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3

박유하가 말하는 박유하 [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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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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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가 말하는 박유하 <1>
책을 무료공개 하기 위한 홈피공개 후 한동안 재판이나 책 관련 일은 꼭 써야 할 때 빼고는 쓰지 않았다. 대신 내가 몸을 두고 있는 "지금 이곳"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4월 18일에 다시 형사재판이 있다. 국민재판 여부가 아마 그날 결정될 것 같다. 국민재판이 되든 아니든, 그 무렵 부터 다시 새로운 홈페이지를 공개 할 생각으로 준비 중이다. 
그런데 홈페이지제작을 담당한 분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이하는 그 요청에 부응해 메모형식으로 쓴 글. 

1. 한일문제 관심 배경

서울출생. 1남 3녀중 막내.

심신이 가장 편안했던 건 초등학교 시절. 
나이가 많이 차이나는 언니들 영향을 많이 받았다.  
  • 큰언니에겐 공부를 좋아하는 성향에서, 
  • 작은언니에겐  프랑스에 대한 관심에서.  
  • 엄마에게선 자립심. 

문학소녀이자 공부 잘하는 반항아였던 중학교 시절.
비발디의 사계중 겨울을 듣다가 지각하거나,  <금지된 장난>을 보러 프랑스문화원에 가기 위해 수업을 빠지기도 했던 고교시절. 
열 세살 위인 큰언니의 배우자가 외교관이었고 첫 부임지가 일본이었던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와 가까워진 계기.
고교졸업직후 도일. 1년동안 일본어학교에서 입시준비. 입시를 위한 유학생시험에서 일본어 1등.  1등이라는 성적은 이 때가 마지막. 내 인생에서 일본어를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였다. 
그리고 남들이 흔히 가던 곳을 피해 게이오대학에 입학.

학부시절엔 소설과 프랑스어와 서양영화와 클래식을 끼고 지냈고,  이 기간동안 만났던 선량한 `보통사람`들이 일본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졸업후에는  학부에 출강 왔던 동경대 교수밑에서 연구하고자 동경대 연구생이 되었으나 결혼하게 되어 귀국. 
3년후, 아이/남편과 함께 두번째 유학. 근현대문학 교수진이 충실했던 와세다로 대학원진학. 이후, 공부와 가사및 육아, 아르바이트(한국어 교사,NHK국제국에서의 한국어 아나운서, 사이말통역회사의 파견통역등이 장학금 이외의 주수입원)로 수년간을 보냈다. 

그러나 무리한 탓에 유학말기에는 건강악화. 귀국이후까지 통산 15년 정도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산 기간이었다. 그 결과로 2000년에 큰 수술. 그 때  병원에서 탈고한 책이 첫 단행본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였다

이 책에 담은 것은 귀국(1993)이후 몇년동안 본 한국에 대한 생각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에서 부지런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 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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