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2

Park Yuha -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베트콩 7명“ 살육을 자랑삼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 | Facebook

 Park Yuha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베트콩 7명“ 살육을 자랑삼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으나 도망치지 못했던 소녀의 훗날 이야기다. 

어른이 되어서도 음식을 입에 틀어넣는 방식으로 딸을 관리/지배하려는 가부장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길을 고작 자해와 거식(拒食)이라는 자기파멸에서밖에 찾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동물이나 상대를)죽이기보다 스스로 죽는 쪽을 택한 여성의 이야기. 

인간세계에서의 최대폭력은 다수를 순식간에 살상하는 전쟁이나 집단학살이고, 주인공의 갑작스러워 보이는 육식거부는 그 메타포일 뿐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당연시해 온 “약육강식(弱肉強食)“적 세계관에 대한 저항. 아무도 죽이지 않는 ‘나무’—식물이 되고 싶어하는 것도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때문이다.

형부와의 성적 관계가 비난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원초‘(몽고반점으로 은유되는)에 대한 감성을 공유하는 남성이 형부였던 건, 이른바 ‘정상’세계에서 살아 가는 걸 선택했고 그 때문에 동생과 남편을 정신병원에 보내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럼에도’ 끝까지 동생을 보살피는 ‘언니’가 또한사람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영혼없는 결혼을 한 결과로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그녀를 주저없이 버리는 것과 반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밀어내고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때로 죽이는 걸 당연시한다. 언니의 존재는 ‘폭력’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것들을 상징한다. 

그러니, 형부와의 난잡한 섹스라는 표면적이해도, 

독재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엉뚱한 정치적 해석도, <채식주의자>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하긴 어렵다. 

물론 “어리석은 섹스”라는 독해도. 

대답을 모르고 질문형식으로 소설을 이끌어 간다는 평도 봤는데, 내가 보기에 한강은 너무나 세상을 명징하게 알고 있다. 

독해는 독자의 자유이긴 하지만, 모처럼의 경사를 기뻐하지 못하게 만드는 독해와 오해를 방치하는 건 또다른 가담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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