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6

梁英姫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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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양용희 [1]
실명梁英姫
생년월일1964년 11월 11일 (59세)
출생지일본의 국기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 시 이쿠노구
국적대한민국의 국기 한국
직업영화 감독 , 면접관 , 해설자
장르영화 , TV , 라디오
활동기간1995년 -
사무실WAHAHA 본점
주요 작품
영화
디어평양
사랑하는 소나
카조쿠노쿠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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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양영희, 1964년 11 월 11일 - )는 일본 영화 감독 . 현재 창작활동에는 양용희를 이용하도록 바꿨다 [2] .

경력 편집 ]

1964년 11월 11일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  에서 태어난 [3] 재일조선인 2세 [3] 에서 어릴 때부터 민족교육을 받고 자랐다. 부모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의 간부를 맡고 있었고, 아버지는 북한 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열렬한 활동가였다 [4] .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간부였던 부모 아래 조선학교 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1971년 부터 1972년 에 걸쳐 부모가 3명의 형을 귀환사업 으로 북한에 보냈다. 형은 거기서 가족을 가졌지만, 부모로부터의 배달로 살아왔다. 맨 아래의 형은 양이 귀국 사업도 총련도 재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렵에 1번 감시인으로 일본에 돌아와 갑자기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어 화난 적이 있다 . . 도쿄 의 조선대학교 를 졸업 [6] . 1987년 부터 1990년 까지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에서 국어교사를 맡는다 그 후, 극단 여배우나 라디오 퍼스널리티 로서 활동한다 [7] .

1995년 부터 다큐멘터리 의 영상 작품  발표한다 1997년 부터 2003년 까지, 뉴욕 에 체재 [9] . 뉴 스쿨 대학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학부 미디어 연구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0] . 2004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5년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 디어 평양 '을 발표한다 [11] .

2013년 2월 「제8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의 외국어 영화상 의 일본 대표로 선택되었다 [12] .

에피소드 편집 ]

梁은 “재일만이 고생하고 있는 것 같은 말이 제일 싫어서, 형이 평양 ·자신이 재일로의 고생은 있었지만, 남편으로부터의 DV 의 경험도 없고 부모도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거기서 고생을 해 온 사람도 있어, 사람 각각 다른 것을 짊어지고 있다.영화관이 많은 일본 에서 살고 있는데 보지 않는 젊은이가 많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북한의 사람은 한국 드라마 를 명심으로 보고 있고, 발견되면 벌이 어려운데도 다른 나라의 생활을 알고 싶다고 하고, 정치로 찢어져 있는 가족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13] .

2012년 12월의 토크쇼에서는 '카조쿠노쿠니'는 양의 실체험을 바탕으로 “영화에서는 북한에 건너는 형이 1명이지만 실제로는 3명 있다. 오빠가 일본에서 3개월간 치료할 수 있는 특수하고 드문 허가를 받았지만 잘 모르는 가운데 3개월이 지나지 않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해 “거의 실화로 북한에서 병을 갖고 있어도 실제 형들은 지금도 살고 있다. 영화에 없는 장남은 조울병을 앓고 2009년에 타계했다”고 관객 에게 말했다 . 양 감독은 북한 조직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과문을 쓰도록' 위협받은 과거를 갖고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사과할지 몰랐다', '정부와 단체가 어쨌든 말하고 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해 사과문 대신 ‘사랑하는 소나’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그로 인해 북한 입국이 금지된 것도 말했다. “언젠가 오빠들과 함께 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되고 싶다.내 이름이 알려져 전세계에 작품을 봐 주는 것으로, “그 가족에게 접하는 것은 멈추자”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가족을 지킬 수 없다” “점점 취재를 받아, 영화제도 되도록 참가해 현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생각을 말했다. 관객석에 있던 재일 코리안 3세의 젊은 여성에게 “조선적 여권은 힘들지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는 많이 있다. 그렇게 생각 하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

Filmography 편집 ]

영화 편집 ]

TV 편집 ]

라디오 편집 ]

저서 편집 ]

수상 편집 ]

각주 편집 ]

주석 편집 ]

  1. ^ (인터뷰 상대: 아야토 토모에 , 모모이 카오리 , 야마다 타이치 , 이시마루 지로 , 미야자키 미코, 사카히가시 미쓰 고로, 하라 카즈오, 후쿠모토 키요조 , 카토 토키코 , 오치아이  , 노다 히데키 , 테리 이토 , 카야마 유조 , 츠지 구치 히로카즈 , 지나치게 , 크리스 하트 , 츠카모토 신야 , 이와시로 타로 가쓰라 유미 , 나카무라 타마오 , 가와나카 미유키 , 스기라 타로 , 이시마루 간지 , 다케나카 나오토 야마타 신야 , 사토미 히로타로 , 후지 류야 , 이나  와 준지 , 신누야 , 화목 마리 , 도리즈카 료 마츠 바라 토모 에코 , 나가미네 야스코 , 재즈 와오 , 테라지마 진 이나가와 소자 , 요시다 츠나타로 , 아사노 타다노부 다카시마 레이코 , 마세 쥬리 )

출처 편집 ]

  1. ↑ https://twitter.com/yangyonghi/status/774416408725762050
  2. [1]
  3. ↑ b “ 양용희 (영화감독) - 영화 ‘카조쿠노쿠니’에 대해 (1/3) ”. INTRO (2012년 8월 10일). 2015년 12월 14일 열람.
  4. “ <사람>“카조쿠노쿠니”가 히트한 재일영화감독 ”. 아사히신문 (2012년 9월 19일). 2012년 9월 22일 시점의 오리지널 보다 아카이브 .2015년 12월 14일 브라우징.
  5. “ 『카조쿠노쿠니』 양용희 감독 인터뷰 ”. 피아 간사이판 WEB . 피아 (2012년). 2015년 12월 14일 열람.
  6. ↑ “ 재일사회 - 아침·일에 살아남은 가족의 유대 그리기 ”. 동양경제일보 (2006년 8월 25일). 2015년 12월 14일 열람.
  7. b “ “표현자”로서 세계를 목표로 한다 ”. UG 비즈니스 클럽 (2012년). 2015년 12월 14일 열람.
  8. “ [양용희] 북한에 있는 조카를 10년 이상 쫓은 '사랑의 소나' ” . ZAKZAK (2011년 4월 19일). 2015년 12월 14일 열람.
  9. “ 『사랑하는 소나』 양용희 감독 인터뷰 ”. CINE REFLET (2011년). 2015년 12월 14일 열람.
  10. “ 양용희 - 자신의 말로 개척하는 용기를 ”. ZAKZAK (2007년 7월 6일). 2015년 12월 14일 열람.
  11. ↑ “ 최종 심사위원 ”. 제36회 PFF . 피아 필름 페스티벌 (2014년). 2015년 12월 14일 열람.
  12. b https://www.excite.co.jp/news/article/Searchina_20121214036/
  13. ↑ “ 인터뷰 양용희 ”. 소개 (2012년 8월 4일). 2012년 8월 18일 시점의 오리지널 보다 아카이브. 2022년 10월 27일에 확인함.
  14. ↑ “ 인터뷰어 ”. 더 인터뷰~톱 러너의 초상화~ . BS 아사히. 2014년 4월 13일 열람.
  15. “ 오모니의 섬 나의 고향~영화 감독·양용희~ ”. NHK (2022년 10월 30일). 2022년 10월 25일 시점의 오리지널 보다 아카이브. 2022년 10월 25일에 확인함.
  16. “ 목요일의 파트너는···양용희씨! ”. 마츠모토 히데오 정보 발견 여기만! . 일본 방송 (2011년 10월 6일 ) .
  17. “ 매일 영화 콩쿨, 대상은 주방정행 감독 '마지막 신탁' ”. 마이 내비뉴스 (2013년 1월 17일 ) .
  18. ↑ “ 요미우리 문학상, 다와다 하코씨 등에 결정 ”. 일본 경제 신문 (2013년 2월 1일). 2015년 12월 14일 열람.
  19. ↑ “ 마츠자카 모모리, 주연 남우상에 “고양하고 있다” 제22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 시상식 ”. 영화.com (2013년 5월 2일). 2015년 12월 14일 열람.

외부 링크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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