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2

Philo Kalia - “기후위기시대, 돌봄(친족)의 확대를 위한 종교의 역할”... | Facebook

(2) Philo Kalia - 오대산 월정사 제4차 전환사회 포럼, “기후위기시대, 돌봄(친족)의 확대를 위한 종교의 역할”... | Facebook



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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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제4차 전환사회 포럼, “기후위기시대, 돌봄(친족)의 확대를 위한 종교의 역할”
1박 2일 일정(10월 8~9일)
판 깐이: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 유정길 소장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그리고 종교학자, 철학자, 환경운동가들의 모임.


저 멀리 고흥과 진주에서도 오셨다. 서울이었으면 초청받고도 망서렸을텐데 오대산 월정사라는 말에 그냥 응했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일부러라도 찾는 곳인데 자신의 주 관심사를 오대산월정사에서 나누고, 전나무길을 걷기도 하고 공양을 받으면서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돌봄”
성장사회에서 탈성장사회로, 탈성장사회라는 어감이 주는 소극적, 비판적 자세보다는 적극적, 긍정적 어의가 담긴 ‘(서로)돌봄사회’, 돌봄 선언, 돌봄 민주주의, 돌봄 경제, 돌봄 국가, 기후 돌봄, 어물쩍 봐준다는 뜻이 아니라, 죽은 살 살리고 펼 수 있도록 살피고, 보살피고, 보듬고 관심 쏟는다는 것.
그러나 인간중심주의를 완전 벗어나기 위한 말로 ‘돌봄’이 타당한가? 인간이 자연과 사물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처분하고 채굴하고 착취하여 자기들 이익만 챙기도록 자연은 그저 묵묵히 참고 봐준 것이 아닌가? 누가 누구를 돌봐준 것인가?
‘돌봄’, 돌아다보다, 휙 빨리 목표점만 쳐다보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주변, 전후좌우 돌아보지 않고 건성건성, 대충대충 보며 무시하고, 오로지 선착순 1명만을 위한 사회, 그런 시선, 입장, 삶의 태도로부터의 철저한 돌이킴, 회개, 참회, 이런 의미에서의 전환, 그래서 이제부터는 주변을 두루두루 돌아보며 살겠다는 태도렸다!
‘돌봄’, 영어 ‘care’의 번역이기도 하지만 영어에는 걱정, 근심, 배려 등의 의미도 들어 있다. be careful, don’t care
목회(사목)학의 이름은 pastoral care. Seelsorge였다. 하이데거는 Sorge를 besorgen, umsorgen, fürsorgen등으로 해명한 것 같은데, 번역어가 잘 생각이 안 난다. 심려, 배려, 고려.... 암튼, Sorge는 현존재의 핵심 개념, 현존재 분석은 Sorge분석일 정도로,
“난잡한 돌봄”(promiscuous), 인간/비인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란 뜻이란다. ‘난잡’, 도덕적 차별 언어에 대한 되갚기라는 전략도 내포된 말 같지만. 무차별 돌봄, 무조건 돌봄이 더 좋아 보인다.
‘회복력’(resilience), 상처나고, 깨지고, 산산조각난 존재들이 회복력을 갖기 위해선 사전에 치유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를 시골화하기’의 일환으로 도시 텃밭 가꾸기,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하세월?
월정사 스님의 말씀:
월정사에 온지 50년인데, 50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이 전혀 딴판이다. 지금의 삶은 과 에너지 소비다. 기후위기의 문제는 결국 에너지 생산 및 소비와 상관 된 것인데, 현재의 안락한 삶을 유지한 채, 돌봄 사회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데, 그러한 모순을 심각하게 들여다본다. 5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기후 위기 대응은 이것대로 해야 하지만,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선 이미 시간이 지나버렸고,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 그중에서도 가난한 인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돌봄 적응’이란 말이 나온 것인가.
“김치 천도재”
공양주로 있으면서 700명분의 김치를 잘못 관리해 썩은 김치를 버리면서 김치 천도재를 드리고, 이 김치가 바로 우주적 존재임을 깨달았다는 경험. “쓰레기는 본래 없다. 모두 존귀한 존재”란 도덕적 계명보다는 쓰레기가 없이 살았던 삶의 형식이 갖추어져야 하리라. 소년시절 농촌의 삶은 쓰레기로 여길 수 있는 물건이나 음식물이 남을 수 없었다. 폐캉통도 주어 사용하던 시절, 쓰레기통이 집안에 없었다. 음식 쓰레기가 있을 수 없었으며, 남더라도 모두 돼지가 먹었고, 사람 똥, 돼지 똥 모두 퇴비가 되었다. 철저한 순환!
김치가 우주적 존재라는 말, 하이데거의 사방세계(Ge- viert). 죽을 자로서의 인간이 하늘과 땅과 사물을 모시고 살았던 세계, 신들이 달아난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성스러움도 사라졌고, 성스러움이 사라지자 신들이 숨 쉴 공간도 공기도 사라져, 신들은 살 수 없게 되었다. 성스러운 공간, 삶과 작업과 놀이가 공존했던 마당이란 인간도 하나의 관계점이 되어 이웃 사물들과 살아 있는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삶의 장소, 그렇게 될 때 신들도 이곳 삶에 삐쭉 얼굴을 내밀고 찾아와 다시 둥지를 틀 수 있다는 것, 오염된 개천을 살리자, 송사리와 붕어들이 살아나는 이치와 같은 것.
돌봄의 원동력은 감사하기, denken에서 danken으로, think에서 thank로.
모심, 공경, 섬김의 불평등을 통해 평등이 완성된다. 이때 불평등은 초평등.
결국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살아있다”
생물학적인 생명 규정이 타당한가? 그것은 생물학자들만의 범주 규정일 뿐
모든 물질에서 살아있음을 교감할 때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생물에서 아무런 생명이 교감되지 않을 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차가 죽은 것이다. 비인간존재들에게서 고통과 소란스러운 이야기들을 느끼기 시작할 때 만물이 다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지, 그분께서는 “돌멩이에서 아우성”을 이미 들으셨다는 것 아닌가! 그분의 감수성, 감화력, 사물들과 함께하는 公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
애니미즘이 내게로 왔다. 애니미즘의 내림, 애니미즘의 세계가 샤머니즘의 내림굿과 같은 모양으로 내게로 임했다. “샤먼은 애니미즘을 해석하는 사람 ”(카렌 암스트롱)
“살아있음의 감수성”은 인간의 사유를 숨기고 동물의 사유, 식물의 사유, 사물의 사유와 접속하는 일부터, 태초의 움직임은 생명의 움직임(moving, acting, living), 살아있음, 살아있음을 사유하는 것은 살아있음이 사유하는 것
끊이지 않는 “강원도의 개발 열풍”
고속도로, 고속 열차, 케이블카, 출렁다리, 벌목, 산불을 은근히 즐기는 시정, 풍력 발전, 태양광 발전, 서식지 파괴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 생물들이 알아서 이사한다는 공무원들의 궤변, 괴변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
쓰레기 분리는 압축 쓰레기차에 의해 쓰레기의 60%가 매립되거나 소각된다고
그렇다면 재활용 물건들을 맹글기 위해 딱지를 떼어내고 음식물 찌꺼기를 씻어내는 수고를 왜 하냐고?
결국, 서울과 수도권의 더 많은 소비력(안락한 삶)을 증강하기 위해 지속적인 지방(강원도, 호남과 영남)의 파괴와 난개발.
영성이란 온 마음을 담아 그의 손과 발로 하는 것이다.
포럼 발표자: 한윤정, 유정길, 심귀연, 유기쁨, 박성율.
책을 통해서 알던 선생님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책 선물도 받는 기쁨
심귀연 선생님에게서 OIKOS를,
우석영 선생님에게서 공동저서 『기후돌봄』을
이것들은 따로 평론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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