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6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곳” 2012 ‘가족의 나라’ 감독 양영희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곳”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곳”

수정 2012-10-07 18:44
등록 2012-10-07 18:44


‘가족의 나라’ 감독 양영희

재일동포 2세로 북송 문제 성토
북송선 탄 친오빠들 이야기 다뤄
‘디어 평양’ 만든뒤 북한 입국 금지
매일 밤 북에 있는 오빠들 걱정해
“영화 속 리에가 짐가방을 끌고 가듯
저도 일본·북한·남한을 끌고 살죠”

재일동포 2세 양영희(48·사진) 감독에겐 ‘조국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다. “고향은 일본 오사카이지만 태어나지도 살아본 적도 없는 조선(북한)을 조국이라고 배웠고 지금 국적은 한국(남한)인” 그는 “늘 ‘조국에 충실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서인지, 조국이란 말이 되게 싫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나라의 것이든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입는다”고 한다. “올림픽 때 국기 대신 (선수들의) 가족 사진이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단다.
광고

자전적 영화 <가족의 나라>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양영희 감독을 6일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양 감독은 그동안 다큐멘터리 영화인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을 통해 자신의 가족들이 겪은 재일동포 북송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의 첫 번째 극영화인 <가족의 나라> 역시 1971년 일본에서 북한으로 가는 ‘귀국선’을 탄 양 감독의 오빠 3명의 실제 이야기에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만들었다. <가족의 나라>는 지난 2월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예술영화연맹상을 받았고, 올해는 일본 영화 사상 재일동포 감독의 영화로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일본 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영화는 16살에 귀국선을 타고 북한에 갔다가 25년 만에 신병 치료를 위해 3개월 특별 허가를 받아 가족이 사는 일본에 돌아 온 성호(이우라 아라타 분)와, 그를 다시 만난 가족의 이야기다. 성호의 옆에는 북한에서 함께 보낸 감시인(양익준 분)이 있어서 그는 북한 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는 여동생 리에(안도 사쿠라 분)에게 공작원 일을 권유해 가족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성호는 뇌종양을 앓고 있고, 3개월 만에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닌 것을 알고 아버지는 북한 당국에 체류 연장을 요청하지만 평양에선 갑자기 귀국 지시가 내려온다. 그는 일주일 만에 다시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

“지금도 평양에 오빠들, 조카들, 친척들이 살고 있어요. 두 편의 다큐를 만들 때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레이션의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조심했고요. 김일성이라고 해야 하나, 수령님이라고 해야 하나, ‘위대한’을 수식어로 붙여야 하나 고민하면서요.”

그는 <디어 평양>을 만든 뒤 북한 입국이 금지됐다. <가족의 나라>를 만들면서는 이전보다 용감해졌다고 한다. “우리 가족을 아주 유명하게 만들어서 다치지 못하게 하자”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오빠들이 잘 있나” 하는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양 감독은 재일동포 북송 사업의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한번 더 목소리를 높였다. “1959년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약 9만4000명이 북한으로 갔어요. 북한과 일본 정부의 공동 프로젝트였죠. 일본 언론도 북한이 지상낙원인 것처럼 장려했어요. 일본에서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당시 남한은 정치적으로 불안했고, 우리 부모님도 4·3항쟁 뒤 일본으로 왔기에 남한 정부를 믿지 못하시는 상태였어요. 그때 북한에 오면 남한 출신이라도 교육과 직업 기회를 준다고 한 거죠. (재일동포들에겐) 하늘의 목소리처럼 들렸을 거예요.”

그는 “북한에 간 사람들이 맞닥뜨린 가장 큰 비극은 초이스(선택의 자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막상 갔을 때 생각과 달랐다면, 다시 일본으로 오든지, 다른 나라로 가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박탈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당국 차원에서 북송을 장려한 뒤, 북에 간 사람들의 이후 삶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는 북한과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총련계 간부였고 조선적을 가졌던 그의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남한 노래만 부르다 일본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오빠들은 북한행을 택했고, 양 감독은 조선적 상태였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한국 국적을 택했다. 그는 “영화 마지막 리에가 짐가방을 끌고 가는 것처럼, (나 자신은) 일본·북한·남한 세 나라를 같이 끌고 산다”고 말했다.

<가족의 나라>에서 그가 말하는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곳’이란 의미라고 한다. “가족들이 있어야 할 곳, 있어야 하는 곳이란 뜻이에요.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서 나라의 의미는 성호, 리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각기 다를 수 있어요. 이 가족에게 ‘가족의 나라’는 없죠. 조국이 뭔지, ‘홈’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지금도 찾고 있어요.”

부산/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