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3

11. 김기협. 반세기를 미워한 어머니와의 화해

반세기를 미워한 어머니와의 화해, 기막힌 가족사를 밝힙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1.01.26



지난해 10월 경기도 이천의 요양원인 세종 너싱홈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김기협 박사.




역사학자 김기협 박사의 치매노모 간병일기 『아흔 개의 봄』“나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진심으로 미워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잣말로도 하기 어려운 말이다. 미움의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이기에.

 “아버지에게 부인이 엄연히 있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했다.”

 이 역시 밝히기 쉬운 일이 아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저작을 낸 역사학자 김기협(61) 박사가 공개적으로 그런 고백을 했다. 책을 통해서다. 그는 최근 치매에 걸린 91세 노모를 돌보며 느낀 점을 기록한 간병기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을 냈다.

노모는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 출신으로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국어학자 이남덕. 책은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는 간병일기지만 숨기고 싶은 가족사,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화해를 곳곳에 담고 있다.

그 어머니의 남편은 경성제대 동문인 역사학자 고(故)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다. 1951년 타계한 김 교수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점령된 서울에서의 생활을 일기로 남겼고, 아들 김 박사는 이를 엮어 1993년 『역사 앞에서』를 냈었다. 김 박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기록을 책으로 남긴 것이다.

 지난 주말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택에서 김기협 박사를 만났다.





1951년 봄 어느 날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고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 둘째형 기목, 큰형 기봉,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 시절의 기협.

 -아버지의 중혼, 어머니와의 갈등 등 보통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은 내용이 간병기 곳곳에 담겨 있다.

 “‘책 팔아서 돈 좀 벌겠다는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역사 앞에서』로 아버지를 알렸듯이 어머니를 알리고 싶었다. 또 우리 사회는 아직 솔직하게 기록하는 문화가 취약하다. 17세기 영국의 사무엘 핍스란 인물은 자신의 성적 취향까지 적나라하게 기록한 일기를 남겼는데 그의 일기는 지금 당시 영국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간병기가 기록문화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이남덕 전 교수는 2007년 6월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이후 김 박사는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니며 어머니를 돌봤다. 지금은 경기도 이천의 한 요양원에 있다. 김 박사는 모친이 회복을 시작한 2008년 가을부터 이메일 등으로 어머니의 변화를 주변 사람에게 알렸고 이를 모아 책을 냈다.

 -어머니가 왜 미웠나.

 “무엇보다 어머니의 결혼 자체가 못마땅했다. 어머니가 결혼할 때 아버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두 분의 결혼 과정은 잘 모르나, 아버지가 ‘작업’을 해서 결혼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의 의지가 더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내 기준으론 이해가 안 됐다. 어머니가 스님을 찾아다니며 ‘스승’으로 모시는 것도 사이비 종교활동처럼 보였다. 여기에 사물을 삐딱하게 보는 나의 비판적 성향이 더해졌다.”

 -모친과 관계가 좋아지게 된 계기는.

 “2007년 6월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아주 위험한 상태였고, 회복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이젠 보내드려야 한다’ 생각하니 그간 마음 속에 있던 미움을 털게 됐다. 그런데 어머니가 회복됐다. 놀라운 일이다. 미움을 털어버린 상태여서 어머니의 모습을 새로 볼 수 있게 됐고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어머닌 어떤 분인가.

 “난 어머니가 염세적이고 재미 없는 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친구 분이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고 재미있는 분’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보는 것과 전혀 달랐다. 자식은 자식의 입장에서 보기에 어머니에 대한 시각이 제한적이었구나 느꼈다.”





지난해 9월 병상의 모친이 김기협 박사에게 써 준 글. 아들과의 관계로 어머니도 괴로워했음을 보여준다. ‘아아 나는 이제 너에게 글을 써 주겠다. 너는 내 아들이다 틀림이없다 그런데 한번도 가까운 대서는 글을 안 써주는구나 본래 가까운 사람은 항상 먼대서 멀리 있는 것이로구나’ [사진=김기협 박사]

 -법원에 ‘친생자관계존부 확인의 소’를 냈다는데.

 “얼마 전에 어머니 이름으로 ‘저 자식(김기협)이 내 아들인 걸 확인해 주세요’ 하고 낸 것이다. 형식적인 것이다. 어머니는 모른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전처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그 분의 아들로 기록됐다. 법적으로 어머니는 ‘계모’다. 그렇지만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분명해 그동안 굳이 바로잡을 필요를 못 느꼈다. 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머니 회복이 김 박사의 정성 덕분이라고 보나.

 “그건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살겠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회복해봐야 미운 놈 다시 볼 텐데 살아 뭐 하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놈이 옛날과 다르게 잘하니, 다시 살아볼 만하겠다’고 생각하신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잠재의식 속에.”

 -책에는 어머니 이마에 뽀뽀를 거의 매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쑥스럽지 않나.

 “그렇게 뽀뽀하는 것은 유치하고 징그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인간은 절대로 못하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좋다. 한 번 해보라.”

 -책 나온 걸 어머니도 아시나.

 “책이 나온 후 읽어 드렸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 하는 반응을 보이신다. 기억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예상하지 않았던 수확이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가 간병일기 출간에 영향을 미쳤나.

 “아버지의 일기(『역사 앞에서』)가 직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어머니 용태를 기록하면서 ‘아버지도 일기를 남겼지’하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병상의 가족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까운 사람이 ‘정상인’과 다를 경우, 이들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정상’과의 비교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인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상인’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불필요한 고통을 불러온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어머니 모시는 데 어려움은 없나.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큰 어려움은 없다. 지금 간병인을 두고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건 상당 부분 장기요양보험 덕분이다. 노인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전체적으로는 좋아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이제 노인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노인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받는 요양보험 지원금은 대부분 간병비에 쓰인다. 국가의 역할이 좀 더 커져야 한다. 또 중산층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요양 시설도 더 많이 생겨야 한다.”

 -부모와의 관계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나도 어머니께 고통을 많이 드렸지만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괴로움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염태정 기자

[출처: 중앙일보] 반세기를 미워한 어머니와의 화해, 기막힌 가족사를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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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미워한 엄마 이제야 화해합니다
조선일보
김두환·듀란킴에이전시 대표


입력 2011.07.09 03:01

김두환·듀란킴에이전시 대표
아흔 개의 봄
김기협 지음|서해문집|424쪽|1만2900원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제목만 보고 대뜸 "자기는 뭐 하고 왜 남에게 엄마를 부탁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화들짝 꼬리를 내렸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칠순을 넘기면서 어느 한 분이라도 중풍으로 쓰러지거나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막연하게 걱정했지만 그게 부모님 걱정인지, 그 상황에 닥친 '나'에 대한 걱정인지 생각해본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이 책은 역사학자 김기협씨가 치매와 노환으로 쓰러진 아흔 노모의 용태를 주위 친지들에게 알리려고 쓴 시병(侍病) 일기다.

그의 어머니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이남덕씨다. 7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스승이자 연인인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씨와 스치듯 사랑하며 3남 1녀를 뒀다.

셋째 아들인 저자가 병시중을 맡은 것은 가장 효성이 깊어서가 아니라 다른 자식들에게 사정이 있어서였다. 그는 오히려 자라면서 세 아들 중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적게 받아 오랫동안 노여워한 아들이었다. 한때 어머니를 '괴물'이라 여기기까지 했다.

그가 그토록 어머니를 미워한 것은 어머니가 유부남이던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어서였다. 아버지와 전처의 이혼이 늦어져 세 아들은 전처소생으로 호적에 올랐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버지의 일기를 숨긴 것도 원망의 골을 깊게 했다. 아버지는 해방 직후부터 1951년 4월까지, 6년 세월을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기록했다. 어머니는 행여 반공시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위해가 될까 봐 혼자서만 일기를 간직하다 1987년 비로소 저자에게 넘겨 줬다.





저자는 어머니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어머니의 행동은 시대의 진실을 감춘 비겁이요, 자식을 '함께 고민을 나눌 존재'로 인정하지 않은 비정(非情)이라고. 그는 아버지의 일기를 묶어 '역사 앞에서'(창비·1993년)라는 책을 펴냈다.

그런 그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며 서서히 저도 모르게 '효자'가 됐다. 좋은 요양원을 찾기 위해 같은 곳을 수없이 방문해 꼼꼼히 살펴봤다. 수시로 찾아가 노래 부르고 볼에 뽀뽀하며 재롱부렸다.

치매에 걸려 정신이 항상 맑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인(自認)한 후로, 저자의 어머니는 '교수'라는 과거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해도 되는 사람, 아들이 볼에 뽀뽀할 때 솔직하게 기뻐해도 되는 사람, "햇볕을, 바람을, 풀잎을, 고마운 마음으로 누리는" 푸근한 진짜 할머니가 되었다.

호적을 고치는 것으로 마무리된 저자의 '엄마 찾기'는 어머니와의 화해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용납하는 여정이었다. 그 길 끝에서 저자는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깨닫는다.


감상(感想)에 호소하거나 효도를 부르짖지 않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일깨우는 책. 자신의 가족사에 우리 역사의 질곡을 담담히 겹쳐, 깊고도 짙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강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8/20110708019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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