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6

[미니인터뷰]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 沈在璣 회장 : 월간조선

[미니인터뷰]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 沈在璣 회장 : 월간조선

미니인터뷰]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 沈在璣 회장
『4·3 사건 추모사업은 지원해 주면서 6·25 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은 나몰라라 하는 정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성동 
인민군에게 학살당한 아버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의 沈在璣(심재기·63) 회장은 6·25 전쟁 중에 아버지(沈景燮)를 잃었다. 沈회장의 아버지는 전쟁이 발발한 당일인 1950년 6월25일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했다. 당시 나이 35세였다. 沈회장의 아버지는 군인도 경찰도 아니었다. 당시 대한흑연탄광주식회사 강릉광업소 경리과장으로 재직중이었다.

沈회장의 부친처럼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나 좌익에 의해 학살당하거나 부상, 납치 등으로 희생된 민간인 수는 99만2000여 명이다. 이들 민간인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6·25 전쟁을 전후해 대한청년단, 국민회, 태극단 자치회 등을 자체적으로 조직해 마을을 지키거나 戰線(전선)에 노무자로 나가 탄약을 나르다가 희생당했다.

이렇게 6·25 전쟁 때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유족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다. 1989년에 발족해 현재 회원은 3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하다. 「6·25 당시 민간인의 희생정신을 歷史(역사)·戰史(전사)·교과서에 기재토록 해서 국민정신의 師表(사표)로 삼는 것」이다.

민간인 희생자들의 애국을 국민정신의 師表로 삼기 위해 이들이 추진하는 사업은 위령탑 건립과 기념관 건립이다. 위령탑은 6·25 전쟁 발발 51년 만인 2001년 6월20일 강원도 강릉시 등명동에 세워졌다. 이 지역은 6·25 당시 인민군이 최초로 남침한 곳이다. 위령탑에는 1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봉안되었다.


민간인 희생자 유족 모임이 만들어지고 위령탑이 건립되기까지는 沈회장의 개인적인 노력이 컸다. 沈회장은 모임을 추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6·25 전쟁 때 희생된 100만 민간인의 충정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100만 민간인 희생자의 충정」을 알리는 일이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964년부터 민간인 희생자 관련자료들을 찾아나섰어요. 정부가 언제나 軍·警(군·경) 희생자만 추모하는 것에 서운함이 있었지요. 민간인 희생자들도 나라를 지키려다가 희생된 사람들인데도 말이죠』



沈회장의 끝나지 않은 6·25


沈회장은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6·25 발발 시간이 새벽 4시가 아닌 3시라는 사실을 찾아내기도 했다. 위령탑이 건립된 강릉시 등명동 지역으로 인민군이 새벽 3시에 상륙했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7만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 희생자 명단과 신분증, 메달, 육필 수기 등 100여 편에 달하는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沈회장은 1982년에는 전국을 돌며 다른 유족 1만 명의 서명을 받아서 가칭 「호국충렬사」 건립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6·25 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관」 건립에 대한 사회적 관심 확산을 위해 전국 일주를 하기도 했다. 거리는 1800여km. 그런 노력의 결과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가 발족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沈회장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6·25 민간인 희생자 기념관 건립이다. 6·25 민간인 희생자 관련자료들을 찾으러 나설 때부터 40여 년간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는 등 각계 요로에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녔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다. 金大中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沈회장은 정부의 재정 때문이려니 하고 이해하면서 서운함을 삭였다고 한다.

그런 沈회장이었지만 요즘은 정부의 처사에 한숨만 나온다고 한다.

『金大中 정부는 각종 특별법을 통해서 제주 4·3 사건, 거창 사건, 여순 사건, 5·18 광주사태 등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명예회복과 함께 대대적인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6·25 전쟁 중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민간인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金大中 정부 들어 국회에 청원도 해 보고 최욱철 의원을 통해 의원입법도 시도해 보았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었습니다』

沈회장은 말을 마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오는 3월1일에 서울 시청에서 열리는 「反核反金(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에 회원들과 함께 꼭 참석할 생각입니다』

沈회장의 집은 강원도 강릉이다. 그의 6·25는 아직도 진행형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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