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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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저작집 3권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를 읽었다.
한길사판으로 갖고 있었고 읽었는데 뭔가 다른 게 있나 싶어 구매했지만 차이는 없었고 김윤희의 해제정도가 있다.
다만 김윤희의 해제는 좀 아쉽다. 학설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윤희는 주변의 몇몇 사회경제사가들한테 문의한 결과 강만길의 상업사 연구가 실증적으로 반박된 적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자본주의 맹아론 논쟁이 주로 토지소유론 - 농업경영을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상업에서의 자본주의적 맹아의 발전을 다룬 강만길의 연구업적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기에 실증적으로도 반박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다소 동의하기 어렵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조선후기 경제사 연구사의 전개에서 강만길의 상업사 연구의 핵심논지는 독점상인이자 특권상인인 시전상인, 도고 vs 자유경쟁을 지향하는 난전, 사상 간의 대립이다. 강만길은 독점중심, 국가권력과의 결탁 속에서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세력이 점차로 난전 등의 도전 속에서 무너져갔다고 파악한다.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에서도 바로 이 사회경제적 변화를 전제로 조선왕조를 새롭게 개혁하고자 하는 실학자들의 상업론을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한 근대국가 지향으로 독해한다. 그 나름대로의 '진정한' 근대상을 제시한 연구라 의미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의 조선경제사 연구의 전개 속에서 상업부분은 이러한 강만길의 "진정한" 근대사회 건설론으로부터 도출된 독점 대 자유경쟁 간의 대립이라는 도식을 이미 훌쩍 넘어버렸다. 김동철의 <조선 후기 공인 연구>(1993)는 이런 도식이 포섭할 수 없는 다양한 사실관계를 보여준 좋은 연구이다. 강만길의 연구가 지니는 가장 큰 한계는 조선왕조의 경제구조에서 상업이 지니는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인데 이헌창, 이영훈 등의 폴라니를 원용한 경제시스템 연구는 조선후기 상공업의 발전이 사실상 국가적 재분배라는 틀 내에서 진행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병태의 선구적 연구에서 조선후기의 변화가 아무리 크더라도 국가적 토지소유라는 틀을 넘지 못했다고 지적된 부분이 상업분야에도 적용된다. 이제는 상공업의 발전을 국가재정운용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강만길이 끄집어낸 다양한 변화상들은 강만길의 생각과 달리 국가적 통제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맹아가 아니라 기존의 자연경제적 특질이 화폐경제의 발전에 대응해 변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여전히 도덕경제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도학론을 이념으로 하는 국가적 재분배 속에서 나타난 변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큰틀에서의 국가적 재분배는 해체되지 못했고 맹아라 보기도 어려워진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당연한 일이다. 조선보다 상공업 발전 수준이 월등했던 중국조차도 국가적 통제라는 틀을 깰 수가 없었다. 상공업자들의 궁극적인 지향은 유교적 지식인이자 관료였고 상공업은 여전히 국가의 통제 속에 놓여 있었다. 조영준의 왕실재정 연구사는 재정사 연구라는 흐름 속에서 나온 탁월한 상업사 연구로 왕실이 어떻게 상공업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가주도의 경제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에 조영헌 등이 제시한 "대운하 시대"라는 담론의 한계도 나는 이 지점이라 본다. 내륙지향적 상업정책을 상징하는 대운하를 중심으로 중국경제사를 재구성하는 조영헌의 시도는 많은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높게 평가하지만 조영헌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중국 상공업의 발전은 국가안보 논리를 억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18세기까지 이어진 청나라 만주족의 정복전쟁이 대운하 시대를 이끌었지만 그 발전 수준은 양적 발전이었지, 질적 발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홍성화의 연구를 참고하자면 적어도 질적 발전은 없었다. 그저 장강 하류에서 상류로의 발전 속에서, 해안에서 내륙으로의 이동과정은 해안에서의 개발을 반복하는 것이었을뿐 질적 발전이 아니었다. 홍성화 자체는 상인의 생산지배가 없었다고 해서 반드시 후진적인 게 아니라 강변하지만 유의미한 반론은 아니라 본다.
아무튼 이런 학설사의 전개과정을 보면 강만길을 놓고 실증적 비판을 받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은 다소 동의하기 어렵다. 국가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유시장경제를 예비할 시장적 주체가 나타났다는 강만길의 논지 자체는 논파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적 통제 속에서 상품화폐경제로의 이행이 대단히 느렸고 유교적 경세학이 그러한 이행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했다는 안병태의 선구적 연구는 여전히 의미 있다고 본다.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마르크스 역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론적 오류에 불과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늘날 강만길의 이 저작이 지니는 의미는 사상사적인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
4 comments
Inkwan Chung
2000년대 초반에 대학에 다녔던 사람들에게 강만길은 써클 커리의 주교재였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정통 역사학자 느낌이 덜 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요즘 강만길의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를 읽고 있는데 보다 최근에 발굴된 데이터들을 갖고 한번 경험적으로 재접근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구요.
· Reply · 14 h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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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 자본주의의 계보학,
해체적 재구성을 위한 토대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는 조선시대 상업자본의 축적과 그것의 산업자본으로의 전환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실증연구한 저작이다.
저자 강만길이 1961년부터 1977년까지 학술지에 게재한 9편의 논문과 이 책에 수록한 후 논문으로 게재한 한 편의 논문(「정약용의 상공업정책론」)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는 공장제의 일반적 변화상,
2부는 수공업장 사례연구,
3부는 상공업에 대한 개혁론, 그리고
4부는 임금노동자층의 발달로 편제되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조선시대 관영수공업장에서 독립한 생산자가 형성되고 있었고,
입역(立役) 노동력이 거래되는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또
그러한 노동력의 거래를 정부가 묵인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강만길은 이들 현상을 모두 산업자본의 형성과정에 구속시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수공업장의 변화, 고립제의 발달이 상품화폐경제의 확대에 의해 추동되고 또 그것을 추동하고 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펼쳐놓고 있다.
즉 강만길은 이 책을 통해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을 실증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에서 자본주의를 명명했던 행위는 당시의 현실을 설명하거나 비판하여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한 분석도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 역사학에서 자본주의를 명명했던 행위는 당시의 현실을 설명하거나 비판하여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한 분석도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가 자본주의 맹아론이었고,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종속성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가 내재적 발전론이었다.
비맑스적 자본주의 비판 연구들이 맑스적 자본주의 개념의 재해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산업사회가 장기지속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하나의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상기해본다면, 저자의 이 연구는 자본주의에 대한 재개념화를 시도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기원을 분석하기 위해 후학이 다시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하는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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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내면서
I
왕조전기의 官匠制와 私匠
01 머리말
02 工匠의 신분과 受職
03 工匠의 종류와 수
04 工匠의 생활과 납세
05 工匠과 외국의 관계
06 官匠制의 붕괴와 私匠
07 맺음말
왕조후기, 分院의 운영실태
01 머리말
02 분원의 이동과 시설
03 白土의 산지와 조달
04 燔木의 산지와 조달
05 沙器匠의 생활과 취업
06 분원운영비와 火田稅 및 家戶稅
07 사기의 생산과 공급
08 맺음말
II
민수용 製瓦場, 別瓦窯
01 머리말
02 別瓦窯의 설치와 운영
03 私營製瓦場의 성장
04 맺음말
鳴旨島 官營製鹽場
01 머리말
02 公鹽制度의 실시 경위와 그 관리
03 公鹽制度 운영의 실제
04 私商 활동과 公鹽場의 폐쇄
05 맺음말
조선업과 조선술의 발전
01 머리말
02 官府의 造船 관리
03 민간조선업의 발전
04 船材의 산지와 그 관리
05 造船術 및 船型의 변화・발전
06 맺음말
III
정약용의 상공업정책론
01 머리말
02 상업정책론
03 광공업정책론
04 맺음말
개화기의 상공업문제
01 머리말
02 都賈商業體制의 해체 문제
03 특권회사 해체의 문제
04 공업 진흥 및 산업공장 설립 문제
05 외국 상인 및 그 자본침투에 대한 문제
06 근대적 상공업자 양성의 문제
07 맺음말
IV
왕조전기 白丁의 성격
01 머리말
02 유목민적인 생활상
03 농경사회에의 동화
04 맺음말
官業에서의 임금노동제 발달(1)
01 머리말
02 差備軍의 雇立化
03 造墓軍의 雇立化
04 맺음말
官業에서의 임금노동제 발달(2)
01 머리말
02 조선후기 皂隷・羅將의 賦役動員
03 조선후기의 皂隷・羅將 고립
04 맺음말
해제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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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저자 소개
강만길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에 일제강점 말기와 해방정국을 경험하며 역사공부에 뜻을 두게 되어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에 다니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1967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972년 ‘유신’ 후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각종 논설문을 쓰면서 서서히 현실비판적 지식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광주항쟁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과 김대중으로부터의 학생선동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구금되었다가 고려대에서 해직되었다. 1984년 4년 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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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조건이 되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제자들의 준비와 출판사의 호의로 저작집이란 것을 간행하게 되었다. 잘했건 못했건 평생을 바친 학문생활의 결과를 한데 모아두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한 인간의 평생 삶의 방향이 언제 정해지는가는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나의 경우는 아마도 세는 나이로 다섯 살 때 천자문을 제법 의욕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어쩌면 학문의 길이 정해져버린 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요즈음 이름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은 민족해방과 6년제 중학교 5학년 때 겪은 6・25전쟁이 역사 공부, 그것도 우리 근현대사 공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 3학년 때 과제물로 제출한 글이 활자화됨으로써 학문생활에 대한 의욕이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이후 학사・석사・박사 논문은 모두 조선왕조시대의 상공업사 연구였으며, 특히 박사논문은 조선왕조 후기 자본주의 맹아론 연구였다. 문호개방 이전 조선사회가 여전히 고대사회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항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역사학계 일부로부터 박정희정권하의 자본주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라는 모함을 받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맹아론 연구 이후에는 학문적 관심이 분단문제로 옮겨지게 되었다. 대학 강의 과목이 주로 중세후기사와 근현대사였기 때문에 학문적 관심이 근현대사에 집중되었고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연구하고 강의하게 된 것이다.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통해 ‘분단시대’라는 용어가 정착되어가기도 했지만, ‘분단시대’의 극복을 위해 통일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연구논문보다 논설문을 많이 쓰게 되었다. 그래서 저작집도 논문집보다 시대사류와 논설문집이 더 많게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제시대의 민족해방운동사가 남녘은 우익 중심 운동사로, 북녘은 좌익 중심 운동사로 된 것을 극복하고 늦게나마 좌우합작 민족해방운동사였음을 밝힌 연구서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윗거리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민족해방운동에는 좌익전선도 있고 우익전선도 있었지만, 해방과 함께 분단시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의 좌우익전선은 해방이 전망되면 될수록 합작하게 된 것이다.
『고쳐 쓴 한국현대사』는 ‘한국’의 현대사니까 비록 부족하지만 남녘의 현대사만을 다루었다 해도 『20세기 우리 역사』에서도 남녘 역사만을 쓰게 되었는데, 해제 필자가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음을 봤다. 아무 거리낌 없이 공정하게 남북의 역사를 모두 포함한 ‘20세기 우리 역사’를 쓸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길 바란다.
2018년 11월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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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저작집 세트 (전18권) 강만길 지음 / 2018-12-05 / 5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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