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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 | 레페스 심포지엄 1
레페스포럼 (기획)모시는사람들2017-12-31
정가
15,000원
판매가
14,250원 (5%, 750원 할인)
기본정보
264쪽
152*223mm (A5신)
370g
ISBN : 979118876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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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레페스 심포지엄 1권. 불교와 기독교를 각각 전공하는 종교학자 및 각 종교전통의 성직자들이 불교와 기독교 교리의 같음과 다름, 두 종교의 상호 소통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주제를 두고 1박 2일에 걸쳐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고, 이해와 화해와 용서와 공감에 도달한 과정을 담아냈다. 지속적인 대화와 출판 작업을 통해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 교리와 진리, 구원과 깨달음을 왕래하고 넘어서는 경지와 세계를 추구하는 '레페스 심포지엄'의 첫 번째 책이다.
목차
제1부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Ⅰ.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_ 원영상
Ⅱ. 불교 공(空)사상과 열린 포괄주의에서 본 기독교_ 김용표
Ⅲ. 불교와의 대화를 통해 신학을 배우면서_ 김승철
Ⅳ.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과 차이, 융합_ 이도흠
Ⅴ.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위한 몇 가지 주제들ㅡ이관표
종합토론
제2부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Ⅵ. 불교와 기독교, 같은 실재를 달리 표현한다_ 이찬수
Ⅶ.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_ 명법
종합토론
제3부 불교와 기독교의 실천
Ⅷ. 그리스도교 세계관과 불교_ 김근수
Ⅸ. 불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종교적 삶_ 류제동
Ⅹ. 붓다의 길과 예수의 길_ 정경일
XI. 불교와 기독교, 아픔을 공유하다_ 손원영
종합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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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23 [불교, 무한이 열린 포괄주의] 진리는 특정인이나 특정 종교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붓다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처음으로 깨달은 분(如實知見者)으로, 진리의 발견자이지 창조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진리는 누구에게나 본래 열려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제법실상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으며, 여러 종교나 철학의 가르침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본다. 불교의 이웃 종교관은 한마디로 ‘무한히 열린 포괄주의(open endless inclusivism)’라고 할 수 있다. 접기
P. 51 [연기론과 실체론] 처음에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불자들이나 기독교도나 구분 없이 신과 세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불자들은 세계를 의식을 넘어 그 자체로 직시하는 것을 더 우선하면서 연기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았고, 기독교도들은 이 세계를 로고스를 통하여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을 우선하면서 실체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았다. 그 후 불교에도 실체론적 해석이 있는데 연기론이 압도하고, 기독교에도 연기론적 해석이 있는데 실체론적 해석이 헤게모니를 가졌다. 접기
P. 77~78 [비움과 채움] 우리는 너무나도 가지려 하고, 너무나도 존재하려 하며, 너무나도 힘을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유한한 세상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상호 간에 연결된 채 서로를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존재만 혹은 무만이 강요되는 그런 것이 삶이 아니라 존재와 무·삶과 죽음·충만함과 비움이 역설적으로 함께 공존하는 그런 곳이 바로 이 유한한 삶이다. (중략)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기 원한다면, 인간이 모두 존재하기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깨어 부수면서 비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비움과 나약함이란 비로소 모든 것들이 그것의 희생을 통해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접기
P. 80~81 [눈부처와 진속불이]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상대방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면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입니다. 형상이 부처가 좌선하고 있는 것과 비슷해서 눈부처라고 붙였는데, 저는 형상만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도 담겨 있다고 봅니다. (중략) 원효가 말하는 진속불이(眞俗不二)의 경지이지요. 그걸 바라보는 순간 타인은 나를 담고 있는 자로 변합니다. 나와 타자, 주와 객이 뒤섞이고 타자 속의 나, 내 안의 타자가 서로 오고 가면서 하나가 되는 경지입니다.
[90 : 자기와 에고] 공-가-중(空-假-中)이라고 하듯이, 공도 역시 임시적인 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이 있느냐 없느냐 자체에 관한 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성서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말하는데, 그때 그 말을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 일본의 신학자 야기 세이치(八木誠一)는 그것을 ‘참자기’라고 표현하는데, ‘참자기’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말하는 나,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실체론적인 자아죠. 그 에고(ego)를 통해서 참자기가 말을 하는 거죠. 그런데 자기와 에고를 사실은 구별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라는 에고(ego)가 없다면 그 에고를 통해서 작용하는 셀프(self)는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접기
P. 94~95 [기독교의 연기론] 기독교적 세계관도 실은 연기론과 통할 만한 일종의 관계론을 심층적으로 논의해 온 역사가 있거든요. 신 없는 인간, 인간 없는 신은 불가능하다는 논의랄까, 사람과 사람·사람과 자연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한 논의는 지속되어 왔어요. 다만 그 관계가 서로 해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관계여야 한다는, 일종의 가치가 개입된 관계를 이야기하는 경향이 크지요. 그 가치와 당위의 정점이나 근저에서 신을 보는 것이기도 하고요. 궁극적으로는 신과 연결 지으려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외적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그 신이 또 무엇이냐 따지고 들어가면 불교와 기독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도 있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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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레페스포럼 (기획)
‘레페스포럼’은 종교가 폭력축소와 평화구축에 공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다양한 연구자들의 토론 모임이다. ‘레페스’는 REligion and PEace Studies(종교평화연구)의 약어이며, 2015년 창립 이래 종교-폭력-평화-국가의 관계에 대해 정기적으로 토론한 뒤, 그 결과를 각종 대중 매체와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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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출판사 제공 책소개
1. 지금 세상에 종교(인)가 필요해? - 초월적인 시각의 제공
최근 세계적인 규모의 한 교회가 오랜 진통 끝에 “세습”을 공인한 것을 두고 사회적으로 지탄과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종교계는 물론이고, 공식적으로는 ‘세습’을 승인한 그 교회 내부에서도 비판과 원상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세상 사람들은 묻는다. 지금 이 시대에도 종교가 필요해? 오늘날 종교인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시나브로 줄어가는 종교 인구는 그 답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행태(교회 세습)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그것은 종교(인)이기를 포기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첫 번째는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나아가 ‘소금의 은혜’(부패의 방지)를 입기를 거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 ‘빛’이 되기를 포기한 것은 물론 ‘빛(지혜)’으로 스스로를 밝게 하는 것조차 거절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신앙/종교수행/종교지혜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라면, ‘초월적인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시각이란 ‘지금 내가 하는 생각 자체를 들여다보고,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그 진위와 가부를 판단하는 시각’ 다시 말해 ‘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을 말한다. ‘메타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정농단의 주범/종범으로 전락한 최순실, 박근혜 등은 자신(들)의 행위, 그 행위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반성적으로 재인식하는 시각, 즉 ‘초월적 시각’이 부족하거나 전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신앙/종교수행/종교지혜는 여전히/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2. 초월적인 시각을 얻기 위한 종교간 대화
“하나의 종교만을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르는 것이다.” (막스 뮐러)
이 말은 종교간 대화 내지 종교 다원주의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금언이다. 불교계 설화에서 유래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도가(장자)의 설화에서 유래한 ‘우물 안 개구리’, 생활 속의 지혜를 담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 같은 것이 지시하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사람의 눈이 두 개가 달린 까닭에 사물과의 거리감이나 사물의 실상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굳건한 ‘믿음’에 크게 의존하는 종교 이해/신앙에 있어서, 타자(이웃종교)를 아는 것은 자기 종교/신앙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하나의 종교전통에 충실한 ‘전형적인 신앙인’은 물론이고, ‘칸막이’를 높여온 근대 학문의 흐름에서 종교(학) 이해 역시 이러한 외눈박이 나아가 장님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심화되어 왔다.
종교의 세계에서 이러한 ‘타자 몰이해’ 또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문화’는 크게는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국가 간 전쟁과 종교 분쟁을 낳고, 작게는 가정 내에서, 혹은 개인간의 크고 작은 종교 간 갈등을 낳게 된다.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공존의 다종교 문화'를 지켜오는 모범적인 국가로 자처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불화’와 ‘투쟁’의 민낯은 쉽사리 드러난다. ‘정교 분리’를 표방하면서도 정교간의 밀착이 해방 이후 단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심화일로를 걸어온 것도 그러하고, ‘훼불사건’이나 ‘땅 밟기’ 같은 치졸한, 그러면서도 때로는 위협적인 “종교 분쟁”이 빈발하는 곳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사건은 ‘종교와 종교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이단 논쟁’과 같은 ‘소수자 배제와 다양성의 차단’의 행태로 자행되곤 한다. 최근의 사례만 보아도 2016년 1월 17일의 개신교인에 의한 개운사(김천시 소재) 훼불 사건에 대해, 이를 원상회복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던 서울기독대 손원영 교수에 대한 학교의 징계, 2006년을 전후로 하여 이찬수 교수(당시 강남대)가 불상 앞에서 절을 했다는 이유로 역시 학교로부터 재임용을 거부당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종교간/내 갈등과 무지를 근본적으로 해소해 나가기 위해서는 종교 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두 종교 혹은 여타 종교를 포함한 종교와 종교 사이의 다름과 같음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문화를 뿌리 내리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여, 불교계 종교학자와 기독교계 종교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상대방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면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는 한 참가자의 말이 이러한 대화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3. 불교와 기독교 간의 대화
한편, 오늘 우리 사회의 종교계는 한편으로 종교인에 대한 신뢰의 감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인구의 감소라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하고, 더 총체적으로는 인공지능의 등장이나 외계 생명체의 탐색, 과학기술의 극단적 발달 등을 통해 종교의 입지가 속절없이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때야 말로, 종교/교단의 발전을 위한 종교/신앙 아니라, 지혜와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깨달음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종교, 빛과 소금으로서 이 세상을 깨끗하고, 맑고,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종교로서의 본면목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 책(<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답하기 위하여 1박 2일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토론의 성과를 정리하고, 보완하여 간행한 것이다. 기본 출발점이“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라는 점만 공유한 가운데, 자유로운 접근과 형식의 발제가 진행되고, 이어서 이를 두고 상호 이해와 공감을 심화시키는 토론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종교’의 보편성이나 ‘같음’만을 추구하는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은 그것대로 가려내되, 그것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서 존중하고 오히려 거기에서 배워 나가는 공부의 장이기도 하였다.
딱딱하고 형식에 구애되는 논문이 아니라, 화두를 던지는 발제에 이어, 전문가로서의 고민과 현장에서의 실천적 경험들을 아우른 ‘종교 간 대화’는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지금 여기에서의 한국인(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음으로 양으로 끼치는 두 종교 간의 깊은 대화는 오늘의 한국 사회의 고민과 한국인 자신의 과제들이 공동화되고 해결되는 길을 찾아가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레페스 포럼은 “불교와 기독교 간 대화의 출발점”으로 한국 사회에서 두 종교가 처하여 오늘까지 흘러온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제1부를 이룬다. 다음으로 종교간 대화의 이해의 심화는 각 종교의 “교의를 이해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기를 추구한다. 이러한 상호 교섭과 상호 이해를 통해, 각각의 종교에 대한 이해와 신앙은 깊어지고, 넓어져서 종교/교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진리와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는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4. 깨달음을 말하는 기독교, 구원을 말하는 불교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고 기도하는 ‘타력종교’이고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력종교’라고 말해지지만, 기독교에도 자력적인 요소가 있고, 불교에도 타력적인 요소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개재해 있다.
현실사회에서 신앙하는 사람이나 목회자들, 나아가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종교를 예단함으로써 종교(인)는 타락하고, 구원이든 깨달음이든 종교(인)가 추구하는 목표의 달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과 신의 자리와 정체성을 엄격히 구분하는 될 수 없는 반면, 불교에서는 인간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초월자(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불교와 기독교이 결정적인 차이로 말하지만, 이 또한 상대적인 구분일 따름이다. 기독교에서도 ‘나(인간)’ 안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하고, 불교에서도 구원과 해탕을 ‘기원’하는 염불신앙(정토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부처의 눈에는 부처, 돼지의 눈에는 돼지”를 말한 무학대사의 말처럼, 기독교와 불교는 타자 속에서 자아의 진면목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야 “참”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5. 종교를 알기, 종교를 믿기, 종교를 즐기기
시를 분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이, 종교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드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종교 안에서 성령 충만을 기도하고 기원하며 종교를 믿는 사람의 삶에는 그러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맹목적 신앙”의 위험성을 넘어서서 그 종교를 “즐기는 데까지” 이른 사람이라면, 종교의 경계는 그 또한 무의미한 ‘인위’에 불과한 것이 된다.
종교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서라는 제목이 지시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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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
김승철 난잔대학 인문학부 교수
김용표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명예교수
류제동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초빙교수
명 법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손원영 서울기독교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해직교수
원영상 원광대학교 정역원 연구교수
이관표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이도흠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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