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31

우에노 치즈코의 역사적인 도쿄대 입학식 연설(전문+영상) | 허프포스트코리아



우에노 치즈코의 역사적인 도쿄대 입학식 연설(전문+영상) | 허프포스트코리아

2019년 04월 16일 15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16일 17시 35분 KST

우에노 치즈코의 역사적인 도쿄대 입학식 연설(전문+영상)
대단한 연설이다

By 박세회


HUFFPOST KOREA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의 지난 12일 도쿄대학교 입학식 축사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 최고대학이라는 ‘도다이’(도쿄대) 연단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에노 치즈코라는 인물의 상징성은 연설 중계 화면에도 드러난다. 축사를 하는 우에노 씨의 뒤에 있는 교원들은 모두 중장년의 남성이다.

그는 도쿄대학의 연단에서 ‘사회는 공평하지 않다‘고 외쳤고, ‘도쿄대학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해당 연설 이후 일본 사회에는 파장이 일었다. 트위터 등에서는 ”도쿄대에서 저런 연설이라니 대단한다”, ”감동적인 명문”이라는 평이 있었다. 반대편에선 자신이 ”현역 동대생”이라며 ”우에노 치즈코의 연설을 쓰레기”라고 비판한 글 등이 널리 번지기도 했다.

이 연설이 명문인지 쓰레기인지는 읽어서 판단할 수 있다.


전문을 번역한 김현진 씨는 허프포스트에 ”일본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하며 번역했다”라며 ”부디 이 글을 읽고 ‘일본은 저렇지만 우린 안 그래’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라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헤이세이 31년 도쿄대학 학부 입학식 축사 전문]

입학 축하합니다. 여러분들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이곳에 왔습니다.

여학생이 놓인 현실

그 선발시험이 공정하다는 것에 여러분은 한치의 의심도 품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불공정하다면 여러분은 분노를 참을 수 없겠죠. 그러나 작년, 도쿄의과대(*TMU, 도쿄대와는 별도의 사립 대학) 부정입시 문제가 발각되어 여학생과 재수생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문부과학성이 전국 81개 의과대학, 의학부에 대하여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입학하기 어렵다는 사실, 여학생의 합격률 대비 남학생의 합격률이 1.2배 높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문제가 됐던 도쿄의과대는 1.29배, 가장 높은 곳은 준텐도대로 1.67이었으며 상위를 기록한 곳 중엔 쇼와대, 니혼대, 게이오대 등 사학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1.0보다 낮은, 즉 여학생이 들어가기 쉬운 대학에는 톳토리대, 시마네대, 도쿠시마대, 히로사키대 등 지방 국립 의학부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도쿄대학 이과 3학부(*생물학, 화학, 생리학 등을 중심으로 생명과학, 물질과학 등을 연구하는 학부)는 1.03으로 평균보다는 낮지만 1.0보다는 높습니다. 이 숫자는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요? 통계는 중요합니다, 이를 근거로 생각을 세우는 거니까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합격하기 어렵다는 것은 남자 수험생의 성적이 좋기 때문일까요? 전국 의학부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담당자가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남자가 우위에 있는 학부는 그 외에 별로 없었으며, 문과도 이공계도 여학생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의학부를 제외한 타 학부에서 남학생의 합격률 대비 여학생의 합격률이 1.0 이하라는 것, 의학부가 1.0을 넘는다는 사실에는 어떤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여러 데이터에서 여자 수험생의 편차치(*표준점수에서 환산된 값)가 남자 수험생의 편차치보다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우선 여학생은 재수를 피하려고 여유롭게 지망 대학을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도쿄대학 여성 입학생 비율은 장기적으로 볼 때 “2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18.1%로 전년도보다 밑도는 수치였습니다.

통계적으로 편차치의 정규분포에 남녀차이는 없으므로 남학생보다 더 우수한 여학생이 도쿄대 시험을 치르는 것이 됩니다. 세 번째로 4년제 대학 진학률 그 자체에도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2016년도 학교 기본 조사에 의하면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남자는 55.6%, 여자는 48.2%로 7%포인트나 되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차이는 성적차가 아닙니다. “아들은 대학까지, 딸은 단기대학(*전문대학)까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성차별의 결과입니다.

최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2014년 수상) 씨가 일본에 와서 “여자교육”의 필요성을 주창했습니다. 그것은 파키스탄에서는 중요하지만, 일본에선 무관한 일인가요? “어차피 여자애니까”, “결국 여자애니까”라며 찬물 붓고 발목 잡는 것을 ‘aspiration의 cooling down’, 즉 ‘의욕의 냉각효과’라고 부릅니다.

말랄라씨의 부친은 “어떻게 따님을 키웠는가”라는 질문에 “딸의 날개를 꺾지 않고자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 대로 많은 딸들은 어린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날개를 꺾인 채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도쿄대에 진학한 남녀 학생에게는, 어떤 환경이 기다리고 있나요? 다른 대학과의 미팅 자리에서 도쿄대 남자 학생은 인기가 많습니다.

도쿄대의 여학생한테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 어디 학교 다녀?”라는 질문에 “도쿄에, 있는, 대학….” 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왜인지 물어보니 “도쿄대”라고 말하면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학생은 도쿄대 학생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에 비해 여학생은 대답을 주저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남성의 가치와 높은 성적은 일치하는 반면, 여성의 가치와 높은 성적 간에는 뒤틀린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귀여울”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런데, “귀엽다”는 것은 어떤 가치인가요? 사랑받고 선택받고 보호받는 가치에는, 상대방을 절대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자는 자신의 성적이 좋은 것이나, 도쿄대생인 것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지요.

도쿄대 공학부와 대학원 남학생 5명이 사립 대학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 남학생 3명이 퇴학, 2명이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에 기반하여 히메노 가오루코라는 작가분께서 <그녀는 머리가 나쁘니까>라는 소설을 썼고, 작년 그 책을 주제로 하여 학내에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쁘니까”라는 말은, 조사 과정에서 실제로 가해자 남학생의 발언을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도쿄대 남학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알 수 있습니다.

도쿄대에서는 지금도 도쿄대 여학생이 실질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타 대학 여학생만이 참여 가능한 남자 동아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던 반세기 전에도 비슷한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반세기 뒤인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올 3월에 도쿄대 남녀 공동 참획 담당 이사(*내각부에 설치된 중요 정책 회의 중 남녀공동참획회의가 있음, 이를 담당하는 이사), 부학장명으로 여학생 배제는 ‘도쿄대 헌장’이 주창하는 평등의 이념에 반한다는 것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겪은 학교는 겉으로만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편차치(석차) 경쟁에 남녀 구분은 없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는 시점에서 이미 숨겨진 성차별이 시작됩니다. 사회에 나가면, 보다 노골적인 성차별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도쿄대 또한, 아쉽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부에서 약 20% 정도 차지하던 여학생 비율은, 대학원이 되면 석사 과정 25%, 박사 과정에선 30.7%나 됩니다. 그 후 연구직이 되면 조교 여성 비율은 18.2%, 준교수(*조교수) 11.6%, 교수직 7.8%로 다시 저하됩니다. 이는 국회의원 여성 비율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여성 학부장, 연구과장은 15명 중 1명이며 역대 총장 중 여성은 없습니다.

여성학의 선구자로서

이런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40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여성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이후 젠더 연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던 시절, 여성학이라는 학문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없었기에, 만들었습니다.

여성학은 대학 밖에서 태어나, 대학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4반세기 전, 제가 도쿄대에 부임했을 때, 저는 문학부에서 3번째 여성 교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학을 교단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성학을 시작해보니, 온 세상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뿐이었습니다.

어째서 남자는 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걸까? 주부란 무엇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생리대와 탐폰이 없었던 시대에는 어떤 월경 용품을 썼는가? 일본 역사에서 동성애자는 있었는가?

누구도 조사해 본 적이 없었기에 선행연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그 분야의 선구자, 1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도쿄대에서는 주부 연구로도, 소녀 만화 연구로도, 섹슈얼리티 연구로도 학위를 딸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를 움직여 온 것은 끝이 없는 호기심과 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학문에도 벤처가 있습니다. 쇠퇴해가는 학문이 있는 한편, 새롭게 떠오르는 학문이 있습니다. 여성학은 벤처였습니다. 여성학뿐만 아니라 환경학, 정보학, 장애학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분야가 태어났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이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다양성에 열린 대학

말해두지만, 도쿄대는 변화와 다양성에 열린 대학입니다. 저 같은 사람을 채용하고 이 자리에 세운 것이 그 증거입니다. 도쿄대에는 국립대학 최초의 재일 한국인 교수 강상중씨도 계셨고, 국립 대학 최초의 고졸 교수 안도 다다오씨도 있었습니다. 또한 시청각 중복 장애인 교수 후쿠시마 사토미씨도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선발되어 이 곳에 왔습니다. 도쿄대생 한 명당 들어가는 국비 부담은 연간 500만엔(약 5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4년간 훌륭한 교육 학습 환경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훌륭함은 여기서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제가 보증합니다.

여러분들은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불공정 입시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노력해도 공정한 보상을 주지 않는 사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여러분이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여러분의 노력으로 인한 성과가 아니라, 환경 덕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들이 오늘 “노력하면 보상을 받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여러분들 주위의 환경이 여러분들을 격려해주고, 등을 밀어주며, 앞에서 끌어주고, 성취해낸 것을 평가하고 칭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사람, 너무 노력해서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기 이전부터 “어차피 너 따위가”, “내가 해 봤자 뭘” 이라며 노력할 의욕마저 꺾여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을, 부디 자기 스스로만 이겨 내기 위해 쓰지 말아 주세요. 축복받은 환경과 축복받은 능력을,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을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써 주십시오. 그리고 강한 척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기대며 살아가 주세요.

여성학을 낳은 것은 페미니즘이라는 여성운동이지만, 페미니즘은 결코 여자도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다거나, 약자가 강자가 되고 싶다는 사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 것을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도쿄대에서 배우는 가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건, 지금까지의 이론이 들어맞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정답이 있는 지식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정답이 없는 물음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학내에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가치는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 다른 문화가 마찰하는 곳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학내에서 머물러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도쿄대에서는 해외 유학이나 국제 교류, 국내 지역 과제 해결에 관한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미지를 추구하고, 눈앞에 있지 않은 다른 세상에도 뛰어들어 보십시오. 다른 문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도쿄대 네임 밸류가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세계에서도, 설령 난민이 되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을 익히기를 바랍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가치란, 이미 있는 지식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 없는 지식을 만들어 내기 위한 지식을 익히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지식을, 메타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 메타 지식을 학생들에게 익히게 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입니다. 어서오세요, 도쿄대학에.

헤이세이 31년 4월 12일

인정 NPO 법인 우먼즈 액션 네트워크 이사장

우에노 치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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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회뉴스 에디터, 허프포스트코리아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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