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1

‘강사’도 ‘노동자’도 아니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계약직 강사들 처우 개선 시위 - 경향신문

‘강사’도 ‘노동자’도 아니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계약직 강사들 처우 개선 시위 - 경향신문

‘강사’도 ‘노동자’도 아니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계약직 강사들 처우 개선 시위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입력 : 2019.01.16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본관 앞에서 16일 정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센터 계약직 강사들과 전국대학노조원들이 계약직 강사들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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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외국인 유학생이 2017년 기준 12만명을 넘어섰다.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대학들의 움직임도 발빠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언어교육원 강사들의 처우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생계를 꾸려가기 힘든 저임금,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고용 불안이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이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소속 계약직 강사들이 16일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선 이유다.

서울대 언어교육원 강사들은 이날 낮 12시 서울대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년 이상 계약직 강사를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어교육원에서 23년간 일했다는 정인아 강사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들의 처우는 2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어교육원 계약직 강사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일주일에 12시간 강의하는 강사의 한 달 평균 급여는 법정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160만원 정도다. 호봉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1년 차든 10년 차든 임금이 같다. 수업 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강의 준비나 과제 채점 등에 쓰는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계약직 강사들은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2년전 독감을 앓았다는 강사 ㄱ씨는 강의를 하지 못하는 일주일간 ‘대강(대리강의)’을 맡아 줄 다른 강사를 구해야 했다. 이에 대한 강의료는 본인 월급의 일부를 해당 강사에게 주는 방식으로 메꿨다. 병가 개념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이나 경조사 유급휴가도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고용 불안이다. 6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고 계약을 하더라도 일정한 수업 시수를 보장받지 못한다. 수업 시수가 줄어드는 만큼 월급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부업을 하기에도 쉽지 않은 구조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강사 중에는 면접이나 오리엔테이션 때 ‘타교 출강 금지’라는 말을 듣고 다른 직장을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현재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계약직 강사 39명 전원이 2년 이상 근무자다. 10년 이상 근무자도 6명, 5년 이상 10년 미만 근무자도 15명에 달한다.


계약직 강사들은 “대학 부설 언어연구원 강사는 강사법(고등교육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이므로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대학 부설 어학당 강사의 경우에는 정규 교육과정 외의 과목을 강의하므로 고등교육법시행령 제7조의 시간강사로 보기 어렵다”며 이들을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로 해석했다. 서울대 대학노조는 교육부, 법무부, 법제처 등에 질의했을 때도 같은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대 전경. 플리커

반면 학교측 입장은 조금 다르다. 서울대 인사교육과 관계자는 “언어교육원 강사들 역시 강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강의 평가에 따라 근태가 관리된다”며 “이들도 시간강사에 준하는 지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강사는 강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간강사’도 ‘노동자’도 아닌 언어교육원 강사들의 모호한 지위는 이들을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내몬다. 언어교육원 강사들이 받는 시간당 임금은 41000원으로, 학부 시간 강사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8월부터 새로운 강사법이 발효되지만, 이 법에 명시된 신분 보장이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학교 측에 유리할 땐 ‘강사’로, 불리할 땐 ‘노동자’로 호명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서울대 측은 “현재 차기 총장 임명이 지연되고 있어 아직 이들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지 못했을 뿐,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는 목적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정규직 전환은 각 단과대와 기관의 재정·인력 상황에 맞게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를 감독하거나 조정해 줄 총장이 공석이라 본부 차원의 논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는 지난 9월 출범 후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절차가 지연되는 사이에도 강사들의 처우는 계속 후퇴하고 있다. 한 강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6시간이었던 수업 시수가 올해 들어 12시간 정도로 줄었고 임금도 덩달아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주 8시간을 수업하는 저연차 강사는 한달에 약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 학교가 계약직 강사들을 근로기준법상 전환 대상(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서 제외하기 위해 수업시수 삭감이라는 ‘꼼수’를 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대 관계자는 “수업 시수 감소는 강의 수요 자체가 줄었기 때문으로 정규직 전환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강사들은 “앞으로 학생 수가 늘어나도 최대 수업 시수를 15시간 미만으로 제한하겠다는 말을 언어교육원 측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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