자환경>이라는 책을 낸 때가 1995년이다. 개방의 반대가 쇄국이라면 그 어떠한 나라도 쇄국을 선택하지 않는다. 조선이 쇄국정책 때문에 식민지가 되었다는 주장은 대문을 닫았기 때문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과 같다.


한국 모델이 성공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평등한 활력을 끊임없이 내부에서 창조한 데에 있다. 아시아에서 1950년의 농지개혁, 1987년의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을 성취한 것이 한국 모델의 특징이다. 한국인은 부의 독점이 사회 활력을 꺼트리는 질곡이 되었을 때, 그 해체와 새로운 평등을 이루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에도 불구하고 농지개혁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아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산업화 역군’인 노동자가 노동 3권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2017년 시민들은 최고 권력자를 헌법이 정한 절차에 의하여 평화적으로 탄핵하였다. 이는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일부 미국인들이 미국 의회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사건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상징적 차원이라 하더라도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도 다르다.


한국의 모델은 한국이다. 60만5000명의 자국민 목숨을 코로나19로부터 지키지 못한 미국이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홍콩 신문 빈과일보가 자진 폐간해야 하는 중국도 한국의 모델이 아니다. 한국은 자신의 힘으로 이룬 성취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를 2028명(7월5일 0시 기준)에 그치게 해 주었다. 암 환자의 진료비 90%를 국민건강보험이 책임져 준다. 한국의 평등한 활력은 세계의 모델이 될 가치가 있다.


한국 모델이 더 성공하여 세계 질서에 이바지하려면 부의 독점으로 사회가 활력을 잃는 세계적 문제 해결에 한국이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와 세계적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세계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다. 그 결과 자산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세계적 문제이다. 한국의 토지 자산 사이의 불평등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전국 1182곳인 농촌 면 지역 가운데 어린이집이 없는 곳이 37%이다. 토지 자산에서 생기는 지대를 세금으로 거두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 주는 활력 모델이 필요하다. 자산 격차 해소에는 새로운 부의 원천인 세계 시민이 만든 ‘빅데이터’도 포함된다. 빅데이터에서 나오는 부를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민이 함께 누리는 모델을 국제사회와 함께 주도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 더 많이 경제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산 불평등 위험에서 해방되고 경제 활력을 높이는 보편적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은 더 이상 자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 격상을 계기로 한국 모델을 차분하고도 정교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 모델을 ‘77그룹’으로 부르는 114개 유엔 개발도상국 그룹 국가들이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데에 제시할 수 있다.




한국 모델 정립에 작전통제권 환수가 필수적이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시작한 한국의 숙원이다. 보수·진보라든지 여야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 한국이 헌법에 따라 국군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헌법을 지키는 데에 조건은 필요 없다. 국제사회는 전략적 자주성을 갖춘 한국의 평등한 활력 모델에 더욱 뚜렷하게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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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송기호 변호사의 칼럼 "한국의 모델은 한국이다"를 공유합니다. '선진경제'로의 승격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독재를 종식하고 시민의 민주적 권리 신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은 자랑할 만하지요. 아니, 독재청산을 못했더라면 독재시대에 일정하게 성취한 경제성장조차 지속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박정희시대와 당시 대통령의 공적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지만, 박정희를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 제14장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튼 "한국은 더 이상 자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송변호사 말씀은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고 넘쳐나는 야만성을 마저 청산하는 과제도, '미국이나 일본은 저렇게 잘하는데...'라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아니라 '한국 모델'의 개선과 진화라는 관점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송변호사도 숙제가 많이 남았음을 인식하면서 특히 두가지를 부각시키고 끝맺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 특히 토지를 비롯한 자산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의 활력상실입니다. "한국 모델이 더 성공하여 세계 질서에 이바지하려면 부의 독점으로 사회가 활력을 잃는 세계적 문제 해결에 한국이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와 세계적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세계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다. 그 결과 자산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세계적 문제이다. 한국의 토지 자산 사이의 불평등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전국 1182곳인 농촌 면 지역 가운데 어린이집이 없는 곳이 37%이다. 토지 자산에서 생기는 지대를 세금으로 거두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 주는 활력 모델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선진경제'로 공인된 한국이 여전히 군사주권을 못 가진 엄청 후진적인 국가라는 현실입니다. 칼럼의 결론에서 "한국 모델 정립에 작전통제권 환수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는 까닭이 그것이지요. 다만 저는 굳이 선후를 따진다면 전작권(전시작전권) 회수보다 남북대화의 재개가 먼저라고 봐요. 전작권 회수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거푸 연기하는 바람에 문재인 정권의 '임기내 회수' 노력이 부실하게 출발했다고 봐요.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면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저절로 변하게 마련인데, '북의 위협에 대비하는 안보태세 확립'을 전작권 회수의 전제조건을 설정함으로써 자승자박을 해놓은 셈이에요. 그러다보니 전작권 회수를 위해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남북관계는 다시 수렁에 빠지는 거지요.
  끝으로, 한국 모델을 생각하시는 김에 오늘 아침 <한겨레> 조현 기자의 도올 김용옥 인터뷰 "서구의 신은 황제적... 동학은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말해"(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02475.html?_fr=mt2)도 함께 읽어보시 바랍니다. 경제와 인권, 방역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한반도는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세계적인 모델을 제공해왔거든요. 물론 우리가 더 발전시켜야 할 모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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