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 [탐구]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4) – NLPDR
[탐구]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4) – NLPDR
2012-06-27 15:59
Matti추천0 비추천0
2012. 6. 27. 수요일
M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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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1) - 재생산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2) - 낮은 단계의 목표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3) - 신입생, 갈등과 선택
이론이 나와서 지루합니다. 그렇지만 재미 없는 이론 이야기는 이 편이 거의 마지막입니다.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도록 최대한 쉽게 쓰는 과정에서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논리적 과정을 전체적으로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을 쓰다 보니 확실히 제목이 약간 에러입니다. 자극적인 것도 있지만, 제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내용은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내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운동 내부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짚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NL과 주체사상에 대해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90년대 학생운동가의 삶 : 우리는 어떻게 NL이 되었는가"가 제일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화살은 날라갔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텍스트의 해석과 강조는 어느 정도 읽는 이들의 몫입니다. 제 의도와 달리 받아들여지는 것을 감수하고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 NLPDR -
1년의 과정을 통해 신입생들은 사회 문제에 눈을 뜨고, 분노하며, 사회 참여를 모색합니다. 그런데 사회 문제는 노동, 농업, 빈민 할 것 없이 온갖 분야에서 벌어집니다. 일일이 고민하고 참여하기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보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은 적은데 하나하나의 사안에 몰두하다보면 죽기 전까지도 세상은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신입생들은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의문에 맞딱뜨리게 됩니다. "대체 이 모든 문제들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혹시 근본 원인이 있다면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논쟁들이 바로 사구체(사회구성체)논쟁입니다.
사회구성체론이라고 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합니다. 대체 이 사회의 성격은 어떠하며 무슨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의사가 치료를 하기에 앞서 진단을 하는 과정입니다. 올바른 진단이 나와야 적절한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진단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이 바로 사구체 논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정파가 갈립니다.
NL은 우리 사회를 '식반자'(식민지 반자본주의)로 규정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제(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언뜻 보면 그냥 자본주의 사회로 보이지만 식민지의 성격상 자본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반자본주의'(기형적인 자본주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일까요.
NL은 주로 '정치, 경제, 군사, 문화'라는 틀을 가지고 사회를 분석합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CIA 등이 배후조종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CIA에 포섭되어 있으며, 설사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 틀에 심취하신 어떤 분들은 08년 문국현의 대선 출마를 민주진영을 분열시키려는 미제의 공작으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직접 지배가 어렵기 때문에 매판자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탈합니다. 매판자본이란 재벌을 의미합니다. 이건 주로 지주-마름-소작인으로 비유를 합니다. 마름이란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중간 수탈 계급입니다. 재벌이 바로 마름입니다. 미국 자본의 이익을 대신해 남한 민중들을 수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 자본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를 넘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반자본주의'입니다.
군사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식민지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주적 국가에 외국 군대가 주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은 남한 민중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인 북한까지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주한미군으로 인해 기지촌이라는 여성 문제까지 생깁니다.
문화적인 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음식, 영화 등 할 것 없이 모든 분야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정치, 경제, 군사에 이어 한민족의 정신까지 오염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이 종속되어 있어도 정신이 살아 있다면 후일을 도모할 텐데 그것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이게 바로 NL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NL 민중가요에는 '식민지 조국'이라는 가사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은 바로 미제국주의라는 외세에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됩니다. 이게 이론에서의 첫 점프입니다. 점프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1년 동안의 세미나, 교양, 강연 등을 통해 미국이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까지 친미 성향의 사회 속에 살다가 처음으로 알게 된 미국의 모습은 정신적 충격입니다. 미국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우리 사회가 그에 종속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물론 같은 사실을 두고도 사회적 해석은 천양지차겠지만 일단 글의 주제와 맞지 않기에 논외로 합니다.) 그렇기에 선배들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 이 단계로 넘어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진단이 나오면 처방은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같은 진단이 나와도 처방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에 따라 정파가 또 갈립니다. 정파의 분열은 진단과 처방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외세를 몰아내는 게 우리의 제 1 임무입니다. 미제국주의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노동 문제 같은 작은 부분에 아무리 신경을 써봤자 사회 변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성장해도 기형적인 자본주의 체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반미'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출되는 게 '자주'입니다.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세력들이 연대해서 통일전선을 꾸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과 이념의 차이는 되도록 신경 쓰지 말고 하나로 뭉치자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정주영은 노조를 탄압한 매판자본가가 아니라 통일에 힘쓴 민족자본가입니다. 좌파들과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세력과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미제에 부역하고 있는 매국노들은 안 됩니다. 기준이 있어야 하고, 통일전선의 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과 전선체의 목표가 '민주'입니다. 그래서 NL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합니다. 이건 꽤 매력적입니다. 우리 편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도 넉넉해지지만, 왠지 현실 가능한 목표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외세를 몰아내기에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미제에 수탈 당하고 있는 남한 민중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은 미제국주의에 맞서 50여 년 동안 결연히 투쟁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북한과 힘을 합친다면 미국을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도출되는 게 '통일'입니다.
차근차근 따라가면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과제가 나옵니다. 바로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입니다. 핵심은 NL(민족해방)입니다. 뒷 부분의 PD는 곁다리입니다. 그래서 그냥 NL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북한이라는 나라에 접근하게 되며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측면들이 보입니다. 김정일 독재 국가에, 세습에, 지지리도 못 사는 나라에서 순식간에 세계 최강 미제와 50년 동안 결연히 맞짱을 뜨고 있는 대단한 국가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동구 공산권 국가들이 모두 무너진 마당에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늘 외세에 짓눌리고 자신감 없이 살아왔던 우리 민족에게 저런 당당한 저력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왜 이걸 몰랐단 말인가. 독재 정권의 문제도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미제와 싸우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체제가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런 과정을 밟게 되면 결국 북한 정권과 남한 민중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통일이란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쳐 외세를 몰아내기 위한 필수적 과정입니다. 그래서 NL은 통일운동에 집중합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반미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노조에서도 통일, 농촌에서도 통일, 모두 통일입니다. NL 여성운동 단체 이름은 '반미여성회'입니다. 여성 문제도 반미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NL은 다른 여성문제에는 둔감하지만, 기지촌 문제에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렇지만 NL의 통일운동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통일운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순수히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NL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통일운동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NL이라고 생각한다면 보통 이 정도이거나 옅어지거나 합니다. 속으로 식민지까지는 아니라 생각해도 미국이라는 국가에 문제는 있으며 우리는 좀 더 자주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합의하고 넘어갑니다. 그것도 아니면 어쨌든 통일하자는데 뭐가 나쁘다는 건가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범NL이라고 하면 그 범위가 굉장히 넓습니다. 분명 문제는 있는데 구별해서 비판의 타겟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NL 운동은 대개 이 정도에서 합의됩니다. 그리고 이 정도에서 거의 모든 사업들이 이뤄지고 논의가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더 넘어가면 바로 남한 민중의 부족한 역량을 한반도 혁명 기지인 북한이 메워줘야 한다는 생각까지 이르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점입니다. 스스로 결론을 도출해 북한 정권의 지도를 갈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생적 주사파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들이 NL의 윗선에 자리합니다.
* 민족주의
많은 분들이 민족주의에서 의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노동, 빈민 등 사회문제들을 목도하며 각성했던 대학생들이 어떻게 갑자기 비장한 민족주의자가 되었을까요. 지난 글에서 말씀 드렸듯 NL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에는 미제가 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악의 근원, 미국놈들 몰아내자'라는 구호는 그래서 나옵니다. 이 땅에서 미제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문제점들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부문 운동들은 그것만 해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거죠.
그렇지만 이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반미와 통일에만 신경을 쓰고, 다른 사회 문제들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 현장에는 늘 이들이 있습니다. 단기적 목표인 자주적민주정부 수립을 위해서는 사회의 양심적인 세력들은 모두 연대해야 하고 그것은 투쟁을 통해 이뤄집니다. 평소에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연대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때문에 NL은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으면서도 진보진영 곳곳에서 헌신성을 보여주며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가장 상위 과제는 반미와 통일입니다. 그를 위해서 진보진영의 모든 부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통일 사업과 노동 문제가 겹치는 경우 전자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NL에게 반미와 통일은 노동, 농업, 빈민, 교육 등의 다른 요소들과 동등한 과제가 아닙니다. 통일운동도 하고, 노동운동도 하고 서로 존중하는 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든 부문 운동들은 반미와 통일을 위해 복무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여러 사회문제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적지 않은 운동가들, 특히 현장에서 멀어진 상층의 운동가들에게는 오직 반미와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만 남게 됩니다.
인간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운동가들에게서, 구체적 삶으로써의 인간은 사라지고 민족주의라는 추상적 가치만 남게 되는 이유입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가 내 삶의 전부를 운동의 대의에 바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분노와 열정에는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최초에 운동을 시작했던 그 마음과 가치들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립니다. 유통기한이 끝나고 남게 되는 것은 그것들을 담아두었던 케이스뿐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담아두던 도구에 불과했던 케이스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판단하려 합니다. 사고의 화석화는 이렇게 이뤄집니다.
* NL이 다수가 될 수 있는 이유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노선과 관련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NL 노선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생각이 좀 더 극단적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뭔가 심각하고 어려운 것들을 알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 다 필요없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 의식만 강하게 쥐고 있으면 되니 참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온갖 지식들은 다 섭렵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PD들은 헛똑똑이로 보입니다. 딸리던 말빨이 한 방에 해결이 됩니다.
NL이라고 하면 원칙적으로 앞의 내용들이지만, 거기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친숙한 부분은 취사선택을 하면 됩니다. NL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 중에서도 '식민지'라는 개념은 비유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차피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대원칙에만 합의를 보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 좋은 이야기들입니다. 자주 국가를 만들고, 민주 사회를 만들며, 통일 조국을 만드는 게 대체 뭐가 나쁜 이야기겠습니까. 그래서 NL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대체 자주 민주 통일 하자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회피합니다. 실제 대화를 나눠보면 NLPDR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NL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최강 미제국주의와의 한 판 결전을 통한, 자주통일 강성대국의 완성이라는 비전은 좌파들의 어려운 이야기에 비해 선악구도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50년 동안 싸워온 북한이라는 존재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해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김일성, 김정일이 뛰어난 지도자로 보입니다.
소명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조직에서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스토리는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지난한 고난의 과정을 거쳐 최후의 결전에서 결국 세계최강 미제를 거꾸러뜨리고 영광을 차지하는 한민족의 대서사시. 수천 년 전 신화 속에서나 나오던 이야기를 지금 90년대 중반에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입니다.
이렇게 듣기 좋고 가슴 뛰는 이야기에 친숙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진리란 또 그렇게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그 괴리 속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자라납니다.
- 정파 -
학생운동을 이야기할 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정파'입니다. 특히 정파의 분열은 외부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학생운동가들의 기억 속에 가장 아프게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정파 갈등은 운동가들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20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건조하게만 터치하겠습니다.
* 발생과 분열
지난 글에서 말씀 드렸지만 정파의 발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집니다. 먼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나옵니다. 의사의 진단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놓고 어떻게 투쟁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효율적인가에 대해 투쟁방법을 도출합니다. 이게 혁명이론 혹은 변혁이론입니다. 의사의 처방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처방을 바탕으로 치료과정에 들어가는 게 투쟁입니다.
정파의 분열은 바로 이 진단과 처방의 입장 차이에 따라 이뤄집니다. 지극히 당연한 과정입니다. 한반도 남단이 미국의 식민지이며,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는 이들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전반적인 틀에는 동의하더라도, 미국에 제국주의적 속성은 있지만 우리나라가 식민지는 아니며, 북한의 저런 모습이 이해는 가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진단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처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중정당을 선택할 수도 있고, 지하혁명을 꿈꿀 수도 있으며, 통일사업과는 별개로 북한과의 연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NL이라고 하더라도 정파가 나뉘고 입장이 갈립니다.
* 정파 투쟁
문제는 분열이 아닙니다. NL이든 PD든 어떤 정파를 막론하고 '대부분' 조직 내에서의 독재를 꿈꾼다는 점입니다. 사회를 진단하고 처방이 내려지면 반드시 따라오는 게 '지도'나 '전위'의 개념입니다. 사회를 분석하고 투쟁방법을 정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닙니다. 내 온 몸을 바쳐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최선의 길을 결정하고, 자신의 신념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을 걸고 선택한 투쟁노선이 스스로에게는 가장 올바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노선이 전체 운동을 지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정파들의 존재를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다함께 힘을 합치자는 식으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엄혹한 시기 투쟁의 역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헛짓거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대오를 흐뜨러뜨리고 적들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까지 판단합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반대의견에 대해 걸핏하면 '개량주의자', '분열주의자'의 딱지를 붙이고 때로는 '미제의 간첩'이라는 표현까지 거침없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상적 의견에 대해서까지 '알바' 딱지를 붙이는 인터넷 분위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문제는 정파들 간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운동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자신들의 주도권 하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일들에 대해서도 기어이 개입해 정파의 성과물로 만들어내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북한동포돕기 운동 등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활동이 펼쳐지는 경우 폄하하거나 의도적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촛불집회에서 논란이 된 특정 정파들의 행동도 그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겉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던 분들이라도 술자리에서는 다른 정파에 대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증오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NL에게서만 나오는 사고구조가 아니라 PD에게서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른 정파는 용납이 되지 않으며 상대에 대한 배제는 폭력적이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립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가지 합리화 기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노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선민의식, 다른 하나는 사적 이익이 아닌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정의감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행동으로 나타나기에 사고가 잇따릅니다. 상대에 대한 공개적 비난과 모욕은 당연합니다. 상대 정파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마타도어도 행해집니다. 이성 문제를 비롯해 여러 이간질들이 행해집니다. 그 외에도 아주 자잘한 곳들에서 씁쓸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몸 담은 정파에 관계 없이 다함께 투쟁하는 동지라고 생각하며, 생각이 달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함께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경험들을 거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정파가 내포하고 있는 적대적 의식들을 억누르고 있던 호의와 연대의식은 몇 번의 뒤통수를 통해 간단히 부서집니다. 그러면서 지난한 정파 투쟁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과 경험들은 술자리에서의 울분을 통해 후배들에게 전승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사 저들이 주도권을 잡기라도 하면 큰 일입니다. 서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은 아주 나이브한 태도입니다. 그건 운동이 망하는 길이고,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복음의 전파가 우리의 사명이며, 승리는 지상과제입니다. 그래서 각 정파들은 선거 때마다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타격을 주고, 때로는 선거규정을 악용해 후보자격을 박탈시키기도 합니다. 때로는 소소한 반칙이나 비열한 짓들도 대의의 이름 아래 정당화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죄의식을 갖게 되는 운동가들이 운동판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가들이 정파 갈등 때문에 피폐해지는 것은 본인들이 당했던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자괴감 때문도 큽니다.
이 정파투쟁이 끝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렵더라도 선민의식을 버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연대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둘 중 하나가 죽는 겁니다. 학생운동은 후자를 통해 평화가 이뤄집니다. NL이 절대 다수가 되고, PD가 소수가 되면서 적어도 한총련이라는 조직 내부는 싸움 없이 아주 효율적으로 운영되게 됩니다. 이런 구도에서 NL이 다른 정파들을 일방적 폭력으로 배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 NL은 주체사상의 영향 하에 선민의식과 집단주의 성향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에 그 폭력의 양상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NL 내부의 구성원들은 그 폭력의 구조와 사례들에 대해 잘 모릅니다. 원래 여당 지지자들은 정권이 무슨 짓을 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PD들이 울분을 토하면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PD들도 자신들이 장악한 단위에서는 마찬가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그런 경우에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무신경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NL들도 자신들이 피해를 당하면 그 원한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다들 애초 운동을 선택했을 때의 마음가짐은 사라지고 정파투쟁으로 끝없이 빨려들어갑니다. 그리고 많은 운동가들의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층에서의 문제입니다. 역사적 책임은 전체 권력을 독점하고 비민주적 행위를 일삼았던 NL이 져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입니다.
* 선택
NL은 신입생들에게 정파와 관련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소수파인 PD 계열 선배들은 사석에서 정파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줄기차게 합니다. NL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지만, PD 내부의 다른 정파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정파 문제를 대하는 NL과 PD의 대응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당과 야당의 차이입니다.
새누리당은 야당간의 차이점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여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상대적입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이런 식으로 각각 오른쪽에 있는 정당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보기에는 모두 붉으죽죽한 정당들이고, 민주당이 보기에는 한심하게 갈라진 진보정당들이며, 통진당이 보기에는 단결을 저해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다수는 늘 소수에게 단결을 강요하며, 소수는 다수에게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계열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자, 그다지 소용이 없습니다. 계열이 아무리 많다 한들, 어차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정파는 많아봤자 NL 아니면 PD의 한 분파, 두 개입니다. 이것도 90년대 들어서면 점차 드물어져가는 케이스가 되고, 각 과마다 한 개의 정파만이 살아남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운동을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지만 존재할 뿐, 어떤 정파에 몸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는 선택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어떤 정파가 최선인지에 대해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로 보이고, 분열이 의아할 뿐입니다.
야당의 삶은 고달픕니다. PD가 아무리 NL 비판에 열을 올려도 NL과 함께 하는 신입생들에게는 뭔가 이상한 선배들처럼 보입니다. NL 선배들은 인간적이고, 삶의 문제들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던져주는데 비해, PD 선배들과 술을 마시면 불편합니다. 뭔가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하면 이 곳, 저 곳에서 날 선 비판이 날라듭니다. 신입생이 뭘 모르는 건 당연한데 그걸 용납 못합니다. 술자리가 조금만 깊어져도 전문지식들이 쏟아지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NL 선배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선배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 이 사람들의 비난에는 날이 서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봐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이고 기분이 불쾌해집니다. 이 사람들 따라가면 NL의 소중한 사람들을 적으로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파 간에 신입생 쟁탈전은 치열하지만 지나고 나면 애초에 가지고 있는 능력치만큼의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클래스는 영원합니다. 다수파가 계속 다수파가 됩니다.
* 순기능
위에서는 정파가 부정적으로만 묘사가 됐지만 당연히 순기능도 있습니다. 어쨌든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게 정파입니다. 초보운동가들에게 정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등 많은 의문들에 답을 제시해 줍니다. 9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스스로 깨닫고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운동 선배들과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상호 교류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같은 단위 안에 둘 이상의 정파가 있는 경우 반드시 갈등이 생기지만, 그 갈등이 적정 수준에 머무는 경우 긍정적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먼저 두 정파 모두 경쟁력이 생깁니다. 술자리에서의 논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학습을 열심히 합니다. 특정 이념에 경도된 이론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전반적 수준이 높아집니다. 대중사업도 최선을 다할 뿐더러, 방식이 세련되어지는 면도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파가 공존하는 단위의 경우 학생회실이 학우들로 복작복작합니다.
학생회 운영도 투명해집니다. 상대 정파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때문입니다. 한 편으로는 진영 내부에서 여성운동가들의 지위가 높아집니다. NL에서 줄기차게 지적되는 게 남성운동가들의 가부장주의입니다. 그렇지만 PD가 공존하는 단위의 경우 확실히 NL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해야 하고 공존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대 정파가 존재하기에 운동을 정리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감정적 부분입니다. 내 운동에 확신이 흔들려도 저들이 학생회를 잡는 것은 용납이 안 됩니다. 그리고 NL의 경우 학생회 운영을 다른 정파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하는 경우가 많아서, 학우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학생회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케바케입니다.
* 에피소드
NL과 PD는 노래도 다르고, 구호도 다릅니다. 심지어 총학을 잡았을 때 내세우는 학교 이름과 깃발도 다릅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NL이 잡으면 깃발부터 PC통신 ID까지 모두 '통일연세'입니다. 그렇지만 PD가 잡으면 '연세총학'입니다. 고려대학교도 ID가 '민족고대'와 '고려총학'으로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NL 노래에는 식민지, 자주, 민주, 통일 등의 가사가 많이 들어갑니다. 언뜻 떠오르는 제목들도 '조선은 하나다', '조국과 청춘', '아침은 빛나라', '통일선봉대 찬가', '혁명동지가' 등 뭔가 민족적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가사도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내용이 많습니다. '혁명동지가'의 경우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로 가사가 시작됩니다.
PD에는 주로 노동 관련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드립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 중에 꽃다지의 '가자 노동해방'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학년때 PD선배들 따라 집회에 다니면서 NL에서는 부르지 않는 노래들을 많이 배웠는데 그 중에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이 '가자 노동해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NL 선배들과 함께 갔던 집회에서 이 노래가 나오길래 아주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아주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한 누나의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가는 술집도 다릅니다. 전통 찻집조차도 좀 다를 정도입니다. PD 선배들이 자주 가던 치킨집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치킨만 먹나 싶었습니다. 그것도 매일 같은 집에서. 그리고 거기에 가면 학교 내의 그쪽 계열 사람들은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가격도 싸고 양도 많아서 저도 개인적으로 자주 갔습니다. 하지만 뭔가 죄를 짓는 기분에 그 치킨집에 갈 때는 운동과 상관 없는 친구들만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들이 자주 가던 호프집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외상도 받아줬습니다. 외상은 보통 학기초에 과학생회장들이 봉사장학금을 타면 갚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운동권들이 받는 장학금은 대개 이런 공적(?)자금으로 쓰여집니다. 호프집 주인 아저씨가 경찰의 프락치라는 루머도 돌았습니다. 학생들이 누가누가 오는지,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지 경찰에 보고를 한다는 거였습니다.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가 설마... 아직도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 술집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망해서 그 술집들도 망한 건지, 아니면 우리 때문에 그 술집들이 망한 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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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불매
2012-06-27 18:59
잘 읽었습니다
김승교
2012-06-27 19:27
문국현은 CIA의 간첩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공식 선거 평가에서 김승교 변호사가 실제로 한 발언이었죠.
이 사림이 이번 통진당 서울 시당 위원장 후보랍니다.
재미없다
2012-06-27 22:04
[ 김승교 ]
박헌영이도 미제간첩으로 모는 애들인데...
만약에 김정은이 권력에서 밀려나고 김일성가가 몰락하면
새로 권력 잡은 넘이 젤 먼저 할 일은?
김일성도 김정일도 미제간첩이다 라고 할 넘들임.
문국현이 정도야 뭐....
이석기 이정희 김재연도 용도 폐기 되면.....
하늘열림
2012-06-27 22:03
글 잘쓰시네요~
옛날 생각 많이 나네요~
전 중간에 군대갔다와서 복학을 못하여 더 높은곳으로 가진 못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전 통진당 참여계라고 해야 되나?
하여간 참여당당원으로서 통진당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NL분들 보면 괜히 짠해집니다.
그분들 스타일이 딱 학교다닐때 형,누나 들이더군요 정말 정많고 동생들 잘 챙겨주는
분들....
그래서 가슴이 아픕니다.그분들중 진짜 주사파는 얼마 안될텐데...민족주의자들이 대부분인데....동지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인데....
그래도 통근단결을 위해서 후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가자 노동해방"을 좋아합니다.2학년때 이노래 좋아해서 불렀다가 선배형이 걱정스럽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김삼복
2012-06-27 22:54
잘읽었다
오히긴스
2012-06-28 00:23
학창시절, 한총련 선배들의 인간미(?)에 몹시 끌리다가도
평소의 소심함이 난해한 이론, 과격한 구호가 주는 불편함을 수용하기 어려워
끝내 가담하지는 못했으면서
졸업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가카 집권후 꼬라지나 노통서거등 기가 막힌 사건을 겪고
참여당에 갔다가 통진당 까지 와서 이 글을 보니
아련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불간통
2012-06-28 02:04
ㅋㅋ
순수했던(?) 했든(?) 했나(?)
시절 번뇌의 시절이 생각나네
"선배님....그런데...... 미군 병사 하나가 범죄 저질렀는데 그게 왜? 우리가 식민지라는
증거죠? "
" ............"
졸라 무능한 선배들 많았고 쫌 웃겼다
그리고 그때 그 선배 ".........."
(그분 그선배 흐뭇한 중산층 부인으로 잘 사시고 계십니다)
....
너무 치졸하고
무의미한 이야기지
....
그리하여
...
글쓴이 님아
니도 참
쓸쓸하지
.....
나두 쓸쓸하다
허나
타이밍 끝났다
추억빨기로 살기에는
너무늙거나 젊거나
....
청춘은 원래 그런거다
적당히 추억하고
놓아버려라
....
....
...
광선총
2012-06-28 05:05
오모이떼 뽀로뽀로...
나 91. 일학년때. 한 달 단위로 열사님들 죽어나가던 때.
어디가 얼마나 위험한덴 줄 모르고 걍 따라나가던 때.
삼수에 라도 출신이라 겁이없어 보였는지 떡잎이 되보였는지,
선배들이 점점 더 쎈데로 데리고 나가기 시작하던때.
한 분 돌아가신날. 난중에 알고 보니 백골들한테 쫓기다 넘어진 중간에 밟혀서 가셨는데,
그 날 낮엔 직격탄 맞아 가셨다고 알려진 그 날. (돌아보면 그 땐 이런 상황이 흔했음),
눈 돌아가서 전철 선전전 뛰고 백병원으로 달려간 날.
시체침탈 들어온다고 조 짜서 모닥불 피워놓고 뜬 눈으로 밤샌날.
새벽녘에 경기북부남부지구(그땐 아직 지구. 한총련 건설을 위해 각 지구를 총련으로 재건설 하던 때)에서 지원 들어와 모처럼 한 시름 놓을때.
정리집회하는데, 새내기 소감. 울 선배 날 찍었고.
나갔더니 잘 생겼대. ㅋ 아지 멋드러지게 한두개 내뱉어놓고, 순진했던 난.
좋아하는 노래 하나 같이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불렀어.
"가야하네"... ㅋㅋㅋ 난 그냥 그 노래가 좋았어. 가사도 좋고 가락도 좋고.
도대체 이 분위기가 왜 갑자기 싸해 지는가, 나는 몰랐어.
자랑스럽게 날 밀어 내보낸 울 선배가 왜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지, 나는 몰랐어...
이거 아는데 한 반 년 더 걸렸어... ㅋㅋㅋ
난 어떻게 NL이 되어갔는가...
글쓴 형 고마와,
축억이 방울방울.
아 그 뒤로?
이학년때 휴학. 간선간부 일녕, 복학하고 자주적 과학생회 건설 기치로 학회장 당선.
뭐 여기까진 코스였는데, 나름 잘 빠져나왔어. 나쁘지 않게.
'우리실정에 맞는 과학생회 건설' 이게 좀 잘 되었었거덩. 줄 잘탔지.
권, 비권 양쪽에서 그럭저럭 인정 받고, 근로장학생으로 변신. 학점 잘 받고 졸업 잘 했음.
요즘도 술마시면 교포 친구들한테 장군님 말타고 항일운동시절 이야기 해주고 그럼.
추억이 방울방울.
파니야
2012-07-07 14:26
[ 광선총 ]
광선총님 글이 6월 28일 이니 이미 일주일이 지난지라 제 댓글을 님이 볼것이라는 희망은 그다지 없지만^^
당시 그 모닥불에 저도 있었습니다, 91학번. 부산대학교.
마침 서울에 ND(PD의 한 분파)쪽 전국집회가 열리던 중이었고 소식을 듣고 서울 어느대학 학생들과 2:1로조를 짜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품에 화염병 2개씩 넣고 탄 택시인지라 택시기사가 석유냄새난다고 하여 둘러대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서울 학생들쪽에게 전달받은 파이프 하나와 병 두개씩 끌어않고 경찰과 대치하며 밤을 새우던 그떄 느껴지던 팽팽한 습도들.
새벽녁 전진하는 닭장차와 페퍼포그들. 그리고 이어진 협상과 유족들과 경찰들과의 협상이 끝나 다시 철수하던 기억,..
반갑습니다, 잘 살아오셨는지요,. 나도 부산에서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망치
2012-06-29 20:09
재미있게 읽었지만 슬프네요.
말씀하신대로 이 글이 운동권 학생을 희화화시키지 않을까...
이 글은 회고록이지 백서가 아니다라고도 하셨지만...
그래서 이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일까란 생각도 듭니다.
글쓴이께서 조심스러워 한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진정성이 비웃음당할까 걱정됩니다.
다만. 이글을 읽은 운동권 학생들은 기분나빴더라도,
언제나 '내가 이 운동을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란
고민을 놓지 않길 바랍니다. 누구도 그 답을 주진 않으니까요.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요.
이 글에서처럼 선배 혹은 정파 중심으로 운동을 바라보면
그건 더이상 운동이 아닙니다. 선배는 '안내자'일 수는 있지만
결국 '운동'은, '삶'은 내가 해나가는 거니깐요.
그래서 건강한 운동권들은 언제나
책을 읽고(공부하고), 문제를 던지고, 고민을 하고,
대중을 대상화 안하고, 무엇보다 자기합리화를 경계합니다.
되게 유치할만큼 당연한 말이지만
교조주의와 정파에 고민이 갇히면 간과되는 것들입니다.
정파란 당연히 존재되어지는 것이지만
내부비판이 안되는 정파는 썩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어디서든 건투하세요.!
94학번
2012-06-30 07:05
음. 저는 비권이었지만, 나름 운동권 문화가 있던 94 학번이었습니다.
훗날 다른 공부를 다시 하게 되어서 대학교를 쫌 오래~~ 다니게 되었는데
2000 년대와 그때는 사뭇 다르긴 하였지요
입학하자마자 이곳 저곳 학회에 의무 가입되어 소위 '커리'를 읽게 되었는데
그 책들이 이런 책들이었구나, 이제 알게 되었어요
껍데기를 벗고서 정도의 아주 기본 교양만 마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학회 주관하던 선배는, 정말로 뒤풀이 장소에서 '1학년'들이 가지는 모든 고민과
의문의 해답을 갖고 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해도 제가 있던 캠퍼스에서는
도서관엔 자보가 늘 붙어 있고, 학교 도서관 앞 작은 광장에서는 매일 집회가 열렸지요
셔틀버스를 타러 줄을 서면 운동 노래를 늘상 들어서 한두구절씩은 흥얼거리게 되고요
'원진레이온' 노동자가 울분을 토하던 학내 집회를 듣고서는
이 문제 정말 심각하구나, 하고 혼자 겁없이 '불법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제가 있던 학교(서울대)의 공식 깃발은 없었고
어떤 학과(기계공학과)의 학과 깃발아래 조금의 학우들이 모여있더군요.
여하튼 '불법 집회'라서 최루탄도 조금은 터졌던 것 같습니다.
집회에 혼자 나갔던 저는 대략 뻘쭘해서 중간에 슬그머니 빠져나갔지요.
운동 집회라는 것도 혼자 참여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몰랐던 것이 순진한건지.
기계과는 PD 계통이 장악하고 있었지요
오늘 이 글을 읽어보니 대충 스토리가 이해가 됩니다.
요즘 가카보다 더 나를 짜증나게 하는 소위 경기동부 사람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되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냥 그 때 기억이 아련하네요.
cryslub
2012-07-02 10:23
nl이나 pd나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 소양마저 글러먹었다는 생각이드는군요
머 그때는 시대가 그러했으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잉여인간
2012-07-04 08:10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99학번으로 운동권과는 전혀 관계 없이 학교 생활을 하다가 복학 후 어쩌다보니 과대표를 맡게 되었는데, 선배들도 모두 취업준비로 바빠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보고 배운 것도 없어서 그냥 학과 통째로 학생회에 들고 들어갔습니다. 학생회에서 과행사 운영 같은 것을 배울려고 들어갔던 것이죠.
저의 과는 영문과 였는데, 영문과는 학생회하고 연을 끊은지가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찾아왔냐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이 지금도 선합니다. 나중에 학교 축제 때, 학생회 주최 과대표 모임에서 '학과가 영문과인 만큼 미제 물이 들어서 민족적인 학생회와는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라는 아부성 자아비판도 했었습니다.
총학생회 학우분들 모두 열성적이고 성실한 분들이었는데, 과대표라는 저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 학우분들을 도구로 이용하고 버렸다는 죄의식 같은 기억들이 새삼 떠오르고, 그 때 그 분들의 머리 속에는 있었을 생각들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dreamwith72
2012-07-07 14:35
댓글이안되어 여기에 글남깁니다
광선총님 글이 6월 28일 이니 이미 일주일이 지난지라 제 댓글을 님이 볼것이라는 희망은 그다지 없지만^^
당시 그 모닥불에 저도 있었습니다, 91학번. 부산대학교.
마침 서울에 ND(PD의 한 분파)쪽 전국집회가 열리던 중이었고 소식을 듣고 서울 어느대학 학생들과 2:1로조를 짜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품에 화염병 2개씩 넣고 탄 택시인지라 택시기사가 석유냄새난다고 하여 둘러대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서울 학생들쪽에게 전달받은 파이프 하나와 병 두개씩 끌어않고 경찰과 대치하며 밤을 새우던 그떄 느껴지던 팽팽한 습도들.
새벽녁 전진하는 닭장차와 페퍼포그들. 그리고 이어진 협상과 유족들과 경찰들과의 협상이 끝나 다시 철수하던 기억,..
반갑습니다, 잘 살아오셨는지요,. 나도 부산에서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dreamwith
2012-07-07 14:36
댓글이 잘 안달리네요
광선총님 글이 6월 28일 이니 이미 일주일이 지난지라 제 댓글을 님이 볼것이라는 희망은 그다지 없지만^^
당시 그 모닥불에 저도 있었습니다, 91학번. 부산대학교.
마침 서울에 ND(PD의 한 분파)쪽 전국집회가 열리던 중이었고 소식을 듣고 서울 어느대학 학생들과 2:1로조를 짜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품에 화염병 2개씩 넣고 탄 택시인지라 택시기사가 석유냄새난다고 하여 둘러대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서울 학생들쪽에게 전달받은 파이프 하나와 병 두개씩 끌어않고 경찰과 대치하며 밤을 새우던 그떄 느껴지던 팽팽한 습도들.
새벽녁 전진하는 닭장차와 페퍼포그들. 그리고 이어진 협상과 유족들과 경찰들과의 협상이 끝나 다시 철수하던 기억,..
반갑습니다, 잘 살아오셨는지요,. 나도 부산에서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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