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손민석
손민석
23 July at 17:31 ·
1923년 관동대지진과 그에 따른 조선인 학살 소식이 들려왔을 때 조선총독부는 크게 긴장하고 대비하였다. 예상 외로 식민지 조선은 조용했다. 반면에 1931년 만보산 사건 당시 조선 전국이 요동쳤다. 결과적으로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사건을 접한 총독부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조선 내에서는 한 명의 일본인도 보복살해 당하지 않았던데 반해 만보산 사건에서는 단 한 명의 조선인도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100여 명이 전국적으로 보복 살해 당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는가. 고작 8년만에 조선인들의 내셔널리즘이 강해진 것인가,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내셔널리즘의 발흥인가.
당시 조선총독부의 경무국 보안과장 다나카 다케오는 “조선인을 괴롭혔으니 뭐 중국인이 조금 당해도 이는 자업자득 아닌가”라고 생각해 단속을 늦췄다고 증언했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살해당한 평양에서는 조선인의 폭동이 절정에 다다른 7월 5일 밤 치안 책임자들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다시 말해 조선총독부는 치안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국가 하에서의 인민의 폭력 행사는 항상 국가의 방조 혹은 포기 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혁명이라 부르는 현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가기구가 긴밀하게 움직이고 인민의 불만을 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든 못하든 어떠한 이유에서 그랬든 행동을 포기하고 방조하였을 때 폭력은 거대한 규모로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며, 종국에는 국가권력 자체도 전복시키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다.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조심스러워야 하는 건 그들의 언행은 사회에 시그널을 주어 사적 폭력이 횡행할 수 있는 시공간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의 하청폭력을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가. 폭력을 독점한 기구가 사적 폭력을 조장, 방조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고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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