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7

아둘람온라인공동체 | Jungsik Cha * 성서해석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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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영민입니다.
제가 전주 한일 장신대학에서
신약학을 가르치시는 차정식교수님
(시카고 대학 신약학 Ph. D)의
페이스북 글을 나누었는데 업 로드가
두 개로 보여 하나를 지우고 나니
나머지 하나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ㅎㅎ
아래의 글을 퍼나른 이유는 바로 신앙은
성경해석의 노고를 필수불가결한 전제로 한다
저의 확신 때문입니다.
(이 확신은 얼마든지 수정되고 심화되고
진화될 수 있는 잠정적 명제입니다.)
2천년 교회사에 나타난 논쟁들을 보십시요.

신앙의 최종 권위라 믿는 성경의 Proof Testing 없이 되어진 논쟁이 몇이나 될까요?
자금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개독교 비판에 얼마나 많은 성경해석이 등장합니까?
가나안 교인들의 스스로 깨달은 영적일기에도 어김없이 성경구절과 그 해석이 등장합니다.
여기 차정식교수님께서 재미로 분류하신 10가지 유형중에 어떤 유형이 이상적이신지요?

혹시나 간과한 성서해석의 유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가 추구하는 little bit of everything 의 해석은 절대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성경해석의 방법이라면 그 특별함의 근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개독교 목레기에게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성령의 조명으로 깨우쳐서 그럴까요?
그럼 각자의 신앙의 경험으로 과연 그러한가 하고 깊이 상고한 성경해석이 형제, 자매들이 배우고 확신한 바와 갈등을 일으키면 우리는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며 본질에서의 동질성과 강조에서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한 공동체로 존속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진솔한 의견과 토론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마음으로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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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해석의 지형도
1. 트럼프 미 대통령: 성서를 들고 자신의 신앙심을 증빙하려 하면서도 아는 게 two Corinthian Letter, 좋아하는 요절은 'eye for eye...'
2. 성경 속의 유익한 구절이나 땡기는 말씀, 가령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같은 구절을 멋지게 써서 액자에 담아 주문이나 부적처럼, 또는 장식적인 이미지로 위로받으며 소통하는 방식
3. 큐티 형식으로 성경의 요절과 핵심 주제 뽑아서 암송, 묵상하고 그것이 자신의 일상에 축복과 영감과 하나님 뜻의 구현으로 나타나길 간구하는 방식
4. 교회력 성구를 따라 설교준비 차원에서 성경구절을 들이대되, 이로써 자신이 전하고자 이미 입력해둔 메시지를 포장해 권위 있게 선포하려는 방식
5. 시대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경구절을 스스로 택하여 주석하고 적용하는 성실함을 살려 그 본문의 당대적 메시지를 오늘날 교회 및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재맥락화하여 적용하려는 방식
6. 무슨무슨 ~주의의 신학 전통과 특정한 교리적인 구호의 얼개에 성서의 주요 메시지를 때려맞춰 그 교리적 정통성을 변증하고 사이비성을 정죄하며 그 실천적 원리를 권위적으로 보편화하려는 해석 방식
7. 신구약성서를 그 역사적 기원과 당대적 맥락에 비추어 원문으로 강독하며 고대 근동의 신화, 유대교 전통, 그레코-로마 시대의 헬레니즘 사상 등의 '평행문'이나 연계 구절과 비교, 분석하여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평가하는, 대학의 종교학과와 리버럴한 신학대학의 전문 성서학 연구자들이 '연구'라는 이름으로 즐겨 하는 해석 방식
8. 성서를 고대의 신화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고전의 일종으로 보고 공자, 노자, 붓다, 마호멧, 기타 고대의 다양한 종교 및 사상과 나란히 읽으면서 그 보편적 교훈과 사상적 유산을 취하여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거리를 두고 음미하며 재현하는 뉴에이지 풍의 방식
9. 성서를 정치사회개혁이나 혁명의 교본으로 읽으면서 그 혁혁한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채취하여 대중을 선동, 조직, 동원하고 체제 변혁이나 의식 개조의 현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운동의 텍스트로 활용하는 방식
10. 미술과 음악, 문학의 장르를 통해 성서의 내용과 형식을 과감하게 해체, 재구성하여 '변용'의 채널로 수용, 발전시키려는 방식
성경을 읽고 그 교훈과 뜻을 새기며 나름대로 해석, 수용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양하고, 그 가난한 한 가닥의 '일리'들이 나름대로 존중받을 만한 삶의 자리가 있겠지만, 성경을 들고 맹세하거나 자신의 신실함을 시위하는 1의 방식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것보다 해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잠깐 정리하면서 나의 현주소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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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산장
    트럼프는 위 10개 유형 중에서도 최악의 위선적 기독교인이지요.
    토론을 기대하셨으니 한 줄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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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승
    그렇네요ㆍ
    Executive Business Fish  st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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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Min Jung
    권석중형제님..!
    심사숙고하여 토론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종교, 으뜸 종(宗), 가르칠 교(敎) 그러니까 “으뜸의 가르침" 이잖습니까? 서양에서 종교는 ‘믿는다’ 라고 사유해 왔지만 동양적 사고는 언제나 그 가르침의 ‘실행’, ‘실천’ 을 중시해 왔습니다! 그러니 권석중 형제님의 “성서해석은 삶이다!” 라는 말씀은 지당하신 통찰입니다.
    불신자들이 읽는 성경은 신자들의 삶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뜻은 인간에게 계시되어 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신의 뜻은 인간의 언어로 통역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를 Translation of God 이라고 신학자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신적 계시의 번역가능성(Translatability) 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요한복음의 표현처럼 어느 특정 문화와 언어로 언제나, 지금도 지속적으로 번역되어 져야만 합니다.
    번역의 과정에는 항상 두 가지 서로다른 문화와 언어체계가 충돌하고 해석되어 집니다.
    아무리 신행일치, 바른 실천(Orthopraxis) 이 중요하다해도 결국 해석학적 과정을 건너 뛸 수 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본질적인 기독교는 종교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기독교도 제도화된 종교(Institutionalized Religion) 에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특정문화, 특정 지역에서의 종교형성을 분석하는 학문이 종교사회학 이지 않겠습니까?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는 종교사회학적 탐구와 비판의 대상이지 면제되는 순수한 진리체계는 아닐것 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일체의 경험은 물론, (기독교에 추가한)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적 관념을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성서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성서속으로 걸어들어간다는 말은 복음서의 원어인 헬라어로 그 첫번째 기록을 해석한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람어를 쓰셨고 한 세대 이후의 저자(들) 이 헬라어로 번역했는데 어떻게 신의 번역인 예수에게 직접경험으로 다가 갈 수 있을까요?
    (계시의 원리중에 신은 신만이 신을 계시한다는 원칙이 있지요. 원숭이를 보여주고 자, 인간을 이해했지? 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완벽한성서해석학적 통찰이라해도 언제나 번역이 반역이 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립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번역이 반역이 되지 않기위해서 해석학이 필요로 하다는 역설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종교 밖에 계시는 분” 이라 표현하셨는데 불교적 통찰을 빌리지 않더라도 종교의 안팎은 인위적 경계가 아닐까요? ㅎㅎ
    마지막으로 “삶으로 증가하지 않는 성서해석은 거짓이다” 라고 했을 때, 삶으로 성서를 사는 사람과 그렇지못한 사람들 사이의 분별이 생기면서 그렇지못한 사람들에게 원치않는 차별이 생겨나게 됩니다. 삶으로 성서를 살지 못하는 사람도 저는 어떤의미에서 텍스트의 Bad Example for Good Instruction 으로서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인생은 언제나 다중적이고 다층적이라 한 사람 신앙인을 평가할 때도 그리 쉽게 삶으로 성서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며 동시에 또 넘어지고 실패하는 반복이 일어 날 가능성을 인정할 때 오히려 신의 은혜가 진정 은혜로 체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이 너무 사변적으로 흘러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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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산장
      정영민 사변적이라는 통찰에 박수를 보냅니다.
      "..본질적인 기독교는 종교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고 쓰셨습니다. 혹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 하신 것이라면 심각한?^^ 오독을 하신 겁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방향성이 위를 향할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거꾸로 아래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사람을 찾아 오신 겁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종교 이상이냐 아니냐는 분별은 전혀 저와는 무관합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종교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기록된말씀으로 영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공감이랄까요?
      그리고, "종교로서의 기독교, 기독교인으로서의 일체의 경험과 지식이 단절된 상태로 성서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셨는데요,^^
      이 대목이야말로 대단히 주관적 경험이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서가 절대불변의 무오한 책이 아니라는 것, 특히 가톨릭 생성 시기의 사악한 넣기+빼기+변개가 개입되었다는 것, 그 바탕에서 기독敎理는 하나님이 주신 진리로 말미암는 자유를 교리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악한 의도를 정교하게 위장해 왔다는 사실 등은,
      기독교를 포함한 사람이 만든 모든 종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이 참 하나님께로 찾아가는 길을 감추는 악마의 장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앎으로부터의 단절의 자유와 쾌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댓글에서 "지구 안에서는 지구를 볼 수 없다" 했습니다.
      끝으로 "삶으로 증거하지 않는 성서해석은 거짓이다"고 적은 것은, Proof testing을 염두한 것이었습니다.
      성서 한 줄 몰라도 예수의 마음으로 실제 살아가시는 수없는 분들은 비록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자각입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행태는, 성서 몇 장 몇 절 누가 더 줄줄 꿰고 있고, 그 뜻은 이러하다 저러하다 서로 치고받다 날을 샙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은 오직 일상의 삶으로 증거될 수 있을 뿐이므로, 신학적 접근도 당연히 논리로서가 아닌, 자기의 삶으로 증거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가장 작은 자가 뭘 좀 아는 척 하는 일은 다시는 않겠습니다.^^
      단 一合의 초식으로도 진기가 고갈되었으니 해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진심을 나눈 기억은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餘不備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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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Min Jung
      권석중 형제님..!
      또 한번의 진심어린 답변과 의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권석중형제님께서 기독교를 종교 이상의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역기능을 간파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제가 실제 대화로, 글로 만난 많은 분들, 특히 목사들이 절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기독교를 종교취급 저를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셔서 제가 살짝 과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요 ~
      저는 이런 토론을 아주 좋아하지만 불행하게도목사들 사이에서는 속 시원히 진실되게 토론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권석중형제님과의 토론은 제게 아주 신선한 경험입니다.
      저보다 인생의 선배님 이신데 사양치 마시고 기탄없이 허심탄회하게 여러가지 신앙과 인생에 관한진지한 이야기들을 해 주시고 목사가 되어 스스로 자신의 고질적/습관적 모순과 부족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면 애정을 가지고 좋은 가르침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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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산장
      정영민 고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형제를 만났다는 기쁨이 대화의 덤으로 남았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계신 귀한 분들에게 과도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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