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1

(14) 손민석 민족주의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좌파” 민족주의가 싫은 것



(14) 손민석


손민석
22 July at 11:20 ·



뉴라이트 쪽의 우익 이론가들이 ‘탈’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주로 말해지지만 사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이 양반들은 민족주의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좌파” 민족주의가 싫은 것일뿐이다. 내셔널리즘 자체를 부정할 생각이 과연 이들에게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안병직은 조갑제와 논쟁할 당시에 조갑제 등의 구舊라이트의 정체성을 ‘반공주의’라 지적하며 “한국 우익의 본류는 반공이념이 아니라 민족주의”라 주장했다. 그는 진보적 민족주의 집단을 “감성적인 민족주의 세력”이라며 이들을 누르기 위해서는 한국 보수가 “자유와 인권의 근대문명의 빛”을 전달해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장래 한국에서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보수는 반공주의를 … 극복“함으로써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영훈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한국경제사 1, 2>에서 민족주의를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 정서“이자 ”건국의 주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에 이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건 아무래도 그것이 민주당 계열의 민족주의이기 때문이지, 그 자신들은 도구적 관점이든 무엇이든 아무튼 민족주의의 효용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보수의 핵심적 정체성이니 그것을 버리기보다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또한 내셔널리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시원적으로 존재했던 무엇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토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배태된 의식이고, 그러한 공간적 감각 없이 정치가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조차도 프롤레타리아트가 먼저 민족을 대표하는 계급이 되어야 한다고 <공산당선언>에서 지적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지배계급이 된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적 규모의 분업을 조직하면서 점차로 국민경제권에 제한되어 있던 영토관념을 세계적 규모로 확장하고 정착시킴으로써 ‘국제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셔널리즘 자체는 공동체의 생활권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등의 나름대로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뉴라이트들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과연 이렇듯 내셔널리즘의 기반을 바꿔 세계주의로 나아갈 생각이 있는가, 정말 탈민족주의적 국제주의를 체현하고 있는가 등에 대해 의문이 드는 발언이 많다. 그래서야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도, 옹호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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