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생태적 전환의 전위! 생태학교와 생태마을
– 웹진 「대산농촌문화」
2019 05 by 김유익
글·사진 김유익
새로운 생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치시 자연마을의 유기농 농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기다리던 제비 대신, 세기말적 풍경을 선사하는 고농도 미세먼지만 중국에서 날아왔다고 원망들이 자자하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자체적으로 미세먼지 배출량을 40% 이상 줄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만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람이 불지 않아 쌓인 오염물질에 기인한 일시적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무조건 남 탓하고 보는 확증편향이거나, 증가하는 경유 자동차처럼 자체 오염원의 영향일 것이라는 과학적 추론과 합리적인 조언들도 있다. 그런데, 중국 공기가 정말 개선되기는 한 건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 1년 이상 그곳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필자는, 최근 출장차 베이징에 자주 방문했는데, 예전에는 연중 손꼽을만한 푸른 하늘을 매번 마주하며, 감격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거 실화냐?”
슈미 생태학교. 앞뜰과 뒤뜰이 달린 두 동의 작은 농가를 개조해서 학교 건물과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상향식 풀뿌리 움직임,
생태마을과 공동체
중국 정부가 ‘생태문명건설’이라는 프로파간다를 국가전략의 수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12년이니, 이런 노력이 허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거대한 권위주의 제국과, 다양성이 요체인 생태문명이라는 단어가 함께하는 것이 형용모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어서 ‘향촌진흥’이라는 지금 가장 중요한, 중국 국가전략의 실행 계획을 들여다보자. 소농·가족농 지원, 생태농업의 장려, 농촌의 생태자원과 전통문화자원의 개발을 통한 농촌융복합산업 발전이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데, 어째 미덥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이와 같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자본 투하와 상명하달식 관제사업들이 과연 실효성을 지니는가? 이런 회의적인 시각에 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민간 차원의 상향식自下而上, bottom-up 풀뿌리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거대한 전환의 진정한 전위가 되어 줄, 생태마을과 공동체, 그리고 생태학교 운동이 그것이다.
지난 2~3년 혹은 길게 잡아 10년 전부터, 중국 대도시 근교와 생태환경이 좋은 농촌지역에 이런 거점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또 이런 마을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배경과 별개로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 생태농업에 종사하기 위해 유기농이나 자연농 농장을 만드는 귀농자.
- 자급자족을 위한 작은 텃밭 가꾸기를 즐기는 것은 기본이고,
- 일본에서 만들어진 반농반X 개념에도 익숙한 젊은이들.
- 채식 수행을 겸한 마음 살리기, 요가나 선禪명상에 관심이 많은 이들.
- 아이들을 제도권 교육에 맡기고 싶지 않아, 대안학교를 찾거나 직접 세우려는 이들.
- 자신과 지구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소비를 줄이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기쁨을 늘리며, 서로 돕고 나누는 살림을 기획하는 이들.
- 이러한 삶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학교를 만들고, 또 마을을 학교로 삼는 이들.
지난 12월 대산해외농업연수 사전답사팀 일정 중 광동廣東성 중산中山시 치시旗溪 자연마을의 농장과 슈미舒米생태학교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마을에는 토박이 주민과 함께, 외부에서 이주해온 10여 가구,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작년에 개교한 생태학교와 아이들을 위한 식농교육을 주요사업 목표로 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유기농농장이 중심이 된 새로운 생태공동체를 천천히 형성하고 있다.
션징마을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재학했던 황포군관학교의 건물이 남아있는 오래된 마을이다.션징의 티엔유엔방田園邦자연학교에서 체험을 하고 있는 가족. ⓒ대산농촌재단
옥토경영학과와 슈미 생태학교
이 학교의 공동설립자인 하오관후이郝管輝(36) 씨는 10여 년 넘게 광저우廣州에서 소비자와 얼굴을 아는 생산자를 잇는 CSA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풀뿌리 유기농 제품 판매 사회적기업, 옥토공방沃土工坊의 CEO이다. 그는 2003년 허베이河北성에 개교했던 신향촌건설운동의 기지, 옌양추농민학교에 운영진으로 참여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귀농자·소농들의 생태농업을 지원하는 NGO 옥토공방에 참여하여 성공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진화시켰다. 그의 다음 목표가 학교를 설립하여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어서 지금은 베이징 교외의 과수원에 있는 옥토농경학교와 중산의 슈미학교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정부의 자본 투하와 상명하달식 관제사업들이 과연 실효성을 지니는가? 이런 회의적인 시각에 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민간 차원의 상향식 풀뿌리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거대한 전환의 진정한 전위가 되어 줄, 생태마을과 공동체, 그리고 생태학교 운동이 그것이다.
슈미학교의 공동설립자인 20대 청년 량잉梁迎 씨는 세계적 생태학교인 영국 슈마허 컬리지 출신, 네 명의 중국인 졸업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다른 졸업생들과 의기투합하여, 작년에 중국을 방문했던 슈마허 컬리지의 설립자이자 생태영성운동가인 사티쉬 쿠마르 선생의 격려 속에 이 작은 학교를 설립했고, 학생 전원이 9주간 숙식하며 공동생활하는 ‘전환과정’을 개설했다.
이렇게 이곳 마을에는 예술가와 디자이너, 중의中醫, 교사와 농부, 술을 빚고 유기농 생산물을 가공·판매하려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 특히 예전 옥토공방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더욱 좋은 육아와 교육 환경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다
필자가 사는 광저우廣州의 션징深井마을처럼 도시에 더 가까이 위치한 반농반도半農半都 지역도 있다. 전설적 항일투사인 약산 김원봉 선생이 재학했던 황포군관학교의 건물이 남아있기도 한 700년 역사의 오래된 마을이라 행정구역상으로는 도시에 속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농지가 남아 있다. 12년 전 이곳에 들어선 발도르프학교(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도 잘 알려진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기반한 대안학교 체제)덕에, 자연과 농경생활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와 교사, 예술가 청년들이 느슨한 커뮤니티를 이루고 사는 곳이다.
중국의 대안교육운동은 ‘자연학교’라는 명칭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유기농 농장은 방학, 절기별, 혹은 주말 자연학교 프로그램을 자체 운영하거나, 교육단체와 함께 협력하고 있다. 경제적 수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유기농업을 선택한 농민들이 많다 보니,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또 한편으로는 유기농 시장의 확대가 생각보다 더딘 탓에 대부분의 농장이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상대적으로도 수익성이 높은 이런 활동을 적절히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앞서 언급한 향촌진흥 정책이 생태자원과 향촌전통문화를 결합한 다양한 농촌융복합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들과 교사가 함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 기반이 잘 보존된 마을을 찾아 들어가 공동체를 꾸린다. 배낭여행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윈난云南성에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가족 전체가 이주해 오거나, 아버지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와 어머니만 이주해 온 기러기 가족들도 많다.
대만 리런의 본사 매장. ⓒ대산농촌재단녹생방주 농장에서 아이들과 담소를 나누는 한국인 자원봉사자 교사.
종교활동 엄격한 통제,
공동체를 만드는 종교인
종교 활동에 엄격한 통제를 하는 중국이지만, 이러한 공동체를 가장 먼저 만든 사람 중에는 종교인들이 많다. 특히 생태농업은 채식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신도들이나, 도법자연道法自然을 좌우명으로 삼는 도교 수행자들에게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선택지이다.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태국의 산티 아속Santi Asoke 공동체를 떠올릴 수도 있고, 한국 실상사의 인드라망 공동체를 연상해도 된다. 중화권에서는 특히 대만이 이런 흐름을 영도하고 있다. 지난해 대산농촌재단 답사팀은 자연과 생명을 귀히 여기는 불교사상에 기반하여 유기농 농장을 운영할 뿐 아니라, 대만 전역에서 유기농 농산물과 가공품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리런里仁의 본사를 방문했다. 대륙의 불교 수행자들도 이러한 가르침과 실천을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 상당수의 생태농업 종사자 및 신향촌건설운동 참여자들은 가정교회의 신자이기도 한데, 농장을 공동체적 삶과 교육의 터전으로 삼고자 한다. 이를테면 10년째 허난河南성 농촌에서 녹생방주라는 농장을 운영하는 메이홍웨이梅紅偉(40), 먀오지우링苗九玲(42) 부부는 고아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탈학교 청소년들을 위탁받아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키우며, 농장에서의 자립 생활을 통해 치유와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신농회神農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는데, 한국 생태농업 역사의 산 증인인 정농회正農會와도 이미 교류를 하고 있다.
중국의 대안교육운동은 ‘자연학교’라는 명칭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유기농 농장은 방학, 절기별, 혹은 주말 자연학교 프로그램을 자체 운영하거나, 교육단체와 함께 협력하고 있다. 경제적 수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유기농업을 선택한 농민들이 많다 보니,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또 한편으로는 유기농 시장의 확대가 생각보다 더딘 탓에 대부분의 농장이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상대적으로도 수익성이 높은 이런 활동을 적절히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밖에도 중국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 중 한 곳인 항저우杭州 근교에는 불교와 도덕경에 기반하여 자연농법을 보급하는 천도호千島湖 자연농 공동체라든지, 이미 원주민이 모두 떠난 산촌에 집단으로 이주하여 생태마을을 만들고, 국제 에코빌리지 네트워크 GENGlobal Ecovillage Network나 미국의 저명한 생태신학자 존 콥John Cobb 교수가 이끄는 과정철학연구센터와 협력해 생태학교를 운영하는 삼생곡三生谷, Sunshine valley마을 등이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운영되어 온 안정된 공동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민간의 사회적 활동에 통제가 있는 중국의 특성상, 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주제와 레토릭(화술)을 개발하는 경우에만 활동을 유지하거나 확대할 수 있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활동과 생각의 폭이 좁아지면서 전위성이 떨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면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삶의 기쁨을 놓치지 않으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들의 숨은 노력이 있기에 땅 밑에서 변화의 싹이 움터 오르며, 대륙은 ‘생태문명건설’이라는 거대한 전환의 지각 변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필자 김유익: 화&동 청춘초당和&同 青春草堂 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 방식을 가진 이들을 연결해주는 중매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인생의 모토는 “시시한 일을 즐겁게 오래 하며 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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