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도전적인 접근 … ‘문명중국’의 논리에 깃든 허구성 비판 - 교수신문
젊고 도전적인 접근 … ‘문명중국’의 논리에 깃든 허구성 비판
최익현 기자
승인 2013.12.09 16:39
화제의 책_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조경란 지음 | 글항아리 | 336쪽 | 18,000원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덥기 일주일 전, 지적이면서 매혹적이고,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결여된 인식 부재의 틈까지 치고 나가는 논쟁적인 책이 출간됐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있는 조경란이 쓴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다.
중국의 현대사상과 동아시아 근대 이행기 사상 연쇄에 대해 강의해 온 저자의 주된 관심 분야는 현재의 중국 지식 지형 문제와 중국 자유주의 좌파 문제다. 지은 책으로는 『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 보편공동체를 위하여』(2008),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2009) 등이 있다. 최근 발표한 주요 논문에는 「현대 중국 민족주의 비판: 동아시아 인식을 중심으로」, 「현대 중국의 유학 부흥과 ‘문명제국’의 재구축: 국가·유학·지식인」, 「중국에서 신좌파와 비판적 지식인의 조건」 등이 있다. 물론 이러한 논문의 성과는 이번 신작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崇中과 嫌中을 넘어 硏中과 批中 제기
조경란 교수의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세 가지 점 때문이다. 첫째는 그 스스로 崇中과 嫌中을 넘어 硏中과 批中을 제기하면서 구체적 분석 작업을 내놓았다는 것. 둘째는 이 구체적 작업에서 그가 취한 인문학적 비판과 평가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셋째는 현대 중국을 이끌어나가는 문제적 지식인을 유형화해 한 눈에 이들을 파악할 수 있게끔 ‘지식인 지도’를 그려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은 중국의 미래를 둘러싸고 이해 방식을 달리하고 있는 작금의 중국 지식계에 대한 한국의 한 중국 연구자의 입장 표명이며, ‘또 하나의 도전’이다. 단순한 입장 표명이 아니라 21세기 중국 지식 지형에 대한 나름의 인문학적 비판과 평가 그리고 전망을 담고 있다.” 물론 이 지적 도전 과정에서 가치중립성, 일종의 학문적 균형감각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조반니 아리기가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조심스럽게 읽어낸 바 있듯, 세계의 시선은 중국의 ‘屈起’를 놓고 선망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지식인들은 이러한 중국의 ‘굴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조 교수는 “현재 중국 지식계는 굴기의 빛과 그늘의 어느 측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그 입장이 명확히 갈리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어떤 권력이든 지식인들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중국 굴기가 지니는 빛의 측면에 주목하는 이들은 ‘중국모델론’과 ‘유교중국’ 구상에 여념이 없는 지식인들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상 유파는 신좌파와 대륙 신유가다. 대표 주자는 간양(甘陽)이며 그가 내세우는 게 바로 ‘대중화문명―국가’ 개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민족―국가에 대비되는 문명―국가가 과연 무슨 의미인가를 따지면서, 이 개념이 인문학적 통찰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잘 설명하지 못하면 한갓 국가와 ‘공모’한 정치적 헤게모니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던진다. “대안을 말하지 않고 문명과 천하의 논리를 중국의 특수성과 연결시켜 전가의 보도인 듯 반복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국가가 처한 합법성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전략의 한 차원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의 다양한 문제를 은폐해주는 기능을 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반면 중국 굴기의 빛을 강조하는 이들과 달리 그늘에 주목하는 이들은 중국모델론과 같은 대안론에 ‘강한 저항감’을 표시한다. 저자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중국모델론과 유교중국을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국가와 유착돼 있다고 보며, 이러한 주류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주로 자유주의 좌파(중도좌파)와 사회민주주의파에 속하는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장 나쁜 사회주의와 가장 나쁜 자본주의의 악성 접목”에 있다고 본다. 친후이(秦暉)를 주목할 수 있다. 친후이는 이런 현실에서 지식인들이 중국모델로과 같은 거창한 미래 구상보다는 그 이전에 인민의 기본권이 제약당하고 있는 것에 대응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인문학적 지식인’이란 질문의 힘
이렇게 중국 굴기의 빛과 그늘을 주목하는 중국 지식인들을 꼼꼼히 읽어내는 저자의 접근 태도에서 ‘연중’, ‘비중’의 학문적 맥락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접근에서 저자가 동원하고 있는 ‘인문학적 비판과 평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 굴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중국 문명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평하는 대목을 보자. 도식화하면 ‘낙관론’은 ‘유럽적 보편주의’ 또는 ‘미국적 보편주의’에 대한 대안과 연결된다. 반면 비관론은 중국이 경제성장의 대가로 지불한 부작용의 가공할 측면에 좀 더 주목한다. 다음 대목도 그렇다. “다시 문명의 문제로 돌아와서, 깨어난 노예가 노예의 주인이 되는 길을 거부한다는 선택(쑨거), 중국은 이제 이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이런 성격의 고민이 있어야만 문명―국가를 통한 민족―국가의 극복을 운위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루쉰(魯迅)을 호명해낸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루쉰은 어떤 문명이든 현실에 전개됐을 때 자기배반적 성찰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선각자인 狂人의 눈을 통해 비판적으로 읽어낸 ‘인문학적 지식인’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인문학적 지식인이라면 지금 중국에서 이런 ‘루쉰 식의 좌파의식’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이것이 중국사회에서 기각돼가는 것에 격렬하게 저항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중국에서는 루쉰 지우기가 한창이다. 아니, 루쉰뿐 아니라 1919년 5·4운동 이후 사회주의 건설기까지 진행됐던 중국 지성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이성적 고뇌의 모든 사상 흐름을 차단하려는 무서운 기운이 맴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루쉰을 호명해내는 컨텍스트인데, 그것은 ‘문명을 대하는 태도’로 표현된다. “루쉰 식의 문명의 재해석이란, 한 문명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나 다른 문명에 대한 전적인 긍정이 아닌, 모든 문명에 대해 분석적이고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그런 태도를 의미한다.” 저자가 오늘 중국 지식인의 사유와 그 작동방식을 추적하는 것도, 이러한 문명에 대한 태도를 읽어냄으로써, 이것이 가져올 새로운 ‘모더니티’를 응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사유 방식에 근거한 ‘새로운 모더니티’ 그리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곧 이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보편적 보편주의’ 또한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뤄질 수 있을까?”
저자가 던진 이 질문의 응답 가능성과는 별도로 그가 제시한 ‘연중’과 ‘비중’,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도표 참조),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방법은 근래 우리 학계가 거둔 진지한 성과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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