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5

알라딘: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알라딘: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박맹수, 나카츠카 아키라, 이노우에 가츠오 (지은이), 한혜인 (옮긴이)
  모시는사람들 2014-11-05


8

100자평 0편
리뷰 1편

세일즈포인트 270

224쪽
152*223mm (A5신)
314g

ISBN 9788997472819



주제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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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면한 후, 그리고 100년 만인 1995년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된 이후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는,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공감하고 공유해 가는 과정을 적은 20년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갈등의 역사'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보여준다.



목차


01 청일전쟁을 둘러싼 역사 기억 /나카츠카 아키라

청일전쟁에 관한 일본인의 기억

일본군의 첫 번째 공격이 왜 ‘조선 왕궁 점령’이었을까?

도죠 히데노리(東條英教)의 「격벽청담」

어느 대대장의 자살- 환영받지 못한 일본군



02 동학농민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나카츠카 아키라

‘동학’이란 무엇인가

조선에 대한 편견이 낳은 동학 사교관

조선왕조 말기의 민중과 서양의 압력

동학은 어떤 사상인가

동학의 확산- 잠행하는 포교에서 집단적 시위운동으로

접과 포

끓어오르는 농민의 대중운동

동학농민전쟁의 전개



03 일본군 최초의 제노사이드 작전 /이노우에 가쓰오

조선 전역에서 끓어오른 동학농민군의 재봉기

가와카미 소로쿠의 “살육 명령”- 섬멸작전의 서곡

섬멸작전과 대본영·섬멸대대에 대한 파견 명령

연산의 전투현장-한일 공동조사에서

남발되었던 섬멸 명령

어느 일본군 병사의 「진중일지」에서



04 동학농민전쟁의 역사를 걷는다 /나카츠카 아키라

역사의 현장에 서다

비빔밥이 가장 맛있는 거리와 세계유산 지석묘

‘사발통문’을 새긴 동학혁명 모의탑

무장(茂長)-동학농민혁명 발상지

황토재 언덕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의 충격

삼례의 동학농민기념공원

공주를 눈앞에 둔 대격전지 우금티

지금도 계속되는 저항- 연산

보은-동학의 길

장흥-두 개의 기념비

나주-일본군 최후의 몰살 작전의 기지

진도-두개골을 채집했던 장소

대둔산-기록에 남아 있는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투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이야기하는 것



05 동학농민혁명과 현대한국 /박맹수

광주사건의 한가운데에서 군대에 있었던 나

야학운동의 선두에서 배운 것

민주화운동의 원점인 동학농민혁명

현장 답사를 중심으로 연구 30년

인골방치사건에서 시작한 한일공동연구

풀뿌리 차원의 교류 발전

현대에 살아있는 동학사상 ‘한살림운동’

내일을 위한 제언
접기



책속에서
P.23
‘또 하나의 청일전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동학농민군을 주력으로 하는 조선인이 일본군의 조선 침략에 반대해서 일어났을 때, 그 조선인을 상대로 일본군이 몰살 작전을 펼쳤던 전쟁을 말합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때, 많은 조선인이 항일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인은 현재 거의 없습니다. 청일전쟁의 또 하나의 전쟁인 조선의 항일투쟁,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이 싸웠다는 것을 일본인은 대부분 모르고 있습니다.

P.39
동학은 조선왕조 말기 정치적·사회적으로 직면해 있던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를 민중 차원에서 개혁하고 점점 압박해 오는 외국의 압력으로부터 민족적 이익을 지키려고 하는 당시 조선 사회의 역사적 바람을 반영한 사상이었습니다.

P.61
수만의 조선농민이 희생당한 조선 동학농민봉기와 일본군의 포위 섬멸 작전은 분명히 청일전쟁 후 일본 정부와 일본군에게 사실은 큰 문제를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사에 다소라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하는 참모본부의 자세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는커녕 대대적인 작전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군사기밀상 병참부의 상황을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는다는 등의 핑계를 대더라도, 참모본부가 편찬한 전사에서는 철저히 은폐되었습니다.

P.88
즉 28일에 시모노세키 히코시마에 있던 미나미 소좌에게 조선 파견 명령이 내려와서 미나미 소좌는 그날 히코시마 ‘수비 교대 준비’를 끝내고 출발, 다음날 제5사단 사령부로 출두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본영이 설영되어 있었습니다. 미나미 소좌가 수비 교대 준비를 하고 나서 그날 출발했다고 하는 것은 그만한 준비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오후4시 이전, 즉 대본영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성 일본공사관과 인천병참감에 동학농민군 토멸 부대 파견을 타전한 오후4시보다 앞서서 히코시마의 후비 제19대대에 조선 파견 명령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P.111
미나미 대대장은 섬멸작전 직후에「 동학당정토약기(東學黨征討略記)」라는 강화(講話)기록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농민군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원문대로 소개합니다.
“장흥(전라도 남부--역자 주), 강진(충청도 서부-역자 주) 부근의 전투 이후 비도를 많이 죽이는 방침으로 한다.” “동학당은 잡는 즉시 죽일 것.”
즉 가능한 한 많은 동학농민을 살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잡는 즉시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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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30일자



저자 소개

지은이: 박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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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동학으로 가는 길>,<조선의 멋진 신세계>,<백년의 유산> … 총 19종 (모두보기)
동학 연구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원불교사상연구원장,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해월 최시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전국 각지의 동학 사적지를 두루 탐방하였다.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의 관점에서 동학의 영성에 주목한 동학농민혁명 연구는 동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으며 특히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발견된 동학 지도자 유골의 국내 상환을 계기로 그 시야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대하여 ‘개벽’의 꿈과 실천 그리고 그 장엄한 역사를 연찬해 나가고 있다.



지은이: 나카츠카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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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동학농민전쟁과 일본>,<현대 일본의 역사인식>,<시바 료타로의 역사관> … 총 5종 (모두보기)
1929년 일본 오사카부에서 출생, 1953년에 교토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 1963년부터 1993년까지 나라여자대학에서 강사, 조교수, 교수로 근무하였다. 1960년대 초반부터 일본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조선문제’의 중요성을 자각, 반세기에 걸쳐 근대일본의 조선침략사 연구 등 역사적 사실 규명에 진력해 왔다. 정년퇴직 후에도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동학농민혁명 및 청일전쟁에 관한 역사적 진실 규명에 매진함으로써 ‘일본의 양심’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나카츠카 교수의 근대 한일관계사 연구는 청일전쟁을 출발점으로 한 제국주의일본의 조선 침략사 해명에 집중되어 왔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올해 4월 전북 고창군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제7회 녹두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또 하나의 청일전쟁'(近刊) 등의 연구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이 국제법과 조선의 국내법을 어기면서까지 진압부대를 보내 동학농민군을 잔혹하게 학살한 사실을 밝혀낸 공로 등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나카츠카 교수는 지금도 85세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수십명의 일본인들을 인솔하여 해마다 한 차례 한국 땅을 방문하여 주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사적지를 돌아보며, 한일 관계 역사의 진실을 일본인들에게 주지시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지은이: 이노우에 가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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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경상도 구미 동학농민혁명>,<동학농민전쟁과 일본>,<메이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 … 총 9종 (모두보기)
1945년 기후(岐阜) 현에서 출생. 1967년 교토대 문학부를 졸업했고 전공은 막말(幕末)·유신사이다. 2014년 현재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다. 주요 편저서에는 『시리즈 일본근현대사 1-막말·유신』(이와나미신서, 어문학사에서 『막말유신』으로 번역됨), 『동학농민전쟁과 일본』(공저, 高文研), 『막말유신정치사 연구』(塙書房), 『일본의 역사 18-개국과 막말변혁』(講談社 학술문고), 『막말유신론집 2-개국』(편저, 吉川弘文館) 등이 있다.



옮긴이: 한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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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3종 (모두보기)
일본 홋카이도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했습니다. 강제연행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단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이노우에 가쓰오(井上勝生), 박맹수
세 명의 역사학자가 말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진상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면한 후, 그리고 100년 만인 1995년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된 이후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는,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공감하고 공유해 가는 과정을 적은 20년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갈등의 역사’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2014년 10월 21일, 광주 상록회관
드넓은 예식홀, ‘한일 시민 교류회’에 참석한 1백여 명의 청중을 향하여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강연을 시작했다. ‘제9회 한일 시민이 함께 하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의 일본 측 여행단 50여 명을 인솔하고 한국에 온 나카츠카 교수는 성성한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내각의 폭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는 강력한 일성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나카츠카 교수는 현재 일본의 극우화 흐름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간략히 설명하고, 그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교류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나카츠카 교수, 2014년 4월 25일 제7회 녹두대상 수상
특히 나카츠카 교수는 본인이 올해 4월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로부터 제7회 녹두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의 감동을 전하면서 그것은 한국의 시민들이 일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그 내용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양국 사이의 역사인식을 바로 세워 가는 데 신명을 다하자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흔쾌히 수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이날의 특강 내용은 이 보도자료 말미에 첨부)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기행’은 무엇인가
이제는 한국인에게도 잊혀져가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일본인들의 역사기행이 길게 보아 20년째, 그리고 조직적으로 올해로 9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카츠카 교수는 반세기 이상의 시간 동안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헌신해 왔으며(나카츠카 교수는 일본 교과서를 바로 잡는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이 청일전쟁과 그 속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 정리를 하던 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올바로 일본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올해 행사의 특징은?
특히 올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2주갑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이하여 일본에서는 42명이라는 대규모 견학단이 참가하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또한 일본인의 관심은 ‘전라도 동학’을 넘어 동학의 발상지 경주 용담정 견학을 시작으로, 대구(동학 창도주인 수운 최제우의 순도지)와 남원(수운 최제우가 경전을 다수 집필한 동학의 성지)의 동학 유적지를 거쳐, 정읍과 전주, 논산과 공주 일대 동학 사적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에게 ‘동학농민혁명’은?
일본인에게 ‘동학농민혁명(전쟁)’은 존재하지 않는 역사이다. 일본인이 기억하는 당시의 동아시아 역사는 오직 ‘청일전쟁’뿐이다. 일본에게 ‘조선(한반도)’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한 것을 전후 사정으로 알 수 있다. ‘청일전쟁(1894-1895)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것(이노우에 가쓰오 교수는 이를 ‘일본이 저지른 최초의 제노사이드’라고 표현한다.)은 동학농민군’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천착하는 데서부터 나카츠카 교수의 역정(歷程)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학’이라는 거대한 동력을 주저앉힌 일본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재인식하고, 그것을 바로 잡아가자는 희망에서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고 있다. 그것은 동학 사상과 이념 그리고 그 정신의 미래 지향성, 생명사상 등의 측면을 일컫는 말이다. 무엇보다 나카츠카 교수에게, 그리고 그의 뜻에 공감하여 해마다 한국을 찾아오는 양심적 일본인에게 그것은 한국(조선)의 문제가 아니다. 우경화의 길로 치닫는 일본 정부와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한, 그렇게 해서 일본이 또다시 전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여야만 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 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장정(長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
이 책 <동학농민전쟁과 일본-또 하나의 청일전쟁>에서 나카츠카 교수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되고, 특히 이 길에 있어서 학문적 동지인 이노우에 가쓰오 교수, 한국의 박맹수 교수와 어떻게 연계되고 함께 노력해 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또 이노우에 가쓰오 교수는 일본 내에 은폐되고 유폐된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료를 발굴하면서 그 속에서 일본군이 그 후 50여년에 걸쳐 저지른 ‘제노사이드’의 원형질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밝히고 있다. 또 박맹수 교수는 1994년 동학농민군 유골 발굴을 계기로 두 명의 일본인 석학들과 교신하면서 스스로 한일 시민 교류의 중심이 되어 갔던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최근 번역 출간된 <일본의 양심이 보는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나카츠카 아키라),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나카츠카 아키라)과 연속된 선상에 있다. 이 책의 출간이 한편으로는 한-일 간의 바른 역사 인식의 확산을 위한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동학’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한국에서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로 확장시켜 가는 디딤돌로서 역할할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몰아올 폭풍을 일으킬 나비의 날갯짓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역사를 직시하는 한일시민 교류회 강연문

2014년 10월 21일 / 광주 상록회관 3층
나카츠카 아키라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그리고 전라북도에서 오신 여러분들께서 저희들 ‘제 9회 한일 시민이 함께 가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단’ 일행을 맞아, 이렇게 성대한 시민교류회를 개최하여 주신 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일행들을 대표하여 짧은 말씀으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폭주하는 아베(安倍) 내각
여러분들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듯이,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내각의 폭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초에 아베 내각은 내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만, 19명의 각료 가운데 아베 신조 수상과 아소 타로 부총리를 비롯한 15명의 각료가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으로 메워졌습니다. ‘일본회의’란 “일본의 모든 악의 근원은 도쿄재판사관에 있다”는 주장을 기본적인 생각으로 삼고 있는 단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제천황제 국가였던 일본군국주의는 패배했습니다.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임으로써 항복했습니다. 그 후 일본은 1951년의 대일(対日)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 제 11조)에서 도쿄재판, 즉 ‘극동국제군사재판소 재판을 수락’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복귀했습니다. ‘일본회의’는 이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 약속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정치집단입니다.
아베 내각은 단순한 ‘보수정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인식되어 있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역사수정주의의 ‘우익집단 정권’입니다. 이 아베 내각의 정책은 일본 시민들의 다양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결정 반대’, ‘원전 재가동 중지’, 오키나와의 ‘헤노코(辺野古) 기지 건설 반대’ 등의 목소리는 일본 내 그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지니지 못한 채’ 폭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야를 세계로 넓히고, 긴 안목으로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자
그러나 아베 내각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과연 세계에 통할 수 있는 길일까요? 지난 9월 18일,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2014년판「전략개관」을 발표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베 정권에 대해 상세한 논평을 하면서 아베 신조 수상의 역사인식에 관한 자세가 일본을 국제적 고립으로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식민지시대의 역사인식을 재검토함으로써 국제관계를 전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아베 씨의 정치적 신조는 일본을 후퇴시켰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도 저해해 왔다”고 비판했으며, 특히 2013년 말에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중국에 의한 동지나해 상공의 방공식별권(ADIZ) 설정 문제를 둘러싼 일본 측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을 날려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견해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아베 정권 평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베 정권을 일본 정계로부터 퇴출시킬 가장 기본적인 힘은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본시민들인 저희들이 아베 내각의 폭주에 맞서서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 핵심은 시야를 세계로 넓히고 긴 안목으로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녹두대상의 감동
지난 4월 25일, 저는 한국 전라남도 ‘고창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로부터 ‘녹두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수상 후보자로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고 아베 내각의 폭주를 생각했을 때,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일본인에게 최초로 녹두대상을 수여하려는 것일까?”라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분간 못하는 아베 내각의 ‘망언’과 ‘망동’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분개하고 있을 지는 용이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민감한 시기에 “왜 일본인인 나에게 녹두대상을 수여하려는 것일까”를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작금의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는 데 있어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이겠는가,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측이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어 ‘녹두대상’을 기꺼이 수상하기로 하였습니다. ‘녹두대상’은 나카츠카라는 한 개인에게 수여했다기보다는 “일본인들에 대한 메시지다”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녹두대상’ 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녹두대상’을 수상하고 나서 제가 대단히 감동한 일입니다만, ‘녹두대상’ 상패에 새겨진 문장 속에는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선동하는 글자를 단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추구하고자 했던 ‘자주’와 ‘평등’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 ‘자주와 평등’을 위한 사업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의 본지(本旨)이다, 이것을 지금의 한국 고창군 군민들이 계승, 발전시키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사업에 공헌했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나라) 안으로는 억압과 경쟁, (나라) 밖으로는 침략”이라는 구미열강과 일본이 경험했던 근대화와는 별개의 근대화의 길, 그것을 현대에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현대에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저는 이해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현실의 나날 속에서는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격차를 확대시켜 가고 있는 일본의 아베 내각과는 천지 차이가 나는, 역사의 창조적 실천이 아닐까, 저는 대단히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녹두대상’ 수상 이후, 나라(奈良)를 비롯하여 도쿄(東京)와 교토(京都) 등지에서 녹두대상 수상 관련 보고와 함께 동학농민혁명이 현대한국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는가를 일본의 벗들과 시민 여러분들에게 강연하기도 하고 잡지에도 기고하기도 함으로써 ‘녹두대상’ 수상의 의미를 일본사회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녹두대상’을 수여 해 주신 ‘고창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배운 것
‘한일 시민이 함께 가는,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올해로 제 9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저희들이 이 여행을 통해서 120년 전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물론입니다만, 그와 동시에 방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한국 땅에서 살고 계신 한국의 여러 시민들의 생각과 세계관을 배우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직시하면서, 그리고 그런 역사적 진실로부터 눈을 딴 데로 돌리지 아니하고 살아갈 때, 틀림없이 한국의 여러분들께서 지니고 계신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하는 고민들과 진지하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개인의 생물학적 장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예견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이 ‘동학농민군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쌓여진 한일 두 나라 시민들 간의 우정은 틀림없이 이 여행을 언제까지나 계속하게 만들어 연륜을 거듭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한일 두 나라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한일 시민 상호간의 교류가 더 한층 발전해 가기를 염원 드리면서 인사 말씀에 가름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녹두대상은

전라북도 고창군이 매년 선정하여 동학농민혁명의 계승 발전을 위해 공헌, 혹은 동학농민혁명 정신 계승을 위한 학술·연구·문화사업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무장기포일인 4월 25일(음력 3월 20일)에 수여하는 상으로, 1894년 무장기포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한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2008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을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정남기 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이화 선생, 조경달 교수, 전북일보 동학농민혁명 특별취재팀 등을 수상자로 선정해 왔으며, 올해(2014년) 4월 근대 한일 관계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본인들의 올바른 인식과 이해에 기여한 공로로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에게 시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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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8-03-10

1894년은 한국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해이다. 먼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이후 한국사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둘째,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동아시아의 주도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갑오개혁이 시행되어 신분제 철폐적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1894년은 의미가 깊다.

위 세 가지 이유의 중심에는 물론 동학농민운동이 자리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주제를 이곳에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대체로 한국측 자료와 증언들이다. 이에 비해 <동학농민전쟁과 일본>은 풍성한(?) 일본측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자료들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군 참전 병사나 지역 신문 등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면서 한 개인으로의 심경을 드러낸다. 반면 일본 군부가 작성한 자료들은 왜곡(내지 조작)을 통해 자신을 위대한(?) 입장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지나간 과거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일본군의 무고한 농민 학살(30만명 추정), 일본의 부인, 당시 정부와 집권자들의 무능력, 개인의 무기력함 등이 동시에 밀려와 후대의 독자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개인적 감정을 느끼고자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린 자는 잊으려하고 맞은 자는 분노에 치를 떤다. 비록 내가 100년도 더 지난 후대인일지라도.

책의 출발은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동학농민군 유골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 유골이 대학에 오게 된 경위를 조사하면서 잊혀진 과거의 사실이 드러나고, 이것을 다시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며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고마운 것은 이 사실은 조사하고 인정한 일본의 학자들이다. 진실을 마주할 줄 아는 그분들의 용기에 그저 고개숙여질 뿐이다. 그렇기에 일본 자료를 중심으로 쓰여졌다해도 그렇게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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