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7

아둘람온라인공동체 | YoungMin Jung [그리스도의 현존인 교회의 존재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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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Min Jung
[그리스도의 현존인 교회의 존재목적]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박사학위논문에서
“공동체로서 실존하는 그리스도”
참 교회의 본질로 보았다.
그에게 교회는
“현존하는 그리스도 자신” 이다.
 
칼 바르트 역시 교회를 그리스도의
“지상적-역사적 실존 형식”
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의 터전과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이실 뿐이고
다른 그 어떤 무엇도 교회존립의
기초나 근거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 인간의 살과 육으로
성육하시어
시간과 공간의 인간세상에서
공생애를 사셨던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속으로
도래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였으며
초월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속에 내재한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현존의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참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의
상관 관계를 심각하게
숙고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지상적 현존인 교회의 공통점은
역시 “사람들” 이다.
 
통상 한 나라를 생각하면
주권과 영역, 그리고 인민(백성)을
생각치 않을 수 없다.
바울의 서신서는
에베소에 있는, 고린도, 골로새,
로마에 있는 “성도(에클레시아:
거룩한 사람들)” 에게 쓴 편지이다.
 
“성도” 자체가 “에클레시아” 이듯
“백성” 없는 “바실레이아(왕국)” 도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영역과 그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기에 그 나라에는
온갖 불의가 병존할 수 없으며
인간의 차별이나 억압,
인간에의한 자연과 생태계의
수탈과 파괴가 없으며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샬롬안에
심히 좋은 상태, 즉
모든 피조물들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
“죽음과 슬픔과 고통과 울부짖음”이
없는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이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앞당겨 임하도록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존할 수 있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자체가
결코 아니다.
 
교회는 표징일 뿐 가리키는 대상인
하나님 나라와는 구별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 자체와
“하나님 나라의 실재” 또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 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와 현실이 되기 위하여
철저하게, 죽기까지, 세상의 끝날 까지
자기증명을 하고 또 하고 또 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교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와 함께,
교회를 통하여
온갖 죄와 죽음의 세력이
개인의 실존에서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제압되고 제거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적
정치, 경제,사회, 문화,
역사, 전 영역에 불의와 죄악이
관영하여 창궐하고 있다.
그렇다면 죄악과 불의앞에
포기하여 염세적으로 살거나
무릎꿇고 굴복하여 한 통속으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결코 아니다!!
불의한 세상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존재하는
교회는
기존의 체계와 질서에 맞서서
거꾸로 세상을 살도록 부름받았기에
주어진 이생에 만족하기는 커녕
새로운 생명의 세상을 바라고, 기다리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부정하면서
저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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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영재 and 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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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장

다석 선생의 "없이계신 하나님"을 차용하면, 교회는 그대로 "없이있는 교회" 지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하나님을 산다는 말로 이해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교회라는 공동체"는
'사람살이'에다
'교회살이'를 덧댄 것이어서 반드시 갈등구조를 내재화합니다.
신학은 그 괴리를 합리화시킬 도구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학은 필요할 수도, 불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없이계신 하나님,
없이있는 교회,
없이있는 믿음,
있이없는 사람,
있이없는 신학,
"있이없는" 사람살이,
그거면 다 되는데,
"없이있는" 교회살이,
그거면 다 되는데,
"있이없는" 교회살이,
그것이 일만악의 근원인 것은, 에덴의 옛뱀이 그것을 만든 원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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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Min Jung

백마산장
안녕하세요?
좋은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유영모선생님의
“없이 계신 하나님” 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이 세상에 자신은 존재하지 않은 듯 보이며 삼라만상을 존재케 하는 것은 빛이다..
빛은 색도 형체도 없지만
없이 있어 산과 나무,
하늘과 바다를 존재케 한다...
이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큰 소리는 다름아닌 침묵이다!
침묵은 없이 있어
봄 날의 옹달샘에 뛰어드는 개구리의 소리가 존재케하고 잔가지 흔들어대는 바람과 종달새의 소리가 존재케 한다..
하나님의 존재방식도
빛과 침묵을 닮았다.
없이 계시지만 모두에
임재하실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을 존재케 하신다!
(Pan-in-theism)
그런데 교회 존재양식이
없이 있는 교회가 될까..?
그렇다...북 아프리카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는 교회를
가시적 교회(ecclesia visiblis)와
비가시적 교회(ecclesia invisibilis)
로 “현상”과 “본질” 을 구별했다.
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가시적 교회를 체험하는가?
비가시적 교회는 진정 존재하는
실체인가?
아니면 현상의 가시적 교회에 대한 관념적 대칭 개념에 불과한 것 아닌가?
칼 바르트는
“사람들이 곧 교회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가시적 이지 않다”, “오직 보이는 교회만이 진실하고 참된 교회다” 라고 했으며
호스트 푈만은 “신약성서에....비 가시적 교회는 없다. 단 하나의 가시적 교회가 있을 뿐이다.
참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눈에 보이는 교회가 있을 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 가시적 교회는 현상의
가시적 교회들을 향하여
눈이 보이지 않는 교회의 참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할 것과 교회 자신을 상대화 시킬것을
요청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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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장

정영민 가시可視, 불가시不可視를 기준으로 한 교회담론은 그 자체가 이미 "있이없음"의 범주에 치우쳐 있다고 봅니다.
있고없음有無를 하나로 보는 것은 꼭 불교적 思惟만이 아니라 천부경의 天地人 三才와 동일한 사유체계이고 우주적 세계관의 大綱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없이계신"이라는 多夕의 사유는 存在, 不存在의 담론 즉 有와 無, 陰과 陽, 視와 示를 통째로 봄으로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가시적이니 有, 불가시적이니 無라고 하는 서구 신학자들의 합리주의적 관점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교회로서의 사람"이 태초부터 존재하는데, 따로 종교로서의 기독교 교리가 만들어낸 가시적 有에 속한 "있이없는"교회를 탐구하는 것은, 입구와 출구가 동일할 수 밖에 없는 동굴과 같다할 것입니다.
신학자로서의 형제님의 고뇌가 진정성을 갖는 것은 다석의 나라에서 태어나 서구 신학을 修學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양심에 비치는 바 의심되는 바를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올이 신학으로 시작해서 동서양의 철학을 평생 배회하고 다시 신학으로 돌아와 쏟아내는 이즈음의 신학 관련 저술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할 것입니다.
제게는 형제님의 그 고뇌가 도올보다 더 아름답고 귀합니다.
더 고뇌하셔서 건지는 신학적 사리들을 친견케 해주시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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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Min Jung

교회를 생각할 때
우리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역설은
교회의 순결성과 죄악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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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장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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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읽을수록 구구 절절 되새김 되는 말씀 중에 특별히 더 공감되는 .....
"교회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실존할 수 있지만 교회는 하느님 나라 자체가 결코 아니다"
(건물교회를 소원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실존하는)
*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셨던 것은 하느님 나라를 세상속으로 도래하게 만드신
<하느님의 선교>다! *
" 교회는, 기존의 체계와 질서에 맞서서 거꾸로 세상을 살도록 부름 받았기에, 새로운 생명의 세상을 바라고 기다리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부정하며 저항해야한다"
자다 깨어 비몽사몽 간에 접하게 된 글에...화들짝 잠이 달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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