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알라딘: 상식의 독재 - 망국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을 변호하다 한윤형 2024

알라딘: [전자책] 상식의 독재


[eBook] 상식의 독재 - 망국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을 변호하다
한윤형 (지은이)생각의힘2024




입니다.


























전자책종이책 19,800원
전자책정가
17,600원
Sales Point : 670

8.9 100자평(6)리뷰(1)

종이책 페이지수 : 504쪽

책소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신작
‘한국적 삶’의 명과 암에 대한
치밀한 통찰과 모색

‘상식’이라는 이름 아래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한쪽 눈을 감은 채 다른 한쪽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혐오하고 있다. 여기, ‘곧 망할 나라’에서 그 나라를 분석한다는 것의 의미를 진득히 해득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 사회의 좌표를 찾는 일에 매진해온 논객 한윤형이 갓 벼린 칼날 같은 단독 저서로 7년 만에 돌아왔다. 특유의 번쩍이는 통찰력과 강기를 무기 삼아 종횡무진 텍스트를 누비며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우리 삶의 풍경은 어떠한지, 그 특징은 실로 무엇인지 묻고 답한다. 두터운 탐구 여정을 앞에 두고, 저자는 ‘상식의 독재’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책은 ‘한국인의 상식’을 살펴보고자 전근대까지 추적해 올라가면서 과거와 오늘을 잇는 일에 매진한다. ‘하나의 상식’이 지배하던 나라에서 이제는 쪼개지고 분화하여 투쟁하는 왜곡된 ‘상식들’의 나라가 되었음을 밝힌다. 

결국 ‘상식의 복원’이다. 대한민국의 성취도 한계도 균형 있게 직시하는 ‘상식’이 필요하고, 책은 선결적으로 그 역할을 감당해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관한 전방위적 고찰과 비평을 담은 《상식의 독재》이다.



목차


서문∥‘곧 망할 나라’에서 그 나라를 분석한다는 것
서론∥‘한국적 삶’을 탐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며

1장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 ‘한국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 철학적 기반이 없어 문제일까?

2장 한국의 근대는 일본과 미국의 짜깁기?
: 배트를 던져버리는 한국 야구 선수들이 보여주는 것

3장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정체성은 없다?
: 〈킹덤〉 이후에 새롭게 오게 될 것들

4장 그 ‘게으른 조선인’이 어떻게 현대 한국인의 조상일까?
: ‘한말 외국인 기록’의 재인식

5장 한국은 하나의 상식이다
: 성리학의 나라에서 상식의 나라로

6장 한국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민족 피해자 서사
: 한일 관계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는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

7장 군자와 주인, 윤리적 개인이 되는 다른 방법
: 동아시아와 유럽의 갈림길을 탐색하다

8장 불평등이 상식을 해체할까?
: 강시가 입은 청나라 관복의 비밀

9장 결코 제국이 될 수 없는 한국?
: 저출생으로 사라질 나라일까, 새로운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낼까

결미∥‘상식삼분지계’를 제안한다


감사의 말
참고자료

접기


책속에서


P. 12 무수한 ‘망국론’을 지나쳐 왔으면서, 진정한 ‘망국’의 문제를 직면해서는 이토록 무력한 이유가 뭘까? 나는 ‘한국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지나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대분기大分岐, Great Divergence(역사학자 케네스 포메란츠가 사용한 이후 21세기에 급속히 확산된 개념)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식민지로 굴러떨어진 후, 유럽의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따라잡기 위해 100여 년을 달려왔다. 그 와중에는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런 일은 할 수 있고 저런 일은 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새가 없었다. 앞서 말했듯 1990년대 초반에 잠깐 숨을 돌리고 모종의 자긍심 위에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시기가 있었지만, 돌연 IMF 사태가 터지면서 자긍심은 박살 나고 정체성에 대한 탐구보다는 또다시 ‘선진국 따라잡기’에 매진해야만 했다.

-서문 접기
P. 51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정치학자든 논평가든 일반 시민이든 한국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자랑스러운 자기 인식, 자긍심의 발화, 이른바 ‘민주국뽕(한국 민주주의를 ‘국뽕’ 요소로 소비하는 행태)’에 입각한 발언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상투적인 비판이나 악담의 목록이 훨씬 더 길다. 심지어 ‘민주국뽕’성 발언을 하는 이들도 본인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거나, 정치가 조금이라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저 상투적인 비판이나 악담의 목록으로 회귀하곤 한다. 독재를 경험한 기억이 엊그제인 한국인들은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을 향해서는 ‘독재자’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우리의 ‘한국 민주주의’ 씨는 정말로 그렇게 구제 불능의 얼간이인 것일까?

_ 1장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 ‘한국 민주주의’ 접기
P. 90 고백하자면, 나 역시 몇 년 전까지 ‘사려 깊은 관찰자’를 괄시하는 ‘젠체하는 논평가’에 해당했다. 위 대화는 다른 이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닌, 자기비판의 시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저 ‘젠체하는 논평가’의 관점은 여전히 우리의 담론 사회에서 지배적이다. 그런데 ‘양준혁이 만들었다고 여겨졌지만 실은 몇몇 타자가 메이저리그의 문화를 모방했다고 여기며 시작된’ ‘빠던의 기원’은 저 ‘젠체하는 논평가’의 관점을 비집고 나오는 송곳과도 같다. ‘베꼈다’고 말해온 것이 실제로는 ‘원본’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갑자기 생긴 그 문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_2장 한국의 근대는 일본과 미국의 짜깁기? 접기

P. 150 중국과 일본의 역사관에 애국적인 반박을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그런 반박은 길게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이 그저 주변 강대국의 탁구 시합에 동원되는 탁구공에 불과했다면, 오늘날 이처럼 별도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남을 수는 없었다. 단순히 운만 좋다고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이 중일, 러일, 혹은 미중 사이에서 탁구공으로 전락한 순간을 부지런히 그러모아서 제시해봤자, 그 외 기간에 탁구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보다는 한국이 역사시대 내내 받았을 스트레스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존속 자체가 중대한 과업인 나라였다. 언제나 소멸을 걱정해야 했다.

_3장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정체성은 없다? 접기

P. 198 이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랜 편견이다. 보통 보수주의자들은 조선인의 게으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진보주의자들은 조선인의 고분고분함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게으른 조선인’들로부터 확연히 구별되는 산업화의 역사가 근대 이후 한국에서 실현되었다고 믿고, 진보주의자들은 ‘고분고분한 조선인’들로부터 확연히... 더보기


P. 293 그보다 중대한 차이 하나는, 나는 오구라 기조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분석한 내용에 거의 다 동의하면서도 한국을 여전한 ‘성리학 국가’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여전히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세계관의 핵심 내용은 개화기 이후 들어온 다른 것들로 거의 대체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세계관의 핵심 내용이 대체되었더라도 기존 세계관의 무늬(pattern)는 쉬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 무늬는 우리 삶의 양식과 직결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구라 역시 ‘주자학’과 ‘이기론’으로 한국 사회 거의 전체를 설명했으면서도, 책의 어딘가에선 한국 사회는 ‘주자학’을 받아들이기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추정하기도 했다. 또한 본인이 분석한 한국은 주로 1980년대까지의 한국이기에, 그 이후의 모습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나는 오구라 기조가 묘사한 ‘도덕 지향성에 의거한 치열한 명분 쟁탈전’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 기준이 이기론이 아니라 상식론이 됐다고 주장할 참이다. 오구라는 1988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한국철학을 연구했다. 이제 내가 그의 논의와 내 논의를 묶기 위해 물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오구라 기조가 한국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것은 1983년생인 내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사이에 경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설할 만큼 갈무리하는 데엔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_5장 한국은 하나의 상식이다 접기

P. 312 기성세대로부터 적어도 내 또래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4장에서 ‘표준압’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기성세대들이 흔히 사용했던 ‘사람 구실’이란 표현을 쓴 바 있다. 이어서 적어 본다면, 한국적 삶의 목표는 ‘사람 구실은 한다는 전제 아래, 될 수 있는 한 주인공처럼 사는 것’일 테다. 그리고 이 목표 자체가 사회에서 표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인 ‘표준압’ 속에 사실상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계층을 나누고 ‘주인공이 될 만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미리 분리수거하는 문화는 아니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감동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기에 ‘주인공’이 되기 힘든 이들에게 무한한 스트레스를 주는 압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더러 한국인을 정의하라면,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해 불행한 민족’이라고 말할 것이다.
_ 6장 한국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민족 피해자 서사 접기

P. 372 우리는 흔히 유럽 문화를 ‘개인주의’로, 동아시아 문화를 ‘집단주의’로 구별하곤 한다. 이렇게 구별하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구별의 의미를 지나치게 절대화하다 보면, 마치 유럽의 역사나 근대엔 ‘개인’이 존재했는데, 동아시아에선 그렇지 않았기에 문제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는 그러한 접근은 타당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그 가치가 지극히 높이 취급되는 것이 유럽 문화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화권에 ‘개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각 문화권에서 ‘윤리적 개인’이 어떻게 상이한 방식으로 존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_7장 군자와 주인, 윤리적 개인이 되는 다른 방법 접기

P. 436 나 역시 서두에서 한국의 ‘능력주의’를 오랜 과거 시험의 전통에서 나온 ‘시험선발주의’에 포개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시험 선발이 없는 곳에는 경쟁이 없었으리라고 믿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먼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더 많은 상민이 양반을 동경하며 글공부를 했다는 맥락도 있거니와, 벼농사 자체에서도 소출에 대한 경쟁이 있었으리라고 봐야 한다. 이는 사회학자 이철승이 벼농사 협업 체계에서 협업 속의 경쟁 시스템이 ‘시기와 질시의 문화’를 낳는다고 분석한 것 그대로이다. 이철승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을 그 틀에서 분해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일은 같이 해줘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 땅에서 수확되는 농산물까지 분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 했다. 따라서 한국인은 ‘더 열심히 일한 이가 더 많은 소출을 거두는 경쟁적 상황’과 ‘부자가 빈자에게 어느 정도 베푸는 상황’을 둘 다 원했다고 볼 수있 다. ‘두 개의 세상’을 오가며 사는 한국인의 습속은 현대의 이념주의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시켰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한국인들이 너무 좌파적’이며 ‘너무 사회주의적’이라고 투덜댄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한국인들은 끔찍한 수준의 경쟁’을 체화하고 있으며 ‘능력주의’를 지나치게 내면화하고 있다고 투덜댄다. 둘 다 맞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능력과 지극한 노력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을 기꺼이 감내’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심한 불평등은 감내하지 못하고, 부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이철승이 분석한 바 벼농사 문화권의 사람들이 격차를 옹호하면서도 극심한 불평등은 감내하지 못하는 심성을 가진 것과도 포개진다.

_8장 불평등이 상식을 해체할까? 접기

P. 477 “세상에서 중국과 일본 모두 우습게 여기는 이들은 한국인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물론 세태를 반영하지만, 좀 더 면밀하게 해석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 말만 들으면 한국인은 양쪽 눈을 다 감고 사는 사람이다. 물론 그런 이들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다수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인의 구성을 보면, ‘중국 중심 천하관’을 가지고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수, ‘미국・일본 중심 천하관’을 가지고 중국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전근대 시대엔 전자가 절대다수였지만, 근대화 이후 후자가 늘어났다. 상세한 비율이나 그 변동 양상은 차치하더라도, 보통 양쪽 눈을 감은 건 아니고 한쪽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본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친북이니 친일이니 몰아가면서 극단적으로 싸운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현대 한국의 풍경이다.

_9장 결코 제국이 될 수 없는 한국? 접기

P. 490 돌아와서, ‘하나의 상식’의 통치를 당연시하는 한국은 동아시아에선 가장 유럽처럼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즉, ‘우리가 믿는 상식’을 위해 다투는 나라가 된 것이다. 전근대 조선에선 이것이 붕당 정치였고, 현대 한국에선 민주화 이후 점진적으로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리한 거대 양당 간의 다툼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한윤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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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으며, 성년 이후에는 서울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20대엔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현실정치에 관한 글쓰기의 일환으로 뉴라이트 역사 논쟁에 큰 관심이 있다. 30대엔 3년간 기자 생활을 했으며 이후 몇몇 여론조사기관과 선거 컨설턴트 업체에서 일했다.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미디어 시민의 탄생》(2017) 등을 홀로 썼고,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추월의 시대》(2020) 등을 함께 썼다. 그중 친구들과 함께 쓴 《추월의 시대》에선 그간 한국 사회에 대한 각종 비관론의 요인들을 역발상으로 읽어내면 ‘현명한 낙관론’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한국 사회의 현실이 기대했던 것처럼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목도했고, 이전과 같은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여 더욱 철저하게 한국 사회의 특성을 해부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 책이 《상식의 독재》다. 현재 새로운소통연구소 조사분석실장, 넥스트브릿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상식의 독재>,<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촉 2022-2023> … 총 2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김정인(역사학자), 김한규(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추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에서
이제껏 없던 새로운 논의를 펼치다

쉬지 않고 울려댔다. ‘망국’이란 이름의 요란한 꽹과리 이야기이다. 한국 사회는 이래서 망하고, 저래서 망하고, 그래서 종내 망할 것이라는 주장이 사방에서 왁왁 쏟아져나왔다. 숱한 망국론의 터널을 지나쳐 오는 동안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심상이 우리 안에 자리 잡았다. 질타와 훈계는 세트로 따라왔고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졌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는 내 나라의 망국에 무언가 특별히 기여했다는 혐의가 없는데도 ‘결혼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개인의 미래와 나라의 미래를 포개지 않는다’고 공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 무력하다.
여기, ‘곧 망할 나라’에서 그 나라를 분석한다는 것의 의미를 진득히 해득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망국론을 습관적으로 읊조리기에 앞서, ‘한국이란 무엇인가’란 질문부터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 과업을 완수해낸 《상식의 독재》이다. 20대에는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써왔고 30대엔 여론조사기관과 선거 컨설턴트 업체에서 일하며 홀로 또 함께 우리 사회의 좌표를 찾는 일에 매진해온 논객 한윤형이 갓 벼린 칼날 같은 단독 저서로 7년 만에 돌아왔다. 여전히 꽹과리 소리만 울릴 뿐 아무도 문제에 대처하지 않아 진정한 망국이 실현될 판인 지금, 그간 아무도 보지 않고 보려 하지도 않았던 한국의 특수성을 파헤친 작업물을 들고 독자 앞에 섰다. 그리고 ‘대충 만들어져서 분석할 거리도 없는 나라’라는 기존 인식 체계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한국만의 고유한 성질은 존재하는 까닭이다.
두터운 탐구 여정을 앞에 두고, 저자는 ‘상식의 독재’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상식’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쩌다 ‘독재자’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는지 진단한다. ‘한국적 삶’이란 무언지 규명할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지난 기나긴 세월에 보내는 대서사시이자 엑소시즘이 펼쳐진다.


왜 ‘상식의 독재’인가?
‘하나의 상식’이 지배하던 나라에서
쪼개지고 분화하여 투쟁하는 ‘상식들’의 나라로


‘한국적 삶’이란 무엇인가. 책의 시작점인 동시에 도착점인 질문이다. 오랜 시간 한국은 ‘중국 비슷한 나라’, ‘일본 비슷한 나라’, 또는 ‘그 둘을 적당히 섞은 나라’로 여겨졌다. 우리의 심정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각종 망국론의 심리적 배경이 여기였다. 그러다 최근 들어 설핏 유명세를 탔다. 소위 ‘K-열풍’을 모두 목도했다. 저자는 “특수성을 규명할 가치를 간신히 인정받았다”고 표현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특유의 번쩍이는 통찰력과 강기를 무기 삼아 종횡무진 텍스트를 누비며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우리 삶의 풍경은 어떠한지, 그 특징은 무엇인지 묻고 답한다. 책을 이끌어가는 화두는 ‘상식’이다.

‘한국적 삶’의 특성 및 장단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어느 날, ‘상식(常識)’의 문제를 만나게 됐다. 진보주의자로서의 나는 반복해서 한국 사회가 주류ㆍ표준ㆍ평균에 속하지 않은 소수자에게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문제를 지적해야만 했는데, 문제를 지적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그것을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더라는 현실에 맞닥트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ㆍ표준ㆍ평균에 속한 이에게 제공되는 엄청난 편의성, 그리고 그 바깥 다양한 삶의 양태에 대한 철저한 무신경함’이란 현상의 기반에는 우리가 지식과 배움을 받아들이는 방식, 어떤 지적 토양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착상에 이르게 됐다. 나는 여기에 ‘상식’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국은 ‘상식이 지배하는 나라’이며, 한국적 삶의 특징은 이러한 ‘상식의 지배’로부터 도출된다는 착상이었다. _‘서론’ 중에서(28쪽)

표준국어대사전은 ‘상식’을 두고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으로 정의한다. 영어에 대응하는 말로는 ‘커먼 센스(common sense)’가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상식’을 그리 대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의 상식이란, ‘공통의 감각’이나 ‘모르면 괄시당할 수준의 지식’ 차원을 넘어서 사실상 ‘따라야 할 도덕 기준’이란 의미까지 갖는다. 나아가 남들을 ‘몰상식하다’고 규탄할 수 있는 지위를 갖는다. 거대 양당과 그의 지지자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정당이건 지지자건 모두 본인이 ‘상식’의 위치에 있고, 상대편은 ‘몰상식’하다고 믿고 있지 않은가. 선거 시즌이면 결과 여부에 따라 “상식이 승리했다”라거나 “상식이 패배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상식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며, 결과가 상식에 승복하기를 욕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식의 독재’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개념인지 소개하고자 든 예시 가운데 몇 년 전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된 어느 일본인의 게시글이 있다. “일본은 주변에 독재국가밖에 없어 괴로운데,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도 그 명단에 있으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민독재’의 나라라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조소하는 반응을 보였다. “쟤들은 민주주의의 개념을 모르나?” 민주주의란 국민의 지배, 통치를 의미하는데 이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말인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저자는 ‘국민독재’를 ‘국민정서법’이나 ‘대중독재’란 말로 바꿔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그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치문화의 특수성 가운데 하나인 소위 ‘민심’이란 것에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순응하는 방식으로 절차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상식의 독재’는 바로 이 ‘국민독재’, 또는 ‘국민정서법’이나 ‘대중독재’라고 부르는 현상에 저자가 새로이 붙인 이름이다.
한국은 다른 사회에 비해 지역과 계층의 격차가 크지 않고 사실상 ‘하나의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다. 혹은 적어도 ‘하나의 상식’이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회다. 한국에서 ‘상식’이란 말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규정하고 있고, 심지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그 역할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식의 지위는 위태롭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상식의 독재’를 희구하지만, 과거에 비해 ‘상식’은 한결 분화되었고 서로 투쟁하고 있다. 어느 한쪽에서 ‘상식’이라 주장하는 것들이 더는 모든 한국이 공유하는 ‘상식’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에 저자는 최근 20여 년간 누적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혼란을 이 ‘분화하는 상식들의 투쟁’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 시대를 둘러싼 상식의 형성과 분화를 탐구하는 일은 현대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문화 양식을 규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역설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가. 저자는 책장을 넘기는 독자를 향해 계속해서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관한
전방위적 고찰과 비평


책은 ‘한국인의 상식’을 살펴보고자 전근대까지 추적해 올라가면서 과거와 오늘을 잇는 일에 매진한다. 많은 이들은 우리가 전근대 역사로부터 이어진 존재가 아니라, ‘단절된 존재’라고 상상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단절사관’, ‘청산사관’, ‘부채상속사관’ 등 새로이 이름 붙인 역사의식, 혹은 역사적 무의식을 논박하면서 우리가 역사와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논증한다. 또한 동서양을 넘나들며 동아시아 주지주의와 유럽 주지주의의 특성을 비교하여 한국이 ‘상식의 독재’ 사회인 데에는 동아시아 주지주의의 특수성이 있음을 역사적 맥락과 철학적 논의로서 드러내 보인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의 목록을 점검하면서 왜 ‘한국 민주주의’에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지금의 정치적 위기는 그러한 비판보다는 ‘상식의 독재’ 사회에서 ‘상식이 분화’하면서 발생한 ‘상식 간의 대격돌’에 의한 것이라 진단한다. 2장에서는 한국의 근대가 단지 미국과 일본의 짜깁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며 전근대사의 영향력 안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한국인들이 ‘상식’에 집착하게 된 이유 역시 이 틀 위에서 살펴본다. 3장에서는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전근대사 정체성이 오랫동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인정되지 못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특히 조선사에 대한 폄훼의 시선에 대항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 노예제사회 논쟁’을 검토하는데, 주로 이영훈이 발표한 논문과 단행본을 재료로 살펴본다. 4장에서는 조선왕조 후기의 ‘무기력하고 게으른 조선인’이라는 오랜 편견에서 현대 한국인의 역동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심층적으로 검토한다. ‘한말 외국인 기록’을 중심으로 하되, ‘벼농사’와 ‘토지’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듯 한국의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사이의 연결을 복구한 후 5장에서는 한국 문화의 특수성, 요컨대 ‘상식’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규명한다. 한국 사회의 좌표적 특성이 어찌하여 이전에는 ‘성리학의 나라’를 지지했다가 이제는 ‘상식의 나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 해명한다. 6장에서는 ‘상식의 나라’에 사는 한국인들이 자국의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민족 피해자 서사’를 검토하면서 한일 관계의 역사 논쟁까지 두루 검토하고 한국 사회가 ‘상식의 독재’를 벗어나기 위한 길을 제언한다. 7장에서는 시선을 넓혀 동아시아와 유럽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상이한 길을 걸어갔는지 검토하고, 이 두 개의 전략을 한국의 근대가 어떻게 수용하여 3.1운동이라는 대한민국의 근본을 수립했는지 논한다. 8장에서는 불평등 문제를 살펴보면서, 역사적으로 한국의 능력주의와 평등주의가 어떻게 형성했는지 검토해보고 불평등 심화가 ‘상식의 나라’를 해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 아래 불평등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9장에서는 대한민국 소멸 시계의 분침이 자정을 향해 이동하는 지금, ‘저출생으로 사라질 나라’가 될지도 모르는 한국이 지정학이 부활하는 시대에 다시금 ‘지정학적 지옥’이 되고 있음을 밝히면서 극복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상식’은 ‘독재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한쪽 눈을 감은 채 상대를 재단하는 한국 사회 극복하기


상식의 복원, 한국 사회를 통치하는 ‘상식’에 대한 엄밀한 탐구 끝에 저자가 얻은 하나의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다. 다만 이때의 ‘상식’은 지금처럼 역사 전쟁, 혹은 상식끼리의 전쟁에 동원되는 상식보다 훨씬 느슨한 개념이어야 한다. ‘상식’이라는 이름의 영역으로는 너른 품으로 넓은 부분을 인정하고, ‘몰상식’이란 이름으로는 매우 좁은 영역만을 규탄하는 게 타당한 일이라는 것! 이는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말해왔던 ‘상식’의 모습이기도 했다. 물리적으로건 비유적으로건 두 쪽으로 나뉜 한국 사회, 국민의힘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양극단의 대립이 서로를 몰아내기 위해 ‘상식’의 범위를 좁힌 채 그 외 모든 것을 ‘몰상식’으로 밀어내는 지금, 뜨끔 아프면서도 양팔 벌려 받아들여야만 하는 제언이다.
저자는 ‘화폐’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 화폐를 보라. 신사임당,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충무공 이순신 등 여전히 조선시대 위인들이 그려져 있다. 다른 나라 화폐를 보면, 그보다 앞선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근현대 인물 또한 많이 올라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대사 인물은 왜 화폐에 올라갈 수 없을까? 한국인들이 유난히 조선왕조를 숭앙해서? 저자는 말한다. 현대사 인물을 넣자고 한다면, “도저히 합의할 수가 없어”서라고 말이다. 윤치호, 이승만, 박정희의 얼굴이 그려진 화폐도, 안중근과 김구, 김대중의 얼굴이 그려진 화폐도 “절반의 국민을 화나게 하리”라는 것이다.
책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미지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제에 적힌 ‘변호하다’라는 표현에서 어떤 애국적 반박을 기대한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독재’와 ‘망국’ 등의 키워드에서 호령과 설교가 주를 이루리라 짐작한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한쪽 눈을 감은 채” 상대를 바라보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대한민국의 성취도 한계도 균형 있게 직시하는 ‘상식’이 필요하고, 책은 선결적으로 그 역할을 감당해냈다. “한국이란 무엇이고,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단행본 504쪽 분량으로 답했다. 책은 절절하다. 날카롭게 적확한 분석을 찬찬하고도 성의껏 들려주며 대안 모색에도 부지런하다. 추천사를 쓴 국회의원 김한규의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지금 가장 매섭고 시급한 문제 제기를 담았기에 우리 사회가 기꺼이 손에 들고 호응해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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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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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대하는 작가의 기대되는 신작이 드디어 나왔군요!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
공룡장풍 2024-06-23 공감 (2) 댓글 (0)



한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했을 질문이다. 그에 대한 해답과 대책을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onion80 2024-07-02 공감 (2) 댓글 (0)





한국은 왜 이렇게 되는 듯 안 되고, 안 될 듯 되는가?
서구를 못 쫓아가는 건가, 아니면 다른 길을 가는 건가?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인들의 상식을 이해해야 대두되는 저출산 고령화부터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잘 풀어낸 책.
헨드릭스 2024-07-09 공감 (1) 댓글 (0)





能書不擇筆
tagong88 2024-07-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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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저자의 신간입니다. 스스로 화두를 설정하고, 무리에서 벗어난 시점에서 조망하고, 유려하게 이야기를 푸는 그가 한국사회를 어떻게 진단했을지 궁금하네요. 일단 책 사고 아껴가며 읽으려고요. 한국의 삶, 사회, 정치, 사람에 관심있다면 강추입니다
vitualD 2024-07-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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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독재



이 책에 대해 한 줄 평을 쓰면 이렇다.

“주장(보다는 제안)에 대한 근거를 상당히 지난한 맥락들로 오려 붙여 설명하고 있고 그 서술 방식 또한 상당히 지루하고 만연함...”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돌아오자면 …”, “… 포개어진다” 같은 표현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자기 주장을 말끔하고 확실하게 논증하지 못해 저런 말을 쓰나?”란 생각이 절로 든다. 책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 글에는 “종횡무진 텍스트를 누볐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누빈건 맞으나 파죽지세의 기세는 없고 수없이 다른 이야기로 세어 나가다가 구렁이 담 넘듯 다시 본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이어간다.

참 골 때리는 책이다. 아무라 잘 봐줘도 500패이지가 아니라 250패이지로 줄일 수 있는 양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개론서가 전문서를 압도할 때

“‘개론서에 의한 인식’이 ‘심화 학습에 의한 인식’을 압도하여 심지어는 탄압까지 한다는 것이다”

<상식의 독재> 저자 한윤형은 ‘상식’이 사회(혹은 정치)에서 지식에 기반한 변화를 어떻게 저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먼저 그는 책에서 상식에 대해 “공통의 감각이나 모르면 괄시당할 수준의 지식 차원을 넘어 사실상 ‘따라야 할 도덕 기준’이란 의미까지 가졌다”라고 설명한다. 상식이 기초적인 지식이 아니라 도덕의 기준까지 된다니, 이 무슨 말인가.

일단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상식이란, 한국인과 우리 공동체를 인식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지식과 관련된 것들이다. 세상을 떠도는 지식의 여러 조각들이 아니라, ‘우리’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대중화된 지식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이렇다. 우리의 전근대사의 연장 선상에서의 우리의 근대 / 조선 노예제사회 논쟁 검토 / 게으른 조선인 담론 비판 및 민주화와 산업화 성공 원인 / <한국은 하나의 상식이다>의 텍스트를 활용한 한국 문화의 특수성 분석 / 피해자 서사 검토 / 3.1운동과 대한민국의 수립 / 한국의 능력주의와 평등주의 / 지정학 지옥 시대에 극복 가능성 / 상식 분화 사회의 혼란과 작동 불능 상태 된 정치 극복 대처 방안. 저자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상식들은 보통 사람들의 인식에 으레 장착돼 있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이다.

“상식이 우리가 따라야 할 도덕적 기준이 됐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과함을 느낄 수도 있다. 경우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디 한번 우리 주변에서 상식에 반하는 발언이나 행위가 나타났던 사례를 생각해보자. 사회지도층 인사(그가 유명하지 않았음에도) 입에서 상식에 반하는 발언이 나오면, 대대적인 비난이 이어진다. 원색적으로 문제인 발언이 나올 때도 있으나 곱씹어 볼 발언이 나왔을 때조차 대개는 그 취지를 묵살하고 망언이란 딱지를 붙인다.

일반 시민이 욱일기를 게양했다거나(이건 문제다. 다만, 관종에겐 무시도 답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저항의 의미로 태극기를 불태웠을 때도 상당한 비난이 쏟아진다. 뿐만인가.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겐 한국의 상식은 은근 넛징된다. 정체성에 관한 것이니 분명 예민할 수밖에 없지만, 해당 사실에 대한 도전은 허용되지 않고, 수용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있다. 외국인들 또한 대중에게 노출된 모습을 보일 때 상식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물론, 이런 분위기와 공생하며 자신만의 콘텐츠 영역을 개척한 소련여자 크리스 같은 대범한 인물도 있지만)

‘상식을 의심조차 해선 안 된다’는 인식에 도전하기 위해 저자가 책에서 꺼내든 카드는 중 하나는 이영훈이다. 대표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자이자 엠부시 인터뷰를 시도한 MBC기자의 뺨을 대차게 후린 그 (행동하는?) 학자.

상식의 문제성을 다루며 그 상식 바깥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인물을 기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빌런 학자의 상식 부수기’란 기묘한 에피소드로 폐쇄적인 상식의 단면을 사람들이 감각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빌런 학자의 잘못된 상식 깨부수기

저자가 이 에피소드를 위해 준비한 상식은 과거 제임스 펠레 교수가 주장한 “조선은 노예제 사회였다”이고, 빌런은 물론 이영훈 교수다. 이 교수는 제임스 팔레의 주장에 대해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선 노비들의 존재 형태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였다. 전반적으로 그들은 그 계급적 성격을 농노라고 부를 만한 존재였다”라고 반박했고, 또 다른 저작 <한국경제서Ⅰ>에서는 노비들의 입역노비와 납공노비를 분리하며 반박했다.

이 교수가 팔레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유는 그가 조선이란 나라를 특별히 아꼈다거나,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아마 1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연구에서 조선에 노비가 많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는 펠레의 주장에 동의했을 것이다(지금처럼). 그는 그냥 경제사를 연구하는 연구자이고, 자신의 연구 결과로 봤을 때 팔레의 의견이 정확하지 않았기에 저런 의견을 낸 것일 게다.

애국(?)에 기여한 고민이 된 이 교수의 반박은 가치 판단 이전에 상식 혹은 지식에 대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저자가 책을 통해 주고 싶은 메시지와도 포개어진다. 저자는 책에서 이영훈만이 아니라 한국인과 한국 사회란 공동체와 관련해 총체적인 분석을 다양한 텍스트와 인물을 끌어와 시도한다.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제로에서부터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가치와 대중적 지지에 지식을 가두는 게 아니라 지식의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또 다른 지식과의 연결을 더듬고 따라갔을 때 도착할 수 있는 다면적인 지식의 모습이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발견은 지식이란 것을 상식이란 테두리에 가두기에는 너무 크고, 억지로 가두려는 행위는 이 지식을 왜곡하는 행위인지를 깨닫게끔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지루하고 돌아가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의 이 같은 고민 안에서 이영훈의 의견은 편향된 사람의 과거 연구물이 아니라, 한국의 근본을 ‘바로보기’ 위한 하나의 조각이 된다. 그의 편향적인 성향도 총체적인 지식이란 방향성 아래서는 신경쓸만한 것도 되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이영훈의 연구물을 재검토한다고 해서 현실에서 이영훈의 마음은커녕 이영훈을 대하는 대중의 생각 또한 바꾸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 궤적에 대한 탐색은 우리가 어떤 상식에 포섭돼 있고 이에 대해 관성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작게나마 맛보게 해주면서, “조선은 노예제 사회였다”는 주장의 반박을 넘어 더 큰 지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영훈은 여러 저술에서 한국사의 목표가 ‘근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사에서 억지로 근대를 발견하려고 둘 필요는 없다는 훌륭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근대에 도달하지 못한 조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조선’에 자괴와 폄하의 시선을 떨치지 못했다. 이영훈은 한중일을 비교하면서 미야지마 히로시처럼 ‘역사의 삼각측량’을 통해 특수성을 가늠하지 못했고, 그때그때 한중 비교나 한일 비교를 하면서 ‘뒤떨어진 한국’에 대해 아쉬워했다. 사실 그 양자 비교에서 드러난 한국의 특성은 어쩔 때는 중국을, 어쩔 때는 일본을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폄하의 대상이 될 것은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한국의 근현대사 논쟁은 흔히 백년전쟁이라는 수사로 소비된다. 그러나 조선 노비제 논쟁을 살펴보다 보니 우리의 근현대사 논쟁은 ‘남북전쟁 이후의 기억 해석 투쟁, 문화 논쟁’과 흡사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 193pp

매번 극우란 사람들이 제시한 의견이 상식적인(?) 사람들이 빠르게 조성한 공론에 제압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몇 차례 목격해왔고 또 목격할 것이다. 이번에 김문수 후보자 사태도 그렇고. 하지만 한쪽을 압도하는 과정 안에서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합의가 깊어지는 과정은 거의 없고 어느 한 쪽을 제압한 이후 남아있는 의문들을 대개는 잊는다. 그러다가 다시 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똑같은 논쟁을 벌이고. 그러다가 우리는 종종 ‘상식’을 강요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며 상식에 딴지를 거는 사람 나아가 딴지를 제압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냉소적이 돼 간다. 저자의 책은 우리가 어떻게 이 악순환이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를 옅게나마 보여준다. 그리고 상식의 자리를 둘러싸고 대화 없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존재를 확인시켜기도 하고.


상식 엘리트 독재 vs 성실한 아마추어

주마간산으로 책을 읽었다. 저자가 열심히 조사한 것을 성실히 따라가지도 않았고, 내 머릿속에 있던 상식과 비교하며 내용을 곱씹지도 않았다. 내가 한 행위가 독서가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뭐... 저자도 바쁘면 책의 서문과 결론 부분만 읽어보라고 했으니, 이런 독자가 있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쩌면 저자의 아마추어적인 탐구 과정이라 하겠다 솔직히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관련해 세련된 서술과 깊이 있는 내용을 쓸 연구자들이 우리나라에 없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루는 연구자들은 저자의 저술의 빈틈을 찾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지점은, 이 사람이 총체적인 지식을 만들기 위해 도전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어느 한 진영의 상식을 가진 집단이 다른 집단의 상식을 인정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같은 얘기도 다른 말로 하고, 집요하게 상대의 틀린점을 비판하는 동안, 어째 우리의 지식세계란 모두의 동의를 통해 쌓아가는 지식은 없고, 각자의 진영들에서 쌓아가는 것들만이 존재한다. 저자는 아마추어적이긴 해도 삿초동맹을 이끌어 냈던 사카모토 료마처럼 여러 텍스트를 동분서주하면서 서로 상식으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책에서 본 부분이긴 한데,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지는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저자는 과거 엘리트가 생산하는 지식만을 존중하고 신뢰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엘리트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고, 페이스북과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성실하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 또한 존중하게 됐다고 한다. 그들은 어쩌면 성실한 오타쿠나 아마추어로 엘리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들의 시도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엘리트가 자신의 지위만큼의 열심히 탐구하는 것도 아니고, 경력과 이름에 걸맞는 상상 이상의 결과물 또한 내놓는 것도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ㅎㅎ.

나 또한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이를 하나의 산업으로 굴려보고자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참...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돼 반갑다. 책은 많이 팔릴 것 같지 않으나, 책의 정신아 조금 더 널리 공유될 수 있으면 한다.

Ps 1.

솔직히 나는 이 책의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하면 <쌀 재난 국가>를 받는 이런 식으로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해당 책을 읽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너무 환원주의적으로 풀려는 시도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기원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수도 없고 농촌에서도 풍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벼농사 문화에서 찾으니, 어색하고 이 방향성이 정말 맞나 싶기도 했다. 이철승 교수의 책을 읽었을 댄 그냥 재밌는 해석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이 책을 통해서는 은근 설득이 됐다.

Ps 2.

어쨋든 저자는 이 책의 서술 방식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서술 방식의 지루함을 견뎌야 할 것이다.

https://blog.naver.com/biswang/223552158026

저는 생각의힘 출판사 책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많으면 좋을 것 같네요^^
언제든 리뷰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bisw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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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키상 2024-09-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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