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

[이사람-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농부철학자가 만드는 '민통선 평화마을' 기대하세요'



[이사람-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농부철학자가 만드는 '민통선 평화마을' 기대하세요'
[이사람-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농부철학자가 만드는 '민통선 평화마을' 기대하세요"

평화 정착되기까지 민간 역할도 중요
버스 세 번 갈아타고 변산-파주 오가며
청년생산공동체 조성 프로젝트 공들여
출판사 대표·교수 등 경력 뒤로하고
'머리 대신 몸 굴리며 사는 세상' 위해
1995년 변산 내려와 공동체학교 세워
명문 대학 보내는 게 교육의 목표 아냐
자연을 닮은 아이들 키우면 그걸로 족해

성행경 기자
2018-06-08 14:45:24






‘농부 철학자’ 윤구병(75·사진) 변산공동체학교 대표가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직을 내던지고 전북 부안 변산으로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고 공동체학교를 설립한 지 벌써 23년이 흘렀다. 지난 1995년 선생은 거대 도시화한 자본주의적 삶의 원리에 맞서 협동적인 생산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공동체를 튼튼히 지켜나갈 새로운 공동체 정신을 지닌 사람을 길러 내기 위해 변산공동체학교를 설립해 지금껏 운영 중이다.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육과 환경·민족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하고 현실 참여를 해온 선생이 근래 들어 경기도 파주 민통선 내에 평화마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선생이 추진 중인 평화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큰 궁금증이 일었다.

“평화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자각된 시민들의 자발적 의지가 있어야 평화가 깃들고 또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찾아온 한반도 해빙 무드를 잘 살리되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화 정착을 위해 차분하게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해야죠.”

지난달 말 변산공동체학교에서 만난 선생은 한층 무르익고 있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도 시종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분단과 전쟁으로 갈라지고 서로 적대하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는 열강들이 남북한이 오손도손 함께 잘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건 선생의 오래된 생각이다. 남북미 정상 간에 연쇄적으로 이뤄지는 회담이 성과를 내더라도 평화가 정착되기까지는 무수한 난제가 남아 있고 정부 차원의 노력 못지않게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선생은 강조했다.

선생이 추진 중인 평화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지인들과 함께 마련한 땅과 빌린 국유지를 합친 9,900㎡(3,000평) 규모의 부지에 청년들을 위한 생산·문화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마을 이름은 ‘쓰레기가 자원이 되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쓰자리(가칭)’로 붙였다. 쓰자리는 버려지는 쓰레기로 집을 짓고 음식물 찌꺼기로 흙과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자원자립마을’이자 남북한 간의 공존을 꿈꾸는 ‘평화공동체’를 지향한다. 선생은 2주에 한번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부안과 파주를 오간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77만원 세대’가 생겨났습니다. 청년실업난을 이대로 방치하면 젊은이들이 모두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될 겁니다. 농촌만이 이들을 생산인력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모여 생태 환경을 지키면서 유기농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선생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법인을 만들고 평화마을 조성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1인 1구좌 1만원 이상을 5년 동안 내면 마을 주민이 될 권리와 토지 경작권을 부여한다. 땅값이 평당 10만원이면 1구좌당 19.8㎡(6평)의 경작권이 주어진다. 기자가 관심을 보이자 선생은 “다단계일 수 있으니 소개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신중하게 판단하라”며 농을 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겠다고 하고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쳤지만 모두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어요. 비무장지대 민통선 안에는 정부나 산하기관이 수용해놓고 활용할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된 땅이 수백만평이나 됩니다. 이 민통선을 열어 곳곳에 평화마을을 만든다면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해서 좋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으로 식량자급률도 높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예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남북미 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으니 잘 진척시켜 봐야지요.”

평화마을 만들기는 선생이 주창하는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 실현을 위한 밑바탕이다. 말로만 평화통일을 떠들 것이 아니라 생산공동체를 일궈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이를 통해 외세의 간섭 없이 영구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영세중립 통일연방을 한반도에 세우자는 것이다. 기존의 남북연합이나 고려연방제와 같은 통일국가의 체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코스타리카처럼 영세중립국가가 되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통일연방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선생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영세중립 발표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 호락호락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구한말과 일제식민지 시대,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무수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주변 나라들의 간섭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자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영세중립국가가 왜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변산공동체학교를 설립한 1990년대 중반은 국내에서 대안학교가 하나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당시 설립된 대안학교 중에서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초심을 잃고 ‘무늬만 대안학교’로 변질된 곳도 적지 않다. 대안학교 출신이 명문대에 진학했다거나 해외에서도 유학을 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줄을 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변산공동체학교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 동안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평가를 전하자 선생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문을 열었다.

“변산공동체학교 졸업생 중에서도 명문대나 예술학교에 진학하거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알리지 않을 뿐이지요. 졸업생 대부분은 방학 때면 내려와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마을 주민들의 농사일을 거듭니다. 서로 배려하고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대로 살려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은 목표가 아니에요. 자연 속에서 창의력과 자발성을 기른 아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1년 만에도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자연을 닮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사회를 좀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요.”

변산공동체에는 현재 40여명이 거주한다. 학생이 20명가량 된다. 유·초등학생은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고 중·고교생은 혼자 거주해도 된다. 아이들은 학부모가 직접 가르친다. 학과 공부와 함께 그릇 빚기, 목공, 천연염색 등을 배우고 산과 들로 다니며 자연 속에서 체험학습을 한다.

“사람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서로 도우며 사는 방법도 교육을 통해 배우는데 제도 교육에서는 자립하고 협동하는 능력을 제대로 길러주지 못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몸 놀리고 손발 쓰는 교육이 우선입니다. 손발을 놀리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변산공동체의 주민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다. 쌀·보리·밀·콩 등 주곡 농사 중심이다. 환금작물에 비해 돈이 안 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공장형 축사에서 나오는 퇴비를 쓰지 않고 쌀겨와 깻묵을 발효시켜 사용한다. 또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다. 비닐을 사용하면 잡초가 잘 나지 않아 농사일이 쉽지만 자연에 이치에 맞지 않고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은 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하지 않고 ‘구름산마을이야기’라는 소식지를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한다. 수익이 발생하면 나누지 않고 공동체에 귀속시킨다. 병원비나 옷값 등 필요한 모든 것은 함께 해결한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에는 주방과 거실이 없다. 대신 마을 식당에 함께 모여 식사하고 휴식을 취한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마을로 들어와 살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물론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간 이들도 적지 않다. 선생은 회한이 서린 표정으로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심정을 밝혔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좋다고 서로 껴안으면 가시에 찔려서 아픕니다. 공동체 주민 중에는 도시에서 상처받고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아온 환경도 서로 다르지요. 이념과 종교가 같아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생활공동체이다 보니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들지만 1년 이상 거주한 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독립해서 인근에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돕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변산공동체의 실패가 아니라 확장입니다. 변산에서 시작한 실험이 적어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지요. 또 다른 증거를 평화마을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부안=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He is

△1943년 전남 함평 △1967년 서울대 철학과 △1972년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1976년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 △1981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 △1989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공동대표 △1988년 보리기획(현 보리출판사) 설립 △1995년 변산공동체학교 설립 △저서 ‘잡초는 없다’ ‘실험 학교 이야기’ ‘모래알의 사랑’ ‘철학을 다시 쓴다’ ‘꽃들은 검은 꿈을 꾼다’ ‘내 생애 첫 우리말’ ‘있음과 없음’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특별기고-우리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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