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1

북조선=가해자 일본=피해자, 내셔널리즘이나 일본에 대한 과한 반감을 비판

(2) 손민석

손민석
9 hrs ·



‪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체제의 틀로 보면 한국 정부가 잘못한 게 많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일본의 반응을 보아하니 점점 한국 정부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민지배에 대한 옛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식의 개선의 필요성이 냉전으로 억눌려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이 시점에서 일본인들의 내셔널리즘은 그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역사의 전개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정신세계를 지니지 못했다는 게 계속 보여서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 저쪽에 대한 비판이 우선적인 것 같다. 한일 양국이 모두 바뀌어야 하는 점이 있는데.‬.

일본 정부와 그 인민의 내셔널리즘을 보면서 어떤 위화감을 계속 느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잡아내지 못하다가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북조선=피해자가 일본인 납치를 계기로 북조선=가해자 일본=피해자로 바뀌었다는 걸 굉장히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면죄부가 생긴 셈이다. ‪북조선에 대한 비판으로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희석시키고 피해자로서의 일본인과 재일조선인=북조선=가해자=한국=중국이라는 등식의 연쇄가 일어난다. 이래서야.. ‬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인식이나 태도가 한번 바뀔 것도 있어 보인다..


손민석
28 July at 16:09 ·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 내셔널리즘이나 일본에 대한 과한 반감을 비판하는 것도 좋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무슨 지금이 국가주의 파시즘이고, 전체주의이고 어쩌고. 개념의 과잉이다.

전체주의는 개념적으로 계획경제를 추동하는 관료제와 일당독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야 적용이 가능하다. 물론 거기에 더해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인류사의 완성형인 최종적 형태의 사회를 제시하고 그를 통해 개인들간의 대립을 소멸시키고 개인과 전체의 통일을 지향하는 공적 이데올로기의 제시, 그것의 확산과 내면화를 위한 언론매체 장악 및 비밀경찰제 유지 등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 맞는 게 없다. 파시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단지 ‘비이성’에 대한 비판으로만 끝난다면 본인이 합리적이라는 만족감을 누리는데는 충분할지 모르겠으나 사태를 해결하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비판은 내셔널리즘이 배태하게 되는 조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다소 특이한 측면이 있는데, 이정도로 높은 수준의 경제개방성을 지니고도 이렇게나 폐쇄적인 마인드를 갖춘 사회가 드물다는 게 핵심이라 본다.


이 문제를 따지다보면 결국 사회 전반의 이동성이 낮다는 점, 그리고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유럽연합처럼 계속해서 국경을 넘고 다른 사회에서 취직하고 생활하고 하면 보다 국제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외부 인력의 유입도 쉽지 않고, 외부로 송출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해외취업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여행만 많이 다니지, 정말 생활로 얽히고 교류가 일어나고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노동력의 이동성을 어떻게 극대화시켜 국제주의적 마인드를 기본으로 갖추게 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문제 같다.

개념을 과잉 적용해 괜한 반발을 부르기보다는 이 부분을 보다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는 게 국가 경제의 차원에서든 무엇에서든 중요하지 않나 싶다.

여담이지만 재밌는 게 예전에 어느 글에서 내가 지적했는데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는 건 일본인들의 한국 방문이 급감한 다음부터이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의외로 일본인에 대해서는 호감이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인데(올해는 모르겠다)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많이 가는 것과 겹친다. 역시 더 많이 접하고 얽히게 되면 호감도도 함께 증가하지 않나 싶다. 경제적 관계를 통해 서로 더 많이 얽히고 교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