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5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 - 귀촌마을 岑卜村 천보춘 풍경

2016년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 - 귀촌마을 岑卜村 천보춘 풍경, 그리고 중국의 토지유전문제 5월21일-25일


다문화, ‘생활’ 통역자
전환을 위한 생활공동체 和&同 발기인
김유익


샹하이에서 열린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은 올해 제2회를 맞았습니다. 실제로는 세번째인데 처음 열렸을 때, 0회로 칭한 탓에 올해가 공식적으로 2회입니다. 저는 2015년 1회에 처음 참석했는데, 여기서 이런 저런 많은 인연을 맺은 탓에 지금 여기 샹하이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이젠 남일이 아니게 돼버렸습니다.


올해 대회가 벌어진 장소는 青浦区의 岑卜村입니다. 이곳은 작년에 농장(卜谷)을 찾아 온 적이 있었는데, 마을에 들어 온 것은 처음입니다. 이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매력을 지닌 마을이었는데, 지금 제가 거주하고 있는 崇明县( 陈家镇) 陈西村에 비해서 문화자본을 많이 가진 것을 보고 좀 시새움이 일 지경이었습니다. 작년에 좀 제대로 봐둘 것을...


https://www.evernote.com/l/AamJ6W3EcUBLi4TciZ-kE_CGKFLKQP-A72Q


이곳의 특징은 무엇보다, 귀촌한 신촌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체 마을 주민이 3천명인데 이중, 20여호 40여명의 신촌민이 함께 산다고 합니다. 신촌민들은 대개 샹하이를 포함한 대도시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고, 고학력 중산층, 예술이나 문화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마을 이야기 대부분은 행사중의 한 세션으로 열렸던 대담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거주한지 일년이 좀 넘은 샹하이 출신의 중국인 아미阿米와 후쿠오카 근교의 이토시마라는 지역에서 온 후지몽의 중-일 귀촌 청년 토론입니다. 저도 참가해서 한-중-일이 될뻔하긴 했으나, 저는 한국의 농촌에 귀촌한 처지가 아니라, 대표성이 떨어져서 중-일 토론만 기획되었습니다. 실은, 이번에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은 귀농운동본부의 창립멤버인 정용수 선생님과 전희식 선생님, 안병덕 선생님과 역시 귀농/귀촌 경력 20년에 가까운 쟁쟁한 분들이셨는데, 청년이 아니라 원로급들이신지라, 이 토론에서는 청중으로만 참여하셨습니다 (내년 대회부턴 젊은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지원하기로 다들 다짐하셨습니다).




이곳으로 이주한 40여명의 신촌민들은 아직 본격적인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진 못했지만, 함께 모여서 나눔 밥상을 하거나, 같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이 침투해서, 마을 분위기를 해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섰다고 합니다. 사실 별다른 공동대응이랄 것 까지는 없고, 상업적 목적이 뚜렷한 이들이 나타나면, 가능하면 왕따를 시키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은, 이들의 카페, 게스트 하우스들은 아직,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아직 자본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을 분위기가 보존되고 있는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앞으로 신촌민, 구촌민을 무론하고 어떻게 함께 마을을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는데, 어쩌면 다른 나라의 마을에서 그러하듯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유치원이나 학교를 통해서 자치 모임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주민과 정부를 이어주는 일종의 지역협치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인데, 여하튼 잠재적으로 지역 공산당이나 정부와 대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런 자치조직에 대해서 공산당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다는 촌평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마을 단위에는 마을주민위원회라는 곳이 있는데, 우리로 치면 이장이나 통장/ 동장 조직이고, 당연히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하에 있습니다.


대략 세군데로 나눠서 각종 워크숍, 강연, 토론이 벌어졌는데, 마을 공동창고, 아미의 게스트 하우스, 역시 귀촌한 라오옌의 게스트 하우스, 그리고 동동 키친이라는 식당이 무대가 됐습니다. 실은 옛 농가를 개조한 이런 건물들은 당연히 ‘샤방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구주민들이 사는 농가와 碇山湖 (샹하이의 식수원입니다.)에 연결된 수향 풍경이 남아 있는 마을정취였습니다. 집집마다 텃밭이 보기좋게 가꾸어져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소농 실천을 하는 반향청년들과는 또 다르게 이런 중산층 고학력 출신의 귀촌민들은 주로 윈난과 같은 관광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제 비교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도시 근교에도 귀촌자들이 중심이 된 마을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 예상됩니다.





일본에서 참여한 30여명 중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마사키 선생님은 한국에서 2009년에 진행됐던 워크9의 행사 (일본 평화 헌법9조를 지키는 걷기)로 한국의 평화생태주의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활동가이자 사상가입니다. 특히 한국어로도 번역된 ‘나비문명’ 책이 유명합니다. 저도 주위에 워낙 지인들이 많아서 마사키 선생님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직접 뵙기는 처음입니다. 아소산 기슭에 살고 계신 마사키 선생님은 올해 가을에 아무도 살지 않아 폐촌이 된 산골마을을 사들여서 오래된 집을 수리하면서 동아시아 생명평화 축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마 저와 주위 사람들도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참에 이런 저런 인연이 있는 후쿠시마의 이토시마도 가능하면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또 한명, 인상깊었던 만남은 하남성에서 녹색방주 농장을 운영하는 메이홍웨이입니다. 메이홍웨이는 본행사가 아닌 유에펑따오 농장의 종자행사에서 만났습니다.
이날 현지 농민들 (연세가 많으신)을 대상으로 한 향촌건설에 대한 강연/ 토론회가 있었는데 메이홍웨이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의 대표들이 잠깐씩 발표를 했는데, 중국 촌로들 앞에서 한국과 일본 농촌의 역사, 현황과 전망을 전달하는 것이 (귀농,귀촌 청년들의 경험과 함께)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메이홍웨이는 향촌건설에 일찌감치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알고보니 2006년에 광주의 옥토공방을 만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https://www.evernote.com/l/AanaM9tkn3NMUrhN6xmsYfQxwNLRSTlsPt4 현재운영자인 하오꽌휘는 2009년부터 경영권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부인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녹색방주라는 공동체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이, 그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 공동체 농장에는 고아나, 탈학교 청소년들, 그리고 홀로된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꽤 답답하고 교조적인 공동체가 연상되는데 대화를 나눠 보니 꽤 개방적인 인물인 것 같습니다. 또 메이홍웨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농장의 각종 건물, 도구 등, 무엇이든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만든다고 합니다.


공식 웹사이트 등


http://www.greenarkfarm.com/


http://dwz.cn/3vzTol


메이홍웨이는 이밖에도 하남성의 반향청년들과 함께 하남성의 성도 정주에서 파머스 마켓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이홍웨이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최대한 직접 만나길 원하는데, 같은 이념으로 시작된 여러 단체들이 갈수록 로컬푸드 정신을 벗어나거나 (중국은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중국내에서도 먼거리를 이동하게 되는 음식은 로컬푸드라고 부르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2차, 3차 중간상을 거치는 식으로 영업망을 확대해나가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http://dwz.cn/3vzUdT


메이홍웨이는 또 중국에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토지유전土地流转문제에 대해서 흥미있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중국은 도시민 호구(居民户口), 농민 호구로 두가지 공민 신분을 유지합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호구가 있는 도시에서, 의료, 교육, 양로 등의 혜택을 누리게 되고, 농민들은 자신의 농촌 고향에서 같은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당연히 사회적 제반 인프라가 더 좋은 도시민들이 좋은 환경의 공공서비스를 향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유지하기 때문에 (참고로 중국내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샹하이 같은 도시의 20대, 30대 초반 화이트 컬러들은 5천~1만위안 정도의 월수입을 얻습니다. 지금은 식당 등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들도 대략 최하 3천 위안정도를 벌어들입니다.) 도시의 호구가 선망을 받게 됩니다. 농민공들이 도시로 나와서 돈을 벌지만, 공공 서비스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나 부녀자는 고향농촌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등... 호구의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아마 들으신 일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호구 정책은 불평등을 이유로 그리 간단히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호구정책을 유지함으로써 농민들은 돌아갈 고향이 남아 있습니다. 또, 농민 호구를 가진 사람은 농지사용권과 농가주택 사용권을 갖게 됩니다. 즉, 지자체(국가)가 이 사용권을 농민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이 제도는 80년대 인민공사가 해체되면서 각각의 농가에 토지일괄사용권제 (承包)를 시행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농가에 부여된 사용권이 있고 마을전체 (集体)에 부여된 공유지 사용권이 있습니다. 사용권은 농민들이 도시민이나 다른 농민에게 재임대할 수는 있지만, 거래의 대상은 아닙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급속도로 경제가 성장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농민이 도시노동자와 빈민층으로 전화하면서, 빈민굴을 형성한 일이 중국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고향에서 여전히 가족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보내주기도 하고, 또, 여하튼 어느 정도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 흙집을 부수고, 번듯한 시멘트집을 짓습니다. 도시에서는 저임금 노동자이지만, 그래도 고향에 돌아가면 부쳐먹을 땅이 있고, 따뜻하게 몸을 뉘일 집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계속 농사를 지으면 물려 줄 수도 있습니다. 대대손손 생계가 보장된다는 뜻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사람들이 도시 중산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상하게 들리실 지 모르겠지만, 경제와 사회가 발전해도, 농업, 농민, 농촌이 보전되어야 생태, 식량, 문화 측면에서 국가가 지속가능하고 균형잡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정도의 지식을 갖춘 분이라면, 이것이 매우 이상적인 사회의 이미지라는 것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소강사회의 일면이기도 합니다.) 관건은 이런 농민중에서도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고, 능력이 있을 때, 기회만 보장되면 됩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농촌을 지켜야 합니다. 또, 농민의 생활이 보장되고, ‘빈곤'이 아닌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 (경제 뿐 아니라 문화자본을 포함해서)이 ‘보장’된다면, 사실 모든 이들이 도시에서 살고 싶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연과 더 가까운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도시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과 같이 14억의 거대한 인구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라면 이런 시스템이 안정되게 유지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농촌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서 도시에서 일을 하면서, 휴경지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이 이런 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정부에서는 (지자체는) 관심을 갖는 기업들에게 이런 농지를 빌려 줍니다. 그리고, 일회의 사용료를 받아서 (장기임대 형식이니 수십년치의 사용료를 받게 됩니다.) 농민들에게 매년 분할해서 지급합니다. 아예 은행계좌를 만들어서 계좌로 넣어준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년에 몇백 위안 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농민들이 직접 도시민들에게 사용료를 받고 농지를 장단기로 임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귀농,귀촌한 신농민들은 대개 이런 형식으로 땅을 빌립니다.) 규모면에서 봤을 때, 이렇게 제도화된 지자체의 대규모 임대가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농민들이 마치 월급장이가 된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나이드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농민연금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기업에 임대된 농지가 농업용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공업용지 등으로 전용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도시 근교는 이미 도시가 확장되면서 주택지로 바뀐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농업용 경작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농지를 공업용지로 변경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다시 필요에 따라 농지로 회복시키는 것은 단기간내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토양 오염이나 침식이 진행되면, 다시 되돌리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을 바로 토지유전 문제라고 부릅니다.


이미 식량 수입국이 된 중국이 (육류 소비가 늘면서 사료를 많이 수입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점점, 공업화, 산업화, 도시화를 진행시킬 경우, 중국도 결국 세계 식량을 지배하는 대자본의 영향력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거대 국가인 중국이 이런 상황을 좌시할 리 없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미 10억무 (1무는 200여평입니다.) 농지 보위를 국가의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중국 정부가 제정신 차리고 농업을 잘 지켜나가고 있지 않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서 다시 호구문제로 돌아가서 2016년 1월부터 농민호구와 도시민 호구를 일원화했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호구 문제의 부작용에 대한 오랜 기간에 걸친 내외의 비난을 의식했기 떼문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린대로 분리 호구제는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농민이 도시민과 같은 신분이 된다면, 논리적으로 농민들에게 농지 사용권, 농가 사용권을 부여해야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토지는 다시 국가/지자체가 사용권을 되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사용권을 누구에게 공여할까요 ?? 아마도 자본, 기업에게 부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윤을 증가시켜야 하는 자본의 속성상 농지로 보전되기 보다는 각종 편법을 통해, 다른 용처를 찾게 될 수 있습니다. 또, 농지로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기업형 대농장 시스템을 추구할 것입니다. 소농경제 시스템의 붕괴입니다. 소농경제가 붕괴되는 것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여기서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겠습니다. 중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북미, 호주, 중남미와 같은 대농장 플랜테이션을 연상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땅이 큰 만큼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우리나 일본과 같이 소농중심의 농업 시스템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수천년간 이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면서도 지속가능했습니다. 경제, 정치, 사회, 생태의 총체적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물리적, 역사적 제약은 결국 중국 농업이 대농장 플랜테이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결국 글로벌 대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식량 생산 시스템과 가격, 비용면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중국도 한국, 일본과 같은 농업의 몰락과 농촌의 완전한 붕괴를 경험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도 문제이지만, 중국이 이런 문제를 겪는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물론, 지금 중국에서 많은 식량을 수입하는 한국은 더 큰 문제를 겪을 것임은 불문가지입니다.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중국의 3농 문제 전문가 인민대학 원톄쥔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메이홍웨이와 쟈루이밍은 여러면에서 재미있는 비교가 될 중국의 젊은 농민지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쟈루이밍, 메이홍웨이, 신향촌건설운동, 이렇게 중국 농촌의 미래를 짊어질 어떤 큰 흐름의 구심점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나중에 메이홍웨이의 녹색방주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자세한 기록을 남겨 보고 싶습니다.


사진들


https://www.facebook.com/yuik.kim/media_set?set=a.10154267328908944&type=3&pnref=story


작년 글 링크 - 처음과 끝


1- CSA및 신농민 교육 @북경 인민대학 향촌건설센터 량슈밍교육장 4월23일 ~ 4월28일 2015년
https://www.evernote.com/l/AamaKZOPaBpKoY7x5SOvulg6eF_id46s628


D. 중국 필드트립 외전 샹하이, 베이징, 푸져우/페이티엔, 2015년 10월 ~ 2015년 12월
https://www.evernote.com/l/Aak1qjOfKuBGyaM0DFy4E8h4ACp0dzIQU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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