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gki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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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로 중국공산당(CCP)은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여러 뉴스를 통해 보도된 것처럼, 지난 1일 7만 여 명의 당원이 참석한 대대적인 기념식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오늘날 중국공산당 당원은 9천만 명을 크게 상회한다. 한국 인구의 두 배 가량 되는 규모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전체인구의 7%가 되지 않는 ‘특권층’이다.) 중국사나 중국정치경제에 얼마간 관심이 있는 이라면, 그 다차원적 의미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이를 기념해 최근 다양한 기획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2부작(6/24, 7/1)으로 방영한 ‘붉은 자본주의’다. 방송에 출연하거나 자문에 관여한 연구자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아는 분들이 있고, 대중의 반응도 케비에스가 ‘간만에’ 수신료 낸 값을 했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아직 시청 기회가 없었던 분들이라면 일청을 권하고 싶다.
국내외 여러 연구자들이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이 방송의 주요 얼개는 훙호펑의 작업- 특히 2015년에 출간된 책 <China Boom> -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올해 시립대 하남석 선생님의 번역으로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684242) ‘붉은 자본주의’라는 제목 자체가 시사하듯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 깊이 편입되었으며, 특히 채권과 금융자산을 매개로 한 미국과의 상호의존성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약한 고리’다. 따라서 (중국에서 근본적인 수준의 체계 개혁이 없는 한) 이른바 미중 패권 경쟁이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로 귀결될 가능성을 전망하는 분석은 설득력이 희박하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지나가는 김에 시시콜콜한 여담 한 가지. 물론 이런 분석의 근저에는 그의 지적 배경이 작용한다. 관련 전공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세계체계분석’을 주창한 그룹의 일원인 지오반니 아리기의 제자로, 인디애나 대학을 잠시 거쳐 그의 후임으로 홉킨스 사회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방송 자막에 “정치경제학과” 교수로 소개되었는데, 학교에 그런 과는 없다. 정확히는 사회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이고, 디씨 소재의 국제학대학원(SAIS) 패컬티를 겸직하고 있다. 몇 년 전 그가 미시간 대학 사회학과로 옮길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거의 확정적이었다 -, 학교가 카운터 오퍼를 주면서 그를 (통상적인 학과 구분을 넘어서는) 정치경제학 분야의 네임드 프로페서로 승진시키는 동시에 SAIS에도 자리를 마련한 것. 미국 학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물론 소위 민주 학생운동과 연대하는 자본가라는 테제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중국공산당과 사영기업의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지적한 연구 성과들은 훙의 작업 전에도 많았다. 일례로 Kellee Tsai의 초기 저작, 특히 2007년에 출간된 책은 이 주제에 관한 필독서인데, 책의 제목 “Capitalism without Democracy”는 (강조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송 타이틀의 또 다른 판본이라 봐도 무방하다(https://www.amazon.com/.../ref=dbs_a_def_rwt_hsch_vapi...). 그녀가 집필 과정에서 발전시킨 개념인 ‘adaptive informal institutions’는 20세기 후반 중국정치경제의 발전을 설명하는 이론적 적실성과 비서구권 지역(중국)에 제도주의 분석을 효과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인정받는다.
중국공산당 100주년은 응당 미국에서도 주요 분석대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각의 저술이 쏟아지는 중이고,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이하 노트는 이번 방송에 대한 後記이자 追記라는 명분을 빌려, 미국에서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주목하는 몇 가지 논점들. 잡설이 길어져 두 번으로 나눈다.
2.
창당 100주년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상당수 글들이 CCP 자체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일례로, 국제관계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표적인 공론장인 Foreign Affairs의 금년 7/8월호는 중국 특집을 꾸몄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볼 만 하다. 올해의 신간/근간 3권을 다루는 Orville Schell (1940-, The Asian Society)의 리뷰 에세이는 미국의 중국학 1세대의 관점- 정치적 자유의 강조 -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https://www.foreignaffairs.com/.../2021-06-22/life-party). (버클리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지만, 그는 하버드에서 존 페어뱅크와 벤자민 슈워츠에게 중국학을 배우며 학부를 마쳤다. 하버드의 중국학연구소(“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가 이 중국학 대부의 이름을 딴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이 서구식 경제모델과 다른 길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걸어왔다는 점을 유보 없이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과 중국 공산주의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의” 지적 “다양성”을 산출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오늘날 중국이 노정하는 정치적 억압과 체제의 경직성은 역설적으로 현 체계의 불확실성과 자신감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한다. 한편 Odd Arne Westad (Yale)는 영토적 주권을 공세적으로 행사하려는 CCP의 시도- 그가 “중국 특색의 정체성 정치”라 명명한 -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내부적 영토 분쟁의 발발 가능성에 대한 이들의 두려움이 더 공세적이고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가는 걸 저지하고 있다고 본다.
(https://www.foreignaffairs.com/.../identity-politics...)
또 다른 필자인 Jude Blanchette의 초점은 이 둘과 일견 유사하면서도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https://www.foreignaffairs.com/.../2021-06-22/xis-gamble).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관계/안보 씽크탱크인 CSIS의 중국학 석좌를 맡고 있다.) 상이한 영역에 관해 발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chell과 Westad가 공통적으로 CCP의 근원적 공포에 주목하는 것처럼, Blanchette 역시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중국 지도부의 태도가 조급하다는 점에 동의한다(“a man in a hurry”). 그러나 그 동인을 중국 중심으로의 세계질서 재편의 야망이나 당내 권력투쟁에서 찾는 통상적 주장과 달리, 그의 입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시의 ‘타임라인’이다.
그에 따르면, 시는 자신이 국가적 과업의 달성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10-15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중국이 오늘날 다차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적-지정학적 전환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내부의 과제도 극복할 여지가 작동하는 “좁은” 기회의 창이다. 구체적으로, 이 시점은 인구학적이고 경제학적 근거에 기반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2029년에 중국 인구증가율이 정점에 달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고, 의학 저널 <Lancet>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번 세기가 끝날 시점에 이르면 중국 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이같은 인구학적 변화의 가장 직접적 영향은 경제 부문에서 확인될 것이다. 노동력이 감소하는 반면 임금은 증가하고, 이는 경기둔화(성장률 정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서 생생히 경험한 것처럼 부채를 통한 성장 모델은 한계에 봉착하는 반면, 그 후과로서 다양한 사회-환경비용은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후적 관점에서 쉬이 짐작할 수 있듯이, 중차대한 실존적 과제들에 직면한 CCP가 활로를 찾은 지점은 AI, 로보틱스, 생명공학과 같은 기술발전이다. 시와 당은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동시에 정치적 안정을 꾀할 수단도 얻었다. (이에 관한 주목할 만한 작업 중 하나는 Jennifer Pan (Stanford)의 일련의 저술인데, 작년에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https://www.amazon.com/.../01900.../ref=ox_sc_act_title_4... ). 하지만 그 결과 중 하나는 Blanchette가 “편집증적”이라 지칭한 정치 스타일의 전면화다(“The paranoid style in Chinese politics”). ‘국가안보’ 개념의 확장은 그 대표적 장치다. 최근 신장과 홍콩의 경험뿐 아니라, 호주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 해외 연구자 및 연구기관에 대한 제재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경제 부문에서도 안보 개념은 재규정된다. 기존의 경제구조 재편을 목적으로 한 전면적 “산업정책”의 등장- 특히 ‘中国制造2025’, ‘互联网+’, ‘十四个五年计划’ 등 -과 ‘蚂蚁集团’(Ant Group)과 같은 핵심 민간기업의 활동에 대한 규제 강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Blanchette는 이런 급박함과 편집증적 정치의 귀결은 그리 밝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을 탐색하는 시각이 그저 정치 엘리트 내부의 파워게임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험은 정치경제학의 근원적 질문들에 관해 새롭고도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계속해서 산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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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규
다큐 배후에 H선생이...ㅎㅎ 정리해주신 내용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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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h
Ungki Jung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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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석
아이고 전공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선생님 리뷰입니다~ 선생님 알려주신 자료들 날잡아서 쭉 다시 한번 리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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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h
Ungki Jung
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ㅎㅎ 그냥 비전공자의 노트일 따름인걸요. 저야말로 이번에 방송 보면서 그간 묵혀두었던 것들 좀 정리해 볼 기회를 갖게 되어서 두 분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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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Minhee Park
큰 도움이 되는 깊이 있는 소개와 분석 감사합니다. 책을 받아놓고 2편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정 선생님 글을 보니 다시 정독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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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Ungki Jung
아유 별말씀을요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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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h
박기철
ㅎㅎ 하교수한테 내가 많이 배워 ㅎㅎㅎㅎ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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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
하남석
박기철 선생님~ 이건 제가 존스홉킨스 계신 정웅이 선생님 글 링크 가져온 것입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지요? 수현이 저희 대학원에서 열심히 잘 공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 잠잠해지면 찾아뵙겠습니다~====
Ungki Jung
itsSSpon13suohred ·
(#2)
3. 미중 패권 경쟁의 ‘내생적’ 원인 또는 국내정치적 기원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많은 관찰자들의 뇌리에 가장 강렬히 남아있는 시진핑의 이미지 또는 그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상당 부분 형성한 사건은 반부패 운동이지 않을까. 집권 초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등의 몰락은 온갖 가십거리가 더해져 2013년 당시 국내외적으로 대대적인 논란과 말잔치가 있었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꽌시(关系)에 막연한 부정적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전근대적이고 탐욕스러우며 믿을 수 없는 중국이라는 통념은 더 굳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패(corruption)라 부르는 현상은 일면적이지 않을뿐더러, 그 원인과 작동방식에서 동일하지 않다(예컨대 贿赂, 贪污, 挪用公款의 차이).
현대중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수하며, 그에 대한 답변 역시 논자의 관심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주변 동료 가운데도 환경정치나 복지체제에 주목하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CCP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정치에 관심이 치우친 감이 있다.)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중국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퍼즐은 결국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관계- 달리 말한다면 소위 “economic liberalism and political freedom” -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서구이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경험적 증거가 쏟아지는 까닭이다. (물론 서구 지식인들의 이런 흥미- 얼마간의 당혹감을 동반한 -로부터 우리는 어떤 기시감을 느낀다. 1990년대에- 정확히는 IMF 구제금융 이전까지 - 영향력의 정점에 달했던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이론 때문이다. 일찍이 동아시아의 경험, 특히 한국 사례를 통해 Peter Evans가 정식화한 개념 ‘embedded autonomy’는 중국에서 관찰되는 정치경제 체계의 원리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 2000년 이후 발전국가 모델의 쇠퇴나 종언을 주장하는 다양한 이론화가 있었지만, 그 영향력과 유산은 여전히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그 유산이 가장 중요한 효과를 산출한다고 보는 영역이 보건의료인데, 팬데믹을 경유하면서 이는 더욱 뚜렷이 확인되었다.)
작년 5월에 출간한 저작에서, 미시간 대학(U-M)의 Yuen Yuen Ang은 중국에서는 경제성장과 부패의 관계가 독특한 형태를 취한다고 보고 이를 이론화했다(https://www.amazon.com/.../11084.../ref=ox_sc_act_title_1... 책에 관한 여러 톡 중에서는 출간 직후 진행된 Victor Shih (UCSD)와의 대담이 간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GhSv0GCUIw) 올해 Foreign Affairs- 전편에서 소개한 이번 호(July-August 2021) 중국 특집 -에는 그 책에 관한 일종의 축약본이 실렸다(https://www.foreignaffairs.com/.../robber-barons-beijing). (역시 여담이지만 몇 년 전 Ang은 (앞서 언급한) Kellee Tsai가 떠난 자리에 지원한 적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홉킨스에 job talk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과에서 오퍼를 줬지만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 이직 건은 무산되었다.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지만 결국 Ang은 테뉴어를 받아 미시간에 남았다.)
그녀의 두 번째 저작이 갖는 풍부한 함의 가운데 개인적으로 특히 중요하다고 보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종의 부패의 정치경제라 부를 만한데, 이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 저발전된 주제다. 다른 하나는 ‘도금기’(The Gilded Age)라는 용어의 명시적 활용을 통해 직접적인 미중 비교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녀는 부패라는 큰 개념적 우산 하에서 네 가지 유형을 구분한다. 세 가지 유형- petty theft (stealing and extortion among low-level officials), grand theft (embezzlement and misappropriation of large sums by higher-ranking officials), speed money (small bribes to circumvent red tape) -과 달리, 마지막 유형- “access money” (high-stakes rewards from businesses for officials to obtain exclusive access and privileges) -은 특정한 조건 하에서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참고로, 책의 2장은 이 주제를 발전시켜 기존에 활용되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Unbundled Corruption Index, UCI)을 제시한다. 중국의 특수성에 관한 분석에 그치지 않고 이를 지렛대 삼아 국가 간 비교를 위한 분석도구를 개발한 연구 성과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부패는 폭력적 갈취나 단순 절도에서 네 번째 유형으로 구조적으로 진화해 왔으며, 이는 중국 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해왔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관료가 직접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토지 임대 사업에 관여하면서 그 흐름은 질적 변화를 맞았다. 이렇게 부채와 토지 임대라는 두 가지 수단을 통한 막대한 경제성장은 지난 30여 년 간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이 대목은 ‘붉은 자본주의’에서도 왕치산 등을 비롯한 주요 관료들에 대한 조명을 통해 잘 드러난다.)
Ang의 작업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중국과 미국의 정치경제 발전을 비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사에서 도금기는 대략 1870년대에서 20세기 초까지를 가리킨다. 통상 “남북전쟁”으로 알려진 내전(Civil War, 1861-1865)의 종식 이후 진행된 재건기(The Reconstruction Era, 1867-1877)와 얼마간 중첩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국가 만들기’(state-building)를 통해 보다 온전한 형태의 정치체(“미합중국”)가 건설되고 급격한 경제성장이 동반되는 시기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공화당의 장악이 공고화되는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Richard Bensel (Cornell)의 미국 정치경제 연작, 특히 The Political Economy of American Industrialization, 1877–1900 (2000)는 이 주제에 관해 여전히 표준적 설명을 제공하는 역작이다(https://www.cambridge.org/.../political-economy-american... ).) 하지만 경제성장은 동시에 불평등의 심화와 부패를 가져왔다. 그 결과, 뒤이은 혁신기(The Progressive Era, 1890s-1920s)에서는 과학의 발전을 토대로 다층적인 정치/사회개혁이 이뤄졌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뉴딜이 진행되고, 그러한 ‘성공’에 입각한 전후 황금기가 20세기 중후반까지 지속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Ang은 1970년대 이후의 중국이 1870년대 이후 미국이 겪었던 국가 만들기 국면을 경유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시의 반부패 운동 역시 (그저 종신집권에 눈 먼 독재자의 무자비한 철권통치가 아니라) 보다 역사적인 맥락에 위치 지을 수 있고, 이른바 “전면적 소강사회의 달성”이라는 그의 테제 역시 구조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물론 현재 중국의 발전경로는 1980년대 이래 진행된 이른바 시장개혁 논쟁의 결과다. 며칠 전 나온 Macabe Keliher (SMU)의 리뷰 에세이는 중국이 (특히 동유럽에서 관찰되는) 다른 post-communist socities과 달리 어떻게 “충격요법”(shock therapy)의 파국적 결과를 겪지 않을 수 있었는지 상세히 검토한다(
https://bostonreview.net/.../macabe-keliher-china-and... ). 그의 주장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1978년 12월의 이른바 '11기 3중전회'가 채택한 노선이 그 대안이었지만 결국엔 오늘날 심각한 후과를 낳은 원인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물론 그는 논평 대상인 Isabella Weber의 말을 빌려, 충격요법이 1986년과 1988년에 거의 수용될 뻔 했다는 것, 그리고 이를 가까스로 피한 또 다른 결과가 천안문 사건임을 빼놓지 않는다.) 말하자면 중국의 개혁 프로젝트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인정이었으며, 더 나아가 “시장근본주의로의 전지구적 이행”의 일부였다는 것.
그런데 문제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 역시 내부적으로 근본적인 정치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데 있다. 1970년대 이래 미국이 겪고 있는 이러한 변화를 ‘新도금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용어가 학계에 널리 정착된 데에는 정치학자 Larry Bartels의 대표적 저작이 한 몫을 했다(
https://www.amazon.com/.../069113.../ref=tmm_hrd_swatch_0... ) 이 책의 부제는 "신도금기의 정치경제"(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Gilded Age)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뿐 아니라 분극화(polarization)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정치적 분할까지 중첩된 이 위기는 미국을 중대한 위기로 몰고 가는 중이다. 요컨대, 오늘날 중국은 도금기를 경유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신도금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들은 내생적이지만 막대한 국제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는 두 나라의 향방은 사실 내부의 정치제도 개혁에 달려있다.
4. 이데올로기적 대결이라는 프레임과 미국의 대안적 외교전략
이 주장의 논리적 귀결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 국제정세에 관한 전략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싶은 주제다. 최근 G7+ 정상회담의 주요 화두이기도 했지만, 미국은 중국의 공세적이고 거친 외교적 행보를 압박하려는 시도에 착수하고 있다. (몇 가지 부문의 관세 부과 조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대응이 대체로 수사적 차원에 그쳤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전 세계적인 對中 인식 역시 역사적인 수준으로 악화되었다(https://www.pewresearch.org/.../large-majorities-say.../).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바이든의 말처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 본격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놀랍지 않다. Pepinsky와 Chen Weiss가 함께 쓴 글은 이 주제에 관한 시의적절한 논평이다(https://www.foreignaffairs.com/.../2021-06-11/clash-systems 참고로, 지난 달 같은 지면에 실린 샌더스의 기고 역시 근본적으로 동일한 논지를 전달한다: https://www.foreignaffairs.com/.../washingtons-dangerous...). 무엇보다 이번 글은 동남아시아 정치경제 전공자인 페핀스키가 참여해 시너지를 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그는 이 분야를 참조할 때 Dan Slater와 더불어 가장 신뢰하는 연구자다.) 저자들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사례- 거의 유일한 예외는 캄보디아다 -를 적절히 활용해 중국이 실용노선을 취해왔음을 지적하고, 세 가지 이유에서 전면적인 이데올로기적 대결이라는 프레임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미국이 레짐 체인지를 추구한다는 시그널은 중국으로 하여금 더욱 공세적 대응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념경쟁 대신 실리를 추구하려는 대다수 국가들을 소외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공조를 강화시키는 효과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기 도금기와 신도금기의 위기를 겪는 중국과 미국이 외부로 관심을 돌려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운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 논지에서 따라나오는 정책적 조언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leading by example.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다시금 환기해두고 싶은 건 보건의료 부문의 역할이다. 필자들이 드는 사례 중 하나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위기 해소를 위해 마련한 PEPFAR다. 이를 벤치마킹해 President’s Emergency Plan for Vaccine Access and Relief (PEPVAR)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미 제시된 바 있다(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p2103614 ). 물론 게이츠 재단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민간 행위자들의 역할과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국제보건에서 패권국가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대단히 역설적인 의미에서 냉전적 형태의 대결 구도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보건의료가 미국에 여전히 유용한 "정책도구"로 남아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15Yuik Kim and 1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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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석
Ang의 책은 소개와 목차를 보고 너무 흥미로워 사놓고 계속 묵혀두고 있었네요....역시 다시 찬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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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ki Jung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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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규
너무 좋은 포스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생각했던 고민들이 선생님 덕분에 확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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