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은이),위정훈 (옮긴이)프로메테우스20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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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쪽
책소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이미 20여년 전에 예견하고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던 사람, 바로 지은이 히로세 다카시다. 일본에서 ‘1인 대안언론’으로 불리며 반핵평화운동가로 활동 중인 히로세 다카시의 문제작이 국내 최초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지금도 끊임없이 발발하는 전쟁의 본질에 관해 탐구한 현재적 의미의 고발서이자, 평화운동의 새 지평을 연 역작이다.
저자는 근현대사에 발발했던 전쟁의 본질에 대한 명쾌한 답을 군사학의 경전이라고까지 불리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끈으로 삼아, 전쟁이 왜 발발하며 이제껏 인간은 왜 전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를 치밀한 자료 조사를 근거로 맵핑한 47장의 분쟁사 연속지도를 이용해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벌이는 정치의 연속이다’라고 설파했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대응해 또 다른 전쟁의 이유를 탐구한, 저자의 평생 테마이기도 한 ‘평화론’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전쟁의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전쟁이란 ‘인간의 본성’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지향하는 의지’를 가진 몇몇 소수의 ‘클라우제비츠형 인간’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부추겨 전장으로 몰아가서 결국엔 피투성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출간 시기는 오래되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세계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책은 전혀 빛이 바래지 않을 현재적 의미의 고발서로 다가온다.
목차
제1장 천재 클라우제비츠
제2장 첫 번째 여벌 열쇠
제3장 A......
제4장 B.C.D.E......X
제5장 CIA
제6장 KGB
제7장 클라우제비츠의 대원리
부록 1 프리드만의 암호문 해독법
부록 2 수소폭탄 제조법
후기
옮긴이의 말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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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전쟁 관련 자료는 무기의 위험성이나 스파이의 공포 등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전쟁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그 모든 것을 조합했을 때, 무엇이 그려지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제시한 47장의 분쟁지도가 그렇게 탄생하였다. ... 더보기
이 책은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전쟁의 검은 그림자 뒤에 필연적으로 작용했던, 그리고 지금도 활동중인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과 그들의 손에 들린 무시무시한 무기,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짓이겨져 간 수많은 민중의 목숨에 대한 핏빛 고발장이 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전쟁의 역사를 한눈에 보이게끔 정리한 47장의 분쟁사 연속지도일 것이다. 저자의 간절한 요청대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숙연해지고,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충격의 진실과 잔인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엔 몹시 냉정하고 탐욕스러운 수수께끼의 정답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_옮긴이의 말 가운데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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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히로세 다카시 (廣瀨隆)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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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人 대안언론’이라고 불리는 히로세 다카시는 자신이 발언한 내용만큼이나 그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실천하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이다. 또한 일본 우익과 재벌의 공공연한 위협과 폭력에 항거하는 반핵평화활동가이자 다방면에 걸친 취재를 통해 심도 있는 분석을 펼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핵발전을 통해 공급되는 도쿄전력의 전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손수 뜯어고치고, 자칫 자신의 불온한 저술 작업으로 인해 전체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면 시민단체나 진보조직의 가입 권유는 오래전부터 정중히 사절해왔지만, 단 한 명의 시골 농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 마다않고 손팻말과 짐을 챙겨 떠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그의 저작들로는 미국의 자본가를 중심으로 세계 근현대사를 심층취재한 <제1권력: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를 비롯하여 전쟁의 본질과 발발 이유를 그 특유의 발상력으로 날카롭게 해부한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체르노빌의 아이들>,<땅이 운다>,<도쿄 최후의 날> … 총 56종 (모두보기)
위정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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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주간지 <씨네 21>에서 기자로 일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객원연구원으로 유학했다. 인문, 정치사회,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출판기획과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퍼즐 더 비기닝》《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통계가 빨라지는 수학력》《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데이터 활용 편》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4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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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4주_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 l 2011-04-19
알라딘 인문, 역사,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먼저 좋은 책을 알아보시는 독자께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도서별 구매자 선착순 50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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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이미 20여년 전에 이성적으로 예견하고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던 한 사람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히로세 다카시.
일본에서 ‘1인 대안언론’으로 불리며 반핵평화운동가로 활동 중인 히로세 다카시의 평화사상의 초석이 된 문제작 한 편이 뒤늦게나마 국내 최초로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찾아온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가 바로 그 책이다. 원제가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クラウゼヴィッツの 暗?文》인 이 책은 지금도 끊임없이 발발하는 전쟁의 본질에 관해 탐구한 현재적 의미의 고발서이자, 평화운동의 새 지평을 연 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저자는 근현대사에 발발했던 전쟁의 본질에 대한 명쾌한 답을 군사학의 경전이라고까지 불리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끈으로 삼아, 전쟁이 왜 발발하며 이제껏 인간은 왜 전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를 치밀한 자료 조사를 근거로 맵핑한 47장의 분쟁사 연속지도를 이용해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특유의 사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논법의 종국에 이르러선 클라우제비츠가 결코 말하지 않았던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미완의 대명제에 대한 응답을, 마치 포의 《도둑맞은 편지》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듯 의미심장한 반전과 함께 제시한다. 요컨대, 이 책은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벌이는 정치의 연속이다’라고 설파했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대응해 또 다른 전쟁의 이유를 탐구한, 저자의 평생 테마이기도 한 ‘평화론’의 출발점인 셈이다.
1.
책의 서두는 ‘역사서는 발로 뛰면서 써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세계를 순례하는 저자답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데서 출발한다.
때때로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취재가 그렇듯, 어느 날 유서를 써두고 가자지구 난민 캠프에 들어가게 된 저자는 그곳에서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집에서 살았던 가자의 이집트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혹독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고서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들의 난민 캠프 생활을 눈으로 직접 보고 돌아온 저자의 마음속엔 이러한 고통을 안겨준 이스라엘에 대한 미움이 잠시간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같은 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만난 어느 이스라엘 부인의 손목 안쪽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나치 강제수용소의 수인번호를 보고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경이 복잡해졌다고 토로한다. 이때부터 그의 머릿속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윽고 운명처럼 군사학의 경전으로 불리는 문제의 책과 조우하게 된다. 히틀러를 비롯한 전쟁광들은 물론이거니와 마르크스와 레닌마저도 매혹시켰다던 저 유명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바로 그것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의 천재군인이었던 클라우제비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전쟁의 어두운 특질을 하나둘씩 명쾌하게 풀어낸 그의 저서 《전쟁론》은 사실은 그가 죽은 뒤 그 아내와 협력자들이 유고를 정리하여 발간한 미완의 보고서이다. 그러나 《전쟁론》은 굳이 저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각국 사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가운데 수많은 군인들과 정치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으로 유명하다.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는 이 책 《전쟁론》을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는 수수께끼의 끈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무엇을 이용해서 전쟁을 하는가 또는 무엇을 이용해 학살했을까 → 누구의 지시를 받아 전쟁을 하는가 또는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라고 차곡차곡 논법을 쌓아올리면서. 이러한 서술 속에서 저자는 A(Atomic 핵무기), B(Bio 생화학무기), C(Chemical 화학무기), D(Dynamite 재래식 화약무기), E(Edge 날붙이무기)로 통칭한 각종 무기가 인간에 미친 피해 사실은 물론 각국 군사첩보기관의 교육과정 및 활동, 그리고 루머의 창작과 보급을 통해 전쟁론이 바이러스처럼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백미는 따로 있다. 저자가 1만 꼭지가 넘는 신문 기사와 라디오·텔레비전 등의 보도자료, 그리고 수백 점에 이르는 책과 자료를 검토해 매해마다 어떠한 전쟁이 일어났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지도로 작성한, 1945년 8월 15일 다음날부터 기록된 분쟁사 연속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전후로 칭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 세계가‘하루도 쉬지 않고’전쟁을 계속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 발생 빈도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과밀화되고 있음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이 지도는 저자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세계의 전쟁을 해독한 이 47년 간의 분쟁사 연속지도는 곧 전 세계인의 학살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 말대로 분쟁 지도에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은 물론 국지적 분쟁 및 내전뿐만 아니라 쿠데타·암살 등의 내란에서부터 납치·테러·하이재킹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폭력행위(게발트)가 모조리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물론 이 지도 위에는 무고한 이들이 흘린 단 한 방울의 피도 흐르고 있지 않지만, 그 지도에 표시된 전장에서는 산더미 같은 시체가 쌓아올려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며 저자는 한번에 훌쩍 건너뛰지 말고 종이를 한 장씩 넘겨서 마지막 지도까지 살펴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다 보면 지도에 적혀진 그들 각 사건의 그림자 뒤에 필연적으로 작용했던, 그리고 지금도 활동 중인 거대한 손과 그들의 손에 들려진 무시무시한 무기,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 짓이겨진 수많은 무고한 민중의 생명에 대한 고발이 분명히 그 속에서 읽혀질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2.
“전쟁은 흔히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말해져왔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과 톨스토이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보 이반’ 같은 사람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저런 구실로 서로 적을 나누며 싸움을 선동해왔다. 그러나 바보 이반은? 그들에겐 애초부터 국경도, 진영도 없다. 그러니 사실상 싸울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이반을 부추기고 결국 전장으로 몰아가서 피를 흘리게 한다.
전쟁은 결단코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모든 분쟁의 역사 속에는 그것을 획책하고 논쟁적인 의사를 표방한 인물이 분명 떠오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47년간의 분쟁사란, 뒤집어 말한다면 곧 47년간의 분쟁 선동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명확하게 구별해야 할 현상은 이 세계가 동측과 서측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라,‘클라우제비츠형 인간’과 ‘바보 이반’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지하는 것이다.”
- 본문 가운데
이렇듯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비로소 전쟁이란‘인간의 본성’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전쟁을 지향하는 의지’를 가진 몇몇 소수의 ‘클라우제비츠형 인간’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을 부추겨 전장으로 몰아가서 결국엔 피투성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이른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란 대체 어떤 이들일까? 남녀를 불문하고, 적어도 그들에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적’을 만들어내는 기질이다. 일찍이‘전쟁은 다른 수단을 갖고 하는 정치의 연속이다’라고 설파한 클라우제비츠에 반해, 저자는 자신이 조사한 분쟁지도를 바탕으로 그동안 겪어온 피투성이 전쟁들이 모두 이들의 ‘사업’이었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그들에 의해 동서 냉전과 민족 분열 등의 긴장 상태가 조성되었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전 세계 군수 산업은 계속해서 번창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획책하고 실행하는 자가 악이라는 인식이 없는 경우, 세계는 계속해서 전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사실상 분쟁지도의 연속성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은 ‘A프로젝트’를 완성하면 곧장 ‘B프로젝트’를 착수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그저 단순히 연속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전체 프로그램이 그들의 ‘수입’을 위해 원활하게 진행되었으며, 동시에 금융사업과 무기사업을 통한 또 다른 이익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다(저자는 전쟁과 그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본과의 연관성을, 이 책을 발표하고 난 2년 뒤 펴낸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와 《붉은 방패》 등의 저서 등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증명했다).
3.
최근 일본의 유수 출판사에서 문고판 복간이 한창 진행 중인 히로세 다카시의 초기 논픽션들 가운데서, 저자의 세계관과 그 실천의 토대가 된 이 책《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는 1984년에 일본 신쵸샤에서 초판이 출간되어 지금까지 50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평화운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된 화제작이다. 1985년 개정판에 2년 분의 분쟁지도를 추가했다가 1992년 증보판에서는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까지의 분쟁지도 6년분을 다시 추가했는데, 이번에 국내 소개되는 판본은 1992년에 출간된 증보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리비아, 그리고 북한....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결코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곧 비즈니스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나라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런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서로 증오해야 할 명확한 ‘논리적 근거’가 있는가를 논의한 적도 없이 타국과 감정대립의 양상만을 보이고 있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의 선동이 우리에게 먹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사실은 배후에 군수산업의 거대한 이권이 있고, 또한 핵무기와 원자력 생산설비를 하느라고 우리의 행복해야 할 인생이 바로 내일 끝장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출간 시기는 오래되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세계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책은 전혀 빛이 바래지 않을 현재적 의미의 고발서이다. 무엇보다 지금 읽어도 생생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자가 치열한 취재를 통해 제시한 자료의 성실함과 진실성이 와 닿기 때문이 아닐는지. 혼란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의 세계 정세 속에서,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근현대사의 맥락과 아울러 분쟁 뒤에 도사린 정치경제적 배경 또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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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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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스로에 대한 훌륭한 자아성찰이 되려나?
히로 2011-04-1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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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이유를 탐구한 히로세 다카시의 역작
<제1권력>을 읽으면서 자본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치를 떤 적이 있다.
히로세 다카시가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의 순수함에 매료되다가,
이스라엘에서 핍박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동정을 느끼지만,
또한 서빙하는 이스라엘 여성의 팔뚝에 아직도 남은 홀로코스트의 넘버링을 볼 때,
도대체 왜 인간은 그 끔찍한 전쟁을 하는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에서 역설한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생각의 체계를 글로 써야한다.
히로세 다카시는 남들의 주장을 인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사고의 흐름을 흥미롭게 기술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가 왜 전쟁론에 관심을 가졌는가로 시작한 이 책은,
어떡하다 그가 클라우제비츠란 전쟁이론가에게 생각이 미쳤는지,
(이 책의 일본어 원제목은 '클라우제 비츠의 암호문'이다.)
그러다 세계의 분쟁 지도를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작성하게 되었는지,
그 와중에 불거진 미국 CIA와 소련 KGB의 '학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문체로 쓰여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인상적인 몇 꼭지를 반복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결국 그의 <풀이>는 <인간의 의지>다.
인간의 의지가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과 무기의 위기를 몰각시킬수 있는 유일한 기제 역시 존재하였는데,
그 암호문을 푼 그는 역시 <인간의 의지>만이 전쟁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서로를 얼싸안을 수 있게 만들어 줌을 찾아낸다.
원폭으로 인류의 멸종 위기에 봉착한 미래를 상상하는 그에게,
우연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몇몇 남자들만이 '자네들 가운데 누군가가 갈비뼈를 뽑아서 이브를 만들지 않는 이상, 우리 세대로 끝인 거야.' 이런 농담을 씁쓸하게 주고받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The Road' 같은 소설보다 훨씬 판타지 소설에 재능이 있는 작가처럼 보인다.
글 한 줄에서 소름이 오싹 끼친다.
미국이나 소련이나 정보 기관의 끔찍한 행위는 참으로 치가 떨리는데,
특히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사용한 온갖 생화학 무기(관동군 731 부대에서 배운 것)를 사용한 것이나 월남전에서 사용한 고엽제 같은 것들은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나마 할 수 있는지,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소련 역시 나을 것 하나 없다.
스파이 교육 학교에서 배신과 고문의 단계까지 학습시키는 장면은 역시 인간은 말종임을 확신시킬 뿐이다.
아프리카에 천만 이상의 굶주리는 인류가 있는데,
거기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무기뿐이라는 지점까지 읽노라면,
한숨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늘 아침 배꽃 나무에 물기 가득 머금은 꽃송이를 보고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렇게 한 세계는 힘겹게 피어나는 것인데,
폭탄 세례 한 번에 '적'은 수백 명씩 죽어나가는 판이다.
이것이 인류라는 말종의 역사의 기록이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의 민중들처럼 우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치, 닉슨, 레이건, 부시에 이르는 전쟁광들과 다르다.
바보 이반들에게는 <적>이 없는 것이다.
적이 있는 곳에 죄악이 있고, 죽음이 있다.
아, 인간의 원죄가 왜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운 줄 아는 것에서 시작되었는지 이제 조금 느낀다.
부처가 깨우친 것처럼, '나'가 있고, '남'이 있고,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고, '나보다 못한 넘'이 있는 것처럼 <구별>하는 데서, 적이 생기고, 죄가 생겼던 것이었나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원죄를 모두 대속하셨다는데,
왜 아직도 그 예수를 간절히 믿는다는 종자들은 그렇게도 전쟁중인지...
언제나, 진정 아멘, 소리가 울려퍼질 것인지...
이 책은 깊은 시름 속에서 바보 이반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또 보고 있는
히로세 다카시의 <관세음>의 아픈 관찰의 기록이다.
----1949 지도에서
김구암살(1949. 6. 26) - 25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전쟁 지도에서 '한국 내란'으로 인한 기록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참 슬픈 지역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수시로 폭발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란 정도만으로도 위안을 얻곤 했다.
- 접기
글샘 2011-04-13 공감(25) 댓글(4)
왜 우리는 전쟁을 하는 걸까?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많이 했다. 우리 동네엔 낮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지금은 그 자리에 지방법원과 경찰청이 들어섰다.) 그 동산에서 뛰어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편을 갈라서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전쟁놀이를 하기도 했고, 돌을 던지며 싸움을 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피가 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돌싸움을 하다가 두 번은 머리통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돌아갔고, 한번은 눈두덩에 돌을 맞아서 얼굴 반쪽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가기도 했다. 전쟁놀이에는 딱히 목적이나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심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피를 흘리며 싸웠다. 멋지게 나뭇가지를 휘두르고, 발로 차서 상대방을 쓰러뜨리거나, 내가 던진 돌에 상대편 누군가가 맞아서 비명을 지르면 그저 좋아할 뿐이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전쟁놀이를 했던 걸까?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질문이다.
요즘도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한다. 다만 이제는 직접 몸으로 싸워서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나 게임기 앞에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여서 전쟁놀이를 한다. 직접 피를 흘리지도 않는다. 화면 속의 캐릭터들이 피를 흘리거나 죽어갈 뿐이다.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입는 가장 큰 부상은 아마도(장시간 손가락을 놀리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정도이거나, 손목이 아픈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몸을 다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분명히 있다. 내 경우에는 해가 지고나면 함께 놀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더 놀고 싶어도 돌아올 수 밖에 없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혹은 게임기)만 있으면 게임이 가능하므로 오랫동안 이 놀이에 매달리게 된다. 부모의 눈만 피할 수 있다면,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붙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 아이들은 왜 전쟁 게임을 하는 걸까? 몇 해전 학원에 몸담고 있던 때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게임을 하냐고? 아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냥. 재미있으니까! 라고 답했다. 뭐가 재밌냐고 물었더니. 선생님도 해보면 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나도 해봤다. 정말 재밌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렸으니까.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 걸까? 이 책이 근본적인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 유형의 인간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클라우제비츠처럼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의 ‘의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전쟁 게임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또 파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열심히 전쟁놀이를 했던 이유는 어른들의 전쟁을 따라하는 놀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전쟁 놀이를 가르쳐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티비이거나 만화책이거나 오락실이거나 어른들 중 누군가였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간접경험일지라도 전쟁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회. 이것은 무서운 사회일 것이다. 티비나 만화책이나 컴퓨터 게임을 통해 일상적으로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쟁(혹은 폭력)이란 매우 친밀한 어떤 개념이자, 수단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당연히 분쟁지도가 될 것이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그리고 뒤쪽에 1995년까지 4장의 지도가 더 있다.)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분쟁지도를 들여다보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전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가!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인 히로세 다카시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일인 대안언론’이라고 불린다는 저자의 다른 저작에도 관심이 생겼다. <원전을 멈춰라>는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어서 읽어야 할 것 같고, <체르노빌의 아이들>에도 관심이 생긴다. 훌륭한 저자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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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5-30 공감(9)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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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권] 29. 히로세 다카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전쟁무기는 평화를 싫어한다
[내 사랑 1000권] 29. 히로세 다카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전쟁무기란 전쟁을 벌이면서 쓰는 무기입니다. 전쟁무기란 땅을 갈아서 곡식을 거둔다든지 나무를 돌보는 연장이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아픈 사람을 고치거나 힘든 사람을 일으켜세우는 동무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녀석입니다. 전쟁무기로는 오직 사람이 사람을 죽일 뿐입니다. 탱크는 길을 망가뜨리고 숲을 무너뜨립니다. 총은 우리 몸을 꿰꿇거나 갈가리 찢습니다. 미사일이든 폭탄이든 마을이며 나라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구실을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전쟁무기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린 적이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거느려야 적군한테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만 가르치거나 알릴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적군이라 여기는 곳에서는 ‘우리한테 있는 전쟁무기를 들먹이’면서 그곳은 그곳 나름대로 ‘평화를 지키려고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거느린다’고 밝혀요.
히로세 다카시 님은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에서 전쟁하고 전쟁무기란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권력자하고 기업이 왜 손을 맞잡고서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군대를 크게 거느리려 하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교과서에서도,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또박또박 들려주어요.
왜 권력자는 전쟁을 바랄까요? 사람들이 전쟁에 미쳐야 그들 권력을 단단히 지킬 수 있어요. 왜 기업은 전쟁을 바랄까요? 사람들이 전쟁에 나서야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어요. 우리는 왜 전쟁터에 싸울아비로 끌려가거나 스스로 나아갈까요? 권력자하고 기업하고 지식인하고 교사한테 속기도 하지만, 먹고살려는 뜻으로 함께 전쟁을 벌이곤 해요.
처음부터 전쟁무기 아닌 낫이랑 호미에 돈을 들이면 가난할 사람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군대나 정치권력이나 기업 아닌 마을에 돈이 흐르도록 하면 배곯을 사람이 없습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대는 평화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2018.2.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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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8-02-05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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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참으로 원론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그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출발한다. 그는 클라우제비츠를 천재라고 부르면서 <전쟁론>에는 풀어야 하는 암호문이 있다고 말한다. 암호라는 단어에 순간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저자는 놀라운 작업을 보여준다. 그것은 47장의 분쟁지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5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데 놀라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분쟁지도는 전 세계의 분쟁을 연도별로 지도 위에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많은 나라가 한 해도 빠짐없이 분란을 겪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것이 바로 이 분쟁지도이기도 하다.
왜 전쟁을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욕심 때문이다. 개인의 욕심들이 모인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나의 욕심이 다른 사람들의 욕심과 충돌한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극단의 상황인 전쟁 전에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을 해독한 최후의 답으로 ‘개인적 의지’를 꼽는다. 물론 이 개인적 의지는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란 것이다. 맞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가와 군인이다. 그렇다면 이 손가락을 조종하는 것은 누굴까?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무시하고 있다.
손가락을 움직인 주체는 누군가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고 저자가 말하는 정치가와 군인에 대해 말해보자. 이것을 위해 먼저 재래식 전쟁 무기와 화학무기 및 핵무기 등의 새로운 전쟁 무기와 어둠 속에서 세계를 움직였던 두 거대 조직 CIA, KGB 등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두 조직이 전 세계를 무대로 어떤 음모와 분쟁을 일으켰는지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유명한 이야기 속에서도 알지 못했던 몇 가지가 나와 다시 한 번 더 놀란다. 이 책이 출간된 연도를 생각하면 이런 사살을 몰랐다는 것에 내가 오히려 놀랄 정도다.
CIA나 KGB의 음모 외에도 놀랐던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생화학무기하면 먼저 베트남 고엽제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미 사용되었다. 그 원천 자료는 그 유명한 731 부대의 것이다. 전후 전범 재판에서 관동군 마지막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가 731부대의 실험을 자백하자 미군 측에서 이 증언을 부정했다. 뭔가 더러운 뒷거래가 있은 것이다. 이런 무기를 가진 자라면 당연히 사용하려고 할 것이고 한국전쟁에서 이 무기가 사용되었다. 이 논리 구조가 바로 저자가 말한 개인적 의지의 일부란 것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갖고 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전쟁이란, 나의 의지 달성을 적에게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실력행사이다.” (220쪽) 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와 전쟁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정치와 같은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이 때문에 개인적 의지가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원전으로 <전쟁론>을 선택했고, 이 고전이 끼친 영향력을 역사상 유명인물로 하다 보니 이런 개인적 의지는 더 부각된다. 일정 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전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히틀러 등에게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개인적 의지의 총합이 전쟁이라면 어떨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개인적 의지의 총합을 이루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저자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복잡한 요인들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이 깊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은 사실 안타깝다. 저자가 전쟁을 왜 하는가에 대해 답을 낸 것에 일부분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저자는 분쟁지도를 만들면서 전쟁과 분쟁을 같이 표시했다. 의지의 충돌이란 측면에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분쟁과 전쟁은 분명 다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분쟁으로 표기한 부분과 일본의 그 극렬했던 전공투를 생략한 부분은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의문이 생긴다. 클라우제비츠에 대한 평가도 앞과 뒤가 다른데 솔직히 너무 급변했기에 놀랐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느낌이랄까? 아니면 잘못 이해한 것인가? 이런 의문과 부분 동의에도 불구하고 47장의 분쟁지도와 새로운 정보들과 분석은 충분히 읽을 가치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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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11-05-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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