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7

알라딘: 천황 아키히토와 헤이세이 일본사 와타나베 오사무

알라딘: 천황 아키히토와 헤이세이 일본사


천황 아키히토와 헤이세이 일본사 - 냉전 후 30년, ‘상징’천황이란 무엇이었나 
와타나베 오사무 (지은이),박삼헌 (옮긴이)뿌리와이파리2024-09-24
원제 : 「平成」の天皇と現代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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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헤이세이의 천황 아키히토의 ‘상징천황’으로서의 적극적인 활동, 그 ‘공무’를 둘러싼 좌파와 우파의 전통적 구도의 뒤틀림, 그리고 천황의 그런 언행이 일본국헌법 ‘일탈’임을 지적하는 천황제 비판론자 와타나베 오사무 교수…. 전후 일본 정치체제의 핵심 ‘상징천황제’의 본질을 해부한다!

2005년 6월 28일, 아키히토(明仁) 천황 부부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옥쇄’했던 미국령 사이판섬의 ‘태평양한국인위령평화탑’에 배례했다. 옛 전장과 ‘중부태평양전몰자의 비’, 수많은 민간인들이 스스로 몸을 던진 ‘반자이(만세) 절벽’ 등을 찾은 위령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돌연’(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채로) 들른 것이었다. 4분 동안, 헌화나 추도사 없이 탑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제1장 ‘헤이세이’ 전기의 정치와 천황
1. 냉전 후 정치의 대변모와 천황의 새로운 이용
2. 천황의 역할을 둘러싼 새로운 대항의 대두―새 천황에 대한 우파의 회의와 비판
3. 제1라운드: 한일 간의 ‘말씀’ 마찰을 둘러싼 정치와 천황
(1) 노태우 대통령 방일과 천황의 ‘말씀’ 사건의 경위
(2) ‘말씀’을 둘러싼 정치와 천황의 대항 관계 변화
(3) “천황 자신이 바란다”
(4) 천황 ‘말씀’에 대한 원칙적 반대론
4. 천황의 방중을 둘러싼 지배층의 대항과 천황
(1) 천황의 방중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의도
(2) 천황의 방중을 둘러싼 공방
(3) 천황의 방중 문제에서 드러난, 정치와 천황
(4) 천황의 방중 문제가 초래한 것
(5) ‘사죄의 특사’ 정책이 지닌 과도기적 성격
5. ‘황후 때리기’라는 형태로 나타난 우파의 천황・황실 비판과 그 종식
(1) 황실 비판의 분출과 그 종식의 경위
(2) ‘황실 때리기’의 의의

제2장 ‘헤이세이류’의 확립과 헌법으로부터의 이륙
1.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정치의 격동, 그리고 정치와 천황제의 거리
(1) 정치의 요청, 관심의 감소
(2) 정치의 변모가 천황에게 남긴 결과
2. ‘헤이세이류’의 확립
(1) ‘헤이세이류’ 형성에 대한 의욕과 모델
(2) 국내―전지역 방문
(3) 재해피해지 방문, 장애인, 고령자, 약자에 대한 집착
(4) 환경에 대한 관심
(5) 전쟁, 평화, 오키나와에 대한 집착
(6) ‘헤이세이류’의 헌법적 문제점
3. 천황 아키히토의 ‘상징’ ‘헌법’ ‘전쟁과 평화’ 인식의 구조
(1) 아키히토의 ‘상징’ 인식―전통과 헌법이라는 두 기둥
(2) 아키히토의 ‘헌법’ 인식―헌법으로부터의 이륙
(3) ‘전통’ 회귀
(4) ‘전쟁’과 ‘평화’에 대한 아키히토식 이해
(5) 아키히토가 ‘상징’·‘헌법’·‘전쟁’ 인식을 갖게 된 배경
4.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한 집착―황태자 비판에서 여계 천황, 여성 미야케 구상까지
(1) 황위 계승 문제의 대두
(2) 마사코 문제와 천황의 노여움
(3) 여성・여계를 둘러싼 대항
(4) 고이즈미 유식자회의를 둘러싼 공방
(5) 우파와 아키히토 천황
(6) 황통 문제의 ‘종식’과 천황 아키히토의 번민
5. 보수정치와 천황의 긴장 관계
(1) 고이즈미 정권과 천황, 그리고 야스쿠니
(2) 제1차 아베 정권과 천황
(3)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과 천황
(4) 노다 정권의 ‘여성 미야케’ 구상

제3장 ‘부활’ 아베 정권 시기, 보수정권과 천황의 긴장과 대립
1. 제2차 아베 정권의 정치적 노림수와 천황
(1) 제2차 아베 정권의 지향점―대국의 복권
(2) 제2차 아베 정권의 천황 정책
(3) 천황의 아베 정권에 대한 이중의 불신
2. 제2차 아베 정권 시기의 보수정치와 천황의 긴장 관계 격화
(1) ‘대전’과 전쟁의 기억에 대한 집착과 긴장
(2) 황실의 장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
(3) 천황의 동향에 대한 우파와 ‘리버럴’파의 찬반론
3. 퇴위 문제를 둘러싼 공방
(1) 아키히토 천황, ‘퇴위’의 노림수
(2) 퇴위를 둘러싼 공방
(3) 우파의 아키히토 비판과 ‘아키히토’파의 형성―천황 논의의 뒤틀림

소결: ‘헤이세이류’의 유산
1. 나루히토 천황으로
2. ‘헤이세이류’의 유산
3. 상징천황제의 장래를 향한 두 가지 과제

후기|옮기고 나서
부록 1: 일본국헌법 ‘제1장 천황’의 원문과 번역문
부록 2: 헤이세이의 천황 및 내각, 한일관계 관련 일지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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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 천황과 천황제 문제는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 특히 한국 시민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 이 책에서도, 취임한 아키히토 천황이 가장 먼저 직면했던 문제는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의 만찬에서 ‘말씀’에 어느 정도의 ‘사죄’ 문구를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대국으로서 아시아 진출을 노리는 일본 정부와 외무성은 그 앞에 놓인 ‘가시’인 사죄 문제를 끝내고 싶다는 한국 측의 요구에 ‘배려’를 담은 문구를 넣고 천황도 동의했지만, 외무성안이 알려지자 자민당 내에서는 “언제까지 무릎을 꿇어야 하느냐”는 반발이 등장했습니다. (한국어판 서문) 접기
P. 6 이 책은 1989년 1월 쇼와 천황의 서거 후 천황에 취임한 아키히토가 2019년에 ‘퇴위’하고 나루히토로 교체되기까지의 30년을, 처음에는 “여러분과 함께 일본국헌법을 지키고 이에 따라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며 등장한 아키히토가 점차 군주로서의 자신감을 키워가며 헌법의 이념으로부터 이탈해가는 역사로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에 대해서는 재임 중일 때부터 수많은 책이 출판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아키히토의 업적을 ‘헤이세이류’라며 예찬하는 내용이었으므로, 이 책은 그 점에서는 드문 책입니다. 접기
P. 32 이러한 방향을 추구하는 새 천황의 등장은 대국화의 장애물 극복으로 머리가 아팠던 지배층 주류에게 둘도 없는 행운으로 비쳤다. 첫째, 자위대 파병, 대국화를 전전 일본으로의 복고와 연결하여 경계하는 시민들의 분위기에 대해 ‘헌법’을 강조하는 아키히토 천황은 그 경계심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둘째, 대외적으로 일본이 지향하는 대국화 노선의 용인을 압박하는 ‘특사’로서, 직접적으로 전쟁을 알지 못하는, 게다가 전쟁에 집착하면서 그러한 국가들에 대한 방문에도 의욕을 보이는 듯한 아키히토 천황은 매우 적절한 인물로 보였다. 이리하여 쇼와 천황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커다란 정치적 가치가 아키히토 천황에게 기대되었다. 접기
P. 42 하지만 궁내청은 ‘애당초론(論)’을 내세워 반대했다. 애당초, 천황은 헌법에 따라 ‘국정에 관한 권능’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한 사죄를 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 부문-내각의 책임이고, 천황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의례적인 발언밖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포드와 덩샤오핑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말씀’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에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1994년 9월 6일 궁중에서 열린 만찬회 자리에서 천황의 ‘말씀’은 결국 “이러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고,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색다른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 7일 수상이 주최하는 환영오찬회에서 나카소네 수상이 전날의 ‘말씀’에 보족 발언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귀국 및 귀국 국민에게 다대한 고난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부와 국민이 이 잘못에 대해 깊은 유감의 염을 가짐과 동시에 장래에 이런 일이 없도록 굳게 결의하고 있음을 표명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확인해둘 것은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와 외무성의 의도에 대해 궁내청이 헌법상의 입장을 견지하여 저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 헌법상 지극히 정상적으로, 천황의 발언은 종래 관행의 선에 그치고, 본래 국민을 대표하는 수상이 더 진일보한 사죄의 의사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때 궁내청이 취한 태도는 훗날 천황 아키히토 시대의 궁내청이 취한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접기
P. 68~69 ‘황실 때리기’에서 천황 비판의 초점은 ‘열린 황실’론으로, 1989년에 품기 시작한 의구심이 이제 철저한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라고 그들은 말을 잇는다. 혈통에 의해 그 지위에 오르는 ”천황은 태어날 때부터 황족이며, 국민 일반과 신분적으로 구별된다. 즉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지적대로이다. 그들은, 그렇기에 “천황은 그러한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헌법 같은 것은 결국 일시적인 약속”, 민주주의도 “당분간은 유용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말고 역사의 연속성을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천황의 역할이다, 라고 덧붙이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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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와타나베 오사무 (渡辺治)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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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도쿄도 출생.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과학연구소 조수, 조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2010년까지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일본이 전쟁을 영구히 방기하고 군사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제9조를 포함하는 일본국헌법의 개정을 저지할 목적으로 결성된 사회운동단체 ‘9조 모임(九条の会)’의 사무국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와타나베 오사무 저작집(渡辺治著作集)』 전 16권(旬報社)이 있다.

최근작 : <천황 아키히토와 헤이세이 일본사> … 총 49종 (모두보기)

박삼헌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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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겸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소장. 근대 일본의 국가체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를 둘러싼 역사 인식에 관심이 많다. 또한 tvN <벌거벗은 세계사> 등에서 균형 잡힌 일본 인식을 위한 강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저서로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체제: 지방관회의·태정관·천황』,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 등이, 공저로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일본사 시민강좌』, 『벌거벗은 세계사: 사건편 2』 등이, 번역서로 『천황의 초상』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책] 한국인, 근대적 건강을 상상하다>,<일본사 시민강좌>,<교차와 접합의 지(知)> … 총 2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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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천황 아키히토와 헤이세이 일본사>,<대멸종의 지구사>,<반박의 기술>등 총 117종
대표분야 : 과학 20위 (브랜드 지수 136,445점), 역사 23위 (브랜드 지수 81,66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천황이 식민지 지배를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것은 일본국헌법 ‘위헌’이라면?

헤이세이의 천황 아키히토의 ‘상징천황’으로서의 적극적인 활동,
그 ‘공무’를 둘러싼 좌파와 우파의 전통적 구도의 뒤틀림,
그리고 천황의 그런 언행이 일본국헌법 ‘일탈’임을 지적하는 천황제 비판론자 와타나베 오사무 교수…
전후 일본 정치체제의 핵심 ‘상징천황제’의 본질을 해부한다!

천황 뒤에 ‘폐하’를 붙이지 않는 천황제 비판론자,
천황 아키히토의 ‘헤이세이 30년’을 재구성하다

2005년 6월 28일, 아키히토(明仁) 천황 부부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옥쇄’했던 미국령 사이판섬의 ‘태평양한국인위령평화탑’에 배례했다. 옛 전장과 ‘중부태평양전몰자의 비’, 수많은 민간인들이 스스로 몸을 던진 ‘반자이(만세) 절벽’ 등을 찾은 위령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돌연’(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채로) 들른 것이었다. 4분 동안, 헌화나 추도사 없이 탑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12월에는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는 깜짝발언을 했던 아키히토 천황의 방한 또한 양국에서 여러 차례 추진·모색되었고, 기자들도 물었다. 물론, 그것은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대답했지만, 본인도 적극적인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제 상황(上皇)이 된 그가 해방 8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2025년에 방한하는 구상이 다시 나오는 모양이다. 과거사 문제의 매듭이자 한일관계의 새로운 막으로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만약 천황이(당연히 상황도) 식민지 지배를 진솔하게 사과한다면, 그런 정치적 발언은 일본국헌법 ‘위헌’이다.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전쟁을 방기한다는 평화헌법 제9조를 지키는 ‘9조의 모임’ 구성원이자, 천황 뒤에 ‘폐하’를 붙이지 않는 천황제 비판론자로, 1989년 1월 7일 쇼와(昭和) 천황이 서거했을 때는 매일 밤 우익의 협박전화와 위협을 받아야 했던, 천황제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히토쓰바시 대학 명예교수 와타나베 오사무의 지적이다.
왜? 와타나베 교수는 그 이유를, 이 책에서 1989년 1월 천황으로 즉위하여 2019년 4월 30일 근대 이후 처음으로 ‘생전 퇴위’를 이뤄내기까지, 전후 최초의 진짜 ‘상징천황’이었던 아키히토를 중심으로 ‘헤이세이(平成) 30년’의 일본 사회, 일본 정치, 천황제와 황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며 들려준다. 논의는 꼼꼼하고 준거는 명확하다.

천황 아키히토의 ‘헤이세이류’는 헌법, ‘상징천황제’로부터의 일탈이다
2016년 7월 13일, 천황 아키히토가 퇴위를 원한다는 NHK 특종이 나온다. 퇴위 찬반 논의가 이어지면서 ‘헤이세이’의 천황의 업적을 예찬하는 대합창이 나타나고, 그 천황 예찬의 목소리가 3년 후인 2019년 5월 1일, 새 천황 나루히토(德仁) 즉위와 ‘레이와(令和) 시대’ 개막에 즈음하여 절정에 이른다. 상황은 30년 전의 쇼와 천황 서거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먼저, 천황을 둘러싼 정치적 대결구도가 뒤집혔다. 기존 전후 정치사의 천황-보수정치 대 혁신 세력-‘리버럴’ 지식인 구도가 뒤틀리고, ‘퇴위’하겠다는 천황과 지지하는 ‘양심적 보수’, ‘리버럴파’ 지식인, 언론의 다수에 맞서 퇴위를 원치 않는 아베 정권과 퇴위를 반대하는 우파 논객들이 대결했다.
그리고 천황(제) 비판 담론이 전무에 가까웠고, 우익도 폭력이나 테러 없이 조용했으며, 언론에 더해 놀랍게도 양심적 보수, ‘리버럴파’, 헌법학자들의 아키히토 옹호와 예찬이 이어졌다.
보수 정권의 천황 이용, 천황의 헌법 일탈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보기에, 30년 동안 아키히토 천황은 명백히 헌법/상징천황제로부터의 일탈을 강화해왔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상징천황제’를 담은 새 일본국헌법이 전후 일본 사회를 구성했다. 천황은 “일본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그러나 ‘상징천황’은 절대군주도 입헌군주도 아니다. 일본국헌법은 ‘제1장 천황’, 8개조로 시작된다(그다음이 위의 ‘제2장 전쟁의 방기’로 제9조 하나, 제3장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40조다). 천황은 어떤 정치적 권능도 가지지 않고, 엄격하게 열거된 ‘국사행위’만 할 수 있으며, 그것조차도 ‘내각의 자문과 승인’을 받도록 제한되어 있다.
천황 아키히토는 즉위하면서 ‘헌법 준수’를 맹세했다. 그 이후 30년 동안 국내 전 도도부현을 세 바퀴 돌면서 특히 재해피해지와 사회적 약자들을 찾고 만났고, 해외의 옛 전적지를 찾았으며, 때로는 아베 신조 수상을 비롯한 정권과 맞섰고, 황실의 미래를 걱정한 끝에 근대 이후 처음으로 ‘생전 퇴위’를 이뤄내며 ‘헤이세이류 상징천황’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려고 나름 고투했다. 지지와 인기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헌법이 규정한 ‘상징천황’에 걸맞은 것이었는가. 지은이는 ‘헤이세이 30년’을 정치, 그리고 천황의 행동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세 시기로 구분해 살펴본다.
제1기(1989~94년)에는 보수정권이 일본의 대국화를 지향하는 가운데 천황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천황이 거기에 응답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모색한 시기였다. 제2기(전후 50년에 해당하는 1995년부터 2012년)는, 천황에 대한 기대가 정치 쪽에서 줄어들고, 이것에 반비례하여 천황 자신의 의사에 기초한 행동이 늘어나면서 천황이 자신(自信)을 갖게 된, 이른바 ‘헤이세이류’가 확립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쇼와 천황 때는 없었던 천황의 행위의 비대화가 진행되었다. 제3기(제2차 아베 정권이 탄생한 2012년 말부터 황위 계승까지)에는 천황의 권위가 증대하고, 천황과 보수정권이 긴장 관계에 빠졌던 시기였다.
그것은 결국 일탈의 과정이었고, 지은이는 현행 천황제 역시 민주주의와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첫째, 국민의 민주적 선출에 의하지 않은 천황의 정치적 언행이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천황에 대한 지지로 인해 용인된 잦은 ‘말씀’과 ‘행행(行幸)’ 등 위헌 혐의가 짙은 행동이 ‘상징으로서의 직무’라는 명분으로 기정사실화/확대되었고, 그 위험성은 2016년 아키히토 천황이 ‘퇴위’를 요구했을 때의, 아베 정권을 능가하는 정치적 행동으로 나타났다. 아베 수상과 대립각을 세웠기에 지지했다면, 반대의 경우에는 어찌할 것인가.
두 번째의 더 큰 문제는, 천황이라는 권위에 의존함으로써 국민이 주권자라는 자각과 책임이 모호해지고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을 계속 회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식민지 지배 문제든 원자력발전 문제든 오키나와 기지 문제든, 국민이 스스로, 그리고 정치세력과 수상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천황의 방문이나 ‘말씀’은 일시적 위안은 될지언정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천황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지은이는 두 개의 과제를 든다. 첫 번째는 현대의 천황제도를 헌법이 지향하는 상징제도에 가깝게 만드는 것. 천황의 공적 활동은 엄격하게 국사행위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하고, ‘4대 행행’ 등으로 불리는 천황의 지방 방문, 식전 참가는 중단, ‘황실 외교’로 불리는 공적 외국 방문도 중단.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시민으로서, 즉 ‘민간인’ 자격으로 가면 된다고. 여성 천황, 여계 황족도 인정하고. 그래도 남는 근본적인 문제, 세습 천황과 민주주의 및 헌법의 ‘법 아래의 평등’과의 모순은 ‘상징’을 헌법에 따라 축소해가는 긴 작업의 끝에 가서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두 번째 과제는 위안부, 징용공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 지배-전쟁 책임과 원전, 오키나와 기지 문제 등을 천황의 ‘여행’이나 ‘말씀’으로 얼버무리는 게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로서 정면으로 대처하는 것, 그런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천황제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 것입니다.”
곡진한 ‘한국어판 서문’이 책 한 권의 완벽한 요약이자 노학자의 담백한 초대장으로 다가온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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