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전봉준, 혁명의 기록 - 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
전봉준, 혁명의 기록 - 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
이이화 (지은이)생각정원2014-10-27
280쪽
153*21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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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민중역사학자 이이화가 '발견'해 재조명한 전봉준 평전이다. 저자는 지난 1994년에 조직된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봉준을 새롭게 만났고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기에 문자로 남은 단편 기록은 자료로서 불충분했고, 구전되는 기록은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민간에 전해지는 기록의 경우 '영웅'을 바랐던 민중의 바람이 개입돼 내용이 미화되기 일쑤였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탓에 조선 지배세력은 전봉준의 좋은 주장도 나쁘게, 바른 행동도 그르게 그렸을 뿐 아니라 아예 배제하곤 했다. 이런 탓에 전봉준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름의 해석을 내려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여러 이설이 나오게 됐다.
이이화는 오직 진실만을 추적하기 위해 의심하고 고증하기를 반복했다. 동학농민전쟁의 기억이 스민 현장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현지인을 증언을 수집하면서 얻은 진실부터 조선 관료들의 기록, 후대 연구자들의 평가와 일본의 기록물들까지 빠짐없이 살폈다. 특히 당시 일본 사람들이 밀정 노릇을 하면서 쓴 목격담과 신문 기사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가난에 내몰려 떠돌이생활을 하며 민중의 삶을 목격했던 성장기부터 역적으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지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정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저항한 인간 전봉준을 되살려냈다.
목차
여는 글\ 전봉준이 돌아왔다
|신념| 암울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
골목대장 녹두
이놈의 세상 빨리 망해야지
개혁사상가 정약용을 만나다
체구는 작았지만 눈빛은 형형하여
|봉기| 말뚝처럼 횃불처럼 우뚝 서다
동학을 좋아한다
흥선대원군과 전봉준
그들은 왜 동학농민군이 되었을까
탐관오리 조병갑과의 기막힌 악연
사발통문을 돌리다
|저항| 지금 일어서라, 더 늦기 전에
첫 횃불, 고부를 달구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일어나면 백산, 앉으면 죽산
황토재 전투, 첫 승리를 거두다
왜 서울로 진격하지 않았을까
마침내 전주성을 점령하다
|개혁| 녹두꽃 피다
청일전쟁과 개화정권의 출범
누구든 접장, 신분을 해방하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흥선대원군의 밀서
마침내 연합전선이 이루어지다
|전투| 방관자들아, 이 외침을 들어라놀
닭고기와 개고기 먹지 마라
일본군 군화에 짓밟힌 공주
공주 대격전의 서막
우금재의 마지막 전투
방관자들아, 이 외침을 들어라
최후의 원평.태인 전투
|최후| 붉은 마음 누가 알아주리
피노리에서 끝내 잡히다
들것을 타고 나주에서 서울로
전봉준을 구하라
다섯 동지의 한날 죽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닫는 글\ 전봉준을 위하여
전봉준 생애
동학농민혁명 주요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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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3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이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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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대구에서 유학자인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대둔산에 들어가 한문 공부를 했으며, 청년기에는 민족문화추진회·서울대 규장각 등에서 근무하며 한국학 연구에 전념했다. 이어 역사문제연구소장·『역사비평』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사업’을 주도하여 이를 학문적으로 재평가하고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와 함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보면서 서울 종로에 전봉준 동상 건립을 이루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지난 2018년 개관하였다. 서원대 석좌교수를 지냈고,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민족사.생활사.민중사 연구에 열정을 쏟았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 인물을 재평가하는 인물 탐구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우리 역사를 재미있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여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한국사 연구 활동과 더불어, 부친에게 교육받은 유불선 합일사상을 기억해 한국역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온 불교의 정치적.사회적.신앙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 『불교신문』, 『불광』 등에 관련 글을 써 왔다. 특히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평등 ’‘평화’ ‘인권’ 이념과 ‘중생 제도’라는 실천운동은 지은이의 역사관에 일정하게 반영되었다.
저서로는 『한국사 이야기』(전 22권),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 10권),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전봉준, 혁명의 기록』, 『허균의 생각』, 『위대한 봄을 만났다』, 『민란의 시대』, 『이이화의 이야기 한국불교사』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이이화의 명승열전>,<대한민국 청소년에게>,<충청도 영동 동학농민혁명> … 총 29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짐은 빤한 일이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지금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약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 전봉준
동학농민전쟁 120년, 전봉준이 바라던 자주.평등의 세상은 열렸을까?
국사 교사들이 뽑은 ‘2014년에 부활시키고 싶은 조선 시대 인물’ 5위 전봉준
1984년, 이 땅의 온 민중이 동학농민군이라는 이름으로 봉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민족운동.인권운동의 효시로서 그 의미가 크다. 대내적으로는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사상과 대외적으로 자주국가라는 사실을 알리는 반외세의 기치를 부르짖었다. 토지제, 신분제, 남녀 차별 등 조선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일대 혁명이었다. 그 중심에 전봉준이 있었다. 최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사 교사 100여 명 선정한 ‘2014년에 부활시키고 싶은 조선시대 인물’ 중 전봉준이 5위를 차지했다.
개혁 혁명가 전봉준은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없고, 외세를 물리친 독립국가를 열망했다. 하지만 120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전봉준이 바라던 평등과 자주의 세상은 열렸을까. 이이화는 “오늘날 조국이 분단되어 갈등이 일어나고 강대국의 간섭이 사라지지 않고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청산되지 않고 있다. 또 탐욕적 자본주의가 만연해 이권을 독점하고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 새로운 불평등사회가 빚어지고 있다”며 우리가 전봉준을 이해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민중역사학자 이이화, 녹두장군 전봉준을 만나다
민간의 증언, 조선 지배층의 기록, 일본 밀정들이 남긴 목격담과 신문기사, 후대 연구 자료 등 추적
《전봉준, 혁명의 기록》은 민중역사학자 이이화가 ‘발견’해 재조명한 전봉준 평전이다. 저자는 지난 1994년 조직된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봉준을 새롭게 만났고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기에 문자로 남은 단편 기록은 자료로서 불충분했고, 구전되는 기록은 사실 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민간에 전해지는 기록의 경우 ‘영웅’을 바랐던 민중의 열망이 개입돼 내용이 미화되기 일쑤였고, 조선 지배세력은 ‘역적’ 전봉준의 좋은 주장도 나쁘게, 바른 행동도 그르게 그렸을 뿐 아니라 아예 배제하곤 했다. 이런 탓에 전봉준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름의 해석을 내려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여러 이설이 나오게 됐다.
이이화는 오직 진실만을 추적하기 위해 의심하고 고증하기를 반복했다. 동학농민전쟁의 기억이 스민 현장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현지인을 증언을 수집하면서 얻은 진실부터 조선 관료들의 기록, 후대 연구자들의 평가와 일본의 기록물들까지 빠짐없이 살폈다. 특히 당시 일본 사람들이 밀정 노릇을 하면서 쓴 목격담과 신문 기사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가난에 내몰려 떠돌이생활을 하며 민중의 삶을 목격했던 성장기부터 역적으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지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정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저항한 인간 전봉준을 되살려냈다. 가히 처음 만나는 전봉준이라 할 만하다.
“차별 없는 세상을 허하라!” “과부의 개가를 허하라!”
백성은 나라의 근본…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주도한 휴머니스트 전봉준
전봉준은 1855년 12월, 전라북도 고창 당촌에서 태어났다. 작지만 용맹했던 소년, 가난으로 이 마을 저 마을 전전하며 산 까닭에 지배세력과 외세에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목격할 수 있었던 청년기, 탐관오리 조병학의 복수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그 후 농민 봉기, 동학에 입교해 목숨 건 투쟁을 하다 결국 1895년 3월, 갑오년 농민전쟁의 책임을 지고 교수형에 처해진 비운의 혁명가로 기억된다.
전봉준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 시선으로 나눌 수 있다. 민중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을 개혁할 희망이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에게는 ‘역적’이었으며, 일본에는 조선 침략의 ‘도구’로 이용 가치가 높았다. 여기에 전봉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던 흥선대원군의 욕망이 더해질 수 있겠다. 저자가 재조명한 전봉준은 불평등과 부자유에 시름하던 온 민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아래로부터의 변혁운동으로서 농민 봉기를 주도한 ‘휴머니스트’다. 혁명 과정에서조차 폭력에 앞세우기보다 설득하고 논의하려 노력했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혁명가 전봉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장 12가지는 당시 봉건사회의 분위기에서 보자면 특히 개혁적이다. 첫째,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 불량한 유림과 양반을 징계할 것. 둘째, 노비와 칠반천인과 백정의 신분 차별을 없애거나 개선할 것. 셋째, 고른 인재 등용. 넷째, 청춘과부의 개가. 다섯째, 무명잡세와 공사 채무의 해소. 여섯째, 토지의 분작 등. 봉건제도의 골간인 신분제도와 토지 문제를 대대적으로 뒤집는 요구들이다. 특히 ‘과부의 개가’는 당시 가부장제의 기준에서 나오기 힘든 혁명적일 정도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 요구조항들을 수용해 시정을 건의하기로 약속했다.
의문 1. 교수형 뒤 전봉준의 수급이 서울 거리에 효수되었다?
일본의 메사마시신문에 동학당 효수 사진이 처음 실리고,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 이 사진을 수록하면서 사진 속 수급의 주인공이 전봉준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수급의 실제 주인은 수원에서 활동하다가 잡혀 서울 동대문 옆 수구문 밖 남벌원에서 참수된 최재호와 안교선이다. 전봉준이 교수형에 처해지자 조선의 지배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역적을 목 베어 조리돌리지 않았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개화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생전 전봉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은 호송 장면을 찍은 사진 단 한 장뿐이다.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이 일본 영사인 우치다의 허락을 받아 1985년 3월 27일(양력) 일본영사관 구내에서 사진을 찍었고 2개월이 지난 5월 10일 발매된 《사진화보》 제14권에 게재됐다. 그러나 3월 12일자 오사카매일신문이 전봉준의 호송 기사를 내보내면서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이라는 제목으로 삽화를 함께 게재했는데, 이는 무라카미 텐신의 사진을 삽화로 그리고 다시 목판으로 만들어 찍은 것이다. (231~232쪽 참고)
의문 2. 흥선대원군과 전봉준,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인가?
일본은 전봉준을 체포된 뒤 특별대우를 했다. 조선의 권설재판소로 옮겨진 뒤에도 신문 과정에서 집요하게 둘의 관계에 대해 추궁당했다. 전봉준의 입으로 흥선대원군의 동학농민전쟁 개입 사실을 확인해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전봉준은 심문과정에서 일관되게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흥선대원군은 유세한 사람이어서 상관이 없었다”는 대답에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봉준이 상경했을 때 흥선대원군을 만났고 둘이 비밀리에 반역을 모의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흥선대원군이 전봉준에게 밀사를 보낸 적은 있었다. 두 사람은 일정한 관계를 맺긴 했지만 서로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이 달랐던 만큼 전봉준이 흥선대원군의 지시를 받거나 밀약을 한 일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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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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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그 120년이 지난 오늘...
201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공주 우금재 전투에서 수십만명의 농민이 전사하던 그날...
그날로부터 120년이 지났다. 동양적 표현으로 두갑자가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그들이 꿈꾼 양반과 상놈이 없는 세상, 남녀평등한 세상,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
우리의 나라를 이룩했을까? 하는 출발에서 시작한 책이 이 책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낸 한국을 대표하는 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의 필치로
지금은 많은 사료가 없어진 역적이라는 오명을 쓴 채 죽어간,,,
하지만 죽는 순간에도 당당하며 의로웠던 녹두장군 전봉준을 기념한 책이다.
전봉준은 기본적으로 지배층이 아닌데다가(많은 역사가 지배층, 정치권, 잘 나가는 사람 위주로
아직까지 쓰여지는 것을 보면)
역적으로 몰려 참수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료는 모두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그의 출생부터 가족, 행적까지...
그래서 이이화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여러 민중의 전설(보태지거나 빼지거나 한), 구전,
기타 일부 조금 남아있는 사료, 그리고 지배층의 관점에서 본 역적 전봉준의 사료에
바탕 한 사료를 객관적 사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는 부분을 위주로 썼다고 한다.
전봉준은 천안전씨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고부의 향교의 장의를 지낸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한 설이지만, 이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때부터 키가 작았고, 놀이를 할 때 작은 체구에도 당당한 또 눈빛이 형형한 아이였다고
하는 위인전 첫 부분에 나올 만한 말로 시작한다.
그 뒤 전봉준의 가족, 성장한 이야기는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아주 빠르게 전개되고
동학에 입교하여 고부군 봉기, 탐관오리의 대명사 조병갑(영의정 조두순의 서질로 충청도 관찰사 조병식의 사촌이며, 동학농민혁명으로 유배갔다가 해배되어 판사로 복귀하는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과의 투쟁, 1차 혁명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전라도 지역 집강소 설치,
흥선대원군과 교류 및 후에 그의 밀서를 통한 일본군을 몰아내는 마지막 전투까지 그의 생애를 추적한다. 부하의 밀고로 잡혀서 일본인에 의한 재판과 회유를 받을 때도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는데, 내가 비굴하게 살겠는가 하면서 물리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가 지은 시, 그를 기린 시 등도 중간중간에 나오며 사료에 입각한(물론 이이화 선생님의 의견이나 여러 사료 중에 채택을 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닌 부분도 있겠지만) 역사서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전봉준이 꿈꿔왔던 세상이 과연 이루어졌는가 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반성 할 일이 많다. 현대판 계급사회인 돈에 의한 부익부,빈익빈 문제의 심화, 자본의 집중, 비정규직 문제,
사회 계층간 문제, 남과북으로 갈라진 조국, 여전히 강대국의 지위를 점한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다시 한 번 120년전의 아픈 과거를 배우고 익혀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P.S 끝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이 있는데 뒷표지 부분에 1984년 동학농민혁명의 시작과 끝~~ 이라면서 책을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이다.
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분명 실수 할 수 있고, 오탈자도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본문의 글자가 수 만, 수 십만자가 넘을텐데 당연히 저자, 교정자, 편집자가 다른 시스템에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지에 오타가 있는 상태로 책을 출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것을 보면 책 자체에 신뢰가 많이 금이 간다.
재판에서는 반드시 수정해 주길 바라며, 출판사측의 성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 접기
사자는살아있다 2014-11-2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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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하늘이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1.
오래전 '인물로 읽는 역사이야기'는 재밌고 새로웠다.
왕이거나 훌륭한 사람들, 이미 태몽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들의 전기문이 하나같이 지루하던 차에
이이화의 역사 인물들은 귀천을 넘어 생생하게 고민하고 실수도 하고, 개성이 강하여
살아온다면 알아볼수 있을것처럼, 그래서 좋았다.
전봉준.
조선의 왕족과 관료들에게 이겼으나 외세 일본의 신식무기에 패한 동학농민전쟁의 패장
가슴아프고 슬플까봐. 읽을까 말까......망설이다, 이이화 선생이 잘 안내하려니 믿고, 책을 폈다.
전봉준이 죽고 난 뒤 남평 이씨의 행방은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문장도 참 슬픈 문장이다.
전처의 소생과 함께 이남이녀의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을 건사했던 여인
잘난 남편은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러나가 선봉에선 장수가 되었다가 사형당해 죽고
그 사이 아이들 넷을 키우며 살던 그녀는 남편이 붙잡힌 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이들과 도망가지 않았을까.
어디서 뭘하며 불안한 숨을 달랬을까.
의로운 남편이 사형당해 죽었으니, 분하지 않았을까.
문장이 편안하다. 불필요한 허세나 난해함이 손톱만큼도 없다.
2.
고려말 귀족들의 횡포를 막고 날때부터의 신분이 아니라 유교이념에 따라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개혁은 조선말이 되니 앙상한 뼈대마저 흔들려
천지에 부정부패와 탐욕만 횡횡한다.
인민들은 분노로 넘처 정치를 개혁하고자 일어났으나
조선의 왕족이라는 것들은 최소한의 개혁도 없이, 최소한의 타협도 없이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를 불러들인다.
참으로 한심한 것들이다.
거기에 붙어먹은 관리라는 것들도 기어이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바치더니
해방후에는 친미로 갈아타고 여태 자자손손 갑질하고 산다.
멍청하고 못난 왕족을 모셔야 하는 인민들의 삶이 전쟁과 가난으로 내몰려 유린된다.
100년이 지나도, 멍청하고 못난 대통령 반복해서 모셔야 하는 인민들의 삶이 구차하다.
전봉준은 가난하게 자랐으나 지식인이었고 뛰어난 선동가였구나.
저 배짱과 기개는 어디서 나왔을까.
전봉준의 농민군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워낙 부정부패가 심한 관리들의 잘못이 크지만
농민군의 지도자들이 노비와 백정, 천민들을 평민과 똑같이 사람답게 대접하며 안고 간 까닭이 크다.
태어날때부터 천대받던 사람들이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고 대접해주니 선봉에 서서도 얼마나 스스로 뿌듯했을까.
스스로 억압의 굴레를 벗어 해방된 자들의 심장이 뛰어 기꺼이 한목숨 내놓았을 것이다.
왜 안그랬겠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남도. 삼남지방은 반역의 뿌리가 깊은 셈이다.
비옥하여 풍요로운데 착취가 심해 인민들의 껍질을 벗겼으니, 그 결과다.
한두번의 전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삼남지방의 집강소조직이 마을을 접수하여
천민을 해방시키고, 관군을 몰아내고 스스로 자치를 했다.
부자의 곳간을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손길에 신바람이 났으리.
부정부패를 없애고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들의 마음에 십년묵은 체증이 가시듯이 개운하여 살만하지 않았겠는가.
뻘짓하는 흥선대원군이 중간중간 나오는대. 글쎄. 잘 모르겠다.
전봉준이 조선의 지배자들중 그나마 흥선대원군을 낫다고 생각해
서울로 진격하면 설득해서 안고가야할 정치인으로 생각했을까. 그다지.
흥선대원군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이익외에 뭔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손톱만큼이라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교활한 늙은이로 살다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을 뿐.
3.
전봉준의 마지막 장면은 의연하고 비장하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빈부와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운 장수로 한치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의연하다.
어쩌면 먼저 죽어간 동지들의 피흘림이 몸에서 떠나지 않아서 였을까.
그리하여 전봉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없이 살아온 방식대로 죽은 녹두에 대해 추모하고 기억하는 노래와 시들을 소개해 놓았다.
인상적이다.
비록 그가 죽임을 당했으나 인민들은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그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영웅으로 대접한다.
그렇구나.
- 접기
팥쥐만세 2015-03-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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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
역사책에서 짧게 몇 줄로 설명되어 있었던 '전봉준'. 그렇지만 내게는 그의 존재감이 너무도 커 보였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실패한 농민 봉기 지도자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대부분은 농민군이 관군과 혹은 관군, 일본군과 투쟁한 연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좀 지루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왜 항상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둘로 나뉘게 되는건지 그리고 왜 대의를 보지 못하고 개개인의 이욕에 함몰되는건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전봉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농민운동 지도자들이 사형 당하고 수십만명의 농민군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갔다고 하니 참으로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10만원권 지폐가 발행된다면 '전봉준'이 그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도 멋진 분... 이 작은 땅에서도 위인들은 끊임없이 탄생한다. 그들의 피땀이 모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는 순간까지도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 녹두장군 전봉준, 너무나 너무나 존경스럽다. 전봉준 장군님 정말 정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접기
^♡^ 2015-07-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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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전봉준, 혁명의 기록
갑오년이 모두 가기 전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두 권의 책 중 하나(다른 한권은 전봉준 평전)
120년 전의 상황은 놀랍게도 지금과 닮아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전봉준이 없다. 올해 내내 민중은 아팠고 죽었고 버려졌는데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민중들은 그저 쓸려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책 읽는 내내 고민이 됐다. 우리는 전봉준이 될 수 있을까? 전봉준을 만들수 있을까? 전봉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책은 짐짓 담담한 척 사료 중심으로 그의 인생과 당시 상황을 풀어내지만 뜨거운 불덩이 하나를 품고 있는 듯 하다. 그게 이이화 선생의 불덩이인지 그가 되살려낸 녹두의 불덩이인지는 분간되지 않으나 책을 다 읽어낸 후 그 불덩이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마저 뜨겁게 달군다. 그래서 되려 이땅에서 2014 갑오년을 살기 답답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좋았으나 연도의 오기는...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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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말한다 2014-12-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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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사후 120주년 그가 다시 필요한 시점
녹두장군 전봉준...
그가 이 세상에 나서 가난한 民의 편에서 봉기하여 세상을 바꿔보자 했던,
나라를 생각하여 일본에 맞서 무수한 피를 흘렸던 우리의 할아버지들의
영원한 지도자 전봉준의 혁명의 기록을 추적하는 글이다.
최근 사회는 구한말 120년전이나 사실 다를바가 없을 정도로 점점 막혀가고
무언가 답답해지는 것 같다.
그런 시점에서 전봉준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살려주고, 생각하게 해주는
이러한 책이 많아지는 것이 오늘날의 시점에 필요한 것 같다.
아직까지 전봉준의 삶에 대한 많은 이설이 있는데 전봉준 기념사업회장이기도 한
이이화 선생남의 시각으로 잘 풀어낸 수작인 것 같다.
책소개
민중역사학자 이이화가 '발견'해 재조명한 전봉준 평전이다. 저자는 지난 1994년에 조직된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봉준을 새롭게 만났고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기에 문자로 남은 단편 기록은 자료로서 불충분했고, 구전되는 기록은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민간에 전해지는 기록의 경우 '영웅'을 바랐던 민중의 바람이 개입돼 내용이 미화되기 일쑤였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탓에 조선 지배세력은 전봉준의 좋은 주장도 나쁘게, 바른 행동도 그르게 그렸을 뿐 아니라 아예 배제하곤 했다. 이런 탓에 전봉준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름의 해석을 내려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여러 이설이 나오게 됐다.
이이화는 오직 진실만을 추적하기 위해 의심하고 고증하기를 반복했다. 동학농민전쟁의 기억이 스민 현장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현지인을 증언을 수집하면서 얻은 진실부터 조선 관료들의 기록, 후대 연구자들의 평가와 일본의 기록물들까지 빠짐없이 살폈다. 특히 당시 일본 사람들이 밀정 노릇을 하면서 쓴 목격담과 신문 기사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가난에 내몰려 떠돌이생활을 하며 민중의 삶을 목격했던 성장기부터 역적으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지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정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저항한 인간 전봉준을 되살려냈다.
목차
여는 글\ 전봉준이 돌아왔다
|신념| 암울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
골목대장 녹두
이놈의 세상 빨리 망해야지
개혁사상가 정약용을 만나다
체구는 작았지만 눈빛은 형형하여
|봉기| 말뚝처럼 횃불처럼 우뚝 서다
동학을 좋아한다
흥선대원군과 전봉준
그들은 왜 동학농민군이 되었을까
탐관오리 조병갑과의 기막힌 악연
사발통문을 돌리다
|저항| 지금 일어서라, 더 늦기 전에
첫 횃불, 고부를 달구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일어나면 백산, 앉으면 죽산
황토재 전투, 첫 승리를 거두다
왜 서울로 진격하지 않았을까
마침내 전주성을 점령하다
|개혁| 녹두꽃 피다
청일전쟁과 개화정권의 출범
누구든 접장, 신분을 해방하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흥선대원군의 밀서
마침내 연합전선이 이루어지다
|전투| 방관자들아, 이 외침을 들어라놀
닭고기와 개고기 먹지 마라
일본군 군화에 짓밟힌 공주
공주 대격전의 서막
우금재의 마지막 전투
방관자들아, 이 외침을 들어라
최후의 원평.태인 전투
|최후| 붉은 마음 누가 알아주리
피노리에서 끝내 잡히다
들것을 타고 나주에서 서울로
전봉준을 구하라
다섯 동지의 한날 죽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닫는 글\ 전봉준을 위하여
전봉준 생애
동학농민혁명 주요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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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4년 10월 3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이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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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대구에서 유학자인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대둔산에 들어가 한문 공부를 했으며, 청년기에는 민족문화추진회·서울대 규장각 등에서 근무하며 한국학 연구에 전념했다. 이어 역사문제연구소장·『역사비평』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사업’을 주도하여 이를 학문적으로 재평가하고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와 함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보면서 서울 종로에 전봉준 동상 건립을 이루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지난 2018년 개관하였다. 서원대 석좌교수를 지냈고,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민족사.생활사.민중사 연구에 열정을 쏟았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 인물을 재평가하는 인물 탐구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우리 역사를 재미있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여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한국사 연구 활동과 더불어, 부친에게 교육받은 유불선 합일사상을 기억해 한국역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온 불교의 정치적.사회적.신앙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 『불교신문』, 『불광』 등에 관련 글을 써 왔다. 특히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평등 ’‘평화’ ‘인권’ 이념과 ‘중생 제도’라는 실천운동은 지은이의 역사관에 일정하게 반영되었다.
저서로는 『한국사 이야기』(전 22권),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 10권),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전봉준, 혁명의 기록』, 『허균의 생각』, 『위대한 봄을 만났다』, 『민란의 시대』, 『이이화의 이야기 한국불교사』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이이화의 명승열전>,<대한민국 청소년에게>,<충청도 영동 동학농민혁명> … 총 29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짐은 빤한 일이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지금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약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 전봉준
동학농민전쟁 120년, 전봉준이 바라던 자주.평등의 세상은 열렸을까?
국사 교사들이 뽑은 ‘2014년에 부활시키고 싶은 조선 시대 인물’ 5위 전봉준
1984년, 이 땅의 온 민중이 동학농민군이라는 이름으로 봉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민족운동.인권운동의 효시로서 그 의미가 크다. 대내적으로는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사상과 대외적으로 자주국가라는 사실을 알리는 반외세의 기치를 부르짖었다. 토지제, 신분제, 남녀 차별 등 조선 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일대 혁명이었다. 그 중심에 전봉준이 있었다. 최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사 교사 100여 명 선정한 ‘2014년에 부활시키고 싶은 조선시대 인물’ 중 전봉준이 5위를 차지했다.
개혁 혁명가 전봉준은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없고, 외세를 물리친 독립국가를 열망했다. 하지만 120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전봉준이 바라던 평등과 자주의 세상은 열렸을까. 이이화는 “오늘날 조국이 분단되어 갈등이 일어나고 강대국의 간섭이 사라지지 않고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의 모순은 근본적으로 청산되지 않고 있다. 또 탐욕적 자본주의가 만연해 이권을 독점하고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 새로운 불평등사회가 빚어지고 있다”며 우리가 전봉준을 이해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민중역사학자 이이화, 녹두장군 전봉준을 만나다
민간의 증언, 조선 지배층의 기록, 일본 밀정들이 남긴 목격담과 신문기사, 후대 연구 자료 등 추적
《전봉준, 혁명의 기록》은 민중역사학자 이이화가 ‘발견’해 재조명한 전봉준 평전이다. 저자는 지난 1994년 조직된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봉준을 새롭게 만났고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기에 문자로 남은 단편 기록은 자료로서 불충분했고, 구전되는 기록은 사실 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민간에 전해지는 기록의 경우 ‘영웅’을 바랐던 민중의 열망이 개입돼 내용이 미화되기 일쑤였고, 조선 지배세력은 ‘역적’ 전봉준의 좋은 주장도 나쁘게, 바른 행동도 그르게 그렸을 뿐 아니라 아예 배제하곤 했다. 이런 탓에 전봉준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름의 해석을 내려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여러 이설이 나오게 됐다.
이이화는 오직 진실만을 추적하기 위해 의심하고 고증하기를 반복했다. 동학농민전쟁의 기억이 스민 현장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현지인을 증언을 수집하면서 얻은 진실부터 조선 관료들의 기록, 후대 연구자들의 평가와 일본의 기록물들까지 빠짐없이 살폈다. 특히 당시 일본 사람들이 밀정 노릇을 하면서 쓴 목격담과 신문 기사를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가난에 내몰려 떠돌이생활을 하며 민중의 삶을 목격했던 성장기부터 역적으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지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정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저항한 인간 전봉준을 되살려냈다. 가히 처음 만나는 전봉준이라 할 만하다.
“차별 없는 세상을 허하라!” “과부의 개가를 허하라!”
백성은 나라의 근본…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주도한 휴머니스트 전봉준
전봉준은 1855년 12월, 전라북도 고창 당촌에서 태어났다. 작지만 용맹했던 소년, 가난으로 이 마을 저 마을 전전하며 산 까닭에 지배세력과 외세에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목격할 수 있었던 청년기, 탐관오리 조병학의 복수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그 후 농민 봉기, 동학에 입교해 목숨 건 투쟁을 하다 결국 1895년 3월, 갑오년 농민전쟁의 책임을 지고 교수형에 처해진 비운의 혁명가로 기억된다.
전봉준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 시선으로 나눌 수 있다. 민중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을 개혁할 희망이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에게는 ‘역적’이었으며, 일본에는 조선 침략의 ‘도구’로 이용 가치가 높았다. 여기에 전봉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던 흥선대원군의 욕망이 더해질 수 있겠다. 저자가 재조명한 전봉준은 불평등과 부자유에 시름하던 온 민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아래로부터의 변혁운동으로서 농민 봉기를 주도한 ‘휴머니스트’다. 혁명 과정에서조차 폭력에 앞세우기보다 설득하고 논의하려 노력했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혁명가 전봉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장 12가지는 당시 봉건사회의 분위기에서 보자면 특히 개혁적이다. 첫째,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 불량한 유림과 양반을 징계할 것. 둘째, 노비와 칠반천인과 백정의 신분 차별을 없애거나 개선할 것. 셋째, 고른 인재 등용. 넷째, 청춘과부의 개가. 다섯째, 무명잡세와 공사 채무의 해소. 여섯째, 토지의 분작 등. 봉건제도의 골간인 신분제도와 토지 문제를 대대적으로 뒤집는 요구들이다. 특히 ‘과부의 개가’는 당시 가부장제의 기준에서 나오기 힘든 혁명적일 정도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 요구조항들을 수용해 시정을 건의하기로 약속했다.
의문 1. 교수형 뒤 전봉준의 수급이 서울 거리에 효수되었다?
일본의 메사마시신문에 동학당 효수 사진이 처음 실리고,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 이 사진을 수록하면서 사진 속 수급의 주인공이 전봉준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수급의 실제 주인은 수원에서 활동하다가 잡혀 서울 동대문 옆 수구문 밖 남벌원에서 참수된 최재호와 안교선이다. 전봉준이 교수형에 처해지자 조선의 지배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역적을 목 베어 조리돌리지 않았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개화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생전 전봉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은 호송 장면을 찍은 사진 단 한 장뿐이다.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이 일본 영사인 우치다의 허락을 받아 1985년 3월 27일(양력) 일본영사관 구내에서 사진을 찍었고 2개월이 지난 5월 10일 발매된 《사진화보》 제14권에 게재됐다. 그러나 3월 12일자 오사카매일신문이 전봉준의 호송 기사를 내보내면서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이라는 제목으로 삽화를 함께 게재했는데, 이는 무라카미 텐신의 사진을 삽화로 그리고 다시 목판으로 만들어 찍은 것이다. (231~232쪽 참고)
의문 2. 흥선대원군과 전봉준,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인가?
일본은 전봉준을 체포된 뒤 특별대우를 했다. 조선의 권설재판소로 옮겨진 뒤에도 신문 과정에서 집요하게 둘의 관계에 대해 추궁당했다. 전봉준의 입으로 흥선대원군의 동학농민전쟁 개입 사실을 확인해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전봉준은 심문과정에서 일관되게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흥선대원군은 유세한 사람이어서 상관이 없었다”는 대답에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봉준이 상경했을 때 흥선대원군을 만났고 둘이 비밀리에 반역을 모의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흥선대원군이 전봉준에게 밀사를 보낸 적은 있었다. 두 사람은 일정한 관계를 맺긴 했지만 서로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이 달랐던 만큼 전봉준이 흥선대원군의 지시를 받거나 밀약을 한 일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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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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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그 120년이 지난 오늘...
201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공주 우금재 전투에서 수십만명의 농민이 전사하던 그날...
그날로부터 120년이 지났다. 동양적 표현으로 두갑자가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그들이 꿈꾼 양반과 상놈이 없는 세상, 남녀평등한 세상,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
우리의 나라를 이룩했을까? 하는 출발에서 시작한 책이 이 책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낸 한국을 대표하는 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의 필치로
지금은 많은 사료가 없어진 역적이라는 오명을 쓴 채 죽어간,,,
하지만 죽는 순간에도 당당하며 의로웠던 녹두장군 전봉준을 기념한 책이다.
전봉준은 기본적으로 지배층이 아닌데다가(많은 역사가 지배층, 정치권, 잘 나가는 사람 위주로
아직까지 쓰여지는 것을 보면)
역적으로 몰려 참수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료는 모두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그의 출생부터 가족, 행적까지...
그래서 이이화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여러 민중의 전설(보태지거나 빼지거나 한), 구전,
기타 일부 조금 남아있는 사료, 그리고 지배층의 관점에서 본 역적 전봉준의 사료에
바탕 한 사료를 객관적 사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는 부분을 위주로 썼다고 한다.
전봉준은 천안전씨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고부의 향교의 장의를 지낸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이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한 설이지만, 이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때부터 키가 작았고, 놀이를 할 때 작은 체구에도 당당한 또 눈빛이 형형한 아이였다고
하는 위인전 첫 부분에 나올 만한 말로 시작한다.
그 뒤 전봉준의 가족, 성장한 이야기는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아주 빠르게 전개되고
동학에 입교하여 고부군 봉기, 탐관오리의 대명사 조병갑(영의정 조두순의 서질로 충청도 관찰사 조병식의 사촌이며, 동학농민혁명으로 유배갔다가 해배되어 판사로 복귀하는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과의 투쟁, 1차 혁명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전라도 지역 집강소 설치,
흥선대원군과 교류 및 후에 그의 밀서를 통한 일본군을 몰아내는 마지막 전투까지 그의 생애를 추적한다. 부하의 밀고로 잡혀서 일본인에 의한 재판과 회유를 받을 때도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는데, 내가 비굴하게 살겠는가 하면서 물리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가 지은 시, 그를 기린 시 등도 중간중간에 나오며 사료에 입각한(물론 이이화 선생님의 의견이나 여러 사료 중에 채택을 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닌 부분도 있겠지만) 역사서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전봉준이 꿈꿔왔던 세상이 과연 이루어졌는가 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반성 할 일이 많다. 현대판 계급사회인 돈에 의한 부익부,빈익빈 문제의 심화, 자본의 집중, 비정규직 문제,
사회 계층간 문제, 남과북으로 갈라진 조국, 여전히 강대국의 지위를 점한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다시 한 번 120년전의 아픈 과거를 배우고 익혀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P.S 끝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이 있는데 뒷표지 부분에 1984년 동학농민혁명의 시작과 끝~~ 이라면서 책을 소개한 내용이 있는데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이다.
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분명 실수 할 수 있고, 오탈자도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본문의 글자가 수 만, 수 십만자가 넘을텐데 당연히 저자, 교정자, 편집자가 다른 시스템에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지에 오타가 있는 상태로 책을 출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것을 보면 책 자체에 신뢰가 많이 금이 간다.
재판에서는 반드시 수정해 주길 바라며, 출판사측의 성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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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살아있다 2014-11-2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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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하늘이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1.
오래전 '인물로 읽는 역사이야기'는 재밌고 새로웠다.
왕이거나 훌륭한 사람들, 이미 태몽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들의 전기문이 하나같이 지루하던 차에
이이화의 역사 인물들은 귀천을 넘어 생생하게 고민하고 실수도 하고, 개성이 강하여
살아온다면 알아볼수 있을것처럼, 그래서 좋았다.
전봉준.
조선의 왕족과 관료들에게 이겼으나 외세 일본의 신식무기에 패한 동학농민전쟁의 패장
가슴아프고 슬플까봐. 읽을까 말까......망설이다, 이이화 선생이 잘 안내하려니 믿고, 책을 폈다.
전봉준이 죽고 난 뒤 남평 이씨의 행방은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문장도 참 슬픈 문장이다.
전처의 소생과 함께 이남이녀의 아이들을 키우며 집안을 건사했던 여인
잘난 남편은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러나가 선봉에선 장수가 되었다가 사형당해 죽고
그 사이 아이들 넷을 키우며 살던 그녀는 남편이 붙잡힌 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이들과 도망가지 않았을까.
어디서 뭘하며 불안한 숨을 달랬을까.
의로운 남편이 사형당해 죽었으니, 분하지 않았을까.
문장이 편안하다. 불필요한 허세나 난해함이 손톱만큼도 없다.
2.
고려말 귀족들의 횡포를 막고 날때부터의 신분이 아니라 유교이념에 따라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개혁은 조선말이 되니 앙상한 뼈대마저 흔들려
천지에 부정부패와 탐욕만 횡횡한다.
인민들은 분노로 넘처 정치를 개혁하고자 일어났으나
조선의 왕족이라는 것들은 최소한의 개혁도 없이, 최소한의 타협도 없이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를 불러들인다.
참으로 한심한 것들이다.
거기에 붙어먹은 관리라는 것들도 기어이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바치더니
해방후에는 친미로 갈아타고 여태 자자손손 갑질하고 산다.
멍청하고 못난 왕족을 모셔야 하는 인민들의 삶이 전쟁과 가난으로 내몰려 유린된다.
100년이 지나도, 멍청하고 못난 대통령 반복해서 모셔야 하는 인민들의 삶이 구차하다.
전봉준은 가난하게 자랐으나 지식인이었고 뛰어난 선동가였구나.
저 배짱과 기개는 어디서 나왔을까.
전봉준의 농민군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워낙 부정부패가 심한 관리들의 잘못이 크지만
농민군의 지도자들이 노비와 백정, 천민들을 평민과 똑같이 사람답게 대접하며 안고 간 까닭이 크다.
태어날때부터 천대받던 사람들이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고 대접해주니 선봉에 서서도 얼마나 스스로 뿌듯했을까.
스스로 억압의 굴레를 벗어 해방된 자들의 심장이 뛰어 기꺼이 한목숨 내놓았을 것이다.
왜 안그랬겠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남도. 삼남지방은 반역의 뿌리가 깊은 셈이다.
비옥하여 풍요로운데 착취가 심해 인민들의 껍질을 벗겼으니, 그 결과다.
한두번의 전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삼남지방의 집강소조직이 마을을 접수하여
천민을 해방시키고, 관군을 몰아내고 스스로 자치를 했다.
부자의 곳간을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손길에 신바람이 났으리.
부정부패를 없애고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들의 마음에 십년묵은 체증이 가시듯이 개운하여 살만하지 않았겠는가.
뻘짓하는 흥선대원군이 중간중간 나오는대. 글쎄. 잘 모르겠다.
전봉준이 조선의 지배자들중 그나마 흥선대원군을 낫다고 생각해
서울로 진격하면 설득해서 안고가야할 정치인으로 생각했을까. 그다지.
흥선대원군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이익외에 뭔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손톱만큼이라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교활한 늙은이로 살다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을 뿐.
3.
전봉준의 마지막 장면은 의연하고 비장하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빈부와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운 장수로 한치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의연하다.
어쩌면 먼저 죽어간 동지들의 피흘림이 몸에서 떠나지 않아서 였을까.
그리하여 전봉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없이 살아온 방식대로 죽은 녹두에 대해 추모하고 기억하는 노래와 시들을 소개해 놓았다.
인상적이다.
비록 그가 죽임을 당했으나 인민들은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그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영웅으로 대접한다.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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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만세 2015-03-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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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
역사책에서 짧게 몇 줄로 설명되어 있었던 '전봉준'. 그렇지만 내게는 그의 존재감이 너무도 커 보였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실패한 농민 봉기 지도자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대부분은 농민군이 관군과 혹은 관군, 일본군과 투쟁한 연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좀 지루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왜 항상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둘로 나뉘게 되는건지 그리고 왜 대의를 보지 못하고 개개인의 이욕에 함몰되는건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전봉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농민운동 지도자들이 사형 당하고 수십만명의 농민군들이 전쟁터에서 죽어 갔다고 하니 참으로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10만원권 지폐가 발행된다면 '전봉준'이 그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도 멋진 분... 이 작은 땅에서도 위인들은 끊임없이 탄생한다. 그들의 피땀이 모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는 순간까지도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 녹두장군 전봉준, 너무나 너무나 존경스럽다. 전봉준 장군님 정말 정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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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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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전봉준, 혁명의 기록
갑오년이 모두 가기 전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두 권의 책 중 하나(다른 한권은 전봉준 평전)
120년 전의 상황은 놀랍게도 지금과 닮아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전봉준이 없다. 올해 내내 민중은 아팠고 죽었고 버려졌는데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민중들은 그저 쓸려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책 읽는 내내 고민이 됐다. 우리는 전봉준이 될 수 있을까? 전봉준을 만들수 있을까? 전봉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책은 짐짓 담담한 척 사료 중심으로 그의 인생과 당시 상황을 풀어내지만 뜨거운 불덩이 하나를 품고 있는 듯 하다. 그게 이이화 선생의 불덩이인지 그가 되살려낸 녹두의 불덩이인지는 분간되지 않으나 책을 다 읽어낸 후 그 불덩이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마저 뜨겁게 달군다. 그래서 되려 이땅에서 2014 갑오년을 살기 답답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좋았으나 연도의 오기는...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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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말한다 2014-12-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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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사후 120주년 그가 다시 필요한 시점
녹두장군 전봉준...
그가 이 세상에 나서 가난한 民의 편에서 봉기하여 세상을 바꿔보자 했던,
나라를 생각하여 일본에 맞서 무수한 피를 흘렸던 우리의 할아버지들의
영원한 지도자 전봉준의 혁명의 기록을 추적하는 글이다.
최근 사회는 구한말 120년전이나 사실 다를바가 없을 정도로 점점 막혀가고
무언가 답답해지는 것 같다.
그런 시점에서 전봉준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살려주고, 생각하게 해주는
이러한 책이 많아지는 것이 오늘날의 시점에 필요한 것 같다.
아직까지 전봉준의 삶에 대한 많은 이설이 있는데 전봉준 기념사업회장이기도 한
이이화 선생남의 시각으로 잘 풀어낸 수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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