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7

송필경 - 기독청년 전태일

송필경 - 기독청년 전태일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묘소의 묘비에는 전태일 이름 위에 ‘기독청년’이란 글이 놓여 있다.
전태일은 분신 석 달 전인 1970년 8월 9일, 첫 번째와 두 번째 유서를 고친 마지막 세 번째 유서를 썼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 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단호하면서 기독교적인 경건한 의지가 담긴 이 유서를 전태일이 쓴 곳이 삼각산 임마누엘 수도원이었다.
이처럼 전태일은 기독청년이었다. 전태일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지금까지 성서를 읽지 않았다. 단지 여러 사회과학 서적을 통한 비평은 많이 보았다.
21세기 지금도 우리사회에서 난무하는 큰 교회의 무당보다 못한 천박한 샤머니즘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는 해방 후 미군정을 통해, 기독교 가운데 가장 천박한 미국식 전도주의 기독교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물론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의 한 방편으로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점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필수교양 과목이었던 기독교 개론을 강의 하신 민중 신학자 서남동 교수를 만나면서 기독교에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민중 신학의 정신적 지주인 독일 신학자 본회퍼를 알면서 기독교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편견을 없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유신과 5공 독재에 저항한 문익환 목사의 등장으로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았다.
군부 독재에서 민주화 운동을 펼친 문 목사는 민족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도 있을 수 없다고 깨닫고, 활발한 통일운동을 펼쳤다.
문익환 목사의 통일 운동은 ‘너’와 ‘나’의 하나됨을 뜻하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의 하나로 나는 지금 이해하고 있다.
아직도 툭하면 태극기와 미국기를 양손에 들고, 나아가 이스라엘기까지 얹혀 달고 다니며 상대 진영을 증오의 핏빛 눈으로 활개 치는 한국 주류 기독교에는 나는 오직 저주의 불과 유황을 퍼붓고 싶을 뿐이다.
비단 천박하고 비루한 종교의 모습은 조계종 불교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5년 전에 내가 전태일의 많은 자료를 보면서 가장 놀랍고 신선했던 부분은, 전태일이 삼각산 엠마누엘 수도원에서 낮에는 몸으로 땀 흘려 노동을 하고 밤에는 기독교의 경건한 신념으로 정신 훈련을 했다는 점이다.
전태일 수기 가운데 이때 쓴 ‘자기훈련’이란 글을 읽지 않았거나 나아가 글의 의미를 곱씹어 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전태일을 올바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자기훈련’의 몇 가지 내용은 이렇다.
-나는 어떤 일에도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인생의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도덕적으로 결백한가?
-몸과 마음에 나쁜 영향을 끼칠 좋지 못한 습관은 없는가?
-활성과 파란으로 극단적으로 낙관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않는가?
-나는 나의 일생의 궁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인가?
전태일은 ‘자기훈련’ 항목을 32개 만들었다.
선한 삶, 진지한 삶, 지혜로운 삶을 위해 매일 자신의 정신을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전태일의 인간으로서 진정한 위엄은 자신에게만 대단히 엄격했다는 사실이다.
날마다 자신의 소명을 점검하고 지난 하루를 반성하는 기도를 올렸다.
일상에서 먼저 한 톨이라도 영혼에 묻지 않게 애썼다.
어떤 숭고한 무게감이 기도하는 전태일의 정신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전태일은 침착하고 확신에 찬 인간으로 점점 변모했다.
32개 항목의 자기훈련이라는 글을 보면 그 어떤 중세의 수도원에서 경건히 기도하는 수도사나, 산중 토굴에서 깨우침을 찾는 승려 못지않은 거룩한 영성이 배여 있다.
그런 정결한 영성으로 위의 마지막 유서를 썼다.
그리고 석 달 후 스스로 몸을 불꽃으로 만들어 노동해방이란 사자후를 외쳤다.
기독청년 전태일이
영성으로 외친 ‘노동해방’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간과하는가?
*****전태일의 자기훈련 32개 항목
1. 나는 어떠한 일에도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2. 나는 인생의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3. 친구나 동료, 윗사람에 대하여 성실하고 솔직한가?
4. 나는 도덕적으로 결백한가?
5. 나의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자기 수양에 노력하고 있는가?
6. 장래를 위한 지식을 쌓기 위하여 연구를 게을리 하고 있지 않는가?
1. 두뇌의 능률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체적 에네르기의 사용을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육체적인 약점이 없는가?
2. 신장에 비하여 체중이 보통인가, 어떤가?
3. 음식은 충분한가, 과식은 하지 않는가?
4. 매일 밤잠은 잘 자는가?
5. 운동은 충분한가, 운동이 과하지는 않는가?
6. 몸과 마음에 나쁜 영향을 끼칠 좋지 못한 습관은 없는가?
1. 나는 쉽사리 낙담하지 않는가?
2. 생활상의 파란으로 극단적으로 낙관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않는가?
3. 실망, 낙담했을 때에도 일을 평상시와 같이 계속 할 수 있는가?
4. 맡은 일에 대해 정력을 다 기울이고 있는가?
5. 어제 그릇된 일 때문에 오늘의 일에 방해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는가?
6. 결단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가?
7. 확신 있는 해답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문제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가?
8. 동료나 윗사람에 대하여 정직한가?
9.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깊고 신중하며 기략이 있고 친절한가 어떤가?
10. 딴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딴 사람의 의견만을 좇는 일이 있는가 없었는가?
11. 나는 일에 대하여 빈틈이 없고 또한 일하는 태도가 훌륭하다고 불 수 있는가?
12. 수입의 몇 할을 저축하고 있는가?
13. 나의 교양과 지위 향상에 준비를 위해서 수입의 몇 할을 정해서 쓰고 있는가?
14. 기술과 집중력, 결단성, 인내력, 깊은 생각, 믿음성 등에서 현재의 내 지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15, 나는 이러한 성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16. 현재의 일은 나의 일생의 목적에 대하여 얼마만한 의지를 가졌는가?
17. 현재의 일은 일생의 사업으로써 희망성이 있는가, 없는가?
18. 그러한 희망이 없다고 하면 일생을 걸만한 사업으로써 따로 나에게 적당한 사업이 있겠는가? 없는가.
19. 나는 어찌하여 위의 말한 각 조목의 물음에 답하였는가?
20. 나는 나의 일생의 궁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만한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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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참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기독교인이고 목사인 것이 지금처럼 부끄럽고 자괴감 느껴지는 때가 없는 이 때 한 진실한 크리스천을 알게 되어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현상송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진정한 성자이셨네요.

Byeongjin ahn

다시한번 생각하고 다짐해 봅니다.잘 읽었습니다.


Lee Dae Hee

평생을 새기고 갈 말씀입니다.성서의 가르침과 다를바 없습니다.아멘!

이종하

잘 읽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읽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고맙습니다

이미영

전태일정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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