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Hojae Lee - 자본신앙과 제국학문주의에 포섭된 한국 사유체계 1. 우리는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질 수 있다....
Hojae Lee
28 July at 07:33 ·
자본신앙과 제국학문주의에 포섭된 한국 사유체계
1. 우리는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질 수 있다. 다원적 종교주의가 펼쳐지는 지구촌에서 과연 한국, 한국인, 한국 종교문화의 세계사적 사명은 무엇일까? 잘 알다시피 한국의 학문세계는 교수, 학자 등 직업지식인에 의해 형성된다. 하지만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시스템, 연구재단의 연구과제 선정과 연구기간 등은 세계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다학제를 말하지만 다학제적인 논문은 기존 학문권력에 의해 게제하기가 그리 쉽지 않고, 이를 평가기관에서 온당히 인정받을 수 없는가. 일 년에 수 편의 논문을 쓰게 만드는 논문 양산기계로기능하는 직업지식인에게 세계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라는 것은 가혹한 처사이다.
2. 철학자, 신학자, 를 포함한 인문학자가 한국 사회의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짖는 것은 같은 인문학자로서 어불성성이다. 인문학은 한 사회와 시대의 사유체계를 제시하고 형성해 가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다. 즉, 한국 사회의 병폐인 자본권력과 학문권력, 자본신앙과 건물종교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이런 지식생태계가 조성된 것은 지식인이 자기 역할을 방기하였기 때문이다. 해외유학을 다녀온 직업지식인이 늘 수입학문과 안테나학문을 하며 생긴 폐단가운데 하나 아닌가.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사유체계로 하여야 한다는 이 당연한 문제에 대해 교수 등 직업지식인, 신학자, 불교학자 등 직업종교인은 분발하여야 한다. 교육기관에 몸담고 있는 직업정치인도 시각조정을 해야 한다.
3. 단적인 예로 2008년 세계철학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때 한국 철학자로 내세운 이는 유영모와 함석헌이었다. 강단 철학자 가운데 한 명도 없고, 그 많은 철학박사 가운데 한 명도 내 세울만한 이가 없었다, 이것이 당시 한국 철학계의 사정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철학을 정규과정으로 개설하여 수업하는 대학이 몇 군데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철학하면 독일철학이고, 중국철학이지, 한국철학은 중국철학의 아류로 생각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신학은 독일신학이고, 근본신학을 비롯하여 웨슬리신학과 바르트신학, 틸리히신학 등 서구신학이지 한국의 신학이 어디 있는가? 기장의 민중신학을 예를 들면 감신대, 총신대, 장신대 등에서 다른 교단 소속의 신학자도 같이 연구하면 어떤가? 또한 김흡영의 ‘도의 신학’을 동료 신학자가 거론하여 토론하고, 논쟁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면 세계적인 신학으로 우리가 제시할 수 있다. 안타까울 시간 조차 없다.
4. 만약 세계 그리스도교 대회가 개최된다면 한국 그리스도교계에서는 누구를 내세울 수 있인가? 만약 세계 불교대회를 열린다면 누구를 한국의 불교인물로 내 세울 것인가? 세계 유교대회를 주관한다면 누구를 내세울 수 있는가? 우리는 특정 전문영역에서 학문적 권위를 가진 인물아래 우리의 담론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용기있는 연구작업은 지속되어야 한다. 앞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미안한 얘기이지만 ‘없다’. 이렇게 단언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종교와 철학 대회가 열리면 주최측이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게 ‘한국 종교, 한국인이 이해한 한국인의 신학, 철학, 종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 주소를 보라. 한국에서 한국인이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죄다 남의 나라 학문을 수입하고, 번역하고, 좀더 진취적 이라도 하더라고 외국 사유체계를 표준으로 ‘비교’하고 우리에게도 있다는 식의 제국주의 학문에 불과한 작업을 하고 있다.
56. 주체적 신앙과 학문은 ‘나’의 문제의식으로 새로운 주제의 발굴을 통하여 이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나와 한국, 세계’라는 공속관계에서 끊임없이 주체적인 학문의 자세가 없는 상황에서 형성된 담론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종교 환경에서 잉태된 종교담론과 다원적 종교 환경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국의 종교문화, 심지어 제국주의와 냉전의 산물 등이 온전히 축적되어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는 한국 학문계는 세계적인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적지이지 않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서구학자는 늘 선생이고 한국의 학자는 늘 학생의 입장에 불과한 것이 솔직히 우리의 현실아닌가 자성해 보아야 한다. 선생이 과제를 제출하면 정답을 찾기에 바쁜 학생학자의 몰골이 우리 학문계의 모습이 아닌가. 언제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이루어질 것인가?
6. ‘나의 문제의식’이 텍스트가 되어 내가 태어난 학문적 전통(콘텍스트)과 세계 학문의 흐름(콘텍스트2)이 합류하고 교류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문제를 오롯이 안고 있는 한국이 세계적인 사상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호통재라! 수천 년 불교전통에서 원효, 의상 등 수 명을 제외하고 현대에 그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지 못하고 밥그릇 싸움하는 불교사태를 보라. 수천 년 전통의 유교전통에서 퇴계, 율곡, 다산을 빼고 어디에 세계적인 유학자가 있는가? 이백 년이 갓 넘었지만 서구 신학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서구 신학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이런 신학계의 풍토를 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7. 과문인지 모르지만, 조동일의 『한국문화통사』, 김상일의 한철학 연구, , 이기상, 신승환의 “우리 철학하기” 등에서 우리 학문의 희망을 본다. 또한 전호근의 『한국 철학사』 김성환의 『우주의 정오』, 최민자의 학문작업 등이 돋보인다. 특히 최근에 ‘개벽학’이라는 한국학 담론을 선도하는 중견학자 조성환, 한국 역학과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시원을 추적하는 이찬구, 한국의 종교적 사유체계를 사전으로 편찬작업중인 윤승용 등에서 한민족의 희망을 본다. 이외에도 더 많이 있다.
8 오늘 부족한 이 페북글을 읽으시는 페북친구들은 종교와 성별, 나이와 학력을 불문하고 한국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구촌 합류시대에 ‘나를 망각한 세계화, 한국을 잊어버린 사고는 누구를 위한 공부인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주체적 신앙과 생각마저도 ‘나’가 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주구이고 괴뢰이고 종의 삶을 사는 것 아닌가?
* 예를 들면 기독교인이라면 에덴의 창세기만큼 한민족의 단군신화를 묵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평화의 창세기인 한민족의 단군신화와 타락의 창세기인 이스라엘의 타냑을 동일한 '이해지평'에서 읽는 거시적인 안목을 길러야 한다.
9. 나부터 분발하자!
나부터 각성해 본다!
나를 해체하고 새롭게 태어나 역사의 가을에 열매를 맺는
빛나는 혼으로 한민족이 거듭나는 큰 꿈을 페북친구들과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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