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9

이재명 "美는 점령군" "日 분단됐어야" 반미·반일 논쟁 불붙였다 Park Yuha Gilsang Lee


이재명 "美는 점령군" "日 분단됐어야" 반미·반일 논쟁 불붙였다
중앙일보 2021.07.04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을 방문, 이육사 시인 외동딸 이옥비 여사와 손을 잡은 채 대화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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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이재명발 미 점령군’ 논란이 뜨겁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침략 국가인 일본이 분단됐어야 한다”고도 했다. 선거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이른바 ‘반미ㆍ반일 몰이’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발단은 이 지사가 지난 1일 경북 안동 이육사 문화관을 찾아 한 발언이었다. 그는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 친일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소련 해방군" 발언 맞물려 파장
비판엔 "美도 인정. 맥아더 포고 봐라"
기술적으로 맞지만 "조선 독립" 전제
"침략국가가 분할점령됐어야 하는데"
과거에도 日 상대로 같은 발언
"대한민국 정통성 흔드는 포퓰리즘" 우려

이에 비판이 제기되자 이 지사 측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캠프 대변인단은 “해당 발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방공간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한 것”이라며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또 “미군 스스로도 ‘점령군’이라고 표현했으며, 미군은 한반도를 일본의 피해 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일부로 취급했다”며 “맥아더 포고령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발언과 맞물리며 파장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맥아더 포고문.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캡처이 지사 측이 언급한 맥아더 포고령, 즉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관 포고’ 제1호(1945년 9월9일)에서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고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 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한다”는 전제도 담고 있다. 기술적으로 점령은 맞지만 목적이 해방과 독립이고, 그 주체를 조선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포고령 이후 45년 10월 13일 맥아더에게 내려진 ‘한국의 미군 점령 지역 내 민간 행정에 대한 기본 지령’은 일본의 사회ㆍ경제ㆍ재정적 통제로부터 한국의 완전한 자유 획득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점령군’이나 ‘합작’ 같은 단어들이 갖는 부정적 함의를 고려할 때 이를 ‘깨끗하지 못한 나라의 출발’로까지 연결한 이 지사의 발언은 왜곡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지사는 앞서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침략 국가인 일본이 분단됐어야 되는데, 일본에 침략당한 피해국가인 우리가 왜 분단을 당합니까?”라고 말했다. 한ㆍ일관계 및 남북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반도 분단 현실을 언급하며 나온 발언이다.
사실 이 지사가 ‘일본 분단’을 말한 건 처음도 아니다. 2018년 3ㆍ1절 행사에서 그는 “침략 국가가 그 대가로 분할 점령 당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었지만, 대신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 점령됐다”며 이를 6ㆍ25 전쟁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해방 직후 미ㆍ소 분할점령을 뜻하는 것으로, 미 점령군 발언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이 지사의 발언은 우리가 북한의 남침을 방어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일원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를 통해 선진국의 도정을 착실히 걸어온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나 마찬가지”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흔들려는 일종의 역사 포퓰리즘 선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외교가에서는 다른 선거도 아닌 대선에서 유력 후보가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을 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차기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들의 언행은 상대국들도 주시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일례로 야권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정치 선언을 한 데 대해서도 일본은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장소 선택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만큼 유력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요 국가들에겐 관심의 대상이란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야권 일각에서 주한미군 철수로 즉자적으로 연결해 논쟁을 더 키우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인사는 “이 지사의 발언은 외교적 사안을 이념의 영역에서 다루려는 것으로, 외교적 파급력을 신경 쓰기보다는 선명성 부각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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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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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이니 해방군이니 하는 논란이 아직껏 이어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양쪽 다 남성중심사적 시각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양쪽 다 점령군일 뿐. 
차이가 있다면 북한에선 소련군이 일본인 여성을 강간했고(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인 3만명 가까이를 방치해 기아와 질병으로 죽게 만들었고)남한에선 미군이 조선인 여성을 강간했다.(그리고 주둔군이 되어 ‘위안부’를 요구했다). 물론 그런 혼란을 틈타 조선인 남성들 역시 일본인 여성들을 강간했다. 자신의 개인으로서의 폭력을 민족적복수로 정당화하면서. 

역사란 누구의 시각으로 보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전에도 썼지만 역사를 당위로 인식하면 언제까지고 ‘이루지 못한 이상향’에 집착하게 된다. 심지어 그 유토피아건설을 위해 제거와 말살에 나서게 된다. 게르만민족만이 존재하는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잉여’로 인식된 나머지 사람들의 제거에 나섰던 나치는 규모가 컸을 뿐 크고 작은 비슷한 시도는 시공간을 초월해 볼 수 있다. 이재명의 “친일파/기득권”발언이 위험한 건,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제거 욕망을 드러내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에게는 “일본이 분단되어야 했는데 왜 우리가?!”라는 피해자의식이 가득하다. 문제는 그런 피해자의식이, 공동체의 화합보다 자신의 인식만을 정의로 생각하면서 권력쟁취에 골몰했던 해방직후 역사와 심리를 망각시키고, 그 망각에 기대어 오늘 다시 반복/유지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선진국이란 가치를 창출하고 전파가능한 나라다. 나는 식민지와 냉전을 거친 한국이, 피해자의식을 넘어서서 그 체험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배와 억압과 말살욕망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정치한 고찰과 사회적 합의를 앞장서서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얻은 고찰을 세계를 향해서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체험은 보편적 ‘가치’로서 승화될 수 있고, 정신적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각자가 겪은 개인의 아픔을 넘어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이해하고 돕고, 그러면서도 그 아픔을 만든 구조를 보는 것으로 함께 넘어설 수 있도록 한다면, 그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어느 한쪽만의 역사관을 강조하면서 적개심을 건드려 추종자를 모으려 하는 이가 리더가 되는 건 지극히 위험하다. 
역사를 “반성적으로” 보는 시각을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자부심과 수치심 중 어느 한쪽에 사로잡힐 때 , 과도한  열등의식과 (열등감을 뒤집은)우월의식이 창궐한다. 그리고 수십년전 마인드로 재무장하고  역사를 반복하려 한다. 
지금 필요한 일은 무엇보다, 그런 구조를 보는 일.
55 comments
Park Yuha
https://mnews.joins.com/amparticle/24097550
이재명 "美는 점령군" "日 분단됐어야" 반미·반일 논쟁 불붙였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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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5 h
전봉준
아.. 좋은 글입니다. 박수 세번 치고 가네요.
 · Reply · 5 h
Park Yuha
많이 공감가는 글.
“현재 대한민국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75년 전에 점령군으로 나타났던 미군이다. 이들이 5년 후에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도왔다. 이들이 주둔해 안보를 책임진 덕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게 역사적 사실임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왔었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이는 되새겨야 할 역사,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이지 숨기거나 외면하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역사는 아니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비극도 희극도, 수치도 영광도 모두 함께 되새기고 책임져야 할 우리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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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Young Oh
명문입니다. 선생님. 제 생각도 바로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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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오진영 반가워요. 페북여왕님께 칭찬받았으니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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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an Kim
복수나 승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보다 뒤쳐져 있음을 드러내는 몇 가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광복 '직후'의 건국과 청산 작업에 대해 여러 모로 부족했다는 생각을 저도 하고는 있지만, 이미 70년이 되어 가는 지난 날에 대해 광복 직후와 다름 없는 정서를 대입하고 조장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성숙을 굳이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포기함으로써 누군가의 배를 채우는 거라면 더욱 못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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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세한 당시 상황을 보면 볼수록 안타까워요. 세월이 지났으니 총체적으로 봐야 하는데, 과거인물 속에서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으려 하니 그게 안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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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a Park
개인의 욕망을 민족,국가를 명분으로 내세워 발화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죠. 그나저나 이번 대선은 참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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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Area Park 대선은 언제나 어렵지 않았나요.^^ 아무튼 중요한 대선이 될 듯.
 · Reply · 4 h · Edited
Area Park
박유하 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제가 뽑은 인물들인데...이번에는 제일 나쁜 악인빼고 차선을 선택하는 선거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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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Area Park 선배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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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a Park
김준영 같이 오시오
 · Reply · 3 h
김준영
Area Park 정권 교체가 우선이지 사람은 생각치 않기로 했습니다. 참..제가 이런 소리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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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日분단되었어야’라는 말도 했나보군요. 정말 끔찍한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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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치관 이 얘긴 많이 회자되던 얘기니까요. 비판없이 수용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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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anti Quem
잠시 쉬시는 동안 무슨 비급이라고 익히셨나요. 육십갑자의 내공이 더해지신듯... 이런 명문을... ㅎㅎ 죄송 도망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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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Ignoranti Quem ㅎ 그런가요. 쉰 보람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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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anti Quem
박유하 저처럼 삐딱한 인간에게조차 아쉬운 부분이 한 터럭도 없는 글을 만나본게 얼마만인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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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anti Quem
박유하 아참... 보람은 제것입니다. 기다린 보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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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Ignoranti Quem 과한 칭찬이지만 고맙게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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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nam Lim
매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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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YoonYoung
간과했던 점들을 지적해 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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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soon Hwang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미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가 폭력배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님 언제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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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정말 글 명문입니다. 전쟁, 점령군, 냉혹한 승부의 결과로 피해를 보는 건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이죠. 수 천년 역사를 보면 전쟁과정에서의 폭력, 살인, 강간은 일상이었습니다. 전쟁은 맥주마시며 보는 축구경기가 아니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겁니다. 내가 죽는데 무슨 인권이?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냉혹한 그런 현실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베트남전 파병때 민간인 학살 비난하던 인권좋아하시는 분들? 막상 그 현장.. 어디서 총알이 날라올지도 몰라 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인권을 주장할까요? ㅎㅎ
 · Reply · 4 h · Edited
Park Yuha
이병권 제 글을 잘못 이해하신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없어야 하고 전쟁 전 단계인 갈등과
반목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자면, 피치못할 경우가 아니어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자기 안의 폭력성을 내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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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박유하 네. 저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교수님 글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요즘 벌어지는 일부 인권운운하는 분들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교수님 진의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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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yung Kim
피해자의식 또는 피해망상은 우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세 또는 대처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이제 그냥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않는 한 진정한 식민청산은 요원한 거겠죠.
우리힘으로 해방되지 못한 우리의 현대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역사인식의 기초를 쌓아야 하는데...
 · Reply · 4 h
Park Yuha
Dohyung Kim 위안부문제 경우도 남성들의 혐오와 그걸 뒤집은 우월의식이 크게 작용한 듯 합니다. 더 직접적으로는 90년대 정치적 상황이 관여되기도 했고요. 후자에 관해 조만간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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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Park
 · Reply · 4 h
유선주
구조와 문화를 봐야죠.
 · Reply · 4 h
유선주
각자가 겪은 개인의 아픔을 넘어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이해하고 돕고, 그러면서도 그 아픔을 만든 구조를 보는 것으로 함께 넘어설 수 있도록 한다면, 그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어느 한쪽만의 역사관을 강조하면서 적개심을 건드려 추종자를 모으려 하는 이가 리더가 되는 건 지극히 위험하다.
 · Reply · 4 h
유선주
역사를 “반성적으로” 보는 시각을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자부심과 수치심 중 어느 한쪽에 사로잡힐 때 , 과도한 열등의식과 (열등감을 뒤집은)우월의식이 창궐한다.
 · Reply · 4 h
Park Eunsik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eply · 4 h
Young-Keun Park
May be an image of one or more people, flower and text that says "점령군이니 해방군이니 하는 논란이 아직껏 이어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양쪽 다 남성중심사적 시각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양쪽 다 점령군일 뿐. 차이가 있다면 북한에선 소련군이 일본인 여성을 강간했고( 연장선상에서 일본인 3만명 가까이를 방치해 기아와 질병으로 죽게 만들었고)남한에선 미군이 조선인 여성을 강간했다. (그리고 주둔군이 되어 '위안부'를 요구했다). 물론 그런 혼란을 틈타 조선인 남성들 역시 일본인 여성들을 강간했다. 자신의 개인으로서의 폭력을 민족적복수로 정당화하면서."
 · Reply · 4 h
Young-Keun Park
넓은 시야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Reply · 4 h
유선주
조직이익수호 운운하는 자는 리더 자리에 앉으면 위험하네요.
 · Reply · 4 h
Chee-Kwan Kim
‘소녀’상에 집착하는 것도 동일한 사고의 연장이지요.
 · Reply · 3 h
Gilsang Lee
박교수님께서 공감해 주시니 두배 뿌듯합니다.
 · Reply · 3 h
이주원
1.4후퇴때 북한에서 피난 내려온 부모님은 제 어린시절에 나쁜사람들에게 로스케 같다고 하였습니다.
해방군과 점령군중 어떤측이 더 민중에게 나쁜짓을 했는지 자국에 이로운 일을 누가 하였는지는 왜면하고
단어 한두개만으로
역사를 편의롭게 재단하는 반편이 먹물들을 보면 손가락질을 않할 수가 없습니다.
해방군을 좋아하는 이재명,홍준표같은 분들은 엉터리로 건국된 이 나라에서는 창피할터이니 더이상
사람들을 흑세무민하지 말고 해방군이 진주하여 제대로 설립된 북한으로가서 자존심 세우고 살았으면 합니다.
 · Reply · 3 h
Lee Doosoo
멋져보일려고 하는 거겠지요. 몸은 비쩍해졌지만 정신은 올통볼통하다는 자기만의 환상을 그리며...예전 농민가를 부르면 좀 있어뵈는 애로 봐줬잖아요.
별 의미 없어 보입니다. 걍 관심 좀 끌고 싶은 정치인의 야망? 뭐 "의식있네" 이런 칭찬 좀 듣고 싶은 甘え정도 아닐까요. 꽤 성공한 듯한 회심의 미소가 보이는 듯도 하고...
 · Reply · 2 h
한지아
너무 명문이라 감사합니다.
 · Reply · 1 h
심상헌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공유할께요…

세상의 많은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1945년 9월 8일 오전 인천에 상륙하는 미 육군과 조선인 사이의 오해에서 시작된 비극은 75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반복되고 있다. 75년 전엔 미국과 한국 사이의 오해였다면, 지금은 대한민국 사람들 사이의 오해라는 것이 차이면 차이다. 오해의 당사자는 변했지만 비극의 양과 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점령군을 점령군이라 인식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그렇게 부르지 않으려 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선언, 9월 2일 항복문서 서명에 이어 9월 7일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미 육군 태평양 사령관 이름으로 '조선주민에 포고함'이라는 제목의 포고령 제1호를 발표한다. 포고령 제1조는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거해 본관 휘하의 군대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이라고 명기했다. 같은 날 발표된 포고령 제2호는 "점령군의 보존을 도모하고 점령지역의 공중치안,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점령군의 목적이며 이를 위반하거나 "적대 행위를 하는 자"는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할 것을 준엄하게 알렸다.

점령군, 점령지


▲ 미 육군 24군단 선발대가 서울에 입성하자 시민들이환영하고 있다(1945. 9.)
ⓒ NARA/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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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스스로 자신들을 점령군(occuppying force)으로, 자신들이 지배할 곳을 점령지(occupied area)로 불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마지막 3년 동안 적이었던 일본의 지배 지역 중 하나인 조선 땅에 들어오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인식이었다. 비록 항복은 이뤄졌으나 조선 땅에는 여전히 일본군과 경찰이 존재했고, 일본인 공무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듬해 2월까지 일본인들 중 일부가 미군정을 돕기 위해 남아 있었던 것도, 해방된 나라의 관보가 여전히 패전국 일본어로 발행된 것 또한 미국의 결정이었다.


미 24군은 인천 상륙에 앞서서 어떤 군중집회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렸다. 그들에게 순수 일본인이나 일본의 지배 아래 일본의 신민으로 연합국에 대항했던 조선인들은, 적대국의 일부였다. 비록 조선인들 중 일본에 대항하던 저항단체나 임시정부가 있었지만 그들은 이들의 존재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조선 사람들의 오해였다. 조선 사람들은 비록 해방 직전 몇 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 요청을 지속적으로 거부했던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을 지속적으로 반대했던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개항 이후 늘 조선보다는 일본을 중요시하던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생각했다. 미군 스스로는 점령군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공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이들을 해방군으로 여겼다.


1945년 9월 8일 오전 8시 30분 존 하지 미국 제10군 제24군단이 상륙하는 인천에 환영 인파가 몰려들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최근 목격한 태극기부대의 모습이었다. 환영 인파 중 일부가 당시 미국의 위탁으로 한반도 남쪽의 치안을 맞고 있던 일본 군경이 설정해 놓은 경계선을 넘었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2명의 조선인이 사망하고 9명이 총상을 입었다. 해방된 지 23일이 지난 시점에서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진 비극이었다.

미군은 일본군의 발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채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로 진군했고, 이튿날 하지장군은 총독부 건물에 걸려 있던 일장기를 성조기로 바꾸어 다는 동시에 조선반도 남쪽에 대한 미국 군대에 의한 직접통치(군정) 실시를 발표했다.

유식과 무식


▲ 1일 대선출마 선언 후 고향인 경북 안동을 방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이육사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가 선물한 이육사 시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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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은 스스로를 점령군이라 부르고, 그렇게 행동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해방군이라 오해하고 환영했던 75년 전의 비극은 당시에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당시에는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상호 오해를 했다면 지금은 우리 혼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차이이기는 하다. 반복되는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몇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1945년 종전과 동시에 남쪽과 북쪽에 들어온 미군도 소련군도 '점령군'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미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보다는 미국과 소련에 의한 일정 기간의 군사적 지배를 합의하고 들어왔다는 측면에서, 스스로를 점령군이라고 솔직하게 부르든, 해방군이라고 미화화든, 점령군이란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명칭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점령군이었다는 것은 이후에 이들이 남과 북에서 취한 행동을 보면 명약관화하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신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미, 친소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측면에서 이들 두 나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본질에 충실했다. 세상에 더 나은 제국주의, 더 나쁜 제국주의는 없다. 힘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타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주의는 그냥 제국주의일 뿐 거기에 선한 제국주의와 악한 제국주의의 구분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피식민지 민족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 점령 뒤 이들 군대의 성격이 점령군에서 주둔군으로의 전환했다는 것(미국)과 점령군에서 군사자문단(소련)으로 변환했다는 것 사이에도 큰 차이는 없다. 미국은 섣부른 군대 철수로 야기한 한국전쟁을 겪으며 주둔을 장기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고, 소련은 미국의 방심을 틈타 시도한 한반도 공산화 시도가 실패한 뒤 중국 등 경쟁국 등장으로 군사적 영향을 유보해 왔다는 정도의 차이뿐이다. 침략을 당한 대한민국은 전시에 대비해 작전권을 포기한 반면,
침략을 감행한 북한은 여전히 전쟁에 대비해 전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셋째, 역사 이야기에서 관점의 차이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무식이 존중받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사실과 해석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무식과 유식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인정해야 할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유식이라면, 인정해야 할 사실에 눈감은 채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무식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즉각적인 독립을 원하던 민족의 의사를 무시하고 한반도를 분할해 남과 북에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이 점령군이었던 것은 그들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당시 모든 문서에 표기된 역사적 사실 기록이다. 이렇게 들어온 점령군 미군과 소련군이 이후에 남과 북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이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은 최대한 인정돼야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는 것은 존경받지 못할 무식일 뿐이다.

안타까운 착각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찬 회동을 위해 7일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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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소련군의 한반도 분할 점령을 해방으로 보는 그릇된 시각을 만들어낸 것은 종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 이타적 국가라는 착각, 이들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게 불가피했다는 착각, 이들의 점령이 선의의 결과였다는 남쪽의 친미 정치인들-북쪽의 친소 정치인들이 갖고 있던 착각의 결과였다. 미국과 소련은 이미 2차 세계대전 중에 이뤄진 몇 차례의 회담에서 한반도에 대한 즉각적인 독립을 인정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으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국가들이다.

잘 알려진 대로 1943년의 카이로회담에서 선언한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독립시키겠다는 약속 자체가 즉각적인 독립의 불가함을 선언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능한 한 빠른 시일에" 혹은 "즉시" 독립을 시킨다는 착한 뜻으로 오해한 것이 당시 한국의 정치인들이었다. 좌와 우의 구분이 없었다. 사실에 기반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희망에 매달린 확증편향이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한 남과 북 분할 점령 의지를 명확하게 선언했던 1945년 2월 얄타회담 이전에도 분할 점령은 이미 정해진 방향이었다. 전쟁 중에 전후 패전국 지배 영토에 대한 통치 방향을 준비하기 위해 미국에서 만든 다양한 비밀 정책 보고서들에는 분할 점령의 의도가 이미 명료히 드러나 있었다. 그 한 예가 미국의 대외관계심의위(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수행한 한국 정책보고서 'The Problem of Constituting an Independent Political Regime in Korea(한국의 독립 정치 체제 구축 문제)'이다.

1944년 5월 22일 자로 발표한 이 보고서는 미국 등 연합국이 종전 1년 3개월 전인 당시 일본의 조기 항복 가능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에는 명확하게 "한국에 어떤 형태의 독립정부도 세워져서는 안 되며, 한반도는 전후 일본 관리의 목적을 위해 군사지대화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점령군의 구성에 관해서 이 보고서는 한 나라의 단독 점령은 연합국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불가능하고, 연합국 군대의 공동 지배는 연합국 간의 협조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예상되고,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두 나라에 의한 분할 점령이라는 것과 소련과의 분할 점령이 미국의 국익이나 조선인들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정책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미 점령을 준비 중이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수년간 자료를 찾아 연구했던 필자 경험에 의하면, 이 보고서 이외에도 미국은 종전 훨씬 이전부터 점령 예정지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한국도 당연히 대상 지역 중 하나였다. 대표적 문서로써 카이로회담 전인 1943년 6월 전쟁성 일반참모부 군정보처에서 'Survey of Korea'라는 한국 통치 준비자료를 만들었고,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에는 한국에 관한 육군과 해군 공동종합보고서 '한반도의 군사적, 전술적 자료를 담은 정보조사서(JANIS 75)'를 완성해 점령 준비를 체계적으로 한 바 있었다.

당시 한국에 들어온 미군 장교와 군정 관계자들은 이들 문서로 군정 훈련을 받은 후에 입국을 했다. 이들 문서에서는 공통적으로 한국인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 현실은 안정적이어서 충분히 자치능력이 있다는 점과 이들이 자치와 독립을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통치자들이나 외교전문가 집단은 즉각적인 자치나 독립의 부여는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36년간 제국주의 지배로 신음한 한국인들의 기대나 희망보다는 자국 이익을 위해 군사적 점령을 선택한 미국, 그 이익을 힘으로 관철하려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군정은 점령군이 펴는 통치 형태이지 해방군이 주는 시혜의 결과일 수는 없다. 두 번째 한국 주재 미군정 장관이던 러치가 당시 한국 언론인들과 한 기자회견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한국 기자에게 "세상에 민주적인 군정은 없다"고 대답한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군정에 민주주의를 기대하던 군정 당시의 한국 기자와, 점령군을 '해방군'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현 정치인들이 다르지 않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알고도 외면하고 싶은 심리가 동일한 것이다.

제대로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고 싶거나


▲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장에서 맥아더와 나란히 선 이승만 대통령(1948. 8. 15.).
ⓒ NARA(미국 국립문서보관청)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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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한민국 교과서나 언론에서 대한민국을 '중진국'이라고 표현했다. 없는 표현이지만 우리 스스로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작위적 표현이었다. 현실은 개발도상국이었지만 중진국이라고 칭하고 싶은 욕구가 크던 시절이었다. 그 욕구가 현실과 충돌하며 생긴 것이 1990년대 말 경제위기였다. 여러 해 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불렀고, 최근에는 국제기구(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긍정적 변화를 외면하거나, 그 의미를 폄훼하고자 하는 심리를 내보이는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있고, 이들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는 반복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75년 전 점령군을 해방군으로 착각한 무식함과 의존 심리가 비극적인 전쟁을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하게 했다. 지금도 한국 안에는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자랑하면서도, 독립국의 필요조건인 전시작전권의 부재를 당연한 것처럼 착각하는 무식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75년 전에 점령군으로 나타났던 미군이다. 이들이 5년 후에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도왔다. 이들이 주둔해 안보를 책임진 덕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게 역사적 사실임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왔었다는 것 또한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이는 되새겨야 할 역사,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이지 숨기거나 외면하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역사는 아니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비극도 희극도, 수치도 영광도 모두 함께 되새기고 책임져야 할 우리 역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길상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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