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1.01.26
지난해 10월 경기도 이천의 요양원인 세종 너싱홈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김기협 박사.
역사학자 김기협 박사의 치매노모 간병일기 『아흔 개의 봄』“나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진심으로 미워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잣말로도 하기 어려운 말이다. 미움의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이기에.
“아버지에게 부인이 엄연히 있는 상태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했다.”
이 역시 밝히기 쉬운 일이 아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저작을 낸 역사학자 김기협(61) 박사가 공개적으로 그런 고백을 했다. 책을 통해서다. 그는 최근 치매에 걸린 91세 노모를 돌보며 느낀 점을 기록한 간병기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을 냈다.
노모는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 출신으로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국어학자 이남덕. 책은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는 간병일기지만 숨기고 싶은 가족사,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화해를 곳곳에 담고 있다.
그 어머니의 남편은 경성제대 동문인 역사학자 고(故)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다. 1951년 타계한 김 교수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점령된 서울에서의 생활을 일기로 남겼고, 아들 김 박사는 이를 엮어 1993년 『역사 앞에서』를 냈었다. 김 박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기록을 책으로 남긴 것이다.
지난 주말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택에서 김기협 박사를 만났다.
1951년 봄 어느 날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고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 둘째형 기목, 큰형 기봉,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 시절의 기협.
-아버지의 중혼, 어머니와의 갈등 등 보통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은 내용이 간병기 곳곳에 담겨 있다.
“‘책 팔아서 돈 좀 벌겠다는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역사 앞에서』로 아버지를 알렸듯이 어머니를 알리고 싶었다. 또 우리 사회는 아직 솔직하게 기록하는 문화가 취약하다. 17세기 영국의 사무엘 핍스란 인물은 자신의 성적 취향까지 적나라하게 기록한 일기를 남겼는데 그의 일기는 지금 당시 영국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간병기가 기록문화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이남덕 전 교수는 2007년 6월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이후 김 박사는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니며 어머니를 돌봤다. 지금은 경기도 이천의 한 요양원에 있다. 김 박사는 모친이 회복을 시작한 2008년 가을부터 이메일 등으로 어머니의 변화를 주변 사람에게 알렸고 이를 모아 책을 냈다.
-어머니가 왜 미웠나.
“무엇보다 어머니의 결혼 자체가 못마땅했다. 어머니가 결혼할 때 아버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두 분의 결혼 과정은 잘 모르나, 아버지가 ‘작업’을 해서 결혼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의 의지가 더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내 기준으론 이해가 안 됐다. 어머니가 스님을 찾아다니며 ‘스승’으로 모시는 것도 사이비 종교활동처럼 보였다. 여기에 사물을 삐딱하게 보는 나의 비판적 성향이 더해졌다.”
-모친과 관계가 좋아지게 된 계기는.
“2007년 6월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아주 위험한 상태였고, 회복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이젠 보내드려야 한다’ 생각하니 그간 마음 속에 있던 미움을 털게 됐다. 그런데 어머니가 회복됐다. 놀라운 일이다. 미움을 털어버린 상태여서 어머니의 모습을 새로 볼 수 있게 됐고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어머닌 어떤 분인가.
“난 어머니가 염세적이고 재미 없는 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친구 분이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고 재미있는 분’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보는 것과 전혀 달랐다. 자식은 자식의 입장에서 보기에 어머니에 대한 시각이 제한적이었구나 느꼈다.”
지난해 9월 병상의 모친이 김기협 박사에게 써 준 글. 아들과의 관계로 어머니도 괴로워했음을 보여준다. ‘아아 나는 이제 너에게 글을 써 주겠다. 너는 내 아들이다 틀림이없다 그런데 한번도 가까운 대서는 글을 안 써주는구나 본래 가까운 사람은 항상 먼대서 멀리 있는 것이로구나’ [사진=김기협 박사]
-법원에 ‘친생자관계존부 확인의 소’를 냈다는데.
“얼마 전에 어머니 이름으로 ‘저 자식(김기협)이 내 아들인 걸 확인해 주세요’ 하고 낸 것이다. 형식적인 것이다. 어머니는 모른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전처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그 분의 아들로 기록됐다. 법적으로 어머니는 ‘계모’다. 그렇지만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분명해 그동안 굳이 바로잡을 필요를 못 느꼈다. 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머니 회복이 김 박사의 정성 덕분이라고 보나.
“그건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살겠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회복해봐야 미운 놈 다시 볼 텐데 살아 뭐 하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놈이 옛날과 다르게 잘하니, 다시 살아볼 만하겠다’고 생각하신 건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잠재의식 속에.”
-책에는 어머니 이마에 뽀뽀를 거의 매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쑥스럽지 않나.
“그렇게 뽀뽀하는 것은 유치하고 징그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인간은 절대로 못하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좋다. 한 번 해보라.”
-책 나온 걸 어머니도 아시나.
“책이 나온 후 읽어 드렸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 하는 반응을 보이신다. 기억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예상하지 않았던 수확이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가 간병일기 출간에 영향을 미쳤나.
“아버지의 일기(『역사 앞에서』)가 직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어머니 용태를 기록하면서 ‘아버지도 일기를 남겼지’하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병상의 가족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까운 사람이 ‘정상인’과 다를 경우, 이들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정상’과의 비교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인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상인’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불필요한 고통을 불러온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어머니 모시는 데 어려움은 없나.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큰 어려움은 없다. 지금 간병인을 두고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건 상당 부분 장기요양보험 덕분이다. 노인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전체적으로는 좋아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이제 노인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노인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받는 요양보험 지원금은 대부분 간병비에 쓰인다. 국가의 역할이 좀 더 커져야 한다. 또 중산층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요양 시설도 더 많이 생겨야 한다.”
-부모와의 관계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나도 어머니께 고통을 많이 드렸지만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괴로움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염태정 기자
[출처: 중앙일보] 반세기를 미워한 어머니와의 화해, 기막힌 가족사를 밝힙니다
----------------
평생 미워한 엄마 이제야 화해합니다
조선일보
김두환·듀란킴에이전시 대표
입력 2011.07.09
아흔 개의 봄 김기협 지음|서해문집|424쪽|1만2900원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제목만 보고 대뜸 "자기는 뭐 하고 왜 남에게 엄마를 부탁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화들짝 꼬리를 내렸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칠순을 넘기면서 어느 한 분이라도 중풍으로 쓰러지거나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막연하게 걱정했지만 그게 부모님 걱정인지, 그 상황에 닥친 '나'에 대한 걱정인지 생각해본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이 책은 역사학자 김기협씨가 치매와 노환으로 쓰러진 아흔 노모의 용태를 주위 친지들에게 알리려고 쓴 시병(侍病) 일기다.
그의 어머니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이남덕씨다. 7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스승이자 연인인 역사학자 김성칠(1913~1951)씨와 스치듯 사랑하며 3남 1녀를 뒀다.
셋째 아들인 저자가 병시중을 맡은 것은 가장 효성이 깊어서가 아니라 다른 자식들에게 사정이 있어서였다. 그는 오히려 자라면서 세 아들 중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적게 받아 오랫동안 노여워한 아들이었다. 한때 어머니를 '괴물'이라 여기기까지 했다.
그가 그토록 어머니를 미워한 것은 어머니가 유부남이던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어서였다. 아버지와 전처의 이혼이 늦어져 세 아들은 전처소생으로 호적에 올랐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버지의 일기를 숨긴 것도 원망의 골을 깊게 했다. 아버지는 해방 직후부터 1951년 4월까지, 6년 세월을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기록했다. 어머니는 행여 반공시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위해가 될까 봐 혼자서만 일기를 간직하다 1987년 비로소 저자에게 넘겨 줬다.
저자는 어머니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어머니의 행동은 시대의 진실을 감춘 비겁이요, 자식을 '함께 고민을 나눌 존재'로 인정하지 않은 비정(非情)이라고. 그는 아버지의 일기를 묶어 '역사 앞에서'(창비·1993년)라는 책을 펴냈다.
그런 그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며 서서히 저도 모르게 '효자'가 됐다. 좋은 요양원을 찾기 위해 같은 곳을 수없이 방문해 꼼꼼히 살펴봤다. 수시로 찾아가 노래 부르고 볼에 뽀뽀하며 재롱부렸다.
치매에 걸려 정신이 항상 맑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인(自認)한 후로, 저자의 어머니는 '교수'라는 과거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해도 되는 사람, 아들이 볼에 뽀뽀할 때 솔직하게 기뻐해도 되는 사람, "햇볕을, 바람을, 풀잎을, 고마운 마음으로 누리는" 푸근한 진짜 할머니가 되었다.
호적을 고치는 것으로 마무리된 저자의 '엄마 찾기'는 어머니와의 화해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용납하는 여정이었다. 그 길 끝에서 저자는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깨닫는다.
감상(感想)에 호소하거나 효도를 부르짖지 않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일깨우는 책. 자신의 가족사에 우리 역사의 질곡을 담담히 겹쳐, 깊고도 짙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강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8/2011070801939.html============================================
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은이)서해문집2011





























미리보기
책소개
<밖에서 본 한국사>, <뉴라이트 비판>, <김기협의 페리스코프>로 알려진 역사학자 김기협이 아흔의 치매 노모를 간병하며 쓴 일기를 엮었다. 역사학자 故김성칠 선생(부친)과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이남덕 선생(모친)의 셋째 아들 김기협은 2년여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며 세심한 관찰과 성찰로 인간과 삶에 대해 사유한다.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어머니 소식을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메일로 용태를 알려드리던 것이 시병일기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어머니를 관찰하는 일이자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되었고, 평생 머리로 살아온 어머니 또한 머리에 병이 들자 남아 있는 기억을, 그리고 지금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게 된 모자간은 가까운 사람에 대한 '본심'이 '미움'의 형태로 나타나 서로를 괴롭혔던 시간들을 반추하고, 그 미움을 씻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분을 '괴물'로 여기며 살아온 세월, 그 '멀고 먼' 거리를 좁히고 나니 이젠 어머니 이마에 뽀뽀해드리겠다며 엉구럭을 떠는 셋째 아들이 되어 있었다.
평생 '아주 먼' 아들로 살아온 김기협이 '병'을 계기로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은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김기협은 한 인간을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을 포장하거나 감추지 않고 깊은 통찰과 절제된 표현을 통해 담아냈다.
목차
엄마 찾아 60년_김기협
1/ 찬란한 순간 …15쪽
2/ 아흔 개의 봄을 생각하다 …93쪽
3/ 꽃은 어디에 피어도 예쁜 거예요 …219쪽
4/ 이젠 노래나 부르고 살겠어 …251쪽
5/ 햇볕을, 바람을, 꽃을, 풀잎을, …319쪽
모자간의 내면적 오디세이_강인숙(영인문학관 관장) …410쪽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_남지심(소설가) …413쪽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 선생님!_이문숙(제자, 목사) …417쪽
책속에서
P. 36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진학시킨 후 어느 날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내가 너희를 혼자 키우느라 내 본성을 감추고 20년간 지내왔다. 이제 너희가 다 컸으니 나는 이제 점잖고 엄숙한 시늉을 그만두고 편안하게 살련다. 행여 지금까지와 다른 내 모습을 본다 해서 놀라지 말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본색을 드러내는 것뿐일 테니.' 접기
P. 42 '너도 식사했냐?'
'아직 안 했습니다, 어머님.'
'그런데 왜 그렇게 배가 부르냐?'
양옆의 환자분들이 킥킥 웃는다. 면구스럽기도 해서 능청을 떨었다.
'어머니, 이 배가 효자배란 거예요. 어머니께서 잘 드시면 제가 안 먹어도 저절로 불러진답니다.'
알았다는 듯 식사로 주의를 되돌리시던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한 마디 툭 던지신다.
'효자배? 내 보기엔 꼭 똥배 같구만.' 접기
P. 44 '내가 경기중학 입학시험을 친 1957년, 전쟁 후의 혼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시점에서 어느 정도면 그 학교에 합격할 만한 수준인지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너 정도 실력이면 될 거야.' 해주신 말씀 외에는 자신감을 가질 근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발표 날, 학교 담에 붙이는 방을 보러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설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붙어도 기쁠 것이고, 떨어져도 기쁠 것이다. 네가 붙으면 우리 가족에게 당연히 기쁜 일이 될 것이고, 떨어진다면 너보다 실력 있는 학생이 네 또래에 5백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너만 해도 충분히 똑똑하고 실력 있는 학생인데, 더 훌륭한 학생이 5백 명이나 있다면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냐?' 접기
P. 257 정말 대단하시다. 노랫가락에 이렇게 중층적인 정감을 담아 풀어내시다니. 옛날 음유시인이나 고급 광대가 쓰던 표현 기법이 이런 것이었을까? 노랫가락으로 이야기하시는 까닭이 뭐냐고 나중에 형이 여쭐 때는 웃음을 잠깐 거두고 보통 화법으로 대답하셨다. '말하면서 산다는 게 너무 힘들어.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이젠 노래나 부르고 살겠어.' 접기
P. 302 앉아 계실 때도, 누워 계실 때도 '고맙다.' 소리가 수시로 나오셨다. 두어 번 들은 뒤에 '어머니, 어머니 뱃속에 고마운 마음이 꼴똑 차 있나봐요. 건드리기만 하면 나오는 말씀이 '고맙다'예요?' 하니까 '그게 똥만 차 있는 것보다 낫지 않냐?' 절묘하게 대꾸하시는데, 한참 모시고 앉아 있다 보면 이런 묘기가 몇 차례씩 나온다. 다 기억해서 적지 못하는 게 아깝다. 접기
P. 355 노랫가락 화법은 얼렁뚱땅하는 데도 많이 쓰이지만, 오늘은 내내 믿음이 가득 실린 ‘인생 찬가’였다. “이곳은 참 좋은 곳이에요.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숲도 있고, 바람도 있고, 햇빛도 있어요. 이렇게 좋은 곳인 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추천글
김기협의 《아흔 개의 봄》은 겉으로는 한 아들의 어머니 간병기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어머니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추적하는 내면적 오디세이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어머니의 장점이 과대 포장되는 일도 없고, 결점이 감추어지는 일도 없다. 깊은 통찰과 절제된 표현을 통하여 그는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지극한 마음으로 간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구나.' 이남덕 선생님의 네 번째 생은 아드님인 김기협 선생님이 선사하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지만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남덕 선생님과 나는 여주 강 언덕에서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기로 한 의식을 은밀히 치렀다.
- 남지심 (소설가)
선생님께서 날 이리저리 보살펴주신 일을 떠올려드리면서 내가 그걸 '사랑'이라고 하자 선생님은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인연'이라고 하셨다. 당신이 매진하신 일과 베푸신 일에 대해 그 의미의 중력을 털어버리는 서늘함 때문에, 멀찌감치서라도 이남덕 선생님을 늘 내 마음 한 자리에 모시고 있었던 것 같다.
- 이문숙 (목사)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1년 1월 22일자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1년 1월 21일 잠깐 독서
저자 및 역자소개
김기협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과학사학자. 경북대에서 석사논문으로 중국 고대 천문학을, 연세대에서 박사논문으로 마테오 리치의 적응주의를 다룬 후 동아시아 문명권 안팎의 교섭관계를 연구해왔다. 저서로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아흔 개의 봄』 『해방일기』 『냉전 이후』 『오랑캐의 역사』 『뉴라이트 비판』 이 있다. 근년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작 : <뉴라이트 비판>,<오랑캐의 역사>,<냉전 이후> … 총 47종 (모두보기)
김기협(지은이)의 말
어머니 근황 적는 일은 이 책 내는 것으로 접어놓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뵙고 오니 또 적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이 책에서 보여드린 이후의 어머니와 제 모습을 보고 싶으면 제 블로그(http://orunkim.tistory.com)를 찾아주세요.
출판사 소개
서해문집
출판사 페이지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난민, 낯설고 아름다운>,<이 감정, 삭제 불가입니다>,<조선 소녀 탐정, 비야의 사건일지>등 총 551종
대표분야 : 역사 8위 (브랜드 지수 480,378점), 청소년 인문/사회 13위 (브랜드 지수 90,204점), 고전 18위 (브랜드 지수 253,99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역사학자 김기협, 어머니와 화해하고 다시 사랑을 쓰다
역사학자 김성칠과 국어학자 이남덕의 불량아들,
김기협이 마음으로 그리고, 머리로 써 내려간 아흔 노모 시병일기
⊙ 역사학자 김기협, 아흔 개의 봄을 생각하다
《밖에서 본 한국사》, 《뉴라이트 비판》,《김기협의 페리스코프》로 알려진 역사학자 김기협이 아흔의 치매 노모를 간병하며 쓴 일기를 엮었다. 역사학자였던 故김성칠 선생(부친)과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남덕 선생(모친)의 셋째 아들 김기협은 3년여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며 세심한 관찰과 성찰로 인간과 삶에 대해 사유한다. 평생 '아주 먼' 아들로 살아온 김기협이 '병'을 계기로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은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이었으며, 김기협은 가족을, 한 인간을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을 포장하거나 감추지 않고 깊은 통찰과 절제된 표현을 통해 담아냈다.
⊙ 현대사를 품은 가족사
이 책은 겉으로는 '한 아들의 어머니 간병기'이지만 그 가족사에 얽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6·25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담은 책 《역사 앞에서》로 알려져 있는 아버지 김성칠은 잘못된 시대의 희생자였으며, 어머니는 모든 면에서 스승이었던 남편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그 비극을 가슴에 품은 채 4남매를 홀로 키워낸 국어학자였다. 잘못된 세상의 부당한 폭력으로 일찍 남편을 보내야 했던 애통함과 남편의 소질을 자식들이 그대로 물려받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온 세월, 어머니가 아버지의 일기 《역사 앞에서》를 36년간 혼자 지켜온 것만을 보더라도 그 세월이 평탄하진 않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오랫동안 진심으로 어머니를 미워하며 살아온 아들 김기협은 어머니를 간병하며 어머니가 살아온 그 세월을 이해하게 되고 어머니와의 불화의 시절과 화해하게 된다.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또 무거운 인연, 가족
어머니 소식을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메일로 용태를 알려드리던 것이 시병일기의 시작이었다. 한때 어머니가 저자의 보호자였던 것처럼 이제 그분의 보호자가 되어 어머니를 돌보면서 저자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고, 평생 머리로 살아온 어머니 또한 머리에 병이 들자 남아 있는 기억을, 그리고 지금 자신 곁에 있는 사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게 된 모자간은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의 '본심'이 '미움'의 형태로 나타나 서로를 괴롭혔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서로의 돌봄 속에서 그 미움을 씻어내게 된다. 기억력이 부실해져서 아들인 나조차도 기억 저 멀리 보내버릴까 봐 자꾸자꾸 '어머니'라 불러드려야 하는 지금이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고통스런 기억에서 해방되어 '제2의 인생'을 누리는 행복한 노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 또한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몇 계절을 보내면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분과의 멀고 멀었던 거리를 좁히고 나니 이젠 어머니 이마에 뽀뽀해드리겠다며 엉구럭을 떠는 막내아들이 되어 있었다.
내 '엄마 찾기'는 요컨대 '화해'의 과정이었다. 그분과의 화해가 세상과의 화해, 나 자신과의 화해를 위한 길을 열어주었다. 모르는 분들에게 읽어달라고 책으로 내면서 이것 하나만은 꼭 강조하고 싶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 운명이 주는 괴로움은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원망이 아끼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모습을 바꿔서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_저자의 말 중에서
⊙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바치는 '어머니 관찰기'
저자는 자신의 효심을 억지로 내세우는 일 없이, 깊은 통찰과 절제된 표현으로 어머니를 기록하고 있다. 기억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면서 어머니는 아들 놀려먹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하고,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좌절감에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모르는 거 모른다고 하니까 참 편하고 좋다." 말하기도 하고 이따금 간병인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말씀을 노랫가락에 실어 흥얼거리는 것을 보면 언어에서 새로운 효능을 찾으신 것도 같다. 싫어하는 게 꽤 많던 분인데 이제는 좋아하는 게 많은 노인네가 되어 마음속에 있는 따뜻한 말을 스스럼없이 건넬 수 있고, 유쾌한 웃음으로 주변을 즐겁게 해주는 행복한 어머니가 되어 있다. 아들 김기협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늦게 찾아온 이 사랑을 지키고 키우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수십 년간 내가 '이성'에 의지해 살려고 발버둥친 것은 의지할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랑을 찾는 데는 큰 제약이 있을 것이다. 쉽게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나 자신을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상에 대한 내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어려웠던 만큼 늦게나마 큰 사랑을 깨우치게 되었으니, 현명하게 살기보다는 사랑을 지키고 키우는 일을 더 앞세우며 살아가고 싶다." _본문 중에서
※아버지 김성칠과 어머니 이남덕에 대하여
○ 김성칠(金聖七) : 1913년 경북 영천 출생. 1928년 대구고보 재학중 독서회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32년 동아일보 농촌구제책 현상모집에 당선됐고 1934년 규슈 토요쿠니 중학을 졸업했다. 1937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 후, 1941년까지 조선금융조합 연합회에서 근무했다. 1942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하고 1946년 경성대학을 졸업하고 1947년 서울대 사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1951년(39세) 영천 고향집에서 괴한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저서로 《역사 앞에서》, 《조선역사》, 《국사통론》, 《동양사 개설》(공저) 등과 역서로 펄 벅의 《대지》, 강용흘의 《초당(草堂)》, 박지원의 《열하일기》(전5권), 《용비어천가》(상·하) 등이 있다. 이중 《역사 앞에서》는 저자가 보고 겪은 6·25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40여 년 만에 공개된 이 일기는 일기라는 사적 기록의 형식을 취했지만, 저자가 역사가로서 소명의식을 자각하고 쓴 공적 기록이자 일종의 사론(史論)·사설(史說)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초판이 발행된 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혀왔으며, 이 책을 원작으로 1994년엔 KBS 특집극으로 만들어졌다.
○ 이남덕(李男德) : 1920년 충남 아산 출생. 이화여전 문과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조선어문 전공) 졸업, 이화여대 대학원을 수료했다(문학박사). 동아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이화여대 국문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1986년 정년퇴임했다. 그 후 서울살이를 그만두고 대자연과 벗하며 구도와 기원으로 정진하다가 2007년 6월 갑자기 쓰러져 아들 김기협의 간병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어 어원 연구 1~4》, 불교잡지 <불광>에 연재했던 수필을 묶어 낸 《두메산골 앉은뱅이의 기원》,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가 있다. 접기
등록
카테고리
글 작성 유의사항
구매자 (2)
전체 (4)
공감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잔잔한 감동이 있는책
wkdgpfls 2011-01-23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재미있게 읽고 부모님이 치매가 되신 친척께 드렸습니다
mojaco 2011-01-28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역사학자로써의 새로운글은 신선했다.
광기 2011-01-25 공감 (0) 댓글 (1)
Thanks to
공감
쿨하다, 잔잔하다, 그러나 뒤의 감동 울림은 정말 만만찮다.
anygoal 2011-01-25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2)
전체 (14)
리뷰쓰기
공감순

어머니와 아들
일간지에서 이 책의 저자에 관한 글을 읽고
참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어요.
적어도 이남덕 교수라는 성함은
저같은 사람에게도 족히 친숙했는데오,
아흔이 되신 현재 병상에서
아드님의 간병을 받고 계시다는 이 외에도
굳이 드러낼 것 없는 과거지사를
솔직담백히 털어놓으셨다는 점이
뭔가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남의 어머니 되기의 두려움이랄까요.
가끔 저의 아이들도 투정을 부리지요.
때로 야속한 생각도 들구요.
나의 죄란 혼수를 못 해왔다는 것 뿐인데..ㅠㅠ
- 접기
승혜 2011-01-27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아흔 개의 봄
오래전 중풍으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냄새나고.. 누워만 계시고..자꾸자꾸 울기만 하던.. 우리 할머니.
이남덕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치매라신다. 병명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그런데도 나는 오래전 돌아가신 우리 위풍당당 할머니가 생각났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주위에서 얼마나 힘든지 어릴 적 나는 보았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한걸 보았고 고모들이 그리한걸 보았다.
시병일기라는 이 책은 내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내 어린 기억에 아름다움은 없었는데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포근하고 따사하고 아름답다.
난 그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내 기억속에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만이 아름다울 뿐인데...
그거면 된 걸까? 그럼 그거면 되는거지 ^^ 잔소리도 많고 대장부 같았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나는 이뻐해 주셨단다.
그러고 보면 가끔 정확하지 않은 기억속에 내가 자고 있을때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면
마루에 걸터앉아 어른들과 나누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잠결에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랑 받는 나는 다들 겁내는 할머니가 두렵지 않았나 보다 내 기억에 좋음이 있는 걸 보면...
그 시절 나는 조금 영악했나보다... 받는만큼 나는 할머니를 그 만큼 사랑하진 않았던것 같으니까..
역시 받는 만큼 주는 것은 힘들다...이기적인 어린 내 나이. 그 때!!
아흔 개의 봄.
고작 서른 여섯 개의 봄을 맞이하는 내가 그 안을 들여다 보는 맛이 솔찬이 좋았던 책읽기.
그 속에서 여러개의 봄을 보다.
- 접기
카라 2011-03-24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어머니에서 아들로 이어질 봄을 기다리다
어머니에서 아들로 이어질 봄을 기다리다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이 사람들의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둘 사이 떨어진 거리는 그 사람과의 친밀도를 나타내며 일정한 시간동안 유지되거나 가깝게 또는 멀어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정도가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심리적 거리가 더 크게 작용된다. 또한 이 거리는 자신이 설정해 둔 거리 이상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때 부담이나 불편 때론 이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거리를 인정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이 일정한 거리가 무시되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가 부부사이, 가족이다. 사람들이 현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는 자의적일지도 모르지만 가족 그것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맺어지는 관계다. 이 일정한 거리가 무시되거나 인정되지 않아서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에는 답이 없다. 그렇기에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마음이 짐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관계는 언제나 어느 때고 아주 간단한 이유로 멀어졌던 거리가 무너지며 모든 것을 가슴으로 안아 풀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흔 개의 봄’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바로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흔 나이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에는 그 가족사의 모든 것이 담긴 듯하다. 굴곡이 많은 우리 현대사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안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 중혼, 먼저 떠나 지아비를 가슴에 묻고 아들 삼형제를 키워온 어머니, 삼형제 사이 막내로 자라면서 어머니와 너무 먼 거리를 유지했던 아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는 파주, 일산 등 병원과 요양원을 옮겨 다니게 된다. 물론 이는 자식들과 가족들의 편의에 의해서기도 하지만 결국 그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흔 개의 봄’은 너무 먼 거리를 유지했던 아들이 어머니의 병원 간호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병 중 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시작된 글쓰기였다. 하루 이틀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된 이 글쓰기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벽과 먼 거리를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둘 사이 마음에 쌓인 앙금이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담겨 있다. 어머니에 대한 불편했던 심사, 형들 사이 무엇인지 모를 이상기류, 너는 너무 멀리 있었다고 고백하는 어머니, 간병인과 어머니 사이의 일상,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며느리, 그리고 마음 따스한 어머니의 벗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 담겨있다. 무엇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그 너무 멀리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저 아들의 도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작된 병간호가 자신이 어머니를 생각했던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그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삶은 그 말대로 굵은 획을 그으며 살아온 것일지 모른다. 그 삶에서 아들과의 거리는 아들이 어머니가 스스로 만들었거나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져 온 것이리라. 이렇게 형성된 벽과 거리는 이제 서로가 인정하며 지나온 시간을 회고하며 새롭게 정립한다. 그것이 간병하던 3년이 이 두 사람과 가족에게 어쩜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는 거리가 무시되기 일쑤인 가족관계도 일정한 거리를 필요하다. 그 거리를 인정할 때 보다 넓고 깊은 정이 쌓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아흔 개의 봄은 아들의 봄으로 이어져 또 다른 봄을 맞이할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듯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 접기
무진無盡 2011-01-31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아흔 개의 봄
학자의 시병일기는 어떻게 다를까. 병중에 계신분도 국어학자고, 그 자식도 학자이니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고통도 감내하고 오가는 위로의 말도 시적일까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면 거짓말이고 몇해전 엄마를 간병하던게 떠올라 좀 더 담담하게 무엇보다 많이 배운 학자라기 보다는 모친과의 갈등을 병간호를 통해 풀어냈다고 해서 더 궁금해졌다. 나이들수록 엃힌 타래를 풀기는 철없을 적보다 수천배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흔 개의 봄은 김기협의 모친, 국어학자 이남덕님의 연세를 뜻한다. 그분이 맞이하신 봄이 아흔번이나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분을 통속적인 시선으로만 평가할 수가 없다. 저자인 아들이 젊은 시절 그분의 연애관과 결혼관이 이해되지 못해 그분을 미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선'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아내가 있는 남성과의 연애는 속된말로 불륜이다. 도덕적으로나 한때는 법적으로도 위법인것이다. 학자인 저자에게는 아마 보통인 우리네보다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중적이다 란 표현이 그시절 그에게는 그 어떤 표현보다 적절했고 그만큼 엄마인 이남덕님에게는 상처가 되었을거다. 세상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고 결혼했지만 피난시절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낸 이남덕님은 이후 세아들과 딸아이를 기르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깊은 곳으로 숨겨두게 된다. 뿐만아니라 남편을 닮고, 자신을 닮은 첫째와 둘째를 더 어여삐여기는 것 같아 남은 딸과 아들은 더더욱 엄마품이 그립고 그 그리움이 미움이 된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 아들의 존재를 애뜻하게 여기고 당신의 입에서 셋째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는 말을 얻어내기 까지 저자 김기협의 간병은 그토록 진정성을 가진거라고 본다.
시병일기이면서 동시에 아흔 개의 봄은 부모 혹은 가족간의 갈등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형에게 적은 메일내용, 또 그 형이 동생에게 감춤없이 털어놓은 속내가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애초에 이 글들이 책을 펴내기 위함이 아닌 자신과 지인들,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성을 갖춘 블로그에 올려졌기 때문이었을것이다. 뒷장에 추천사에도 적힌것처럼 내어머니의 고고한 모습을 담지않은 것도 이색적이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아래 살아오신 그러면서도 학자로서 끊임없이 존경을 받는 이중적인 모습은 아에 없이 그저 아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종교에 귀의하여 '아이'가 되어버린 노모의 모습은 잠자코 떠올려보니 늘 곁에 계셔주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한 권의 책이 당장의 부모와의 갈등을 풀어주고 힘겨운 병간호의 날들이 일 순간 가벼워지는데 도움을 주진 못할 것이다. 다만 생각을 달리 해볼 수도 있고 그 옛날 나의 부모가 그러했듯 밥한 숟가락을 떠먹여드리는 일조차 내가 먼저가 아닌 우리의 부모가 내게 먼저 해주었던 사실들을 떠올릴 수 있는 그로인해 몸은 몰라도 마음만큼은 다소 가벼워지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 접기
에디터D 2011-02-05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아흔 개의 봄(2011.1.20. 서해문집)》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표지 속 노인의 빛나는 미소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책을 열면서 어머니가 쓰러지신 후 모시는 것을 보며 주변에서 자신을 효자라고 여기는 데에 어색함을 표현하면서,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 자신과의 관계가 어떠했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시병일기를 쓰면서 어머니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아흔 개의 봄》을 읽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저자의 감정이 변하는 과정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2004년 늦은 가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관계가 저자의 이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1년하고도 몇 개월 전 즈음 손바닥에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90세가 넘은 고령 탓인지 외할머니는 손바닥 상처 때문에 기억력조차 흐려지셨는데 갑자기 약해지신 모습을 뵈니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노심초사,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은 가족에게 뿐만 아니라 친지들에게도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그동안 외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썩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할머니를 사랑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였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외할머니와의 화해를 이렇게 준비해 두셨구나, 라고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의 외할머니 사랑은 시작되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더니 내게로 외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돌아오더라. 왜 더 일찍 이 사랑을 시작하지 못했나,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외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던 1년 남짓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아흔 개의 봄》은 2008년 11월 24일부터 2010년 11월 22일까지 2년 간 어머니를 돌보면서 쓴 시병일기를 엮은 책이다. 시병일기에는 어머니의 상태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어머니와 저자의 불편했던 과거 시절도 기록되어 있다. 앞으로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면서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과 스물세 살에 만나 서른두 살에 사별하셨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연에 관한 애틋함도 글 곳곳에 담겨 있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모두 어린애가 된다더니 저자의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넘겨야 할 책장보다 넘긴 책장이 많아질수록 어머니와 아들의 친밀도가 깊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푸근했다.
저자는 시병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예상외의 회복 기미를 보이시는 데 고무되어 미국의 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어머니 모습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병일기의 수혜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자 자신일 것이다. 시병일기를 쓰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깨우칠 수 있었으며 어머니와의 관계도 더없이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나는 저자의 어머니이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남덕 선생은 알지 못하지만, 시병일기를 읽으면서 선생의 회복이 진심으로 기뻤으며 저자가 어머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책을 읽는 중에 외할머니가 자꾸만 떠올라 눈시울을 붉혀야했던 것만 빼면 말이다.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때 나도 매일 뽀뽀 해 드렸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 접기
이쁜처키 2011-02-09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김기협 - 아흔개의 봄
인간의 관계가 점점 계산적이고, 속물적이 되어가고 형제나 자매, 부모자식간에도 하나하나따져가면서 살아가는 아니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요즈음의 나와 주변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 한모금 머금을 수 있는 아흔번의 봄을 맞이한 어머니!
나의 입장에서 비추어 볼때도 혹시나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책의 도입부에서는 심각하게 포개어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아흔 노모의 상황이 점차 희망적이고, 나아지고 있다는 기쁨도 같이 느낄수 있었고, 역사학자로서의 아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들이 꼼꼼하게 나열되어 있고, 감정의 흐름도 순간순간의 생각들과 잘 버무려져서 처음은 투박하고 냄새가 썩 유쾌하지 않지만 청국장같은 것을 대하는 태도와 그에 맛들어 버린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줄 수 있는 정도의 배려가 너무나도 좋았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매 하나의 봄이 정말 잔잔한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들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하였을까!
봄을 맞이하기위해 홀로 지내오신 아니 여러개의 자식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눈밭을 미친 듯이 걸어오신 겨울후에 오는 잠시나마의 쉼표한자락 정도 이상은 아니었으리라.
역시나 그렇듯 부모없는 자식은 존재하지 않는가 보다.
책에서 보여주었듯이 자식들은 부모를 징검다리로 엮이지 않을 수 없는 바늘과 실 같다.
자식들이 나이들어 이제는 더 이상 참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인간기본의 예의범절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발휘되고, 그 것을 참지 않음이 더 자연스러운 노년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럽다.
아직 내 어머니는 아흔개의 봄을 기억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더 잘해드릴수 있는 길... 아들노릇 할 길이 참 많았었던 것 같은 후회만을 하지고 항상 살아간다. 이 순간도 조만간 후회가 될 걸 알면서 과거의 어느 어느 시점들에 대해서만 늘 반성하고 자책한다.
내어머니와 오버랩 되는 참 많은 부분들에서 가슴을 조금씩 찢어주는 센스를 발위하신 역사학사 김기협님의 배려에도 고개를 조아려 본다.
‘어디에 피어나도 꽃은 아름답다’ 는 본문의 작은 명언처럼 개별적인 어머니 혹은 어머니와 자식간의 관계는 설탕이 달고, 겨울이 추우며, 바다가 짜고, 높은 산에 공기가 희박한 것과 같이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지구가 열댓번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 접기
죽기살기 2011-02-02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어머니와 아들
아흔 살 어머니를 간병하는 예순 아들의 2년간의 기록이다.
인자하게 미소 짓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니 저절로 나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똑같이 할머니 소리를 듣지만 아직은 아줌마로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리는 나의 어머니도 언젠가는 아흔 살이 되시겠지.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책표지에 실린 할머니의 미소 때문이다. 할머니의 셋째 아들(이 책의 저자 김기협님)이 놀라워하는 이남덕 여사님의 매력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절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시면서 셋째 아들의 간병이 시작된다. 어른들 말씀에 가장 못난 자식, 속 썩이던 자식이 나중에 효도한다고, 본인 생각에 불효자였던 셋째 아들이 어머니가 아프시니 하루아침에 든든한 보호자 노릇을 하며 시병일기를 쓴 것이다. 원래는 미국에 사는 큰형에게 위중했던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되는 상황을 알리려고 쓴 글을 메일로도 보내고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것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책을 통해 공개한다는 게 본인에게는 굉장히 쑥스러운 일이겠으나 독자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본인은 극구 자신은 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지나친 겸손이다. 물론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는 효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년간 어머니에게 쏟은 정성을 보면 그 마음이 효심 그 자체란 걸 알 수 있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거의 일방적일 때가 많다. 주로 어머니가 주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는 것이 자식이고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곁에 계실 거라고 착각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자식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2년간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다고 해서 어머니가 주신 사랑과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요즘 세상에 매일 병문안을 가고 그 내용을 기록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실 적에는 소원했던 모자 관계가 간병을 하는 동안 점차 친밀해진 것을 보면 효도란 부모님과 자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의지했던 든든한 맏아들은 미국에 살다보니 사치품이요, 모든 면에서 어머니가 사랑했던 둘째 아들은 자주 볼 수 없어서 기호품이요, 늘 마음이 맞지 않아 겉돌던 셋째 아들은 어느새 필수품이 된 것도 2년간 간병하며 얻은 보람이다. 그러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 연락도 뜸한 자식들(나를 포함하여) 입장에서는 반성할 일이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는 덜하지만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시면 얼마나 외롭고 서글프시겠는가. 그냥 몸만 아프셔도 마음이 아픈데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경우는 가족들도 고통스럽다. 처음 쓰러지셨을 때 병원 의료진이 보여준 태도와 치료에 흥분하고 분노했던 내용을 단 몇 줄로 간추린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느껴진다. 다행히 그 뒤에 요양병원, 요양원에서는 좋은 의료진과 간병인을 만나 점차 호전되신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이 매일 문병을 오니 더욱 극진한 대접을 받으셨고 그 덕분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남덕 여사님만의 매력이 주변 사람들을 팬으로 만든 것 같다. 호탕한 기질과 재미난 입담이 더해져서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신 것 같다. 오랜 세월 쌓아온 인맥과 입원 생활을 하며 새롭게 형성된 인간관계까지 능숙하게 관리하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한 분이다. 정말 의도하신 건지 아픈 중에 드러난 본능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사교적이고 유머감각이 넘치신다. 아들 입장에서도 어머니가 아프시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새로운 면을 발견한 셈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 모습을 사랑하게 된 아들의 심정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도 셋째 아들 입장에서는 다소 삐딱하게 받아들여서 오해와 갈등이 생긴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간혹 더 예뻐하는 손가락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느 손가락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부모의 마음은 열 손가락 전부를 소중하게 품는다. 철이 든다는 건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나 역시 셋째라서 늘 뭔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내 자신이 세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은 한결 같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식의 입장이 제각각인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여럿이면 각각의 몫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떤 몫을 할까? 사치품, 기호품, 필수품 중에서 단연 필수품이고 싶다. 태어난 순서는 셋째지만 부모님에 대한 사랑만큼은 첫째가 되고 싶다.
- 접기
오즐 2011-02-09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아흔개의 봄을 읽고
『아흔개의 봄』을 읽고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환경이나 금전, 건강 등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아마도 이런 어려움이나 각종 고민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그 만큼 천차만별의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조건 중에서도 역시 건강한 삶이 최고인 것 같다. 몸의 아픔 같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동안 장수한다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나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힘이 드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내 자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바로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사업을 하신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다니면서 결국 서울 쪽에 술집을 하시는 새어머니라는 사람을 거느리게 되면서 많은 시골의 돈을 갖다 바쳤으나 결국 얻은 것은 술을 많이 드신 관계로 위암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돈이 없고 건강까지 좋지 못하니 좋아할 리가 없고 결국 시골로 내려와서 여태까지 고생만 하신 어머님께 의지하는 모습이 싫어서 아버님을 자주 뵈러 가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부모님이시고, 아버님이신데 자식으로서 너무 했다는 생각도 갖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님은 많은 고통을 당하시다가 운명을 하셨고, 이어서 어머님마저 대장암으로 어려움을 당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벌썬 두 분께서 돌아가신 지가 십 여 년이 넘었다. 그러나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바로 이런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었고, 한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정성의 간병 기를 통해서 사랑과 정을 흠뻑 터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예전에 시골에 갈 때마다 부모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사랑과 정성스러움, 항상 아기를 대하듯 일일이 챙겨주시는 그 모습에 우리 자식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을 읽을 수 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어머니에 대한 시병일기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어머니와의 지나 시간 어색하고 서먹한 관계를 청산해 나가는 과정과 화해와 용서로써 이를 극복하고 모자간의 새로운 관계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아름답기만 하다. 저명한 학자이신 어머니와 역사학자인 저자간의 관계 기록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어 나름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어머니와 아들 간에 이루어지는 진솔한 대화의 기록들은 정말 이 지구상에 가장 의미 있는 언어로 남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함이 물씬 다가왔다.
- 접기
노박사 2011-02-02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아흔개의 봄
"어머니, 경하드리옵니다. 오늘로 어머니께서 아흔 살이 되셨습니다."
어머님과의 화해와 사랑이 이 글을 쓰게 했다. 어머님에 대한 아픔을 오랫동안 담고 지냈던 저자에게 어머니에 대한 수발은 어색했다. 어머님에 대한 편견과 아픔을 그는 삶속에서 고스란히 담고 살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어머님에게 대한 아픔은 자신의 아픔이며, 어머니로 통해 이 땅에 태어났음을 원망할 수 있다. 어머니 그러면 그리움의 대상이요. 영원한 안식처요. 기다려지는 고향이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머니이 품이 그립다. 어머니의 따뜻함이 그립다. 어머니는 영원한 우리의 고향이다. 저자는 어머니를 모셔 수발을 통해 그동안 가졌던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를 이 책에 가득담고 있었다. 일명 "병상일기"이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시병일기"를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치유되었다. 그는 시병일기를 통해 모든 관계가 새로워졌다. 그는 지금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이 책에 가득채웠다. 그의 마음은 어머니로 가득찼다. "지금 어머니를 몹시 좋아하고 아낀다"고 한다. 아흔의 나이가 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좋아하고 아낀다고 한다. 원망과 아픔, 고통이 사라졌다. 어머님과의 화해로 인해 그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시병일기속에 어머니-그는 어머님에 빠져있었다. 어머님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일상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담아가면서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좋았다. 어머니 아흔이 되었어요. 그러니 머해 줄래? 징그럽다 등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웃음을 입가에 드리운 모습을 이 책에 담았다. 금강경, 반야심경 등을 외울 정도의 학식과 품위가 있는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가냘픈 한 노파이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야 하는 마음이 전달된다. 나도 엄마가 있어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저자는 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엄마야를 외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그의 마음이 이곳에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어머님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시야가 열렸다. 어머님이라는 프리즘으로 세상, 형제, 가족, 모두는 모습을 보면서 일어나는 심리적, 정신적인 변화 등을 담고 있기에 우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지만 많은 생각과 뉘우침을 갖게 했다. 삶속에 진정한 고향을 찾은 저자처럼 우리의 고향은 어머니이심을 더욱 알게한 책이다.
- 접기
행복한미소 2011-02-02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아들이 받아 쓴 어머니의 인생강의
지난해 여름, 시어머니께서 갑작스런 마비 증세를 보이셨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해보니 뇌졸중이라는 진단이 나왔는데요. 빨리 조치를 취한 덕분에 심한 후유증은 남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그런 시기인가요.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지인들에게서 슬픈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습니다. 어른이 돌아가시고 중풍으로 쓰러지고 지병으로 고생하신다는 얘길 자주 듣습니다. 그래선지 언제부턴가는 만나면 자연스레 이런 얘기부터 나옵니다. “요즘은 어떠셔?” “평안하신가?” “차도는 있고?” 어르신들의 연세가 연세인지라 자리보전하다가 하루아침에 쾌차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잘 알지요. 하지만 밤새 안녕이라고 그간의 안부를 건네게 되더군요. 어찌보면 그게 또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간의 예의이기도 합니다만...
노인의 미소가 눈길을 끈 책이었습니다. <아흔개의 봄>은. 사실 그동안 전 주름진 얼굴에선 쇠잔함과 처연함, 깊은 회한이 배어나온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아무런 장신구도 없는, 그것도 흑백으로 된 사진이지만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참 말갛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더군요. 어떤 사연일까.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란 부제를 보니 누군가의 간병일기 같은데 이 분은 어떤 병을 앓고 계실까...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2008년 11월 26일부터 2010년 11월 22일까지 2년간의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늦게 절 살림에 드셨던 저자의 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고 맙니다. 크게 위급한 병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무엇보다 기억력 감퇴가 큰 문제였다는군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어머니를 걱정하고 소식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노모의 근황을 알려주고자 글을 쓰게 됩니다. 이것이 이 책의 출발이었습니다.
하지만 뭐든 글로 쓰기 위해선 그 대상에 대해 단편적인 것만 알아선 불가능하지요. 대상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매순간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저자에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글의 성격이 소설이든 논문이든 보고서든 다른 무엇이든 말입니다.
저자에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말썽쟁이, 사고도 제일 많이 친 그야말로 불효자였던 저자가 병든 노모의 간병일기를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저자와 노모의 관계는 달라졌습니다. 아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워했던 저자는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노모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미움을 조금씩 덜어내고 그 자리를 사랑으로 메워가면서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게 됩니다.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라 여겼던 노모가 알고보니 누구보다 낙천적이고 밝은 사람이란 걸 말이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는 서서히 자신의 마음속 벽을 허물어냅니다. 무심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예전의 저자가 아니었습니다. 아흔 번의 봄을 맞이한 노모의 “뭐 해줄 거야?”는 말에 선뜻 “업어드릴게요.”라고 대답하고 ‘똥배’를 ‘효자배’라며 능청을 떨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노모의 이마에 뽀뽀를 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역사학자였던 아버지와 국어학자이자 대학교수였던 어머니를 둔, 역사학자인 저자의 글. 그것도 전문서적이 아닌 어머니의 간병기라고 하니 왠지 귀가 솔깃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학자집안, 이들의 일상은 얼마나 특별할까, 나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요. 저자가 성장할 당시의 상황, 시대적인 아픔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부당함에 상처받고 아파했으며 가족,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갈등하는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합니다. 자신의 ‘엄마 찾기’는 화해의 과정이었다고. 노모와의 화해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고. 뒤늦게 꽃이 핀 저자의 노모에 대한 사랑과 화해를 보면서 어머니와 아들,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적은 글은 어머니의 ‘인생강의’를 받아쓴 노트인 셈이다. 이제 노트 필기는 접어놓고, 어머니 얼굴만 기분 좋게 쳐다보며 지내겠다. 언젠가 다음 노트 필기를 시작하게 되겠지만, 서두르지 않겠다. - 408쪽.
- 접기
몽당연필 2011-02-06 공감(0) 댓글(0)
마이페이퍼
전체 (6)
어쩐지 전쟁 일기를 간행한 국어학자...





도대체 뭘 검색하다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간 지난 주에 우연히 국어학자 강신항 교수의 타계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어학보다 문학에 관심 많은 나귀님이다 보니 고인의 저서는 사실상 갖고 있지 않아야 맞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너덧 권쯤 갖고 있다. 다만 학술서는 옛날 역학(譯學)에 대한 것뿐이고, 나머지 몇 권은 에세이와 일기일 뿐이다.
지난번에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이야기를 하면서 강신항의 가족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그 부인 정양완 교수가 바로 그 책을 최초로 국역했었기 때문이다. 부부 모두가 학자이고 자녀 중에도 학자가 나왔으며, 특히 정양완의 부친이 위당 정인보이니 바야흐로 대학자의 가문이라 할 법한데, 아들인 수학자 강석진의 성추문으로 먹칠을 당하고 말았다.
"강신항, 정양완의 가정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숲마을에서 배밭골까지>(2000)라는 문집의 서문을 보니, 무려 1973년부터 부부 공동 문집을 간행하기 시작해서 무려 다섯 권을 간행했다고 나온다. 2000년에 나온 책에서는 부부의 글뿐만 아니라 아예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가 쓴 글까지 한데 모아서 가족 문집을 만들어 놓았다.(강석진의 글도 있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었는데, 저자나 그 가족에 대한 내용보다는 에세이 속에 언급된 여러 인물들에 대한 회고가 흥미로워 보여 구입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스승인 이희승, 이숭녕, 남광우, 이병기, 정병욱 등 국어국문학계의 거물들에 대한 일화뿐만 아니라, <역사 앞에서>의 저자인 김성칠에 대한 회고와 추모의 글도 수록되어서 흥미로웠다.
김성칠의 아들 김기협이 쓴 <아흔 개의 봄>이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김성칠의 부인인 이남덕이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도 남편의 옛 제자가 문병을 오자 한눈에 알아보더라는 흥미로운 일화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강신항이, 네가 어쩐 일이냐!"라며 이름까지 들먹인 사모님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묘사되었던 그 제자가 바로 강신항이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김성칠은 육이오 중에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피살되었는데, 전쟁과는 무관히 어느 정신이상자의 범행에 당한 것이라 하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 앞에서>는 김성칠이 광복 직후부터 사망 직전까지 작성한 수년간의 일기를 부인 이남덕과 아들 김기협이 정리해 간행한 것인데, 제자 강신항도 발문 가운데 하나를 작성했던 것으로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강신항도 육이오 즈음 작성한 일기를 <어느 국어학도의 젊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던 저자도 징집 대상이었지만, 마침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던 스승 김성칠의 배려로 연구 보조원이 되어 후방에서 근무했다 전한다. 물론 일기를 보면 매일같이 장교들의 폭언과 멸시 속에 꽤나 힘들게 지냈다지만.
날짜 순서가 아니라 일단 소년 시절, 학창 시절, 대학 시절, 군대 시절, 연애(?) 시절 등 큰 주제에 따라 분류하고 나서 다시 날짜 순서로 배열했기 때문에 순서가 오락가락한 감은 있고, 20대 초의 청년 시절이기 때문에 견문이나 정보가 폭넓지는 못하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저 어두운 시기의 한국 사회의 한 부분을 조명한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강신항보다 5년 연하인 유종호도 육이오 당시 미군 부대에서 사환으로 일했던 경험을 <그 겨울 그리고 가을>이라는 회고록에서 서술한 바 있었다. 나귀님은 어린 시절 받은 반공 교육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성인이 되어서는 육이오 관련 서적을 의도적으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극한 상황 속에서 벌어졌던 놀라운 이야기가 많아서 신기했다.
예를 들어 지금 세대는 영화 <기생충>의 '한 지붕 세 가족'(?) 설정을 기발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포탄이 날아다니고 시체가 널렸던 시절의 현실은 상상을 거뜬히 능가한다. 나영균의 회고에 따르면 육이오 당시에 갑자기 인민군이 집을 몰수하는 바람에, 천장 위에 숨어 살던 남편이 내려오지 못한 채 일주일 넘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버텨야 했다니까.
그러고 보니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6.25 일지>라는 책도 있었으니, 다시 꺼내서 나란히 놓고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그 저자 박찬웅의 부친이 국문학자라서 <훈민정음>을 소장하다 최남선에게 넘겼다는 기록이 있던데, 마침 강신항도 <훈민정음> 연구로 유명하니 흥미로운 우연의 일치인 셈이다. 그나저나 그 책을 도대체 어디 두었는지...





- 접기
나귀님 2025-03-04 공감 (8)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봄앓이
유난히 한파가 심했던 지난겨울!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이면
내겐 어김없이 봄앓이가 찾아온다.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고 천지사방 자연의 용트림을 알리는 4~5월경이 그때다.
올해는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 탓인지 그 조짐이 수상하다.
연초에 조직개편에 따라 신설부서로 옮기느라 분주했다.
적응돼가고 있는 데 봄앓이가 오려나보다.
분주함속에 책을 읽지 않은지도 꽤 됐다.
세권을 동시에 읽고 있었고 두권은 마무리한 후 한권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
다시 두권을 시작해야 하는 그때부터 멈췄다.
봄앓이는 무기력이다.
내겐 우울증과도 같은 앓이인데......
모두가 봄맞이에 들떠 있을테지만 내겐 이래저래 슬픈 봄이 되려나 보다.
~꼬랭이~
이웃나라 일본이 쓰나미, 지진, 원전폭발에 따른 방사능 노출 등으로 총체적 위기다.
영화(일본침몰)로만 보던 쓰나미의 현실이 일본인들을 삼켜버렸다.
과거 미운 일본이었지만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일본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일본인이여!
힘내세요(がんばってください!)
- 접기
전호인 2011-03-16 공감 (8) 댓글 (4)
Thanks to
공감
찜하기
우연한 발견- 김성칠 <역사 앞에서>와 김기협
어쩌다 보니 [<역사 앞에서>를 이대 도서관으로? "그래, 잘했다."]라는 제목의 포스팅 앞에 도달했다. 포스팅 속 사진에는 '1950년'이 세로쓰기 한자로 씌어있는 책 표지와, 세로쓰기 원고지 쏙에 수기로 쓴 글씨들이 빼곡했다. 어떤 우연인지 모르지만, 내가 모르고 살아온 무언가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아버지 일기 원본을 어머니께 가져갔다. 실질적으로 결정은 내가 이미 내려놓았지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36년간 지키셨던 아버지 육필을 어머니가 손수 떠나보내시게 하고 싶었다.
- 위 링크.
위 문장으로 시작하는 포스팅을 찬찬히 읽어보니, 해방기 역사학자 김성칠(당시 서울대 교수)의 수기 <역사 앞에서>(1945년 12월부터 1951년 3~4월까지)의 원본이었다. 그리고 블로그는 그의 아들인 김기협 전 계명대 교수가 운영하는 곳 '페리스코프'(잠망경). 첫만남 포스팅은 김기협 교수가 그의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담은 '어머니' 카테고리의 한 글이었다. (이 카테고리가 <아흔 개의 봄>으로 묶여 출간된 듯하다.)
일제시대 <윤치호 일기>를 보며 일기의 사료적, 텍스트적 가치를 깨달았기에 <역사 앞에서>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재야 역사학자로서 꾸준하고도 돋보이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두 사람의 책을 구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일단 서재에 그들의 책을 모아둔다. <역사 앞에서>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니,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워진다. 얼른 만나러 가야지. :)
김기협은 번역서가 상당히 많다.
번역서들도 상당히 좋은 책들이 많지만 제외하고 저서만을 모아 둔다.
- 접기
toon_er 2012-11-14 공감 (5)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김성칠, 이남덕, 김기협 먼저 김성칠의 [역사 앞에...
김성칠, 이남덕, 김기협
먼저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1993/창작과비평사)를 읽었다. 부제가 ‘한 사학자의 6•25일기‘ 다. 1950년 6월 25일 부터 12월 31일 까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다. 이부분 앞뒤로 다른 해 일기들이 조금씩 붙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남짓된 일기인데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우리말이나 한자어가 제법 나온다. 그런걸 찾아 보며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인터넷 사전에서 예문으로 소개하는 글들 중 박완서 선생의 작품이 종종 있어 아 선생은 정말 당시 어휘와 입말을 잘 정리해 놓았구나 하는 경탄을 또다시 하게 된다.
일기는 긴박한 당시 상황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어 전쟁에 대한 기록으로써 가치가 상당하다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글쓴이는 당시 서울에 남아서 직장(서울대학교)에 나가고 여러 인물과 교류도 하고 그밖에 라디오를 통해서 전쟁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사실 전달과 자신의 생각을 일기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남북 어느 한쪽에 쏠리는게 아니라 가급적 객관적자세로 비판과 칭찬을 가감없이 해내고 있다. 하지만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에 이르러 눈물짓곤 하는 글쓴이의 애틋함이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되는 감흥이 컸다.
책 뒤쪽에 김성칠의 부인인 이남덕의 회고글이 붙어 있는데 이 분 글이 맛깔나면서 매우 독특하게 느껴져서 몇가지 살펴보니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는 것. 그러다 아들인 역사학자 김기협의 어머니 간병기를 먼저 접했다. 그것이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2011)이다. 나이 들어 쇠약해진 어머니를 병간호한 약 2년 동안을 일기형식으로 써 책으로 낸것이다. 본인 가족사에 대한 깊은 생각들이 가감없이 전달되는 것 같아 주의 깊게 읽었다.
김기협의 책은 [밖에서 본 한국사]와 [해방일기]를 조금 본 정도 이다. 이력과 학문하는 자세, 글이 독특하다고 느낀 정도였다. [해방일기]는 너무 지루하여 읽다 만 기억이 난다. 얼마전까만 해도 중앙일보에 ‘퇴각일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걸로 나오고 블로그에는 아직도 많을 글을 올리고 있다.
비극적인 가족사가 일기라는 내밀한 형태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지만 이렇게 형성되는게 결국 역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가족사가 남긴 자취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남덕 본인도 남긴 저서가 있는데 그중 수필 두 권은 기회가 닿는대로 구입해 보아도 괜찮을성 싶다.



- 접기
쉽싸리 2018-12-08 공감 (4)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2월에 읽고 싶은 에세이
어느새 2월, 이번달에 눈에 띄는 에세이를 골라본다.
1. 이상은
가수 이상은을 좋아한다.
1월에 출간된 <런던 보이스>도 <삶은...여행>의 두번째 이야기라니 당연히 기대된다.
2.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요즘, 마음 따뜻한 에세이를 읽고 싶다.
3. 아흔개의 봄
<아흔개의 봄>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밖에서 본 한국사>, <뉴라이트 비판>, <김기협의 페리스코프>로 알려진 역사학자 김기협이 아흔의 치매 노모를 간병하며 쓴 일기를 엮었다. 역사학자 故김성칠 선생(부친)과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이남덕 선생(모친)의 셋째 아들 김기협은 2년여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며 세심한 관찰과 성찰로 인간과 삶에 대해 사유한다(알라딘)
4. 우리는 모두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산다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이자 딸인 내가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다. 내반쪽 남성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냈다니 더 궁금하다.
5. 낯선 땅에 홀리다
낯선 땅에 여행을 간다는 기대감과 흥분,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질 것 같다. 문인들은 어떤 시각으로 낯선 땅에 발을 딛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여행가고 싶어 병이 날 것 같다. 언제고 한번 다녀와야겠다.
- 접기
꿈꾸는섬 2011-02-10 공감 (2) 댓글 (10)
Thanks to
공감
찜하기
==============================================
김기협의 <아흔 개의 봄>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아흔 개의 봄> 요약 및 평론
서론: 역사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삶의 기록
김기협의 <아흔 개의 봄>은 저자의 어머니이자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통과한 한 개인의 삶을 다룬 전기적 기록이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아흔 해에 걸친 생애를 통해 구한말의 황혼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격동의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거창한 역사서가 놓치기 쉬운 거시적 사건 뒤의 미시적 삶과 일상의 정서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점이 특징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기억과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가문의 역사이자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세밀하게 담아냈다.
핵심 내용 요약
1. 유년기와 시대적 배경
주인공은 조선의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변화가 충돌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유년기는 유교적 질서가 강하게 남아있던 집안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나, 동시에 신학문과 근대적 문물이 들어오던 이행기였다. 전통적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제약과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단단한 내면의 의지가 서술된다.
2. 수난의 시대: 일제강점기와 전쟁
청년기와 중년기는 민족적 수난과 궤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 말기의 수탈과 압제 속에서 가정을 지켜내야 했고, 이어진 8·15 해방과 6·25 전쟁은 일상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 폭력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인간성과 모성애는 생애 가장 강력한 서사를 이룬다.
3. 전후 재건과 삶의 성숙
전쟁 이후의 삶은 파괴된 일상을 복구하고 자녀들을 교육하는 고단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격변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가정을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내며, 쇠락과 부흥을 거듭하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노년에 이르러 아흔 번의 봄을 돌아보는 시점에서는 지나온 고난에 대한 담담한 회고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드러난다.
작품 평론
미시사와 거시사의 성공적 결합
<아흔 개의 봄>이 갖는 가장 큰 문학적·사학적 의의는 거시 역사와 미시 역사의 유기적 결합에 있다. 교과서 속 역사적 사건들이 한 개인의 일상과 감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전쟁이나 정변 같은 거대 담론에 묻히기 쉬운 '보통 사람'의 생존 방식과 생활사를 일깨워 준다.
문체와 서사 구조의 절제미
저자 김기협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절제된 문체로 어머니의 삶을 기록한다. 신파조의 감정 과잉이나 과도한 영웅화를 배제하고, 사실에 기반한 건조한 듯 따뜻한 시선을 유지한다. 이러한 담담함은 오히려 서사의 비극성과 인물의 의지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여성사와 삶의 내공에 대한 재조명
이 책은 단순한 효도성 전기가 아니라, 근대 한국 여성이 보여준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헌사다. 역사적 주체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어떻게 시련을 견뎌내고 공동체를 유지해 왔는지 잘 보여준다. 아흔 번의 계절을 거치며 쌓여온 삶의 궤적은 독자로 하여금 개인의 존엄성과 역사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결론
<아흔 개의 봄>은 한 여인의 아흔 해 생애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다정하면서도 날카롭게 반추한 뛰어난 수작이다. 거창한 수식어 없이 한 인간의 진솔한 기록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시대의 고난을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정중한 헌사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뿌리와 숭고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 요약 및 평론
서론: 노년의 길목에서 피워낸 고결한 삶의 고백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1999)는 국어학자이자 수필가인 이남덕 교수가 여든이라는 미수(米壽)의 고개를 바라보며 펴낸 자전적 수필집이다. 평생을 국어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학자이자 여성으로서 지켜온 지적 탐구열과 삶에 대한 고결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연꽃'은 진흙 속에서 물들지 않고 맑게 피어나는 꽃처럼, 수난과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지켜온 고결한 삶의 자세를 상징한다.
핵심 내용 요약
1. 학문적 여정과 언어에 대한 집념
저자의 생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어학에 대한 헌신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빼앗겼던 어두운 시기를 겪으며 형성된 국어에 대한 애착은 평생의 연구 구동력이 되었다. 한국어의 어휘와 문법, 어원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사명감과 연결되어 있다. 평생을 바친 학문적 성찰과 언어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이 글 전반에 깊게 반영되어 있다.
2. 격동의 시대와 개인의 삶
책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그늘을 함께 담아낸다. 일제 말의 탄압, 해방 직후의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참상은 한 지식인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련을 원망이나 분노로 승화시키기보다, 견뎌냄과 담담한 수용의 자세로 바라본다. 시련 속에서도 가치 있는 삶을 일구어낸 경험들은 노년의 지혜로 승화되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3. 노년의 미학과 정결한 삶의 회고
여든이라는 나이에 도달한 저자는 죽음과 노화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완성 단계로 받아들인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대한 깊은 감상이 차분한 문체로 펼쳐진다. 욕망을 비워내고 맑고 정결한 마음으로 삶을 정리하는 노학자의 자세는 순결하고 고결한 아우라를 풍긴다.
작품 평론
국어학자의 혜안이 담긴 정갈하고 문학적인 문장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의 가장 큰 미학적 성취는 단연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 평생 우리말을 연구해 온 국어학자답게 저자의 문장은 헛된 군더더기가 없고 정갈하며 품격이 높다.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과 문장의 호흡이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어, 한국어 고유의 아름다움과 정서적 깊이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이는 현대 수필이 자칫 빠지기 쉬운 가벼운 감상주의를 뛰어넘는 문학적 무게감을 부여한다.
시련을 견뎌낸 여성 지식인의 강인한 내면
이 책은 구한말과 근대 이행기에 태어난 1세대 여성 학자의 삶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지성사적 의미를 지닌다. 여성이 학문의 길을 걷기 극도로 어려웠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학문적 성채를 구축한 저자의 여정은 조용한 강인함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연꽃의 형상을 취하고 있으나, 그 뿌리는 시련의 진흙탕을 굳건히 견뎌낸 강인한 지적 의지로 차 있다.
비움과 성찰을 통한 노년 수필의 지평 확장
현대 사회에서 노년은 흔히 상실과 퇴보의 시기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노년을 삶의 가치와 본질이 비로소 선명해지는 결실의 계절로 재정의한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을 맑게 바라보는 시선은 독자에게 존재론적 위안을 제공한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세속의 물욕과 명예욕을 넘어선 성찰의 경지를 보여준다.
결론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는 한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정직한 삶에 바친 한 지식인이 남긴 아름다운 삶의 궤적이다. 정갈한 문체와 깊은 통찰을 통해 근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삶이 어떻게 한 송이 고결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와 참된 지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삶의 지혜와 정서적 울림을 안겨주는 명작이다.
이남덕,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불광출판사, 1999) — 1,000단어 요약·평론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는 국어학자 이남덕(1920–2012)이 대학 교수로서의 삶을 마친 뒤 산중 수행과 불교적 성찰 속에서 노년의 삶을 바라본 수필집이다. 1999년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저자가 불교잡지 <불광> 등에 발표한 글들을 중심으로 묶은 책이다. 이남덕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오래 재직하다 1986년 정년퇴임한 뒤 도시생활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수행과 기도의 생활에 가까이 다가갔다. 특히 계룡산 대자암 시민선방에서 안거 수행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온라인에서 책의 본문이나 상세 목차가 충분히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래 내용은 공개된 서지정보와 이남덕의 생애, 같은 시기 그의 불교 수필 및 훗날 아들 김기협이 기록한 <아흔 개의 봄>을 함께 참고해 책의 중심 사상을 재구성한 요약·평론이다. 세부 에피소드의 장별 요약이라기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이남덕의 노년 종교세계>에 초점을 맞춘다.
1. 학문에서 수행으로
이남덕의 생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선명한 대조다.
전반생의 그는 철저한 학자였다. 이화여전을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해방 후 대학에서 국어학을 가르쳤다. 그의 대표적 학문적 업적은 <한국어 어원연구> 1~4권을 비롯한 국어사·문법·어원 연구다.
그런데 정년퇴임 이후 삶의 중심은 크게 달라진다.
말을 분석하던 사람이 침묵을 배우고, 책을 읽던 사람이 자연을 바라보며,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사람이 선방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변화가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의 기본 배경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남덕이 학문을 버리고 종교로 ‘전향’했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생 지식을 통해 탐색했던 세계를 노년에 이르러 <삶 자체를 통해 확인하려 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그의 불교는 교리적 불교라기보다 수행적 불교에 가깝다.
2. ‘여든 살’은 인생의 쇠퇴가 아니다
책 제목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다.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
보통 여든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끝자락을 의미한다.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고, 신체능력이 약해지며, 죽음을 생각할 시기다.
그런데 이남덕은 여든 살을 ‘지는 꽃’이 아니라 <새롭게 피어난 연꽃>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불교적 상징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따라서 연꽃은 흔히 인간이 고통과 번뇌 속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상징한다.
이남덕에게 여든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모든 일이 끝난 뒤 남은 잔여기간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의무, 경쟁, 명예, 학문적 성취 등에서 한 발 물러났기 때문에 비로소 다른 종류의 삶이 가능해지는 시기다.
<늙음은 상실인 동시에 해방>이라는 생각이 이 책 밑바닥에 흐른다.
3. 계룡산과 시민선방 — 재가자의 수행
이남덕의 노년 수행에서 특히 중요한 장소가 계룡산 대자암이다.
대자암 시민선방은 일반 재가자도 안거기간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상당히 본격적인 참선 수행을 하는 곳이었다. 2004년 보도에서도 이남덕은 정년퇴직 후 이 선방에서 계속 수행해 온 대표적인 재가 수행자로 소개되며, 그러한 경험을 두 권의 수필집으로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이남덕의 불교는 관광객으로 절을 방문하거나 불교 책을 읽고 감상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선방에 들어갔다.
앉아 있었다.
침묵했다.
자신을 관찰했다.
따라서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의 배후에는 ‘불교에 관한 생각’보다 <불교를 살아보려 한 경험>이 존재한다.
이것은 전문 불교학자가 쓴 불교론과 상당히 다르다.
그의 질문은 “불교의 공(空)이란 무엇인가?”보다 “내가 정말 집착을 놓을 수 있는가?”에 가깝다.
4. 노년은 ‘더 얻는 과정’이 아니라 ‘놓는 과정’
젊은 시절의 삶은 대체로 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학력을 얻고, 직업을 얻고, 가족을 만들고, 재산을 얻고, 명예를 쌓고, 지식을 축적한다.
그러나 이남덕의 노년 수필에서 중요한 방향은 반대다.
<버리기, 내려놓기, 단순해지기>다.
대학 교수라는 지위도 지나간다.
학자로서의 업적도 결국 자기 것이 아니다.
자녀도 자기 뜻대로 만들 수 없다.
건강도 붙잡아둘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몸과 생명까지 놓아야 한다.
이것은 불교의 무상(無常) 사상이지만 이남덕에게서는 추상적인 철학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늙어가는 몸과 일상의 경험을 통해 실감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그의 노년에는 묘한 가벼움이 생긴다.
‘내 것’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 줄어들수록 세상과 싸워야 할 이유도 줄어든다.
5. 자연은 수행의 스승이다
이남덕은 정년 후 서울을 떠나 자연 가까이에서 생활했다. 훗날 그의 생애를 소개한 자료들도 이를 “대자연과 벗하며 구도와 기원으로 정진”한 시기로 표현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자연은 단순한 전원생활의 배경이 아니다.
나무와 풀, 꽃, 햇빛, 바람, 계절의 변화는 불교적 무상과 생명의 순환을 직접 가르친다.
꽃은 피었다 진다.
잎은 돋았다 떨어진다.
겨울이 오지만 다시 봄이 온다.
인간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자연을 관찰하는 일과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하나로 연결된다.
자연에는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쁘다’는 판단이 없다. 봄만 존재하는 자연은 없다. 가을과 겨울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이남덕이 말하는 노년의 평안은 바로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자기 삶의 질서로 받아들이는 데서 생긴다.
6. 개인적 고통에서 종교적 성숙으로
그러나 이남덕의 평온한 노년만 보고 그의 삶 전체를 낭만적으로 이해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에게는 상당히 힘겨운 삶이 있었다.
남편 김성칠은 서울대학교 역사학 교수였으나 한국전쟁 중인 1951년 고향 영천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서른아홉 살에 사망했다. 이남덕은 이후 네 자녀를 키우며 교수와 연구자의 삶을 계속해야 했다. 김성칠이 남긴 전쟁일기는 수십 년 뒤 이남덕이 정리하여 <역사 앞에서>로 출간했다.
따라서 이남덕의 ‘내려놓음’을 처음부터 평온하게 살았던 사람의 종교적 여유로 읽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책임져야 했던 사람>이었다.
남편이 죽었다.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직업을 가져야 했다.
학자로 살아남아야 했다.
가족을 지켜야 했다.
그렇게 평생을 강하게 살아온 사람이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이제 놓아도 된다”고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에서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는 단순한 불교 수필보다 한 여성 지식인의 <후반생 자기변형 기록>으로 읽을 가치가 있다.
평론
1.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 — ‘늦은 깨달음’을 긍정한다
종교문학에는 젊어서 출가하여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이남덕은 다르다.
그에게는 교수, 어머니, 연구자라는 세속적 삶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을 거의 다 살아본 뒤 수행이 깊어진다.
따라서 그의 글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초월성보다 <세상을 실컷 살아본 사람의 내려놓음>이 있다.
나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차이라고 본다.
“왜 더 일찍 깨닫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여든에도 사람은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
는 것이 제목의 핵심이다.
2. <아흔 개의 봄>과 나란히 읽으면 훨씬 흥미롭다
앞서 살펴본 김기협의 <아흔 개의 봄>과 이 책은 약 10년의 시간차를 두고 묘한 대화를 이룬다.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에서는 <이남덕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아흔 개의 봄>에서는 <아들 김기협이 어머니 이남덕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모습은 완전히 같지 않다.
이남덕 자신이 보는 노년은 수행·자연·감사·놓음의 세계다.
반면 아들이 보는 어머니에게는 강한 성격, 가족과의 갈등, 상처, 치매, 의존, 화해가 함께 존재한다.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서술만으로도, 타인의 관찰만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두 권을 함께 읽으면 한 인간의 내면과 관계적 실재가 겹쳐진다.
3. 불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보다 ‘감사’
이남덕의 노년을 관통하는 종교적 정조를 하나만 고른다면 나는 ‘깨달음’보다 <감사>라고 보고 싶다.
훗날 인지기능이 크게 떨어진 뒤에도 김기협이 관찰한 이남덕에게는 햇빛, 바람, 꽃과 사람을 향한 감사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아흔 개의 봄>의 자료에서도 그녀의 말과 행동 속에서 이러한 태도가 중요한 특징으로 기록된다.
이것은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에서 시작된 노년의 영성이 단지 책 속의 관념에 그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문적 지식은 사라질 수 있다.
기억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는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수행의 결실이란 얼마나 많은 불교 지식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마지막에 세계를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합 평가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는 거창한 불교철학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평생 학문하고, 자녀를 키우고, 남편을 잃고, 직업생활을 하고, 늙어본 한 여성이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아야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가’를 찾아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남덕이 발견한 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자연을 보고, 앉아서 마음을 바라보고, 욕심을 덜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의 ‘연꽃 한 송이’는 이남덕 자신이다.
진흙이 없었다면 연꽃도 없었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 혼자 감당한 육아, 학문적 책임, 가족갈등, 노화라는 진흙을 통과했기 때문에 여든에 피어나는 꽃도 가능했다.
그리고 <아흔 개의 봄>까지 이어서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한 결론에 도달한다.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는 “나는 늙어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이남덕 자신이 쓴 책이고, <아흔 개의 봄>은 약 십 년 뒤 “그렇게 늙어간 어머니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아들 김기협이 쓴 책이다.
그래서 두 권을 합쳐 읽을 때 하나의 특별한 <모자(母子)의 영적 자서전>이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남덕의 불교적 ‘놓음’과 김기협의 ‘화해’가 결국 같은 지점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붙잡고 있던 과거와 자아를 조금씩 내려놓을 때 다른 사람과 세계가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는 노년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인생에는 너무 늦어서 시작할 수 없는 영적 성장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용하고도 상당히 힘 있는 증언으로 읽을 수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