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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활동가였던 우파 활동가…NL 탄생에서 현재까지 경험 토대로 상세히 기술
주사파 과거 폭로한 민경우의 ‘스파이 외전’
2024. 01. 02 by 박차영 기자
민경우의 ‘스파이 외전’을 읽어보면 좌파들, 특히 주사파들이 왜 그를 그토록 경계했는지를 알수 있다. 그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에 지명되자 반대자들은 그기 대표로 있던 대안연대 유튜브를 샅샅이 뒤져 거두절미하고 문제되는 곳만 침소봉대함으로써 공격했다. 결국 그는 여당 비대위원과 대안연대 대표를 그만두었다.
민경우씨는 서울대 국사학과 84학번으로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1995~2005년 주사파의 한 조직인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그는 그동안 3번 구속되고 4년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2005년 생각이 바뀌어 주사파에 반대하는 쪽에 섰다.책 표지 /네이버 책
2023년 11월에 출간한 ‘스파이 외전’은 그가 주사파 활동을 하면서 행한 행동, 만난 사람, 들었던 내용과 사람에 관한 보고서다. 또한 이 책은 이 나라 운동권의 연대기이며, 주사파의 탄생에서 지금까지 그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열전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평론이기도 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인 통합진보당, 진보당 소속 정치인들의 이름이 그의 기억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전향을 했든, 아직도 주사파적 사고를 가지고 있든, 감추고 싶었던 그들의 과거가 활자화되었다. 책이 나온지 한달 이상이 지났다. 책에서 거론된 어느 정치인도 저자가 들춰낸 과거가 잘못이라고 주장한 경우를 들은 적이 없다. 주사파 핵심에 있었던 당사자의 폭로이므로 진실함이 묻어 나온다.
민경우가 ‘스파이 외전’에서 소개한 내용을 간추린다.
1985년 서울대에 김영환을 중심으로 북한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주사파가 시작되었다. 민경우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대 주사파는 북한의 지령이 없이 자생적으로 생겼다고 한다. 같은 해에 북한 해주에서 송출하는 통혁당 목소리 방송은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바꾸었다. 민혁당의 김영환, 중부지역당의 황인오, 일심회의 마이클 장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고 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가서 밀봉교육을 받았다.
1980년대 중후반은 전대협의 전성기였다. 이 시절에 전대협, 주사파, 한민전은 동의어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은 전대협과 주사파의 투쟁이었고, 한민전 방송이 숨은 실세였다. BC소조라 불린 방송팀이 한민전 방송을 녹취하면 녹취록이 정리되어 전국 대학가로 배포되었다. 1988~1992년 수만명이 참여했던 투쟁의 껍데기가 전대협이라면 그 것을 혈관처럼 지탱했던 것은 다름 아닌 한민전 방송 녹취록이었다. 북한은 한민전을 통해 운동의 방향을 쏘아보냈고 학생들을 그 내용을 받아적어 지침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시기에 운동권의 규모와 대중성의 관점에서 다른 시기를 압도한다. 민경우는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당 운동권 국회의원 70명 중 30명 이상이 이 시기 출신이다. 이 시기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대부분이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 책을 내지만 형식에 그치고 학생운동 경력을 굼기거나 어물쩍 넘어간다. 이 것이 197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과 다른 지점이다. 아마도 주체사상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8~1990년 운동세력들은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1990년 범민련이 조직되었다. 범민련은 남과 북, 해외 3자 연대로 구성되었다. 민경우는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총장을 맡았다. 그는 “범민련 남측본부는 조선노동당 남조선 지부를 만드는 것과 다름 없다”고 한 말을 들었다고 기억했다. 전대협은 1993년 한총련으로 탈바꿈한다. 민경우는 한총련이 전대협보다 더 강하게 한민전에 포박되어 있었다고 증언한다.
북한을 다녀온 후 실망한 김영환이 1990년대 중후반에 전향한 후 민혁당 경기동부와 울산지역이 김영환을 거부하고 주사파 노선을 고수한다. 그에 비해 전북은 김영환과 함께 이탈해 북한 민주화운동을 한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6·15선언에 힘입어 남한의 진보정당·단체는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남한 주사파 운동의 실세인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안경호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겸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회동했다. 이 비밀 회동에서 북한의 안경호가 남한의 오종렬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주었다고 한다.
북한의 직접적 교시는 2001년 9월 충북 괴산군에 있는 군자산 집회로 이어진다. 군자산에 있는 한 수련원에 남한 주사파 활동가들이 총집결해 북한이 내려준 10쪽 짜리 선언문을 채택했다. 내용은 안경호가 오종렬에게 준 메시지 그대로였다. 주사파들은 이 회동을 ‘군자산의 약속’이라고 한다.
안경호-오종렬 회동에서 군자산의 약속으로 이어지는 내용의 골자는 ①통일운동을 중단하고 민노당에 가입할 것 ②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국을 압도해 북한 주도로 통일을 한다는 것이었다고 민경우는 회고했다.
첫 번째는 대중투쟁이다. 전국연합과 같은 비합법 조직에서 나와 민노당의 합법 공간에서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지하의 음지에서 나와 제도권의 양지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라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을 양지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 지하조직에 볕을 쪼여준 것이다.
둘째는 북한의 통일주도권이다. 그동안 주사파를 비롯해 운동권의 통일 논리는 남한에 민주정부를 수립한 다음에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안경호의 밀지와 군자산 모임에서는 북한이 군사적 방식으로 통일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북한 주도의 통일론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발전시켜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 미국이 본토와 자국민 희생을 우려하여 한반도에 대한 개입을 주저하고 이때 북한이 군사적 방식으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핵과 미사일로 겁박하며 6·25와 같은 대사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2001년 군자산의 약속을 계기로 지하에 암약하던 주사파는 대거 민노당에 입당한다. 합법공간에서 주사파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PD 계열이 잡고 있던 민노당은 NL 계열이 밀려들면서 서서히 주사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다음해 노무현 사망을 계기로 민주진영 흐름이 활성화되고 민노당은 극적으로 성장한다. 이 무렵 서울대 출신 이정희를 영입하면서 주사파는 대중성 있는 리더를 맞게 된다.
민노당은 심상정·노회찬의 PD계열이 갈라서기도 했으나, 2011년 친노무현 계열의 국민참여당, 심상정·노회찬 등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진당은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통해 13석(지역 7석, 비례 6석)의 획기적인 의석을 차지했다.
이때 비례 2번으로 이석기가 당선되었다. 민경우의 설명에 따르면 이석기는 민혁당 남부지역위원장이었고, 경기동부의 맹주였다. 그는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민경우는 2010년경 북한이 주사파 여러 그룹에게 “곧 전쟁이 발발할수 있으므로,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동부도 그 메시지를 받았고, 이석기는 북한의 메시지를 앞에 두고 조직원들을 불러 정치회합을 갖고 대응방법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석기를 중심으로 경기동부가 무기를 탈취하고 유류소를 폭파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준비한 것은 집단 놀이이거나 관념적 유희에 불과하다고 민경우는 진단했다. 그러던 통진당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해산되었다.
주사파들은 민노당에 이어 민주노총을 장악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권영길, 이갑용, 단병호까지가 PD계열이고, 2004년 이후 이수호, 조준호 이후 대부분이 NL 성향이거나 NL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집행부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전체적으로 PD에서 NL로 바뀌었다.
최근 NL는 비정규직 운동, 택배 노조에 치중한다. 현재의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주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강성희 의원도 현대기아차에서 비정규직 운동을 하던 인물이다.
저자는 책 마지막 3부에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분석했다. 안희정, 김경수, 정청래, 송영길, 하태경, 최민희, 김부겸, 우상호, 정봉주가 쓴 책 또는 발언을 놓고 그들이 과거를 얼마나 위장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저자는 이들의 집단 은폐가 학생 시절의 급진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계심을 완화하기 위한 기만술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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