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알라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2013

알라딘: [전자책]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eBook]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은이)어크로스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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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대론 담론의 등장 이전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 사회 분야를 넘나들며 가장 많은 글을 쓴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저자 한윤형은 20대의 목소리를 사수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그는 청년 세대가 가진 냉소와 무기력을 발견했고, 모순 속에 놓인 자신의 20대를 통해 오늘의 청년 세대의 문제를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청년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사회 문제의 총체’였고, 냉소는 좌절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충격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게 되면서도, 시대와 사회를 탐구하는 저자의 작업을 통해 세대를 넘어선 사회 문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청춘의 존재 선언’을 만나게 된다.



목차


들어가며 : 잉여 시대를 명랑하게 돌파하는 청춘 여행

1부 잉여의 이유 : 어쩌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자의식
창작욕
파편화
청춘의 유예
단골집이 필요 없는 세대
후배의 실종
문어체 소년의 취미
세입자의 서재
학벌 사회
경쟁
의미 부여
문화 자본
그 남자와 그 가족
스타 리그
우리편 전문가와 냉소
소수에 대한 혐오
교양의 실종
군대와 영어
정치의 소비
내려가는 사회

2부 루저들의 사회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20대 멘토 담론의 현실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88만원 세대론'의 딜레마
누가 우리를 명명하는가
왜 세대론이 우리를 괴롭힐까
한국에 파시즘이 도래하는 날

3부 내려가는 시대에 살아남기 : 사회적 열패감과 무기력을 넘어
소통없는 시대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법
오늘날의 대학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파업을 불편해 할까
당사자 운동을 위한 조건
잉여 세대를 위한 정치가 가능할까
시대를 해석한다는 것

나오며 : 이 세대에 남은 것들
참고 자료


접기


책속에서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에 문제가 된다. 등록금 문제와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다.”
- 들어가며,
“스무 살이 넘어서도 잡다한 주제로 선행 학습 진도 빼듯이 독서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잉여’의 앎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앎, 시험 점수나 학점을 얻고 취직 시험에 합격하고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앎은 아니기 때문이다.”
- 1부 <잉여의 이유>, 자의식 접기
적나라하게 요약한다면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체제를 운용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체제를 지지해왔던 중산층 자신들의 자녀조차 월급으론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된 ‘멋진 신세계’다. 신나게 날다가 되돌아와 던진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부메랑이다. 이 ‘멋진 신세계’에선 “요즘 집값이 너무 비싸니 내가 몇 억 보태줘야지 뭐”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이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
- 168쪽, ‘88만원 세대론’의 딜레마 접기
가령 그들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 대해서는 “이 사회에서는 첫 직장이 제일 중요하니 일이 년 더 내 돈 받고 살더라도 좋은 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신문을 펴 들고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는 소식을 보면 “요즘 애들이 눈높이를 안 낮춰서……”라며 혀를 끌끌 찬다. 청년실업, 결혼,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보수 언론의 보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우려가 정확히 청년이 아닌 그들 부모들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한두 해만의 현상은 아니다.
- 233쪽, 오늘날의 대학은 무엇인가 접기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 예를 들어 흔히 지잡대 출신이라 불리는 이들은 '하늘과 땅'의 현격한 차를 인지하거나 '하늘'도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한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목표는 일단 저 명문대생들과 동등한 레벨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만 되면 뭔가 길이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 그 희망에 맞춰 열심히 살아도 모자랄 이들에게, 그 '희망' 너머에도 별것이 없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다.

2부 루저들의 사회 - 루저는 '세상 속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152쪽 접기 - C6H8O7
객관적인 자기 인식 없이 낭만화된 자기 긍정은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중2병'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정말로 자신을 긍정하는 길은 자기 행위의 무의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 게다.-20쪽 - 브륀
한때 '나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사춘기의 과제였다. 전통적으로 청소년 필독 도서였던 위대한 문학작품들은 대개 그 문제와 치열하게 대면하고 있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그런 소설에 담긴 고민들 자체가 유치해 보이는 것이 정신이 성숙해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에게 그 과제를 해결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21쪽 접기 - 브륀
내 주변의 20대 좌파들은 정말로 사교성이 없다. 사교성이 없어서 좌파가 된 건지 좌파질을 하다 보니까 사교성이 사라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깨달은 것은, 그러한 조류는 운동권 바깥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그들에게서 발견했던 것은 일종의 우울증이었다. 동년배에게서 공통의 화제를 찾거나 지적 자극을 받는 일을 포기한 그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원자화된 개인으로 전락한 채 그로부터 파생되는 우울함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40쪽 접기 - 브륀
부르주아들이 '문화 자본'을 획득하는 것은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돈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 가치 또한 소유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을 '허영'이라고 부른다면, 그건 그렇다고 치자.
문제의 핵심은 우리 사회의 부르주아들이 그런 '허영'에 쉬이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없는 이들에게 문화 자본을 자랑하는 법이 없고 돈과 상관이 없는 일에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남들을 철두철미하게 잘 쥐어짰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재능'이나 '능력'이라는 수사로 포장한다. 천박함이 재능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없는 이들은 이 재능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결국 계급 체계를 정당화하게 되는 문화적 차이'라는 부르디외의 논의는 한국 실정에서는 고급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아니라 어떤 천박함을 지칭한다. 그러니 슬프고 우스꽝스럽게도 남는 건 학벌과 영어밖에 없는 것이다.-76~77쪽 접기 - 브륀
부모님 세대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계층이 상승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 자체가 상승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사회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단 사실에 의문을 품은 바도 없지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의 삶이 나보다 더 나을 거란 것도 그들에겐 명약관화한 진실이었다. 실제로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분들도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냐'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하지만 이 세대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그와는 정반대다. 그들은 청소년기와 청년기 초반에 그들이 누렸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들 부모님 세대가 그들보다 훨씬 고생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엄청난 요행이 생기지 않는 한 자신의 평생 기대소득이 부모에게 미칠 수 없음을 '안다'.-133쪽 접기 - 브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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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윤형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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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으며, 성년 이후에는 서울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20대엔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현실정치에 관한 글쓰기의 일환으로 뉴라이트 역사 논쟁에 큰 관심이 있다. 30대엔 3년간 기자 생활을 했으며 이후 몇몇 여론조사기관과 선거 컨설턴트 업체에서 일했다. 《뉴라이트 사용후기》(2009),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미디어 시민의 탄생》(2017) 등을 홀로 썼고,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2011),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2011), 《추월의 시대》(2020) 등을 함께 썼다. 그중 친구들과 함께 쓴 《추월의 시대》에선 그간 한국 사회에 대한 각종 비관론의 요인들을 역발상으로 읽어내면 ‘현명한 낙관론’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한국 사회의 현실이 기대했던 것처럼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목도했고, 이전과 같은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여 더욱 철저하게 한국 사회의 특성을 해부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 책이 《상식의 독재》다. 현재 새로운소통연구소 조사분석실장, 넥스트브릿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상식의 독재>,<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촉 2022-2023> … 총 2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스스로 잉여라 말하는데, 세상은 우리를 청춘이라 부른다”

문제적 청년 논객 한윤형
열심히 살았는데도 루저가 되어버린 청춘들을 위해 잉여를 선언하다!

20대가 만드는 잡지 <월간 잉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75%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잉여의 원인으로 ‘자신’을 꼽았으며,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쓸데없는 짓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왜 청춘들은 스스로 ‘잉여’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세대론 담론의 등장 이전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 사회 분야를 넘나들며 가장 많은 글을 쓴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자 ‘세대론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저자 한윤형은 ‘20대의 목소리’를 사수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그는 청년 세대가 가진 냉소와 무기력을 발견했고, 모순 속에 놓인 자신의 20대를 통해 오늘의 청년 세대의 문제를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청년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사회 문제의 총체’였고, 냉소는 좌절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충격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게 되면서도, 시대와 사회를 탐구하는 저자의 작업을 통해 세대를 넘어선 사회 문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청춘의 존재 선언’을 만나게 된다.

열폭과 근자감에서, 중2병과 엄친아까지
: 눈물 나게 재밌다! 잉여 사회를 찾아 떠난 청춘 여행

어쩌다 보니 취직을 하게 되었고, 내 요리 실력은 몇 종류 국과 찌개를 끓일 수 있는 수준에서 멈춰 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나는 이제 평균적인 동년배 남성에 비해 요리에 대해 떠들 수 있는 축에 속한다. 어린 시절의 우려는 뒤집혔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처진’ 인생이 되었다. - 1부 <잉여의 이유>, 자의식

육군 장교로 일하는 7살 많은 사촌형은 벌써 결혼을 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은 사촌형과 저자를 비교하며 언제쯤 손주를 안겨다 줄 수 있을지 계산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저자는 부모님의 꿈을 자신이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쓰는 자신의 처지를 부모님에게 전혀 납득 시킬 수 없다. 그는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은폐하고 시간을 질질 끌어서 선택을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한탄한다(28쪽).
이런 일은 비단 저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많은 20대와 청년들은 각 가정에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한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슈퍼에서도 ‘판매자의 수다를 듣는 일 없이 혼자 물건을 고르고, 인격적 관계를 맺을 일 없는 캐셔에게 카드를 건네고 쿨하게 떠나고 싶다(32쪽). ‘특별한’ 관계를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는 그렇게 청년 세대에게서 선·후배들을 빼앗아 갔고(37쪽) 그렇게 모두 ‘혼자’가 되었다. 지하철 환승 통로와 같은 경쟁(62쪽)은 재력과 자본을 재능이나 능력이라고 부른다(76쪽).
이 책에는 등장하는 많은 신조어와 유행어들은 청년 세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잉여, 열폭, 엄친아, 어그로, 중2병, 지잡대, 키보드워리어, 근자감……. 오늘날의 청춘 세대의 자조적 냉소를 표현하는 이런 용어들은 이들을 더 이상 청년 세대를 ‘청춘’이란 단어로 부를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슬프면서도 실소를 자아내는, 우리 사회를 사는 ‘웃픈’ 청춘들의 정서이자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이 된다.

청년 세대의 자조적 냉소는 어디서 오는가
: 자학과 냉소를 넘어 진짜 청춘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분투

“특정 세대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어떤 생산 과정에 참여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진 현상은 한 세대를 무기력증과 우울함이 결합한 어떤 저신 상태로 내몰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하기에 필요한 만큼을 생산한다. 그리고 존재의 이유는 맹목적이며,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 나오며(300쪽)

스스로를 생산적이지 못하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냉소와 열패감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오늘날 청년층의 대표적인 정서가 되었다. 이 냉소의 정체는 “차라리 군대에 돌아가고 싶다(27쪽)”는 탄식이거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일에 대한 의미’를 찾는 어느 재무설계사의 멘탈 교육과 같은 몸부림이다. 2000년대를 풍미한 게임이자 PC방 문화의 진원이었던 스타그래프트 리그는 평범한 소년들도 스타가 될 수 있는 ‘공평한 경쟁’이라는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소년들의 꿈의 리그’였다. 이 소년들은 자라서 ‘소년들의 분투’인 스타 리그 경기를 온라인에서 다시 보기 위해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취업 포탈 사이트의 취업 정보를 봐야 하는 씁쓸한 현실(95쪽)을 마주한다. ‘자신의 청소년기와 청년기 초반에 누렸던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청년들은(132쪽) 이 사회가 ‘내려가는 사회’임을 알고 있다. ‘냉소’는 ‘좌절’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100쪽).
한국 사회가 잉여 사회가 되는 동안 ‘진짜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투했던 저자는 “왜 그렇게 사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짧은 인생의 키워드들을 뽑아 1부 ‘잉여의 이유’를 썼다. 2·3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대론 담론 이후 실제로는 사라진 당사자의 목소리를 사수하며, ‘정치 오타쿠’다운 집요함으로 바라본 사회와 시대에 관한 냉철한 분석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가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 이 세대가 잉여가 된 사회를 살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81쪽)
☞ 평론가이자 글쟁이로서 저자 자신에 대한 우려(111쪽)

불안의 시대를 넘어 다시 쓰는 세대 진술서
: 시대를 관찰하며 세대론 이후를 상상하다

“오늘날의 잉여 인간들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다. 오늘날의 루저 문화는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빠져드는 정서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고, 그래서 경쟁에서도 승리를 거뒀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날에 희망이 없는 그런 열패자들이다.” ―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147쪽)

“도대체 요즘 청년들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라는 기성세대의 훈계와 “우리가 힘든 이유를 왜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가?”라는 말을 들어본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특정 세대가 경제적·정치적으로 ‘끝없이 추락’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실제로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루저는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다(159쪽). ‘넘쳐나는 멘토’와 ‘20대 개새끼 담론’을 비판하며 잉여와 루저 문화를 내부에서 파헤치는 저자의 작업이 소중한 이유다.
씁쓸하지만 공감가는 청년 세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저자의 ‘웃픈’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예언한다. 언제나 자본주의와 타 세대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던 21세기 청년 세대의 자기 진술서인 이 책에서, 우리는 날카롭게 벼려진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적 각성 이상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

☞ 멘토 담론에 대한 비판(137쪽)
☞ 청년 세대가 불렸던 이름들의 역사(169쪽) ☞ 세대론에 대한 반론(195쪽)


평점
분포

8.7




잉여로운 청춘들이여, 우리를 위한 나라는 없지만 우리를 위한 책은 여기 한 권 있다. 일단 하뉴녕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자. 그런 다음 저명한 청년잉여 한윤형이 알아서 설치게 하면, 또 모르지, 우리를 눈꼽 만큼이라도 위하는 나라가 탄생할지도.
toon_er 2013-04-17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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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논객의 칼럼이라 내용이 상당히 친근하게 다가온다. 세대간의 문제라든가. 청년의 보수화 등 인상깊은 주제들을 쉽게 접근하도록 쓰여있다. 한 번 읽어볼만은 하다
책수집가 2015-06-2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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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의 책 리뷰는 언제쯤 `한윤형이라는 인물론`에서 비롯된 특수화를 넘어서 그가 우리 사회에 건네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이 그 지점을 극복할 여러 마당을 제공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다만 세대론에 대한 역사 기술은 전형적이라 약간 아쉽다.
얼그레이효과 2013-06-0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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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건 꼭 사야돼...
에라스네츠 2013-04-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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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걸작.... 특히 2부의 내용은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헛헛헛헛 2013-06-1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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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유일한 희망을 향한 '청춘'의 결기 혹은 위로








거의 유일한 희망을 향한 '청춘'의 결기 혹은 위로

[서평]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2013년 4월)






'청년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의 책인데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마저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이 책의 독자가 꼭 '청년'일 필요는 없다. 청년 세대 담론의 중요성은, 부모 세대 혹은 386세대와의 비교 우위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는 '한국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 시대에 도래한 '잉여의 비루함'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현실인 까닭이다.


















잉여 사회의 절망과

세대론 논쟁의 허망함을 넘어


한윤형은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한다. 잉여는 과잉의 산물이다. '소수의 인간이 관료 조직과 자동화 기계를 붙들고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며 너무 많은 물건을 생산하자, 그 공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간 대부분이 잉여가' 되었고,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버둥거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의식을 가졌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한국식 자본주의는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IMF 이전에는 기업들은 빚을 져도 개인들은 저축하는 사회였지만, IMF 이후에는 기업들만 돈을 쌓아두고 개인들은 빚을 내어 돈을 굴리는 사회로 변모했다. 부자가 되는 방식은 대개 부동산의 지가 상승에 의존하는 것이었고, 이제는 월급만으로는 자립을 꿈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기성 세대는 경제가 성장하면 자신의 삶도 상승하는 것을 경험했지만, 지금 청년 세대는 '자기 삶의 전성기가 십대'였을 때라고 말한다. 십대 이후 끊임없이 하강하는 인생이다. 한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기 때문에 '루저'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루저'는 학벌 구조 안쪽에 있다. 즉 '오늘날의 잉여 인간들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다.




'학벌 사회의 승자이면서 잉여 인간이 된' 이들은 극심한 열패감에 시달린다. 명문대 출신의 장기하가 부른 <싸구려 커피>의 화자는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살았다고 말한다. 이는 잉여들의 일상, 그 열패감의 서사인 것이다.




'잉여 세대'를 둘러싼 세대론 논쟁에서 정작 청년들은 논의의 주체에서 제외되어 있으나(또는 그들 스스로 무관심했거나), 그 세대론이 유통되고 인용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청년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패배의 책임을 추궁당하곤 했다(예를 들면,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세대론은 공허하거나 부당하다.








부모의 욕망에 엄밀하게 조응하여 움직이는 피에로

그중에서도 유의미한 것은 '88만 원 세대론'이다. 2007년 출간된 우석훈과 박권일의 책 <88만원 세대>는, '20대의 대부분이 88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묵시론적인 예언'이다. 이는 기존 계급론에서 제기되던 불평등의 문제가 앞으론 특정 세대에게 전이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물론 사회과학적 근거를 인용한 합리적 반론도 있었고, 변희재와 <조선일보>에게 386세대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한윤형이 보기에 '88만 원 세대론'을 수용한 이들은, 원래부터 88만 원을 벌었던 청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 왔는데도 88만 원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즉 이 담론의 성공 배경은, 중산층의 불안 심리 내지는 중간계급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대론의 핵심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혹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 자본주의의 실패와 직결된다. 그리고 저자의 안타까움은 '88만 원 세대'와 '쌍용자동차 투쟁'이 만나지 못한 그 막막한 현실을 주목한다.

88만 원 세대가 쌍용자동차 투쟁과 만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쌍용의 노동자들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애저녁에 포기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 안전을 보장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은 젊은이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66쪽)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젊은 세대의 임금을 낮추고, 대학생의 85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받아들이되 언제든 그들을 거세하는 방식으로 자본의 효율성을 확보한다. 이 지점에서 세대론과 계급론은 충돌하면서도, 상생의 가능성을 지핀다. 물론 당장 '뾰족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현실'이지만, 바로 그 막막함이 현재 주어진 유일한 출발점이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본인이 거세당한 욕망을 '권리'로 인지하고,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현재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세상은 지금으로선 하나의 꿈이다.(167쪽)




출발점과 꿈을 명시한 한윤형의 희망은, 각성과 연대를 촉구한다. 허나 그 실효적 수행은, 우리의 처한 현실과 위선을 조망하는 것에서부터다. 부모의 욕망과 자녀의 욕망이 구분되지 않는 오늘날, 청춘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의 욕망에 엄밀하게 조응하여 움직이는 피에로'가 있을 뿐이다. 청년 세대에 가장 비판적인 386세대는 기러기 아빠와 원정 출산 등의 행태를 기꺼이 감행한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과 기러기 아빠의 욕망은 공존할 수 있을 뿐더러 일맥상통'하는 것이 우리 진보의 현실이다.

올더스 억슬리의 서사 "멋진 신세계"는 역설의 희망이다. 부질없는 욕망과 '꼰대짓'을 성찰한 저마다의 각성이 전제될 때, 다수의 루저가 교감하고 연대하는 것에서 역설의 희망은 움튼다. 한윤형은 같은 세대의 동지더러 '더 이상 부모와 선배 세대를 원망하지 말자'고 말한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를 만들면 되니까.

장발장과 부모의 순정

지난 대선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세력의 놀라운 결집을 보여주었다.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20대의 높은 열기는 진보 진영에게 승리의 환상을 선사했으나, 50대는 '투표율 90퍼센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그 환상을 무참히 무찔렀다. 저자가 보기에, 2030세대와 50대 이후의 세대가 대결한 것처럼 보이는 세대 분열의 구도는, 우리가 처한 비루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자식 관계로 얽혀 있으며 생존에 대한 공동의 모색과 연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언어들의 모략에 속아 '각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혁명에는 동참하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수양딸의 정인을 구하는 장발장은, 당신이 가진 전부를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우리 부모의 순정과 멀지 않다. 바리케이드에 갇힌 희망과 그곳에 뛰어드는 장발장의 희망은, 지향점은 다르지만 공동의 운명에 처했다.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 장발장은 죽음 이후, 혁명군의 대열에 합류하여 '민중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도 그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득할지 모르나,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희망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세대론을 뛰어넘는 '화해'다.








앞서 이 책은 청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를 위한 책이라고 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을 자녀와 제자로 둔 부모와 선생들이, 그리고 소위 '386'을 위시한 모든 '좌파 꼰대'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청년 세대론에 대한 당사자 반론이 담긴 '2부'를 곱씹어 소화한 후에, '1부'에 담긴 저자 한윤형의 처연한 잉여 인생론과 사적 비망록을 읽어내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공감'에 이를 수 있다면, '3부'를 통해 그 '희망'에도 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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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 2013-05-09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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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대한 비평, 그것이 곧 청춘에 대한 대안




말하자면 이 책은 또래에게는 위안을 주고, 다른 세대에겐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봐야 하는 책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들어가며 中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전자보다 후자에 해당했다. 난 이 책이 말하는 '또래'이지만, 위로보다는, 나의 세대를 좀 더 이해하는 축에 속했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그럼 이 책이 말하는 또래는 누구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청춘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세대의 일부만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하며 삐딱해졌다.





#1.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읽으며 이 책에서 위안받을 또래는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건 위안받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는데, 그건 루저에게 자격조건이 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자격조건은 우선 저자는 '인 서울'이라고 했지만 난 SKY 출신이라고 생각하고(K와 Y는 또 S뿐이라고 하겠지만.), 부모의 자산을 축내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있고, 덧붙여 시사상식에 밝아서 아니면 사회과학서적 좀 읽어서 뭘 좀 아는, 그래서 '엄친아'를 비웃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정의내리고 나니, 나는 '난 루저도 안되는 거네?'라는 이상한 결론에 다다랐다.

이렇게 꼬인 마음으로 보는 건 내가 나의 가치와 대학을 동일시했던,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던 흑역사를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그 어두운 과거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가끔씩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이 감정은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절제를 모르고 날뛰다가 결국 길을 잃어버린다. 왜 그럴까? 아마 이건, 좀 과장한다면 학벌사회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아닐까? 그 증상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든 한국의 입시체제를 겪은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앓고 있는 그것말이다. 루저를 좀 더 유의미하게 묶어내고 분석하는 이 글을 루저의 자격조건으로 읽어내는 나는 아직 완치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좀 더 제 정신이라면, 아마 이 꼭지의 마지막 부분에 방점을 찍었텐데. "(중략) 다양한 루저들의 삶을 담아내고 그 안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도가 필요한 때이다(160쪽)."





#2.

이 책의 1부에는 '한 시대의 세대 문제들을 드러내는(9쪽)' 것에 해당하는 저자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담겨있다. 많은 꼭지들에 공감했고, 낯선 부분은 신선했고 재밌었다(특히 보람상조 배 스타리그).' 그런데 몇몇 부분이 그야말로 시기와 질투를 불러왔다. "문어체 소년의 취미", "세입자의 서재"가 그것이다. 30대 초반에 진입한 저자가 서재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생경하고 충격적이었다. 서재라는 단어는 4, 50대 이상이 주를 이루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저자는 책을 얼마나 읽는 것인가? "교양의 실종"을 읽고 움찔했던 나다. 나는 저자가 말한 "그런데 요즘은 내 글을 보고도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다"에 나오는 그 사람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또래에게는 위안을"을 준다는 그 표현에 섭섭함(?)을 갖게 되었다. 위로받지 못하고 자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사실 좀 더 중요한 건, "교양의 실종"에서 보이는 저자의 어조였다. 다른 꼭지와는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에 화도 안내고 늘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선배가 오늘만큼은 진지하고 엄중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랄까? 좀 이래야 하지 않겠니?하며. 그래서 이 대목이 '교양 좀 쌓아라'라고 들리기 보다는, "파편화 된 취향(193쪽)"을 가진 세대가 어떻게든 서로 대화하고 대안을 찾아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한 선배만의 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젠 기억나지 않는 블로그 시절의 글말고는, 저자의 다른 책을 읽지 못했기에 나는 날카로움보다는 안온함을 느꼈나보다(9쪽 참고)). 교양을 주어로 삼는 것이 아니라, 교양을 수단으로 삼는 것. "다만 우리의 소통의 토대가 될 어떠한 공통 지식도 소유하지 못한 이 '세계 없음'의 현실이 우리 세대의 근원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당신도 그곳에서 산다(118쪽)."라는 인식을 가진 저자의 말에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그 삐딱함은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위의 2개의 단상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만 가지고 있는 개인적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른 누군가도 느끼고 있다는 것에 묘한 감정을 느꼈고("자의식"), 그저 느낌으로만 존재하던 그것을 선명하게 보게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내려가는 사회"). 그래서 마냥 삐딱해질 수 없었다. 어설프게 취한 논리적 제스처는 위의 두 개로 충분했다. 사례는 살아 숨쉬었고, 논리는 번뜩였다. 비평 자체가 대안으로 보였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니 말이다. 내가 속한 세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대안이다.





내가 내 자신을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게, 청춘 또한 자기가 속한 세대를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를 아는 방법이 내 밖에서 생겨날 수 있듯이, 자신이 속한 세대를 이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20대 멘토 담론은 20대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20대는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기 모습으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다소 왜곡되었다고 알려주고, 20대가 보지 못한, 놓쳐 버린 것을 보여주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건 얼마나 귀중한 것일까.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했다. 이것이 또 다른 왜곡이 될 수 있지는 않냐고? 난 저자가 각각의 담론에 대해 갖는 태도, 즉 어떤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계보를 놓치지 않고, 그 주장의 무의식을 파고 들어가는 것등을 보며 오히려 객관적 태도에 가까워졌다. 다른 담론은 물론이고 저자의 이야기에 대해서도.("소통 없는 시대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법"과 관련한 저자 직강을 상상해 본다.) 가끔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보다 가까운 선, 후배 혹은 친구 그러니까 또래들이 더 객관적으로 나를 봐 줄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속한 맥락과 상황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이 책이 20대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아는 것, 그것은 늘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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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ta 2013-05-05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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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2013년에 나온 사회과학 서적을 8년이 지나서 읽는다는 것은 참 미련해 보이는 일이다. 그 동안 지난 세월과 바뀐 정치지형은 또 얼마이며, 이 글이 씌여지던 시기는 또 어떠한가? 문국현에 대한 20대의 지지가 나오고, 미국산 소고기로 인한 촛불집회, 참여정부의 실패 이야기, 20대 개새끼론은 언제적 이야기이던가? 2021년에 2013년에 나온 책, 그리고 그 책에 수록된 글 가운데에는 2007년의 글도 있다고 하니, 슈가맨도 아니고, 과거의 글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 없이, 사놓은 책이니 읽고는 버리자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역시 내용은 어렵지 않게 잘 넘어간다. "청년 논객"이라는 말처럼 당시 젊은 사람이었던 저자의 글은 어려운 말을 어렵사리 쓰는 그런 글이 아니라 간결하다. 그 덕에 책을 읽는 속도는 꽤 빠르다. 데이터 하나하나에 얽매일 필요도 없으니 이 또한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요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속도와 달리 던져 주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청춘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20대를 신경쓰는 정치인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들과 소통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노력이 소통이 아닌 쇼통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얼마전 송영길 대표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연설을 하면서 자신은 청년들도 만나봤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모 당에서는 젊은 당대표가 탄생했고, 선거철만 되면 다들 청년들을 모아서 간담회를 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요즘은 근엄했던 대선 주자들이 청년과의 소통이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왜 그러나 싶다. 본인들이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을 버리고 왜 자꾸 홍그리 버드(아는 사람은 아는) 스타일로 가는 지 모르겠다. 젊은이들과의 소통이라는 미명하게 이런식으로 나가는 것은 그들의 생각 속에 젊은이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젊은이들은 생각이 없고, 들어주면 되고, 웃기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곁다리 취급! 이것이 젊은이에 대한 정치인들의 생각이고,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들의 생각이다. 얼마전 류호정 의원의 퍼포먼서는 보면서 "가만히 있어도 예쁠 나이인데"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젊은이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해줄께, 버릇없이 자기 생각 드러내지마." 아직도 젊은이들을 향하여 그렇게 외친다. 자기보다 아랫 사람들에게는 동양의 장유유서를, 자기보다 윗 사람들에게는 유럽의 평등과 자유를 말하는 것이 이 시대 중장년층의 생각이 아닐까? 어느덧 중년층으로 분류되는 나이가 되면서 더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이것이다. 어느새 나도 젊은이들을 그렇게 생각없고, 쓰다 버리는 용도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또 한 가지 생각은 정말 한국에 극우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 정치 시스템이 극우 정당의 출현을 막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여기에 공감한다. 그렇지만 앞으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20대의 정치 참여가 부족하다는 말로 20대를 꾸짖으면서 그들을 조금도 키우지 않는 현 정치체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20대를 키우지 않는 것은 보수나 진보나 동일하다. 386이 586이 되는 20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아래에 오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쳐내지 않았던가? 비례대표 자리 한 두개 던져주고 네 소신껏 해봐라는 것이 20대들에게 얼마나 어필했을까? 4년이 지난 후 단 한명이라도 생존한 사람들이 있었던가? 이런 일이 공고해지면 결국 그 힘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곳으로 흘러갈 곳이고, 그곳은 극우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 멤버십을 공고히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 극우 정당은 그러한 방법을 택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냥 잡설이 길어졌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청춘을 진심으로 위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그거 계도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뿐이다. 젊은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시민으로 인정하는 날은 언제나 올까? 10년이 더 지나면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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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21-06-22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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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누가 만들어야 할까?



1.한윤형의 신작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 주제의 선명도나 응집도가 좋은 책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여기 실린 글들은 대부분 여기저기서 그가 써 왔던 글들을 하나로 엮은 글들인데, 그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가 평소 공적 지면에서 하던 공적인 이야기가 다소 헐겁게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헐거운 느낌이 강한 부분은 1부인데, 대부분의 글이 흐름이 짧으면서도 오히려 뒤에 이어지는 2부/3부보다도 폭넓은 이야기를 다루는 터라 글 자체부터가 '가벼운' 건 당연하겟다. 글의 논조 또한 몇몇 꼭지는 주간신문에 올라오는 사회칼럼의 초안문에 가깝다가도, 다른 꼭지들은 그 지면에 같이 올라오는 에세이들에서 '감성' 성분을 적당히 뺀 듯한 느낌이었다. 몇몇 글들의 경우에는 원래 몇 개의 개별적인 글이었던 게 하나로 합쳐진 게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었고.

2.하지만, 그런 만큼 가장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 또한 1부였는데, 이는 내가 그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을 책벌레로 보내고 고딩 때에는 스타리그에 열광하던 나름의 공통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제일 클 것이다. 요새야 책을 그리 열성적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한때 나도 학창 시절 책을 제법 보면서 자의식만 오지게 커졌다가-한윤형이 여기에 대해 중2병이라는, 아주 간결하게 그 자의식 과잉을 꼬집는 단어를 안 쓴 게 조금 아쉽다-내가 생각 외로 내가 경멸하던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으며 우울해했고, 그만큼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 전문적인 정치평론 같은 건 엄두도 안 냈으나 나름 현실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가 맞닿았던 것과 같은 벽에 부딛혀 왔다. 그와 비슷한 시점에 늦깎이로 스타리그의 팬이 되었고, 스타리그의 중흥기에서 황혼기까지를 같이 봐 오면서 선수들이 만들어 낸 명경기들 하나하나에 환호하는 모습은 약간의 디테일 차이는 있겠으나 나의 모습과도 겹쳤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한윤형의 이야기인 1부는 '책 좋아하고 스타리그 보는' 마이너한 취향의 청춘의 이야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다행히도, 한윤형의 글은 이러한 '마이너한' 삶의 경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이 보편적인 기억이나 삶의 경험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고, 그 점을 선선히 인정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혹은 짧은 칼럼에 가까운 꼭지들을 통해, 지금 남한 청춘의, 아니 남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나갈(그리고 독자들도 같이 남한 사회를 고민하게 만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1부의 가치가 이러한 '워밍업'에만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몇몇 언론들이 한윤형(과 몇몇 젊은 필자들)에게 부여한 "20대 논객"스러운 책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1부의 많은 꼭지들은 그러한 워밍업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면서도, 나름의 가치를 갖는 부분이 있다. 가령 학창시절 그가 자신의 취미생활-독서-을 부모의 간섭에서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 [문어체 소년의 취미]는, 다소 종목은 다를지언정 취미를 갖고 그 취미를 지키기 위해 부모와 싸워야만 했던 모든 소년소녀들의 기억을 이끌어내고,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하는 아주 정직한 제목의 꼭지인 [의미 부여]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그 부여 방식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도록 유도한다. 이쯤 되니, 얼핏 난삽해 보이는 1부는 짧은 고민거리, 혹은 논제들을 던져 주는 게 애초의 의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3.2부와 3부는 이제 1부에서 제시한 화두에 대해 고민을 해 본, 혹은 고민할 준비가 된 독자들에게 한윤형의 논지를 본격적으로 풀어내는 장이다. 2부에서는 세대론 떡밥에 대해, 한윤형다운 요약 능력을 통한 세대론 떡밥의 역사와 함께 그 세대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논하고, 3부는 더 나아가서 이 '잉여 세대'가 어떻게 사회에 대응해야 할까를 논하는 장이라고 보면 얼추 맞을 것이다.

난잡하면서도 그 때문에 생기가 있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기 적당한 구성인 1부에 비해, 2부와 3부는 전통적인 사회 비평서들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 준다. 각 꼭지들의 배치는 한윤형의 논지를 부드럽게 전달하고, 독자들도 비슷한 단계에 걸쳐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배려가 돋보이나, 역시 구성 자체로는 다소 평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1부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의 핵심 컨텐츠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윤형,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남들과 다른데 또 그 다른 사람들과도 다른' 텍스트들이니, 구성이 평이한 점에 대한 아쉬움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4.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최고 능력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폭로" 하는 것이라면, 한윤형의 최고 능력은 "어떤 사건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텍스트로 요약하는 능력은 그렇다. 시각적 수단으로 요약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Capcold(김낙호)의 플로우차트와 굽시니스트의 엽기적이기까지 한 오덕 시사만화, 그리고 현 시대 최고의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이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화제가 이상하게 흐를 것을 염려하여 여기까지만.)

2부,3부의 핵심 컨텐츠 또한, 한윤형의 비급 "요약지왕"을 통해 세대론과 그에 얽힌 담론들에 대한 깔끔한 정리이다. 이러한 정리 덕분에 이 책은 다른 책들이 갖지 못한 무기를 손에 넣는데, 즉 '생각하기를 귀찮아하지는 않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세대론 담론이나 그에 얽힌 사회경제적 화두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훌륭한 등대가 되어 준다.

어찌 보면 이 무기는 [청춘]의 독자들에겐 독이 될 수도 있는데, 텍스트의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검증"을 할 만큼 열성적인 독자가 아닐 경우, 이 책이 제시한 깔끔한 요약만을 받아들이고 이 책이 미처 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다행히도 1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2부에서도, 3부에서도 한윤형은 자신의 요약 너머에 있는 고민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심지어 3부의 첫 꼭지인 [소통 없는 시대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법]에서는 자신의 키워 경력에서 나온 노하우까지 전수해 준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꼭지 하나만으로도 [청춘]을 사 볼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5.물론 이렇게 열심히 읽고 나면, 여러분은 아마 어느 정도의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한윤형이 책 전반에서 이야기하듯이, 이 책은 화두를 제시하는 책이지 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며-사실 현실에서 한두 명이 얇은 책 하나로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할 답안을 제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그 화두 또한 상당히 암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윤형은 '희망'을 아주 버리지는 않는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책은 지금의 방식에 안주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그 무엇인가가 적어도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에 대해 말한다.. 그가 말하는 것이 옳은지를 증명하려면, 아니 우리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다시 불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는 여기에서도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더 이상 부모 세대와 선배 세대를 원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별개로 세상은 움직일 것이고, 결국 그 세상을 살아갈 이들은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다른 나라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책무도 결국 이 세대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겟는가. ([청춘], '이 세대에게 남은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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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sle65 2013-04-2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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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던 큰 그림이 담겨 있는 책.





내 바로 앞 학번은 운동권의 끄트머리였고, 내 바로 다음 학번은 취업 하느라 대학시절의 낭만따위 누릴 수 없는 세대의 시작이었다. 선배들의 분위기도 후배들의 분위기도 내 학번과는 맞지 않았다. 나와 나의 동기들은, 운동권의 세례는 받지 않았으나 (=마르크스는 관심 없지만) 적당히 자기 교양을 위한 독서를 하고 있었다(=프로이트나 융은 읽었다).




그런 내가 초중고등학생들의 학업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면서, 지금 10대가 맞닥뜨릴 세상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고생은 고생대로 시켜놓고 정작 세상에 나갔을 땐 뒤통수 맞고 좌절하게 방치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운동권 선배들의 세례도 없었고 있다 해도 지금 한국사회를 설명할 이론은 못 된다. 나름의 교양서적들을 뒤적였다 하더라도 고전이 가르쳐주는 진리들은 통찰력을 느리게 키워줄 뿐, 구체적인 한국 사회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뉴스와 신문과 시사책들을 읽는다 해도 하나로 통합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공부의 이상적 목적은 무엇인지, 현실에서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이걸 하면 너희들의 미래는 보장되는지, 아니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가정을 꾸리거나 자식을 낳거나 노후를 준비하는게 가능은 할지, 이런 것을 하나도 대답하지 못한 채 과목의 단원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내가 꼴에 교양의 낭만을 누린 학번이라서.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사회의 단면을 구멍 많은 퍼즐조각처럼 맞추며, 큰 그림의 윤곽이나마 학생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그리고 이젠 한결 부담이 덜어졌다. 비록 좌절감은 피할 수 없겠지만,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건네줌으로써, 학생들에게 지금 20대가 처한 상황과 10대인 그들이 훗날 처할 상황에 대한 더 섬세한 스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에 바쁜 아이들에게 이 책 한 권을 다 읽으라는 건 무리이다. 그만한 독서 습관이 잡혀있지도 않고, 이해할 배경지식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바쁘고 피곤하다. 그래서 수업 때마다 글을 한두 편씩 읽히고 이야기를 나눈다.




잘 모르면서 '내 세대'와 달라보이는 20대를 비난하는 것은 쉽고 의미없다. 잘 모르면서 10대들에게 그저 공부만 잘하면 다 될 것처럼 거짓말하는 것 역시 쉽고 의미없다. < 청춘... > 에 이어, 지금 20대의 상황과 10대가 훗날 처할 상황에 대한 분석이 계속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있어야 나같은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희망을 가장하지 않고, 공부만 잘하면 다 될 것처럼 거짓말하지 않고, 그들이 정말로 대비해야 할 것을 같이 고민할 수 있다. 적어도 모르다가 맞닥뜨릴 때보다는, 덜 충격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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