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이야기] 2009
김민기의 깊은 목소리
김민기가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예술 문화 훈장을 받게 된다면 청천벽력 같이 경악할 사람들이 많을 것인가?
'대중가요의 아인슈타인'이라 평가되고 있다곤 하지만, 반골 가수 밥 딜런(Bob Dylan)은 지난 1997년 12월 6일 미국 국무성 만찬에 이어 다음날의 백악관 리셉션에서 성악가 제시 노먼(Jessye Norman)과 함께 미국의 정평 있는 예술 문화 훈장(Kennedy Center Honors Award)을 받았고, 그 후 케네디 센터의 로열 박스에 앉아 자랑스럽게 그것을 목에 걸고 있었다.
나는 김민기를 얘기하려 할 때 두 사람이 생각난다. 한 사람은 김지하 시인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의 민중시인·가수 밥 딜런이다. 밥 딜런은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에 경도하여 그의 성(Zimmerman)까지 갈아버렸다.
“얼마나 많은 길을 인간은 걸어가야 하나”라고 묻는 밥 딜런에 대해 김민기는 "여러 갈래 길, 누가 말하나, 이 길뿐이라고 누가 말하나, 저 길뿐이라고” 하고 묻는다. 밥 딜런은 “바람 속에 그 해답이 있다”고 대답한다. 김민기는 "여러 갈래 길, 다시 만날 길. 죽기 전에라도 다시 만날 길, 죽은 후에라도 다시 만날 길"이라는 해답으로 해탈한다.
얼마나 많은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이 길뿐이라고 우기며 다른 길을 가는 뭇사람들을 함부로 매도하고 심판하고 유린했던가. 때문에 김민기의 노래 전체가 송두리째 금지되고 선량한 인간 김민기가 위험인물이 되는, 어두운 밤의 불행한 사회가 아니었던가.
결코 투사가 될 수 없는 김민기는 1970년대의 민중운동을 열었다는 김지하 시인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천성적으로 慈悲忍辱(자비인욕)의 歌人(가인)이었다.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는 김지하의 '서울 길'은 김민기의 '서울로 가는 길'에서 “좋은 약 구해 갖고 내 다시 올 때까지 집 앞의 느티나무 네 빛을 변치 마라.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로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비로워진다.
김민기의 노랫말에도 '새벽'이 자주 나온다. 늦잠꾸러기인 그가 새벽 타령을 하는 것은 새벽이 김지하의 시에서 처럼 긴 밤과의 결별이기 때문이다.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는 그 '작은 미소'가 그렇고,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의 '새벽 길'이 그렇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눈물겹도록 영성적이며 눈부시도록 우주적이다.
1994년 정월에 내놓은 김민기의 전집 CD에 재일 작가 김중명은 일본어로 이렇게 적어 놓고 있어 우리말로 옮겨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규가 아니라 속삭임이다.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는 김지하의 '서울 길'은 김민기의 '서울로 가는 길'에서 “좋은 약 구해 갖고 내 다시 올 때까지 집 앞의 느티나무 네 빛을 변치 마라.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로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비로워진다.
김민기의 노랫말에도 '새벽'이 자주 나온다. 늦잠꾸러기인 그가 새벽 타령을 하는 것은 새벽이 김지하의 시에서 처럼 긴 밤과의 결별이기 때문이다.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는 그 '작은 미소'가 그렇고,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의 '새벽 길'이 그렇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눈물겹도록 영성적이며 눈부시도록 우주적이다.
1994년 정월에 내놓은 김민기의 전집 CD에 재일 작가 김중명은 일본어로 이렇게 적어 놓고 있어 우리말로 옮겨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규가 아니라 속삭임이다.
도취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자비에 넘친 슬기인 것이다.
사랑스런 사람의 살갗의 온기가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이 들려오고 머리카락의 향내가 풍겨오는 그 알맞은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민기의 노래는 그러한 노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그는 또 이렇게도 얘기하고 있었다.
“그의 노래는 씩씩하게 정치적인 구호를 부르짖거나 하지 않는다.
열화 같은 분노로 부정을 규탄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의 노래에서 들려오는 것은 삶의 절절한 신음이며 영혼의 갸륵한 속삭임이다.
거기 있는 모든 언어들, 온갖 소리 소리의 접속은 민주와 독재, 반체제와 체제라 하는 것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같이 여겨진다.”
그러한 김민기의 노래는 가두시위 때 불리면 운동가가 되고, 운동경기장에서 불리면 응원가가 되며, 장례식 때 불리면 장송곡이 될 뿐만 아니라, 예배당에서 불리면 찬송가가 돼버리는 것을 오래전에 여러 번 그 현장에서 나는 목격하고 체험했다.........
......1971년 김민기가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할 때의 일이다. 역시 심한 매질로 신체적으로 의식은 거의 잃었지만 그의 정신만은 맑아졌다. 아니면 환각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같았다. 무차별 폭행은 더 심해지고 그 기관원은 거품을 뿜어내며 악에 받쳐 매질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당하는 그는 도리어 침착, 아니 평안했었다고나 할까. 김민기는 돌연'괜히 이 사람은 나 때문에 이렇게 죄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그 기관원에게 한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하, 그런 생귀신, 날벼락 같은 체험에서 영성의 노래는 우러나오는 것이다.
내가 김민기를 처음 만난 곳은 명동의 서울 YWCA였다. 군사문화의 먹구름에 뒤덮여 있던 당시, 비가 오려 할 때는 심하게 운다는 청개구리들이 모이는 그곳 '청개구리홀'에서였다. 나는 거기서 한 젊은이의 언어적 감수성과 그것을 감당해내는 뛰어난 음악성을 만났다.
이튿날 나는 그 젊은이, 김민기를 기독교 방송으로 오게 하여 즉시 그의 노래를 녹음하기로 하였다. 빈 스튜디오를 찾아 부산하게 뛰어다니던 내 귀에 기타로 치는 바흐의 전주곡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기다리는 그 사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는 바흐를 뜯고 있었던 것이다. 잘 치건 못 치건 그것은 김민기의 바흐였으며, 김민기의 전주곡이었고 나는 그때 전율을 느꼈다.
그의 셋째 누나는 뉴잉글랜드 콘서버터리를 나온 피아니스트이다. 누나가 치는 피아노 아래 공간은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훗날 그의 음악, 미술, 문학, 연극, 그리고 보이스카우트 활동이 뮤지컬로 통합되는 오늘날 '학전'의 모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누나가 그의 고교 입학 축하 선물로 사준 기타는 누나의 피아노와는 사뭇 다른 음색, 터치, 표현, 기능으로 그의 운명이 되었다.
깊은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아침 이슬'을 녹음하자마자 나는 전파에 실어 오후 4시경의 서울 하늘에 띄웠다. 노랫말과 가락이 함께 숨쉬며 가사와 선율의 밀착도가 단숨에 느껴지는 '아침 이슬'은 깊은 한숨,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971년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김민기의 음반을 무작정 제작키로 했다. 그해 출반된 그의 첫 앨범의 재킷에 어설프게 쓴 나의 라이너 노트에서 언젠가 꼭 '김민기論'을 쓰겠다고 큰소리 치고 말았던 것이 그로 부터 30여 년이 지나가 버렸다.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 이제야 이런 글이나마 쓰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흔히들 그를 가리켜 "김민기는 한국 가요사에 큰 획을 그었다"라든지 "그는 우리 노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라고 말하지만, 그런 거창한 결론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김민기는 이제 역사이며 고전이라 믿고는 있지만, 그가 과거, 추억, 신화, 더더구나 기념비 따위라고는 추호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의 노래를 새롭게, 새로운 의미로 듣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 쓴 밥 딜런은 김민기보다 꼭 열 살 위다. 반대 감정 병존과 소외 의식 속에서, 최근 새로운 CD를 내놓은 밥 딜런은 잘못되어가는 이 세상의 닳아빠진 사랑 타령에 진절머리가 난다면서도 신음하듯 '상사병'(Lovesick)'을 음울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꾸 멀어져만 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기신(氣神)없는 상실과 끝없는 편력의 이 시인 가수는 '마음에서 아득한 시간(Time out of mind)'을 떨리는 목소리로 암담하게 부르고 있다.
김민기는 그의 '학전'을 살려야겠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겠지만 뮤지컬과 경영, 그 사이에 존재할 그의 노래들을 그 깊은 목소리로 새로이 들려줄 수는 없는 것일까?
2003년 최경식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이야기' 中
그러한 김민기의 노래는 가두시위 때 불리면 운동가가 되고, 운동경기장에서 불리면 응원가가 되며, 장례식 때 불리면 장송곡이 될 뿐만 아니라, 예배당에서 불리면 찬송가가 돼버리는 것을 오래전에 여러 번 그 현장에서 나는 목격하고 체험했다.........
......1971년 김민기가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할 때의 일이다. 역시 심한 매질로 신체적으로 의식은 거의 잃었지만 그의 정신만은 맑아졌다. 아니면 환각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같았다. 무차별 폭행은 더 심해지고 그 기관원은 거품을 뿜어내며 악에 받쳐 매질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당하는 그는 도리어 침착, 아니 평안했었다고나 할까. 김민기는 돌연'괜히 이 사람은 나 때문에 이렇게 죄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그 기관원에게 한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하, 그런 생귀신, 날벼락 같은 체험에서 영성의 노래는 우러나오는 것이다.
내가 김민기를 처음 만난 곳은 명동의 서울 YWCA였다. 군사문화의 먹구름에 뒤덮여 있던 당시, 비가 오려 할 때는 심하게 운다는 청개구리들이 모이는 그곳 '청개구리홀'에서였다. 나는 거기서 한 젊은이의 언어적 감수성과 그것을 감당해내는 뛰어난 음악성을 만났다.
이튿날 나는 그 젊은이, 김민기를 기독교 방송으로 오게 하여 즉시 그의 노래를 녹음하기로 하였다. 빈 스튜디오를 찾아 부산하게 뛰어다니던 내 귀에 기타로 치는 바흐의 전주곡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기다리는 그 사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는 바흐를 뜯고 있었던 것이다. 잘 치건 못 치건 그것은 김민기의 바흐였으며, 김민기의 전주곡이었고 나는 그때 전율을 느꼈다.
그의 셋째 누나는 뉴잉글랜드 콘서버터리를 나온 피아니스트이다. 누나가 치는 피아노 아래 공간은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훗날 그의 음악, 미술, 문학, 연극, 그리고 보이스카우트 활동이 뮤지컬로 통합되는 오늘날 '학전'의 모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누나가 그의 고교 입학 축하 선물로 사준 기타는 누나의 피아노와는 사뭇 다른 음색, 터치, 표현, 기능으로 그의 운명이 되었다.
깊은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아침 이슬'을 녹음하자마자 나는 전파에 실어 오후 4시경의 서울 하늘에 띄웠다. 노랫말과 가락이 함께 숨쉬며 가사와 선율의 밀착도가 단숨에 느껴지는 '아침 이슬'은 깊은 한숨,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971년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김민기의 음반을 무작정 제작키로 했다. 그해 출반된 그의 첫 앨범의 재킷에 어설프게 쓴 나의 라이너 노트에서 언젠가 꼭 '김민기論'을 쓰겠다고 큰소리 치고 말았던 것이 그로 부터 30여 년이 지나가 버렸다.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 이제야 이런 글이나마 쓰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흔히들 그를 가리켜 "김민기는 한국 가요사에 큰 획을 그었다"라든지 "그는 우리 노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라고 말하지만, 그런 거창한 결론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김민기는 이제 역사이며 고전이라 믿고는 있지만, 그가 과거, 추억, 신화, 더더구나 기념비 따위라고는 추호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의 노래를 새롭게, 새로운 의미로 듣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 쓴 밥 딜런은 김민기보다 꼭 열 살 위다. 반대 감정 병존과 소외 의식 속에서, 최근 새로운 CD를 내놓은 밥 딜런은 잘못되어가는 이 세상의 닳아빠진 사랑 타령에 진절머리가 난다면서도 신음하듯 '상사병'(Lovesick)'을 음울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꾸 멀어져만 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기신(氣神)없는 상실과 끝없는 편력의 이 시인 가수는 '마음에서 아득한 시간(Time out of mind)'을 떨리는 목소리로 암담하게 부르고 있다.
김민기는 그의 '학전'을 살려야겠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겠지만 뮤지컬과 경영, 그 사이에 존재할 그의 노래들을 그 깊은 목소리로 새로이 들려줄 수는 없는 것일까?
2003년 최경식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이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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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나라 음악 평론의 원로인 저자의 70년 음악 편력을 풀어낸 음악 에세이다. 6.25 월남민으로 시작해 중앙정보부의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꿋꿋이 한 길을 걸어온 이 시대의 양심적 음악인, 최경식. 그의 삶에 녹아든 음악과 종교적 탐구의 절절한 기록이 감동적이다.
1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
바흐와의 만남
구원을 노래하는 그레고리오 성가
축복받은 영성의 자유인, 윤복희
뉴 에이지, 영성의 세 작곡가
프리 뮤직의 명인, 강태환
음악의 원형을 찾아 신앙의 길로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
2 음악, 고독과 환희의 이중주
김민기의 깊은 목소리
요요 마의 연주로 되살아나는 피아졸라의 탱고
장애를 극복한 두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와 토마스 콰스토프
사람과 사람, 음악과 음악의 경계를 허문 듀크 엘링턴
빈센트 반 고흐의 외로움과 글렌 굴드의 고독
빌리 홀리데이의 고단한 삶을 기리며
샹송을 노래하는 디바, 제시 노먼
자클린느 뒤 프레, 금빛 머리칼에 가려진 것들
3 나의 삶, 나의 음악
고통의 의미를 일깨운 나의 크리스마스
낯선 이를 맞아주던 여행지의 음악
북유럽 크루즈, 여로 끝의 찬가
보낼 수 없는 편지 1: 이북에 계신 김인숙 선생님께
보낼 수 없는 편지 2: 러시아 민요와 외삼촌의 추억
보낼 수 없는 편지 3: 파네뮐러 박사님과의 음악적 만남
레퀴엠을 듣는 시간
접기
저자 소개
지은이: 최경식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이야기>,<무관의 눈으로 본 중국, 중국사회> … 총 5종 (모두보기)
1933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문화방송과 기독교방송 프로듀서로 일했고, 서울 YMCA 시민논단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음악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책에 <에디트 슈타인-사랑과 진실의 불꽃>,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가장 아름다운 화해 이야기>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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