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작년 이맘때다. 내가 학부를 졸업한 대학의 교수 하나가 일제시대 성노예를... - Thomas Heekwon Jeong | Facebook

작년 이맘때다. 내가 학부를 졸업한 대학의 교수 하나가 일제시대 성노예를... - Thomas Heekwon Jeong | Facebook

20240714


Thomas Heekwon Jeong

· 작년 이맘때다.
내가 학부를 졸업한 대학의 교수 하나가
일제시대 성노예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물의를 일으켜서 논란이 생긴일이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확인 한 것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인생의 방향을 크게 바꾸게 한 사람 중 하나다.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던 것은 그의 덕분이다. 뭐 그게 꼭 나쁜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을 접은게 다행이었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감사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른 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군대를 갔고 군 복무중 비트겐슈타인을 접한 후, 철학자가 되고자 결심했었다. 군복무 중 공부하여 1993 후기입시로 경희대 철학과를 입학했다. 그야말로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다.
군 복무중에 작심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고등학교때 헤비메탈 밴드를 하느라 공부와는 담쌓은 덕에 학력고사를 꽤 잘 보고도 전기입시에서 미끌어지고 말았다.
군복무 중 철학과를 입학하겠다는 뜻을 세운 이후에는 전에 다니던 대학에 자퇴부터 했다. 배수진을 친 나는 군대에서 혼자 하루종일 일하는 쓰레기 하치장에 지원을 했다. 아침에 일터로 가자마자 미친듯이 일해서 하루 일을 다 끝내고 수학의 정석과 EBS 교재, 교과서만으로 홀로 학력고사를 준비했다.

자퇴하면서 기존의 친구관계도 다 없어지고 참 외로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일을 마친 후 난방도, 냉방도 없는 쓰레기장 가건물에서 혼자 공부하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 해진다. 고교시절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관계로 나는 고교 내신이 7등급이었는데 (간발의 차로 8등급 수석을 놓쳤다. 소꼬리 보다는 뱀 머리라던데 아쉬운 일이다.) 당시 학력고사에서 320점 만점에 308점을 맞았으니 열등생 치고는 잘하지 않았는가? 그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딱히 연락하는 친구도 없이, 응원해 주는 선임 하나에게만 알리고 혼자 공부를 하던 외롭고 어린 나를 생각하면 그때로 돌아가 내 어깨를 안아주고 싶다.

최선을 다했지만 내신으로 인한 -14점 페널티는 꽤 컸다.
서울대 철학과를 갈 수 없었다.
전기 입시를 위해 아껴둔 휴가를 썼기 때문에 전기를 떨어지자 나는 입시를 포기 했다. 그런데 갑자기 후기 입시 날이 특박 이었던 선임이 자기 대신 그걸 쓰라고 해서 나는 후기 입시를 볼 수 있었다. 준비를 많이 못했지만 운이 좋아 경희대 철학과에 합격했다.
난 힘들게 들어간 내 학교가 참 좋았다. 군 복무 중 입학이라 입학과 동시에 군휴학을 해야 했다.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이제 고백하지만, 너무 학교가 가보고 싶어서 산을 넘어 탈영을 했던 일이 있다. 경희대는 벚꽃이 필때 정말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벚꽃이 핀 아름다운 교정 벤치에 홀로 앉아 교내 방송을 들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구경하다가 몇년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학생식당에서 맛대가리 없는 밥을 한그릇 사먹고 저녁 점호시간 이전에 부대로 들어갔다. 천만 다행으로 붙잡히지 않았다. 뭐 걸렸어도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영창에 갔을 것이다. 아쉬움 없이.

대학시절 성적은 극과 극이었다. 정확히 8학기의 절반은 전체수석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나머지 4학기는 F를 일곱개 맞았다. 제일 좋아하던 교수님 수업을 재수강이 아니라 삼수강을 했던 기억도 난다.공부를 안하거나 못할때도 있었고 연애도, 감정도 업스앤 다운스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비교적 행복했던것 같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고, 유학을 준비했다. 대학원을 고를 때 소위 더 좋은 대학으로 가려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학교 4학년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집안에 유학 보내달라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국비장학생 시험을 쳤고,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다. 철학과는 일년에 국비장학생 한명을 뽑았는데 나와 서울대학 석사과정 학생 하나가 함께 면접을 보았다. 나는 합격을 하고나면 가고 싶은 곳이 정해져 있었다. 훗날 A.I.가 화두가 되며 다시 재조명 받은, 마음의 철학으로 유명했던 Daniel Dennet이 Rutgers 대학교수로 재직했다. 나는 학부생 시절 되도 않은 개똥같은 내 생각을 담아 이메일을 써서 그에게 답장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나는 그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교수님들 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국비장학생 최종후보가 됐다는 사실이 교수님들 귀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잘 해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한 교수가 나를 불렀다. 작년에 문제를 일으킨 그 교수 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유학 후 바로 교수가 된 그는 교수들 중 젊은 축이라 학생들과 비교적 친하게 지냈다. 나도 당시에는 학생들과 격의 없이 말하는 그분을 좋아했다. 내게 PC를 조립해 달라고 해서 조립해 주기도 하고 공공연하게 말하기 뭣한 유명한 동영상 CD를 하나 구해 달라고 해서 그걸 수소문해 구했던 기억도 난다.

"희권아 너 국비장학생 최종까지 올라갔다며?"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하시겠구나 생각했던 나는 너무나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나를 눈 아래로 차갑게 보는 낯선 사람이 거기 있었다.

"너 하고 같이 올라간 애 있지? 걔 내 제자다."
그는 경희대 교수였지만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에서도 강의를 했다. 거기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이었나 보다.
그리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너 그거 꼭 가야 하냐?"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나는 국비장학생으로 뽑히지 못했다.

나중에 다른 교수님 한분이 내게,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실망할까봐 말을 안했는데 그건 보통 서울대 출신들이 후배들을 보내주는 자리다." 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해 주셨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철학공부를 접었다.

이 당시 이미 나는 지나가버린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분석하고 감상하는 강단 철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 때고, 사실 유학에 성공한다 했어도, 순수한 철학이 아니라 철학과 관련하여 한참 떠오르던 소위 통섭의 학문이었던 인지과학 쪽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철학을 택했던 이유였던, 인생의 문제를 철학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 됐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서울대를 나오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낸 등록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에게도 이런 수모를 당하는데
앞으로 이 공부를 하면,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는 이 사회, 학계에서 영원한 을로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 일들을 많이 당할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대학원을 그만두고 직장을 다니다가 홈커밍데이에 초대를 받고 모교에 들렀을 깨,
대학원을 그만뒀다는 이유로 나를 가장 크게 나무랬던건 바로 그 교수였다.

그는 도대체 나에게 뭘 원했던 것일까?
뒤늦게 생각난 것은, 엠티 갔을때 어린 학생들과 술을 먹던 중 CC였던 남학생 에게 노골적으로 "너 XX 따먹었지?" 하고 물어보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래 그는 아마도 변함이 없었으리라.

그렇게 수십년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정년을 맞았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 그의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깨닫는데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다.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그걸 어렸을 때 깨달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상처입힐 수도 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물이 고여있는 사회인 대학이란 곳은 때로 오히려 그런 깨달음을 얻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대학 안에 있을 때,
나는 그의 행동이 크게 부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내가 항의하고 문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도 대학사회는
높은 수준의 겸허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이 틀렸으며 교육자인 자신의 잘못이 어린 학생들에게 나쁘 영향을 오랫동안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영영 깨닫지 못하기 쉬운 곳이다.
거기다가 문제는,
한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아주 종종
다른 종류의 문제도 일으킨다는 것이다. 뭔가가 잘못되어 있는데 그걸 고칠 길이 없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부류는 오랫동안 좁은 대학사회 안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견제 받지 않는 잘못을 반복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위안부 발언으로 인해 당사자는 작은 징계를 받았다.
어차피 그 상벌위원회는 같은 대학 교수들이 운영한다.
징계를 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와 척질 이유도 없는 교수들은 원칙과 정치적 고려 사이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았을 것이다.
그가 저지른 다른 문제들은 묻혀졌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이름을 달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정년을 앞둔 늙은 교수의 추태에 맞섰던 사람들,
특히 학생들에게 잘 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직 젊은 학생들에게는 앞으로도
겁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나처럼,
어차피 세상은 이 모양이니 내가 화를 내봐야 소용 없어라고 체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이들을 두려워 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두려워 해야할 건 잃을게 많은 자들이다. 그들이 타인에게 강압적으로 나오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상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이 있는 사람은 남을 강압할 필요가 없다. 권위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은 굳이 남에게서 그걸 확인 받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막상 교수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지는 너무나 적다.
기껏 시간당 몇만원 받는 강의를 할애해 주는 정도 밖에 별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지나간 일에 후회를 두지 않고 살려 하는데,
그때 부당한 말을 듣고도 가만 있었던 것은 후회가 된다.
그 때문에 그는 수십년간 아마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았을 것이다. 자신이 존중하지는 않으나 그 자신을 교수님이라 부르며 존중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적어도 내 후배 세대들은 내가 겪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지금부터라도, 어른으로서 할 일을 외면하지 않는 어른으로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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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작은 책 한 권을 읽듯 이 긴 글을 한 호흡에 읽었네요. 촘촘히 모든 과정 중에 깊이 사유했던 젊은이었군요. 견주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고인 물로 살아가는 대학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잘못된 권위로 포장돼있는지 뼈아프게 되새기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지금 너무 늦었지만, 너무 늙었지만 지금이라도 부당한 일에 항거하고 바로 잡으려고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이 지나면 또 먼 훗날 후회할 지도 모르니까요. 세상이 이렇게 멋대로 흘러가게 버려두면 안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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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tae Jung
형아의 글을 보면 난 늘 힘이나 쫄아있던 내 태도가 다시 용맹해져 늘 진리를 추구했던 나의 20대. 역시 나도 철학을 전공과목으릐 반이상 이수해야 했던 사람으로서 공간이 많이 됩니다. 그리운 형 . 신천역 지하연습실에서 바이올린 즉흥연주 잘 하려고 무대에서 귀를 쫑긋세우던 발그레한 표정의 얼굴 ..난 아직도 기억함. 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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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soo Kim
정독하며 읽었습니다. 진짜 열심히 사셨네요. 뭉클하고 울컥이 하고 억울한데 무엇인가 하소연하기 힘든...그런 감정이 느껴집니다. 글을 보며 저는 세상에 나만 억울하며 살았다며 살았는데 글을 보며 반성하게 되네요. 귀한글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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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jay Kim
매우 공감하면서 몇몇 비스무레한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더 씁쓸해진 현실이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불의에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자들을 타자화하는데 동조하면서 이번 보수정부를 세우는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성향은 대학 내에서도 비슷한데 주변에 교수들을 둘러보면 위에 얘기한 교수처럼 권위적이고 적폐에 찌든 교수도 있는 한편, 항상 학생들을 위하고 열심히 애를 쓰는 교수들도 있습니다. 씁쓸한 건 학생들의 태도인데 권위적인 교수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불의한 일을 당해도 암말 못하다가, 학생들에게 잘 해 주고 열심히 하는 인성 좋은 교수 앞에서는 자기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합니다. 전형적인 선택적 분노지요. 청년세대와 학생들을 위해 애를 쓰다가도 가끔 이런 걸 느끼는 상황이 되면 힘이 쭉 빠질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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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호
개새끼 교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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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Kim
14학번 심동현입니다. 지지난해부터 2년간 우리 정말 잘 싸웠고 결국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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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
잘 읽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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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성
문제는 그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어찌보면,없는 집 자식,뭔가 끈이 없는 집안의 아이들이 대부분이 이 사회에서 버티면서 산다는것은,중고생 때부터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 직장에서까지, 각자의 고분분투로 이루어야 함을 의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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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homas Heekwon Jeong
이용성 그래서 제정신인 어른이 더더욱 중요한 사회라 생각 합니다. 우리 스스로라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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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Kyeong Hong
세상에, 저런 교수라니요.ㅜ 동종직업자로서 수치스럽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주변에서 잘났다해주니 자기 성찰없는 사람들 많은 직종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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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bo Kim
  · 
최 xx 얘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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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석
아닛? 근데 노트르담 대성당이 산으로 왜 올라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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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homas Heekwon Jeong
정희석 그걸 복사한 건물이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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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진
세상엔 개새끼들이 너무 많아요. 문제는 교수, 목사, 판검사, 의사 등 소위 특권의식에 빠진 자들 중에 그런 놈들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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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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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의도
쓰라린 청춘의 사연
마음이 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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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 Kim
  · 
먹먹하네요. 근데, 어쩌면 이제부터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으로 연대할 수 있겠죠.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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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Yong Park
제 군대선임이 경희대 철학과 91 또는 92 학번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상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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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Kim
박상용 한참 뒷학번엔 저도 있지요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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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Yong Park
Noel Kim 희권형님은 삼성동 성당시절 성가대 함께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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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Kim
박상용 세상이 또 이렇게 좁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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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sang Chang
Noel Kim 반갑습니다. 희권형 후배겸 친구이며 삼성동 살고 있는 장원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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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sang Chang
야 잠깐만 너 동현이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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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Kim
Wonsang Chang 넵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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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a Shim
긴 글이지만 한 번에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탄식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도요.
친신 했지만 친구가 안 되더라도 팔로우라도 할랍니다. 학교는 다르지만 93학번 동기로요. 물론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지만.
사고 치는 사람은 어디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같아요. 삶의 궤적 내에서 늘상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왔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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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Yoosung Kim
정말 실화가 더 끔직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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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woo Won
  ·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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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옥여성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의 20대를 존중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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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Scarlett Jang
오빠 포스팅들중 오빠의 일대기가 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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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aith Ryu
캠퍼스 안의 벚꽃길과 회기동 골목길들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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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매춘부 망언’ 경희대 최정식 교수 불구속 송치
기자심우삼
수정 2024-02-06
최정식 경희대 철학과 교수. 경희대 누리집

대학 강의 중 ‘위안부가 매춘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경희대 교수가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6일 최정식 경희대 철학과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북부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지난해 자신이 맡은 전공 수업에서 
“일본군 위안부 중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 다수이며 성매매 여성들을 위할 필요는 없다”는 등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지난해 1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5)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한 명예훼손”이라며 최 교수의 처벌을 요구하는 자필 진술서를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경찰 수사와는 별개로 최 교수에 대한 학교 차원의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이다. 경희대 교원인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학교 법인에 최 교수에 대해 견책 수준의 경징계를 내려달라고 제청했고,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징계안이 의결됐다고 한다. 다만 아직 학교 쪽에 징계의결서가 통보되지 않아 징계 처분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최종 징계 수위도 알려지지 않았다. 경희대 관계자는 “통상 제청된 수준에서 징계 수준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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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책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지만, 최 교수는 징계 수위와 상관없이 명예교수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 교수 재직 기간 중 징계를 받으면 ‘명예교수 추대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달까지 근무한 뒤 정년 퇴임한다.

심우삼 기자 wu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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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자발적' 교수 발언에 경희대 철학과 '시끌'

송고시간2023-11-0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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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기자

재학생·동문회 파면 촉구 시위…시민단체도 고소·고발
인사위 열어 징계 여부 논의하기로…최정식 교수 "사실 말한 것"

최정식 교수 파면 요구 시위하는 경희대 철학과 동문회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경희대 철학과 동문회가 1일 오전 9시께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서울캠퍼스 정문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발언을 한 최정식 교수의 파면 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1.1 stop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경희대학교는 '위안부 매춘 망언' 최정식 교수를 즉각 파면하라!"

1일 오전 9시께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서울캠퍼스 정문 앞. 경희대 철학과 동문회는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최정식 철학과 교수의 파면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부터 최 교수의 징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매일 오전 8시 정문 앞에 모여 선전전을 한 뒤 재학생들에게 관련 유인물을 나눠주고 문과대·정경대·학생회관 등 학내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는 식이다.
경희대 철학과 동문회 등에 따르면 최 교수는 강단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해 1학기 '서양철학의 기초'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중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 다수이며 성매매 여성들을 위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시 철학과 학생회와 동문회는 반발했고 경희대는 운영위원회를 열었다. 이후 최 교수가 문제가 된 발언을 철회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 교수가 올해 1학기 같은 강의에서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는 사실이 최근 경희대 대학신문 '대학주보' 등을 통해 다시 알려지면서 철학과 재학생과 동문회는 학교 측에 최 교수에 대한 징계를 촉구했다.

경희대 인문대 건물 벽면에 붙은 최정식 교수 성명서와 동문회 규탄 대자보

[촬영 김정진]

연합뉴스가 입수한 지난 3월 9일 서양철학의 기초 강의 녹취록에 따르면 최 교수는 "일본군 따라가서 매춘 행위를 한 사람들이 위안부다"라고 발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짓 증언을 한다는 것이냐는 학생의 질문에는 "거짓이다. 끌려간 게 아니다. 거기 가면 돈 많이 벌고 좋다 해서 자발적으로 간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이에 철학과 동문회는 세 차례에 걸쳐 최 교수의 발언을 규탄하고 징계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는 최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 9월 26일 대자보를 통해 "성명서들이 점점 정치적 색채를 띠더니 한 시민단체가 저를 고발했다"며 자신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 대해 "정치적 주장을 하려는 일부 동문과 외부 단체"라고 언급했다.

이어 "위안부들이 모두 공창으로 매춘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면서도 "꾐에 빠져 매춘의 길로 갔다는 것은 강제로 납치됐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에 정의기억연대가 최 교수의 사과를 요구하고 경희대 측에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으며 서민위는 "단체를 폄훼했다"며 최 교수를 명예훼손·모욕·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희대 인문대 건물 내 게시판에 붙은 최정식 교수 규탄 대자보

[촬영 김정진]

경희대는 지난달 29일 교내신문을 통해 교원 인사위원회를 열고 최 교수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3일에는 부총장, 문과대 학장 등이 철학과 동문회와 첫 면담을 갖는다.

동문회 한 임원은 "최 교수가 단 한 번도 사과와 유감을 표명한 적 없다"며 "이번 학기가 끝나면 정년퇴임이다. 그 전에 파면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일본이 위안부를 납치해 끌고 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징계는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서민위의 고소·고발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는 받았다"며 "만약 기소가 된다면 절차에 따라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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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위안부 논문' 게재 학술지, 철회 요구 2년만에 최종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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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oulmedi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823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 최정식 경희대 교수, "반대 공격에 적극 싸우겠다"

기자명박순종 기자
입력 2023.09.2


시민단체 등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고발

지난 26일 교내 게시판에 게시물 써붙여 입장 피력
최정식 경희대 철학과 교수 (사진=경희대)

수업 도중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설(說)을 부정한 경희대학교 철학과 최정식 교수가 고발당한 가운데, 최 교수가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28일 서울미디어뉴스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최 교수는 지난해 1학기 동(同) 대학 철학과 ‘서양철학의 이해’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는 생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매춘(賣春)에 뛰어든 여성들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최 교수의 발언은 사건 발생 1년여가 지난 최근에 이르러 최 교수의 발언 내용이 확산하며 한 시민단체가 최 교수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가 하면,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성명을 발표하고 최 교수를 비난하는 양상으로 확대됐다.

이에 최 교수는 지난 26일 교내에 게시물을 게시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당 게시물에서 최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참’과 ‘거짓’이 뒤섞여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반성해야 할 사례로 제시한 것으로써 최근 사태의 진행 양상을 보건대 외부 세력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돼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앞서 최 교수의 발언과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해 파문이 인 사례가 있다. 바로 류석춘 전(前)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건이다.

류 전 교수는 지난 2019년 9월 동 대학 사회학과 전공 과목인 ‘발전사회학’ 수업 도중 수강생과의 토론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설을 부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다”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라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소재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설치돼 있는 '일본군 위안부'(소위 '평화의 소녀상') 동상 (사진=박순종 기자)

류 전 교수의 해당 발언은 수강생의 음성 녹음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며 큰 파문을 낳았다. 특히 정의기억연대가 류 전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하고 나선 것이다. 연세대 역시 류 전 교수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며 즉각 반응했다.

검찰은 1년여 기간의 수사를 거쳐 류 전 교수를 지난 2020년 10월 재판에 넘겼다.

‘외부 세력의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최 교수 사건은 류 전 교수 사건과 비슷한 양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진행 양상은 매우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최 교수가 재직 중인 대학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류 전 교수를 즉각 고소·고발하고 나선 정의기억연대 역시 최 교수에 대한 비난 성명만을 발표했을 뿐, 최 교수에 대한 형사 절차에는 나서지 않았다.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사진=문화재청)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연합 ‘위안부사기청산연대’의 한 관계자는 “류 전 교수 사건에서의 교훈 때문에 최 교수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해당 관계자는 “류 전 교수 사건에서 검찰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며 “좌익이 주장해 온 ‘강제연행’ 주장은 이미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의기억연대가 이번에도 소송전을 펼칠 경우,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으로 본다”며 “특히 류 전 교수 사건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한경희 사무총장이 ‘실제로 끌려갔느냐 끌려가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법정에서 진술하면서 ‘강제연행’과 관련한 애매한 주장을 펼친 사실이 있는 만큼, 최 교수에 대한 고발에 나서면 이번에는 자신들이 ‘무고’로 걸려들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최정식 선생님, 13-1. 형이상학 마지막 강의, 녹취록>

주제 : 최정식, 내 삶의 얘기 - <지각의 형이상학> 작업 선언
날짜 : 2013년 6월 13일 16시31분~17시 24분
장소 :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3층 303호
녹취 : 53분 41초
녹취록 : 46분 20초
* 제 타임라인에도 있으나, 더 많은 학우 분들(특히 1학년)과 공유하고 싶어, 이 그룹에 올립니다.


1.
자 그럼, 베르크손 철학의 본리로 돌아가면, 베르크손은 과연 “실체는 없다”고 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아니에요. 실체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은, 진정한 운동, 시간의 운동, 생명의 운동. 그것이 참된 실체고, (여기서) 그 실체라 함은 참된 존재고. 어? 다른 우리가 생각하는 지적인, 무슨 정지체, 관념, 개념, 이런 것들은 전부 다 우리의 추상물이다~ 라는 철학이에요.
그런데 베르크손 이후의 프랑스 철학은 어디로 가냐면, 실체라는 것이 없다~ 는 쪽으로 싹 다 가버렸어요. 그러니깐, 운동 중에서 두 가지 운동 ―아페이론apeiron적인 수동적 물질 운동이 있고, 포이운poioun적인 능동적 생명의 운동― 이 있는데, 베르크손은 후자 쪽이 진정한 운동이라고 한 것인데, 베르크손 이후의 철학자들 ―요새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철학자들― 은 이런 거 다 무시하고, 그냥 운동만이 있다~ 실체라는 건 없다~ 그런 철학으로 가 버렸다, 이 말이에요.
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자가 다 잘났기 때문에, 딴 사람 얘기는 별로 안 들으려고 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의 좋은 점은, 어떤 대단한 철학자가 나오면, 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하고 나가요. 그래서 베르크손이 살았을 당시엔 베르크손 철학이 프랑스 철학의 중심이었어요. 그러다가 베르크손이 딱 죽고 나서, 누구서부터 방향이 잘못되었냐 하면은, 베르크손 이후의 프랑스 철학계를 이끌어간 사람이 누구냐 하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두 사람은 서로 무지 친해가지고, 사르트르가 “얘 철학이 내 철학이고, 내 철학이 얘 철학이다” 이렇게 얘기한 적도 있는, 아주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어디로 갔냐면, “실체가 없다”, (이렇게)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철학으로 간, 근본적인 계기가 된 사람들이 얘네들.
얘네들인데, 그 중에서 사르트르 철학은 매우 단순해서, 요즘 철학계에선 별로 얘기가 잘 안 되는 사람이에요. 여러분들한테는 문학자로 유명할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에선 별로 얘기가 안 되고. (메를로-퐁티를 가리키며) 이 사람 얘기는 아직도 철학에선 받아들여지고 있는, ‘원흉’이에요.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으로 오게 된 그 운동의 원흉이 바로, 이 메를로-퐁티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을 놓고 보니깐, 내가 여러분들한테 마지막 시간이니깐, (근데) 아 메를로-퐁티를 강의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물론 메를로-퐁티도 상당히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근데 그걸 강의하겠다는 얘기가 아니고. 뭐냐면, 이제 나의 삶 얘기를 좀 하면서, 여러분들의 삶 얘기도 같이 한 번 확정해보라, 하는 얘기를 하면서 메를로-퐁티를 연관시켜보겠어요.

2.
이게 무슨 얘기냐면, 내가 지금 (나이가) 55센데. (다들 놀람) 별로 성공한 인생은 아니에요, 철학자로서. 그럼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왜 그러냐면, “희망이 남아있는 한, 아직 죽지 않았다!” (일동 웃음)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어, 그러니까 내가 젊었을 적에, 뭐 공부는 꽤 그런대로 잘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꿈이 좀 컸었던 거 같아요, 컸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쯤부터, 인생은 왜 살아야 되느냐,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됐어요~ 어? 인생은 왜 살까?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 이런 걸 고민하다 보니까, 점점 이거 왜 이렇지, 이유를 자꾸 따져보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어느 정도까지 갔었냐 하면, 이게 뭐 하나 움직이는 것에도, 내가 왜 하는 거지, (예를 들어) 밥은 왜 먹지, 이런 것에까지 의심을 하게 된 거예요. 심지어 <왜 사람이 도덕적으로 꼭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런 것까지 다 의심을 하게 됐어요. 근데 뭐 그때만 해도 내가, 철학적으로 무슨 대단한 사유를 한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의심을 계속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예요. 계속 의심을 쭉 했어요, 했는데.
 (끼이익, 딸까닥) 임★☆, 쟤는 왜 내가냐? (일동 웃음, 선생님은 매우 아쉬워하시면서) 그래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없는데, 쩝. (뭐 아무튼) 내가 의심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 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때에는) 대학교 입학시험이라는 게 굉장히 강한 시험 중에 하나였어요. 시험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그런 중요한 시험 중에 하나였는데.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하니깐, 공부도 한편 해가면서, (또 한편으론) 그런 의문을 계속 했지만, (후자에) 집중적으로 생각을 하지는 못했어요. 이거 내가 공부를 왜 하나, 이런 생각도 하긴 했어요. 그 생각을 좀 더 깊이 해나갔으면, 좀 달라졌을지 또 모르겠는데.
그러다가, 계속 그런 상태가 쭉 이어지다가, 고등학교 3학년 끝나고 대학교 입학시험을 봤는데. 그럼 무슨 과를 가야 하느냐, 근데 나는 망설이지를 않았어요. 그냥 공부 꽤나 좀 하면, 누구나 가는 과로 갔어요. 그게 (서울대) 법과였어요. 법과로 갔는데, 아무 의심 없이 갔어요. 아무 의심 없이. 근데 이제 대학교 1학년이 되니깐, 고등학교 때보단 시간이 좀 남잖아요. 그렇게 남아서, 골똘하게 내가 고민하던 그 문제를 쭉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와서 집중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3.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하고, 저 설악산에 놀러갔어요. 그래서 대청봉에 올라간 다음 봉정마을을 통해가지고, 저쪽 내설악으로 나가는, 그런 코스로 놀러갔었는데. 봉정마을에서 하룻밤 자고나서, 아니다, 봉정마을에서 하루 잤나, 그전에 하루 잤나. (뭐 아무튼) 그러고 나서, 대청봉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양폭이라는 폭포가 있어요. 폭포 그 주변에서 텐트를 치고, 친구들끼리 같이 잤어요. 텐트를 치고 자다가, 그런 데서 자면 보통 늦잠을 잘 자기 힘들고, 일찍 일어나게 되잖아요. 새벽에 우린 일찍 깼어요. 깨가지고 새벽에 할 것도 없으니깐, 폭포 앞에 가서 돌 앞에 앉았어요.
그렇게 앉으니깐, 또 옛날, 저 그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어서, 또 그걸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왜 사는지, 왜 우리가 부도덕하게 살면 안 되고, 꼭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쭉 생각하게 됐어요.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보니깐, 아 그때 거기서 깨닫게 됐어요. 아, 이거 이유가 없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말하자면 내 나름대로의 개똥철학doxa이, 내 나름대로 해답을 얻은 거죠. 아 이거 이유 없구나. 난 그때 하느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시킨 것도 아니고~ 아 이건, 내 삶은 내가 내 자유로 마음대로 살 수가 있겠구나! (가령) 도덕률을 왜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그것도 내가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달려있구나, 모든 것이 나한테 달려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 그러니깐, 내 나름대로는 상당히 그, 맨 밑바닥까지 가서 얻은 해답이라고 생각했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런 해답을 그 얕은 물 앞에서 하고 있었는데.
아 그렇다면, 내 삶은 내가 결정해야 하는데, 나는 어떤 삶을 살까? 이렇게 생각해봤어요. 어떤 삶을 살까 고민해봤더니, 아 내가 생각한 게, 우선 생각나는 게 ‘가장 즐거운 삶’을 살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장 즐거운 삶을 사는 동시에, 그때 당시 또 상당히 좀 건방진 상태였기 때문에, ‘위대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재미있으면서도 위대한 삶은 뭐냐~? 이렇게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어?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거. <‘철학’하는 게 제일 재밌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철학하면, 위대해지나?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깐, 어 (그 다음) 무슨 생각을 하게 됐냐면, 그때 당시에 가령, 위대한 사람 대표적으로 알렉산더와 그 선생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해봤어요. 알렉산더와 아리스토텔레스 중에 누가 더 위대한가~? 쩝, 이거는 그러니깐, 여러분이 본받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개인적인 얘기에요. 이게 옳다는 얘기도 아니에요!
그래서 생각을 해봤더니, 아 알렉산더의 제국은 지금 온데간데없어졌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아직도 지금 배워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고. 알렉산더가 이 세상에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물리적인’ 변화라 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내 놓은 변화는 ‘화학적인’ 변화다, 사람의 정신을 바꿔놓는 거다. 그래서 아,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건,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위대한 거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어? 물론, 이 생각을 나중에 다른 학생들한테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정치(학)과에 있는 사람들은 펄쩍 뛰죠? 뭔 소리냐, 알렉산더 대왕이 더 위대하지, 하고. (아무튼)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어. 그땐 난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 그렇다면 난 철학을 공부해야겠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그 결심을 하게 됐어요.

4.
그런데 미안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그때서부터 철학과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물어봤더니, 그거는 과를 전과하려면, 다시 시험을 봐가지고 (학교에) 다시 들어와야 돼. 아, 그건 입장이 좀 곤란해! (일동 웃음)
아, 그러면 어떡하나, 그냥 그러고 다녔는데. 다행히 그때가 어떤 시기였냐면, 유신 때였어요. 유신 때여서, 맨 학교가 수업을 안 하고. 이렇게 수업을 하려고 앉아있다가도, 머어엉~ 이런 소리가 나면은, 우르르 몰려 나가 데모를 하는 거예요. 데모만 주로 했어요. 데모를 한다 하면은, 휴학, 아 휴학이 아니라 그 뭐냐, 휴업을 며칠 하고. 그래서 학교가 맨날 그런 판이었기 때문에, 쩝 뭐 별로, 그 법대를 다녔긴 다녔는데, 별로 법 공부에는 신경을 안 써도, 별로 지장이 없던 때였어요~ (일동 웃음) 별로 지장이 없고, 그래서 시험도 대충 써내면 되고. 그래서 내가 지금, 학부 때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성적 좋은 학생, 별로 안 좋아해요! 왜냐면, 나도 성적이 별로 안 좋았던 학생이었거든.
그러면서, 계속 어디 가서 공부했냐면, 철학과에 가서 공부했어요. 철학과 수업을 주로 듣고. 근데 아, 그 운이 또 좋을려고, 내가 대학교 3학년 되던 해에, 아 이 박정희가 죽어버렸네! 어? 그 10.26 사태가 났는데, 그게 딱 나고 나니깐, 뭐가 좋았냐 하면, 학교가 다 문을 닫았어요. 어? 학교가 문을 닫으니깐, 난 랄랄라 하면서 철학 공부를 하게 됐죠. 철학 공부만 한 건 아니고, 사실은, 문학책을 주로 많이 읽었어요. (책 중에) 그게 제일 재밌으니깐. 그래서 우리 집에 문학전집이 있었는데, 뭐 다 읽지는 않았지만, 거의 다 읽었어요. 문학책을 주로 읽고. 특히 한국소설을 굉장히 좋아해서, 한국소설을 많이 읽고 그랬어요.
그렇게 대학교 생활을 쭉 보내다가. 3학년 말에 그 사건이 일어났으니깐, 4학년 때에는 거의 학교를 안 나가다시피 해가지고. 그때는 친구(학생)들한테 숙제를 내면은, 학점을 주고 그랬어요. 저, 수업은 안 하는 대신에. 그래서 숙제는, (친구들에게) 야, 너 이거 좀 써줘! 해서 베껴가지고 내고. (일동 웃음) 적당한 점수를 넣고. 그래도 학사경고 그런 건 안 받았어요, 미안하지만! (일동 웃음) 그냥 적당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어요.
해서 이제, 그 뭐나면. 대신 졸업을 하고나서, 철학과 시험을, 대학원 시험을 봐야겠다 하고, 철학과 대학원으로 갔어요. 근데 요새는 여러분한테 대학원이라는 게 별로 인기가 없고. 어, 그래서 우리학교 대학원도 사실 인기가 없고, 그렇지만은. 아마 지금 요새, 인기 있는 거는, 저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도가, 인기가 아마 있을까 그래요. 그래서 우리학교가 지금,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가는 놈들을 어떻게 잡아가지고 우리학교에 앉히나, 그거에 주 역량을 쏟고 있는데.
그때는 대학원이 굉장히 인기가 높았어요! 인기가 높아가지고, 대학원의 경쟁률이 굉장히 셌어요. 세가지고, 공부를 여간 하지 않으면 안됐어요. 그래서 대학원 시험공부를 많이 했죠, 4학년 때 주로. 그래가지고 시험을 봤는데, 어 다행히 붙었네! 아, 그때 기분이 굉장히 좋았죠. 그래서 이제 그다음부터는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게 됐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은, 사람들이 보통 이렇게 생각해요. 아 쟤는 법대에선 법관이나 하고, 판사나 뭐 검사나 그런 거 할 수 있는데, 그런 권력이나 그런 거는 다 포기하고, 공부로 돌아섰구나. 이렇게 생각을 여러분들이 혹시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에요, 내 속에서는! (목소리를 드높이며) 내 속에서는, 판사 검사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그건 나 아니어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뭐냐고 생각해본 결과, 아 이건 철학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깐 나로서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를 비교했듯이, 제일 위대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 거예요. 그러니깐, 권력을 놓은 게 아니고, 가장 권력적인, 권력을 추구했던 거예요. 내 나름대로는!

5.
그래서 이제, 가장 권력을 추구할 수 있는, 그 대학원을 다녔죠. 대학원에서 공부했는데. 거, 맨 처음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하는 질문이 중심이었다가, 이제 나중에 어떻게 변했나하면, 아 그거(앞의 질문)는 내 나름대로 해결이 된 거 같은데, 그 다음에 철학적인 문제를, 뭘, 풀어야 될까 생각을 해보니깐. 
쩝, 모든 문제의 근본은 ‘존재’로구나. 그래서 <존재란 무엇이냐>, 이 문제를 한번 풀어봐야 되겠다! 그래야 뭐, 저 무슨 나중에 윤리학이고 뭐고, 그게 다 해결되는 거지.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서는, 윤리학, 아무리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겠구나~ 생각을 해서. 그때 내가 이제 풀어야겠다, 그런 문제는 <존재란 무엇이냐>하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난 철학적인 공부도 존재론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제 그때 유행하던 존재론하면, 누가 유명했냐 하면은, 전에 내가 얘기했던 하이데거라는 사람이, 보통 존재론 하면 유명하다, 해서 우선 하이데거를 공부하기로 했어요. 쩝, 그런데 하이데거는 독일어, 그때 난 불어를 했는데, 독일어도 열심히 배워가지고, 하이데거를 독일어로 읽는 게 대학원 때 주 과정이었어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독일어로 쭉 읽는 거였는데, 그것도 상당히 열심히 읽었어요. 나중에 되가지고는 뭐, 저 왜냐면 모든 공부라는 게 직접 그때, 바로 최근에 읽은 사람이 그거에 대해서 제일 잘 알잖아요. 최근에 읽었더니, 뭐 선생보다 더 많이 아는, 그런 느낌을 가졌어요.
그래가지고, 상당히 나름대로 프라이드도 좀 가지고. 아 하이데거에 관해선 뭐,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놈이 없네, 그러면서. 그때 겨우 석사과정(논문)도 아직 안 하는 중인 놈이 그렇게 궁시렁 거리고 다닌 거예요. 그러는 중에 누굴 만나냐면, 바로 여러분들한테 읽으라고 했던 …

6.
참! 숙제 있잖아요! 숙제, 리포트 두 개 있죠? (네에..) 리포트 두 개는 기말고사 시간에 다 내야 돼요! (네에!) 그 이후에는 안 받습니다~ (네에!)
어, 그렇게들 아시고. 그래가지고 박홍규 선생님을, 그때 난 박홍규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근데 유일하게 뭐나면, 불어강독을 했어요. 불어 텍스트를 강독을. 나는 그때 불어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어서. 아 불어 텍스트를 읽는다는데, 그거 한번 들어가 봐야겠다, 해서 들었어요. 그래서 딱~ 들었더니, 그때 베르크손의 『창조적 진화(1907)』를 맨 처음부터 읽고 읽었어요. 우와~ 이게 바로 내가 철학과에서 듣고 싶은 강의였다. 바로 듣고 싶은 수업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하는 얘기를 거기서 하고 있더라. 그래서 으아~ 이거 대단하다. 그래서 지금(당시) 하고 있는 건 하이데거지만, 베르크손으로 공부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박홍규 선생님이, 아, 어느 날 날 부르더니, 뭐 이런 저런 얘기를 말씀을 하시면서, <고전을 한다는 것은 가시면류관 쓰는 거다> (란 말씀을 하셨다). 가시면류관은, 여러분들 뭔지 아세요? 예수님이 돌아가실 적에, 십자가 매면서 가시로 만든 원형 띠를 (머리에) 두르고, 십자가에 올라가셨는데, 그게 가시면류관이에요.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 고전하는 게 왜 가시면류관이냐,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땐 이해를 잘 못했어요. 나중에 그것도 나이가 들어야 이해를 했어요. 이 양반이 왜 이런 말을 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아 이게(이 말씀이) 나보고 고전을 하라는 얘기로구나~ 그렇게 알아들었어요. 그때 나온 고전이라는 거는 희랍어 텍스트를 얘기한 거다, 플라톤을 공부해라, 이런 얘기로 알아듣고. 아, 선생님이 직접 학생을 불러다 놓고 희랍 공부하라는데, 그럼 공부해야지 안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우선 논문은, 하이데거로 쓰고. 이제 희랍을 공부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쭉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논문을 썼어요. 논문을 뭐 그렇게 잘 쓰지도 못하고, 그럭저럭 썼어요. 썼는데, 어 어 (뜸들이다가) 그 다음부터 곧바로 이제 플라톤 공부로 나섰죠. 그러면서, 그때는 상당히 시작이 좋아가지고, 저 뭐냐면, 석사과정을 졸업하면은, 바로 대학 강사 정도는, 강사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교수 자리도 바로 나올 수 있는 그런 때였어요, 그 시기가. 왜 그런 때였냐 하면은, 그 고 석사 하는 몇 년 사이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가지고, 학생들 숫자를 확 늘여버렸어요. 늘이는 바람에, 대학교에서 교수 숫자가 갑자기 많이 필요해졌어요. 그래서 석사학위만 가지고 있어도, 교수로 받아들여지던 그런 때였어요.
그 그러, 그러고 내가 석사학위를 하고 나니깐, 아 어느 지방대학에서 나보고, 너 교수로 올래? 막 (이런) 제의가 들어오고 그랬어요. 지금하고 시대가 다른 때예요. 지금은 훨씬 더 어려워졌죠. (아무튼) 그래, 난 그런 거 안 간다. 공부한다. 여기서 공부해가지고, 나중에 유학을 가게 됐어요. 유학을 가게 돼가지고. 저 뭐냐 거, 그때 뭘 공부할까, 베르크손을 공부할까 플라톤을 공부할까, 왔다 갔다 하다가. 아, 내가 지금 아직도 희랍어 실력이 부족하니깐, 우선 플라톤을 먼저 하고나서 나중에 베르크손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불란서(프랑스)로 유학을 가가지고, 베르크손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래서, 아이! 저, 플라톤을 공부하게 됐어요. 플라톤을 우선 공부하고, 그러면서 그 사이 사이에 베르크손을 같이 공부하게 됐어요. 그래서, 난 철학적으로 플라토니코platonico, 베르크소니안bergsonian 이에요, 지금도. 당신의 철학적 입장이 뭐냐 묻는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근데 그 입장은 누구 입장이냐면, 바로 내 선생님이신 박홍규 선생님의 입장이었어요. 그 입장을 가지고, 플라톤도 하고 베르크손도 쭉 공부해왔어요. 공부를 해왔더니, 아~ 스승을 잘 만나야하는 것이 맞는 게, 이게 정말 공부해야 할 두 사람, 플라톤과 베르크손 두 사람을 딱 집어가지고, 딴 사람 읽어봐야 소용없고, 이거 우선 읽어라 해서, 그 두 사람을 읽었더니, 다른 모든 것의 본령이 다 알아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박사학위를 받을 즈음에, 양쪽 다 알게 됐어요. 내 것으로 다 소화하게 됐어요, 그거를.

7.
그럼, 이제! 얘기가 끝나느냐? 아니죠. 끝난 게 아니고, 얘기가 이제부터 시작이죠! 이제부터 뭘 해야 하냐면, 내가 맨 처음에 시작할 때, 뭐 하려고 했어요? 위대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 시작을 했잖아요~ 위대한 철학자가 돼야 하잖아요. 그럼 위대한 철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냥 플라톤과 베르크손을 알면 되는 게 아니고, 나의 ‘새로운 보편적인 철학’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 근데 골 때리는 거는, 플라톤과 베르크손 배우는 거는, 열심히 읽으면 알 수가 있어요.
 (목소리를 드높이며) 이제! 나의 철학을! 만드는 이제, 새로, 새롭게 나의 철학을 하는 것이, 이제 문제가 됐어요. 어? 그래서 그걸 계속 모색하는 시기를 보냈죠. 그러는 사이에 학위 공부를 끝마쳤기 때문에, 그 사이에 뭐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하여튼 이 경희대학교에 오게 돼서 쭉 선생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나는, 별 다른 무슨 경력 그런 게 없어요. 그냥 학위 마치고, 경희대학교 선생이 된 게 내 경력의 다예요. 근데! 이제부터 남은 작업은 내 철학을 만드는 작업 아니에요? 고 얘기는 좀 이따가 얘기할게.

8.
잠깐, 샛길로 빠져서, 다른 얘기를 잠깐 해야겠어요. 나는 처음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떻게 사는거냐>는 질문부터 시작해가지고, 철학과로 옮겨가고, 그래서 철학 공부하면서, 내 철학을 어떻게 만드느냐, 이게 주된다고 했죠. 여기까지 왔죠. 이렇게!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들한테 우선적으로 권하고 싶은 거는, 여러분들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런 거에 대한 근본적으로 반성을 한번 해보고. 그래서, 여러분들 사는 것의 제일 밑바닥까지, 끝까지 반성을 해보고, 그 끝에서부터 <아, 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거를 쭉 세워봐 달라, 하는 주문도, 지금까지 한 얘기에 포함돼있어요~
근데! 사람들 중에는, 나같이 꼭 사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쩝 어, 어떤 사람이 있냐 하면은, 뭐 가령, 농촌에서 태어나서 자기 아버지가 땅이 있어서, 농촌에서 계속 농부로, 땅을 물려받아서 농부로 사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어? 뭐 아니면, 부모님 밑에서 사업체 하나를 물려받아서, 그걸 계속 키워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아 자기 집이 너무 가난해가지고 나는 돈 벌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사람은 돈 벌어야지! 그런 사람이 철학 공부한다고 하면, 곤란해요! 지금 먹고 살기가 당장 급한 사람이, 아 나는 나름대로 먹고 살 건 있었어요~ 그 사이에 (철학 공부해도 괜찮을 만큼의 풍족한 상황) 얘기를 빼서 그렇지. 먹고 살 건 있었어요~ (일동 소소한 웃음) 뭐 부모님의 돈이라고 해도 좋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 먹고 살기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지금 나같이 생각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삶을 결정할 수가 없어요. 먹고 살기가 걱정인 사람은 먹고 사는 일에 매진해야 돼요! 아 그런 삶으로서 더욱 더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어요~ 가령, 정주영 같은 사람이 있죠. 내가 정주영 씨가 돈을 잘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과연 고뇌했는지는, 그건 난 모르겠어요. 아마 안했으리라고 봐요. 그냥 시골에서 살다가, 이렇게 살지 못 하겠다 해가지고, 돈 얼마, 소 한 마리 뭐 판 건가 훔쳤나 그래가지고 나왔단 말이에요, 집에서.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을 사는데 여러 가지 방식이 있어요. 근데 나와 정반대되는, 한 삶의 방식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그게 누구냐면, 「딴지일보」라고 혹시 알아요? 그 저, 인터넷 상의 신문이에요. 딴지일보라는, 신문이 있는데. 그걸 만든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김어준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그 사람을 전혀 안 좋아하는,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일동 소소한 웃음) 굉장히 싫어하는데, 나와 정반대 방향으로 살았기 때문에 지금 소개해주는 거예요.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냐 하면, 뭐 자기 집이 못 먹고 살아가지고 먹고 살 길을 마련해야 되겠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어영부영 살았어요. 되는대로. 학교도 어영부영 다니다가, 컴퓨터 실력을 조금 키웠던 모양이에요. 그래가지고 어영부영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뭐 돈 벌리는 거 없나 해서, 지가 하고 싶은 걸 위주로 하면서, 일정한 직업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어? 그렇게 살아도, 우리 인생이 안 되는 건 아니고. 또 한편으론 (그처럼) 다 그래요. 그렇게 살다가, 그 사람 얘기에 따르면, 그 사이에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주로 뭐였냐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돈을 어떻게 만들어가지고, 돈만 생기면 외국여행을, 자기가 60여 개국을 다녔대~ 외국여행을 많이 다녔대요. 거기서 나름대로, <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얻어가지고. 그래서 또 어영부영 다니다가, <아 딴지일보라는 걸 한 번 만들어볼까? 이 조선일보 놈들이, 우파라는 것들이 정권을 잡아가지고 우리나라 망친 거 아니야?> 그래서 딴지일보라는 걸 만들어가지고, 아 그게 인기를 끌었어요. 그래가지고 그게 인기를 끄니까, 자기 자신도 유명해지고, 해가지고 지금도 어영부영 살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어?
그러면, 유명한 걸로 따지면, 최정식이 유명할까, 김어준이 유명할까 생각해보면은, 김어준이라는 사람이 훨씬 더 유명해요! 어? 자, 그렇게 살아도 그것도 인생이에요. 그렇게 살아도 돼요. 근데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무슨 자기의 전문speciality이 없어요! 사람은 ‘일인일기(一人一技)’라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어떤 분야가 있어야 해요. 여러분들이 대학교까지 다니는 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만들어라, 그런 얘기에요. 그런 게 없이 살면, 인생이 어떻게 되냐면, 지가 하는 일이 없이 진짜 어영부영 살게 돼요.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기냐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무슨 사건 하나가 생기면 거짓말을 하게 돼요. 어? 그러면, 만약 김어준 같은 사람이(에게) <야, 너 돈 많이 줄 테니까, 너 지금까지 좌파였으니까 (이제) 우파로 해라. 돈 많이 줄 테니까 우파 할래?> 하면, 할까요 안 할까요? 지금까지 자기 삶에 충실했다면, 해야 돼요. 왜?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이 없어요. 뭐 좌파라 해봐야, 그게 좌파인지 아닌지, 이게 결과가 어떻게 되는 건지, 오늘날 좌파가 어떤 건지, 북한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건지, 이런 거에 대한 반성 없이, 그냥 어영부영 살다가 나름 유명해져서 이런 방식으로 살면,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 건지에 대한 줏대가 없어져요. 줏대가 없는 사람이,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이 돼요.
그런데! 내가 그 사이에, 처음부터 맨 밑바닥에서부터 반성을 해서, 점점 꾸리려고 하는 것이, 김어준 같은 사람의 삶의 방식은,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유명할지는 모르지만, 나로 봐선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에요~ 방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또 사는 방식이 있고, 학생 여러분들 중에서도 <아 뭐, 고민 없이 그렇게 살면 좋겠다> 하는 사람도 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좋아 보이면, 그렇게 사는 방식도 있어요. 어? 다만 나쁜 짓만 하지 않고, 거짓말만 안 하고 살면 돼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된다~ 고 얘기해드리고 싶어요. 나는 그 사람의 삶을 별로 찬성 안 하기 때문에! 뭐, 그런 사람도 있다는 얘길 우선 해두고 싶고. 다시 아까의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9.
맨 처음에 위대해지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그, 새로운 철학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했겠어요. 응? 그런 고민을 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케이스가 누가 있냐면, 니체라는 사람이 있어요. 난 니체를 굉장히 우습게 아는 게, 우습게 알아요! 왜냐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어디로 가냐 하면은, 고민 고민 하다가 철학 밖으로 갔어요. 그래서 그 사람 철학엔 3가지 테마(단계)가 있는데, 맨 처음에 낙타에 있다가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이로 가요. 낙타에서 모든 짐(학식과 자료)을 짊어지고 가고, 사자는 그걸 다 깨부수는 사람이에요. 다 깨부숴. 나중에 어린이가 되면, 즐겁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막 아무렇게나 하면은, 아 사람들이 그럴 듯한 철학자라고 인정을 해주네? 그런 철학을 한 사람이에요, 니체가. 어? 그래서 예수님도 깨부수고, 플라톤도 깨부수고, 빵빵 다 깨부수고, 자기 이외엔 잘난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1900)』, 이런 책도 막 쓰고. 과대망상증이 있던 사람이야. (일동 웃음) 아 진짜에요. 그 사람 책을 잘 읽어보세요. 그 과대망상증을 그냥 그대로 드러내 보인 사람을, 사람들은 또 멋지다고 와와 거려요, 좋다고. 그러니 내가 그걸 우습게 안 여길 수가 있겠어요? 당연히 우습게 여기죠. 짜식, 철학이 뭔지도 모르는 놈이! (일동 웃음)
철학을 하려면, 낙타처럼 무거운 걸 짊어지고, 소처럼 꾸~준히 갈고 닦는 거예요. 딴 거 없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죠. 왜 그래야 되냐면, 내가 이 시간(형이상학 수업) 맨 처음에서 얘기했다시피, <철학은 에피스테메Episteme>라는 것. 학문은 자기 인생관doxa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니체(의 말)는 또 자기 인생관이에요. 어? 그건 에피스테메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뭐, X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고. 니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내가 얘기하는 거예요! 어? 여러분들, 안 놀라워요? (일동 웃음) 가만 읽어보니까, 이거 아무 것도 아니네. 니네들 말로, X도 아닌 거. 그런 얘기야, 지금 내 얘기가~ 어? 그러면 이제, 너는 X도 아니라고 욕을 하는데, 너는 얼마나 잘났냐?
근데 와~ 그 낙타처럼 짊어지고 소처럼 밭을 가는 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나는 그 베르크손 주위에서, 거기서부터 딴 길을 간 사람들(철학자들의 작업)을 계속 읽는 작업을 했어요. 거기서 새로이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베르크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베르크손 주변에 뭐 들뢰즈니, 아까 말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니, 또 그 선배들이니, 쭉 읽었어요, 계속. 지금까지 그 작업을 한 거예요. 거 하다보니까 30대에서 50대가 됐네, 지금.

10.
그럼 너 한 게 없네? 한 거 없어요. 다만 뭘 했냐하면, 방황을 했어요.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보니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 된 거예요. 50대가 되니까, 아 이거 계속 이렇게 방황할 일이 아니로구나. 너 지금까지 네가 네 자신이 에피스테메를 한 대매~ 네 자신이 에피스테메를 한다고 해놓고선, 에피스테메를 얘기를 한 사람을 그걸 극복할라고. 그걸 극복해야 내가, 베르크손도 플라톤을 극복하고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뭐냐면, 베르크손이 플라톤을 극복했듯이, 나는 베르크손을 극복하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데 베르크손이든 플라톤이든, 결국 맨 처음에 에피스테메를 추구해 나간다는 거를, 이걸 버려서는 요 철학이 안 되겠구나~ 결국 <그 길로 가야되겠구나, 그래서 딴 길을 계속 찾아서는 곤란하겠구나> 하는 거를 깨달았어요. 그럼, 네가 이제 할 일은 뭐냐~ 그걸 50이 돼서야 깨달았네. 그래서 내가 지천명(知天命)에 대해서 이해가 돼요.
그래서 뭐냐면, 아~ 베르크손이 지금,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던, <내 나름의 새로운 분야를 연구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럼 어디서부터 뭘 해야 될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여기서 메를로-퐁티를 만나게 된 거예요.
베르크손에서 불란서 철학이 어긋나는 게, 어디로 어긋나냐면, 메를로-퐁티로 어긋나요. 메를로-퐁티가 한 게 뭐냐면, 『지각의 현상학(1945)』이라는 거예요. 근데 내가 가만히 보니, <현상학? 이게 뭐야? 현상학을 해가지고 지각이 더 잘 보인다고?> 아 그건 아닌 거 같애. 베르크손도 지각의 현상학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를 (하긴) 했는데. 그 얘기하고 전혀 딴 얘기를 메를로-퐁티가 한 거고. 거기서부터 전혀 딴 철학, 존재라는 거를 실체라는 거를 깔아뭉개서 없애고, <실체라는 건 없다>는 철학으로 나아가게 만든, <관계밖에 없다> 그런 철학으로 만든, 최-장본인이에요, 메를로-퐁티가.
아 그럼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은,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아니고, <지각의 형이상학>을 해야 되겠다. 지각이란 진정으로 어떤 것이고, 메를로-퐁티가 한 얘기가 이게 지금, 맞는 얘기냐 틀린 얘기냐, 이게 형이상학적으로 어떤 게 틀린 것이고, 그것에 의해서 지각의 현상학이 왜곡된 부분이 무엇이구나를 밝혀서, 다시! 베르크손이 한 것은, 플라톤을 극복해서 정지체 중심에서 운동 중심으로 간 것이긴 하지만, 플라톤에 계속해서 베르크손이 제자리였던 것은 에피스테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계속 그랬다는 것!
그럼 그 점을 놓치지 않고서, <지각현상 자체~에서부터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야겠구나>라고 인제서야 깨달아서, 요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지각이란 무엇, 그전엔 <존재란 무엇인가>를 했다가 <지각이란 무엇이냐>로 이제 범위를 좁혀가지고! 공부하고 있어요. 거기서 무엇이 나올 거냐 하는 건, 나도 아직 몰라요! 그건 공부해봐야 알아요!
그럼 넌 왜 그렇게 못났냐? 그렇게 처음에 위대해지고 싶다더니, 뭐 어쨌다더니 하다가, 왜 왜 결국 그렇게 방황하다가 말았냐? 아직 망한 건 아니고, <지각의 형이상학>에서 내 희망을 찾고 있다. 어? 그런 얘기에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나도 지각의 형이상학> 공부하고 싶다>, 그런 학생이 있으면, 나한테 오시면 <내가 환영이다> 이런 얘기에요!
아~ 그래서 지금까지 내 인생 전체를 얘기했는데. 그렇게 성공한 것도 아니고, 뭐 아직까지 그렇게 실패한 것도 아니에요. 실패 안했어요, 난 지금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죽을 때, 어떻게 죽냐 그게 문제죠. 죽을 때 어떻게 죽냐가 제일 중요하죠, 항상 사람은! 어~ 그런데 결국 지금까지 내가 이번 강의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베르크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여러분들한테 얘길 못했다는 거예요. 그럼, 이번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일동 박수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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