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 중앙일보
[문화]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중앙일보] 입력 2003.07.08 18:58 수정 2003.07.09
시인 김지하(62)의 개인 이력에는 1960~80년대 암울했던 한국의 정치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자식과의 대화 위해 내 삶 기록"
두 아들 한창 예민할 때 대화 못 나눠
개인사 속 굴곡진 현대사도 함께 담아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나섰다가 4개월간 옥고를 치른 김씨는 70년 담시 '오적'을 월간지 '사상계'에 발표, 반공법 위반.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등의 죄목으로 다시 붙들려간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이듬해 석방됐던 김씨는 옥중 회고 '苦行(고행)…1974'를 동아일보에 3회에 걸쳐 연재한 죄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재수감된다. 김씨가 자유로운 햇빛을 다시 쬔 것은 80년이 돼서다.
때문에 세권으로 묶여 출간된 김씨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학고재)은 김씨의 개인사이면서 굴곡많은 한국의 현대사이고, 한편 개벽.동학.율려운동 등으로 발전해간 김씨의 사상적 궤적이 녹아 있는 정신의 순례기이기도 하다.
1권 '내력'에서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입금리 섬에 터를 잡은 입도조(入島祖) 어른 얘기부터 꺼낸 김씨는 할아버지.할머니, 외할아버지.외할머니 등 가계를 차곡차곡 주워 섬긴다.
2권 '청강'에서는 평생 어른으로 모시고 따랐던 청강 장일순 선생과의 교류를, '그사람'에서는 이종찬씨와 쿠데타를 모의하고 성공할 경우 집권세력의 3분의2는 자신들이 점거할 것을 논의한 일 등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아버지 김맹모씨는 공산주의자였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아버지'다. 김씨는 해방 전 게릴라 운동을 준비하고 6.25때 빨치산으로 입산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행적을 공개했다.
김씨는 "그동안 아버지의 사상 문제를 분명히 밝히지 않아 내 행동이 석연치 않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며 "그런 면에서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가령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헌신적이었으면서도 '민족주의 비교연구회'에 가입하지 않았던 일, 마르크스주의에 친연성을 가졌음에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던 일 등이 아버지가 드리운 그늘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회고록을 집필한 동기로 두가지를 들었다. "김민기씨 등 후배들이 '미리미리 회고록 써두어야지 죽고 나면 어떻게 생애를 정리하겠느냐'며 권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지금은 장성한 두 아들이 한창 예민하던 7~8년 간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때가 돼서 회고록을 읽는다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남은 이유는 거시적인 것이다. "한반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경제적으로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같은 큰 틀 속에서 한국이 물류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방향이 유력해 보이지만 그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문화 콘텐츠는 빈약해 보이고, 회고록이 그런 문제 의식을 일깨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회고록은 2001년 9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과 월간중앙에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라는 이름으로 동시 연재했던 것을 묶은 것이다.
신준봉 기자
[출처: 중앙일보] [문화]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자식과의 대화 위해 내 삶 기록"
두 아들 한창 예민할 때 대화 못 나눠
개인사 속 굴곡진 현대사도 함께 담아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나섰다가 4개월간 옥고를 치른 김씨는 70년 담시 '오적'을 월간지 '사상계'에 발표, 반공법 위반.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등의 죄목으로 다시 붙들려간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이듬해 석방됐던 김씨는 옥중 회고 '苦行(고행)…1974'를 동아일보에 3회에 걸쳐 연재한 죄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재수감된다. 김씨가 자유로운 햇빛을 다시 쬔 것은 80년이 돼서다.
때문에 세권으로 묶여 출간된 김씨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학고재)은 김씨의 개인사이면서 굴곡많은 한국의 현대사이고, 한편 개벽.동학.율려운동 등으로 발전해간 김씨의 사상적 궤적이 녹아 있는 정신의 순례기이기도 하다.
1권 '내력'에서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입금리 섬에 터를 잡은 입도조(入島祖) 어른 얘기부터 꺼낸 김씨는 할아버지.할머니, 외할아버지.외할머니 등 가계를 차곡차곡 주워 섬긴다.
2권 '청강'에서는 평생 어른으로 모시고 따랐던 청강 장일순 선생과의 교류를, '그사람'에서는 이종찬씨와 쿠데타를 모의하고 성공할 경우 집권세력의 3분의2는 자신들이 점거할 것을 논의한 일 등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아버지 김맹모씨는 공산주의자였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아버지'다. 김씨는 해방 전 게릴라 운동을 준비하고 6.25때 빨치산으로 입산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행적을 공개했다.
김씨는 "그동안 아버지의 사상 문제를 분명히 밝히지 않아 내 행동이 석연치 않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며 "그런 면에서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가령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헌신적이었으면서도 '민족주의 비교연구회'에 가입하지 않았던 일, 마르크스주의에 친연성을 가졌음에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던 일 등이 아버지가 드리운 그늘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회고록을 집필한 동기로 두가지를 들었다. "김민기씨 등 후배들이 '미리미리 회고록 써두어야지 죽고 나면 어떻게 생애를 정리하겠느냐'며 권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지금은 장성한 두 아들이 한창 예민하던 7~8년 간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때가 돼서 회고록을 읽는다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남은 이유는 거시적인 것이다. "한반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경제적으로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같은 큰 틀 속에서 한국이 물류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방향이 유력해 보이지만 그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문화 콘텐츠는 빈약해 보이고, 회고록이 그런 문제 의식을 일깨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회고록은 2001년 9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과 월간중앙에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라는 이름으로 동시 연재했던 것을 묶은 것이다.
신준봉 기자
[출처: 중앙일보] [문화]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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