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1

『권력과 사상통제』(김동춘) - 교수신문




‘사상통제’ 史에 매서운 비판의 칼날...김동춘 교수 역작 나왔다 - 교수신문

‘사상통제’ 史에 매서운 비판의 칼날...김동춘 교수 역작 나왔다
김재호
승인 2024.07.30



화제의 책_『권력과 사상통제』(김동춘 지음 | 역사공간 | 660쪽)

#1. 최근 미국으로 유학 간 한 중국인 여학생이 온라인에 중국식 사회체제를 비판했다. 사상의 자유가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공안이 유학생을 위협했고, 그 유학생의 아버지까지 동원해 동영상을 내리고 귀국하라고 종용했다. 아버지는 중국의 국가이념을 교육하는 교수이다. 유학생은 자신이 중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갇힐 것이라며, 가족들이 곤란에 처해지겠지만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2. 7월 23일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사회를 본 아나운서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박수를 치지 않은 분들이 꽤 계신다. 어디서 오셨냐. 이분들은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어떤 간첩이라던가.”, “전라북도? 따로 (호명) 해야 되나요?”(「“박수 안 치면 간첩…아니 전북?” 국힘 전당대회 ‘지역 비하’ 뭇매」, <서울신문>, 2024.07.24) 여당의 전당대회에서 나온 발언이라니,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사상통제가 지배적이다.

위의 두 번째 사례는 ‘한국은 사상통제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나’(『권력과 사상통제』의 부제)라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답변이 적합함을 알려준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아직도 사상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정치사회학)의 『권력과 사상통제』(역사공간 | 660쪽)을 읽으며 이 세계를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다시금 보게 된다.

특히 정치혐오가 만연해 있다. 그 이유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 정치 퇴행의 주요 원인은 바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에서 기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의 자유가 어느 정도인지 학점을 매기자면 F에 가깝다. 재수강을 해야 할 판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정치사회학)의 『권력과 사상통제』(역사공간)는 역작이다. 
이 책은 대학 교양수업의 교재로 사용되면 좋을 것이다. 사진=김재호




비판·역사적 측면에서 정말 독한 책

『권력과 사상통제』는 정말 독하다. 김동춘 교수가 비판의 칼날을 벼르고 별러 반공주의의 폐단을 고발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파시즘과 전체주의, 극단적 보수 우익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역사를 기반으로 철학·정치학·사회학·법학 등의 측면에서 칼을 갈았다. 한국을 중심으로 서술돼 있지만 칼날은 전 세계를 향한다. “그런데 체제의 이념, 국가의 공식교육 내용을 비판하는 국민들, 혹은 ‘비(非)국민’으로 지목한 사람들을 감시, 사찰하거나 구속, 수사하지 않는 나라,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들에게 직업 선택, 진학, 승진, 각종 권리 행사 등에서 전혀 불이익을 주지 않는 그런 ‘자유로운’ 나라가 지구상에 있을까?”

둘째, 한국 내 사상의 억압이 너무 끔찍했다는 측면에서 독하다. “(비전향 장기수) 최석기는 죽기 전 열흘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맞았다. 조폭들은 찢어지고 상처가 난 부위를 때리고 또 때렸으며, 머리와 가슴, 배 등을 주먹, 발, 쇠파이프, 각목 등으로 마구 폭행했다. 최석기는 사망 직전까지 기만증(자기도 모르게 1∼15분 동안 잠에 빠지는 현상),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다.”, “...작은 창문이 있어도 그나마 북향이라 33년 동안 보름달을 한 번밖에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김동춘 교수는 이를 “1970년대 교도수 특별사동의 지옥도”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유난히 사상통제가 심했던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사상의 뿌리가 약했기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권력 찬탈은 반대급부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식이다. “사상범 통제방식은 국가의 성격과 이념, 그리고 상황적 역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므로 국가의 최고 결정권자나 기존 지배집단이 느끼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처벌 수위가 좌우될 것이다.”, “결국 국가로서는 사상범 전향이나 갱생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이들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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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사상통제』 대 『제5공화국』
위·아래로부터의 역사와 정교한 분석

『권력과 사상통제』는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정치학전공)의 『제5공화국』의 대척점에 서 있다. 두 책 모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대역사(大役事)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됐다. 전자가 직접 좌익수·관련자들을 만나며 발로 뛴 아래로부터의 현장이 중심이라면, 후자는 통치 권력자들의 회고록·사회경제적 통계 자료 등 위로부터의 회상이 중심이다. 물론 둘 다 정치사회(사)적인 측면에서 정교한 분석을 하고 있다.


두 책의 주장도 엇갈린다. 전자가 한국을 옥죈 사상의 억압사를 파헤쳤다면, 후자는 군부 독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역설적 기여를 정책·경제·외교 등에 방점을 찍어 드러냈다. 아울러, 『권력과 사상통제』가 사상의 억압에 대한 뿌리를 건드리며 현재까지 진화하고 있는 통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면, 『제5공화국』은 저자의 핵심 주장에 대한 근거에 집중하며 정교한 분석을 통한 공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두 책 모두 학술적으로 의미가 상당하다.


‘운동권·과학기술·남녀’의 사상통제는 없을까

다만 아쉬운 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나 운동권 역사에서도 사상통제의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혹은 거꾸로 반공주의나 자유민주주의 내에서 사상통제는 없었는지 한 장 정도 할애해서 같이 다뤘더라면 훨씬 더 균형감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책 제목이 암시하듯 『권력과 사상통제』는 권력이 휘두른 사상통제에 집중한다. 특히 전 지구적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횡포를 촘촘히 추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정당 내에서의 특정 노선 독점이나 민주화 이후 비대해진 노조 권력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 등에서 나타나는 진화한 사상통제도 분석이 됐더라면 좋았겠다. 이것은 이 책을 토대로 후배 학자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일 것이다.

둘째, 과학기술 권력으로 인한 사상통제도 다뤘더라면 좀 더 대중적 학술서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글의 시작에서 밝힌 #1 사례에서처럼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이 곧 권력이다. 기술권력은 어떻게 개별 유저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 아울러, 과학기술계 내에서나 교육계 내의 사상통제도 파헤치면 어떨까.

기술권력은 기업으로부터 나온다. 『권력과 사상통제』의 에필로그에는 사상의 자유의 측면에서 ‘기업 사회’에 대한 비판이 짤막하게 있기는 하다. “표현의 자유와 저항권이 없는 기업 내에서 근로자는 ‘시민’이 아니다. 시민권·공론·의사소통 등 정치적 기본권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기업의 문 앞에서 멈춘다.”

셋째, 남녀 간 더욱 양극화하고 있는 이념논쟁과 사상통제의 측면이 부족하다. 가부장 한국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여성의 유리천장과 사상통제도 중요한 지점이다. 특히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여성의 사망 사고도 빈번한 요즘이다. 반대로 최근 불거진 ‘집게손가락’ 논란과 한국의 병역문제와 역차별 문제 등도 남녀 권력과 사상통제의 측면에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주문을 하는 건 그만큼 『권력과 사상통제』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상통제가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얼개를 추적하는 학자들이 분발해주길 기대한다.

『권력과 사상통제』는 오랫동안 김동춘 교수의 역작으로 남을 것 같다. 그만큼 김 교수의 내공이 모두 투입된 책이다. 『권력과 사상통제』가 대학가의 교양수업에 활용되면 좋겠다. 사상의 자유를 고양하는 것이야말로 대학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Tag#김동춘#김동춘성공회대#사상통제#역사공간#권력과사상통제#김동춘명예교수#사상억압#성공회대사회과학부#좌익#좌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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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사상통제 
김동춘 (지은이) 역사공간 2024-05-31

정가 36,000원

세일즈포인트 1,135
정치학/외교학/행정학 주간 28위
664쪽


청년기였던 유신체제하에서 ‘반공주의’의 폭력성을 경험한 저자는, 이후 1990년대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 반사회안전법 투쟁, 2000년대 진실화해위원회 피학살자 진상규명과 조사활동 등을 통해 한국에서 정치사상범 대상의 전향공작과 ‘의심되는 국민’에 대한 사찰과 감시, 연좌제 등은 모두 냉전과 만성적인 전쟁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필자는 사상통제를 의도한 법과 명령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비판적 사상이나 활동을 통제하고 그런 인물을 강제로 국가에 순응, 복종시키기 위한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분석하며, 국민이라는 단일한 생각을 가진 실체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정책을 담론 분석으로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법, 제도, 교육을 일제강점기, 그리고 냉전 초기의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한다.

저자가 모은 수많은 국가폭력과 사상통제 관련 사례, 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은, 현재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 법치의 내용, 정치적 갈등의 기반, 사회통합 원리에 대한 통찰이다. 또 21세기 한국 사회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어떤 점을 청산,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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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7
여는 글 한국 사상통제의 풍경
좌익수 대상의 귀순 전략 19
출판과 독서도 국가의 안전과 존립을 위협? 35
공직 후보자 사상검증 폭력 47
제1부 사상통제 연구를 위한 서설
1. 사상통제 관련 쟁점과 접근방법론
사상통제 관련 이론적 쟁점 63
사상범 통제의 목적과 방법 81
사상통제의 정치·사회적 배경 95
접근방법론: 지구 권력의 장과 국가 권력의 장 110
2. 사상통제의 전사(前史): 조선과 일제강점기
조선의 사상통제 119
‘천황제’라는 근대 국가? 군부 파시즘과 지배체제 124
제2부 사상통제의 장(場, champ)과 집행
1. 권력의 장과 사상통제: 전쟁과 폭력
냉전이라는 지구 권력의 장 141
6·25한국전쟁의 권력 장과 정치사상통제 160
정전체제와 남한 권력의 장 174
데탕트 이후 권력의 장: 준전시체제로서의 유신체제 181
2. 선전, 담론, 교육의 장
‘불순’의 담론 190
국체·국시 담론 197
3. 사법의 장: 국가보안법과 기타 사상통제법
한국 사법의 장, 형법 제정 집행의 담론과 정치 219
제정, 공포된 적 없는 국방경비법의 정치범 통제 224
한국 사상통제의 법제화, 국가보안법 228
사상통제 강화법으로서 반공법 249
유신체제하의 긴급조치 256
1990년 헌재의 국가보안법 한정합헌 결정의 의미 259
4. 행정집행의 장: 사상통제의 집행
사상통제의 주역으로서 경찰 266
‘국가 위 국가’로서 공안첩보기관 281
공안검찰의 정치성과 사상통제 293
전체주의 공간, 한국의 감옥 300
신체와 정신 통제기관으로서 군대, 학교, 공장 306
제3부 사상통제의 여러 장면
1. 전향공작
전향공작의 대상: 정전 이후의 좌익수 313
전향공작의 과정 326
전향공작의 특징과 전향거부의 논리 371
2. 사찰과 감시: 반공국민 만들기
요시찰인 사찰 396
재소 및 석방 좌익수 사찰: 보안관찰 417
국민감시체제 422
5·16쿠데타 이후 간첩 색출과 국민 상호감시 433
3. 교육과 이데올로기 선전
국가의 학교교육 통제 440
학생운동 사찰과 학생 사상통제 452
검열: 언론, 영화, 서적 통제 464
제4부 사상통제의 배경, 특징과 그 함의
1. 군사정부의 응징적 사상통제의 배경
안보 위기와 체제 경쟁 473
한국 지배세력의 주관적·심리적 위기의식 483
사상통제의 정치적 이익 491
2. 한국 사상통제의 특징
일제강점기와 남한의 전향정책: 공통점과 차이점 498
동북아시아의 정치사상범 통제 505
3. 사상통제로 본 한국의 근대성
사상의 자유가 없는 자유민주주의 한국 513
동북아시아의 근대 국가 520
맺는 글 사상통제와 21세기 한국 사회 528
미주 535
참고한 문헌과 자료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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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김동춘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권력과 사상통제>,<결정적 순간>,<쿠오바디스 대한민국> … 총 75종 (모두보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에서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판적 사회학자로 학계와 시민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역사비평』 편집위원,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다. 제20회 단재상과 제15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반공자유주의』, 『대한민국은 왜?』,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전쟁과 사회』,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 『분단과 한국사회』, 『한국 사회과학의 새로운 모색』, 『한국사회 노동자 연구』,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시험능력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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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은 사상통제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나

한반도의 남북한 두 국가는 상대의 국가성을 부인하면서 70년 이상 준전쟁 상태에 있다. 남한에서 분단이란 1945년 이후 탈식민 독립국가 건설이 실패하고, 국가정체성이 민족성을 전면 부인하도록 강요한 상황이다. 그 이전 시기인 일제강점하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 비판을 금기시하는 세상에서 살았고, 1948년 이후 남한 사람들은 북한 체제에 공감·지지하거나 미국을 비판하는 것도 불온시되는 세상에서 살았다. 결국 20세기 내내 한국인들은 중세 유럽 로마 교황청이 과학적 사고를 금기시하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파문, 처형한 역사, 조선시대에 주자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사문난적으로 몰아서 탄압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는, 반공·반미주의 도그마와 사상검열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았다. 21세기 초입인 지금도 남북한 모든 한국인은 여전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상’이라는 말은 거의 금기어 혹은 피해야 할 용어에 가깝다. 즉 사상이란 사회주의 혹은 반체제 사상, 국가의 공식이념을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사상을 주로 의미했다. 한국에서 특정 사상을 견지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로 간주되어 왔고, 불이익과 탄압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다. 지난 시절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책을 읽거나 일기와 메모를 남기는 일도 조심했다. 한국인들은 체제비판적인 이론이나 사상을 학습하거나 정치적인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다가 수사 당국에 걸려 곤욕을 치르거나 심지어 법적 처벌까지 받게 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고, 교육·언론·출판·학술 영역에서의 제재는 물론 단순한 문화·예술적인 표현, 사적인 대화까지도 감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가 거의 준종교적인 도그마로 작동해온 한국에서 군사정권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에게 사상통제는 거의 공기와 같이 익숙한 일이었다. 한국의 오랜 민주화운동은 바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그러나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성취되어도 사상의 자유를 옥죈 법과 제도, 각종 수사 사찰 조직은 그대로 남았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 정치 퇴행의 주요 원인은 바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에서 기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국가폭력’, ‘사상통제’와 같은 한반도의 고질적 병폐를 규명해온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의 학문적·실천적 ‘증언’이다.

청년기였던 유신체제하에서 ‘반공주의’의 폭력성을 경험한 필자는, 이후 1990년대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 반사회안전법 투쟁, 2000년대 진실화해위원회 피학살자 진상규명과 조사활동 등을 통해 한국에서 정치사상범 대상의 전향공작과 ‘의심되는 국민’에 대한 사찰과 감시, 연좌제 등은 모두 냉전과 만성적인 전쟁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필자는 사상통제를 의도한 법과 명령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비판적 사상이나 활동을 통제하고 그런 인물을 강제로 국가에 순응, 복종시키기 위한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분석하며, 국민이라는 단일한 생각을 가진 실체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정책을 담론 분석으로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법, 제도, 교육을 일제강점기, 그리고 냉전 초기의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한다.

필자가 모은 수많은 국가폭력과 사상통제 관련 사례, 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은, 현재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 법치의 내용, 정치적 갈등의 기반, 사회통합 원리에 대한 통찰이다. 또 21세기 한국 사회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어떤 점을 청산,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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