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포커스 :: 오늘날 일본의 노조탄압 현장에 갔다오다 - 2019년 건설노조 방일단 기록
노동보다 | 2019.07.29
오늘날 일본의 노조탄압 현장에 갔다오다
2019년 건설노조 방일단 기록
소영호(건설노조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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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되던 시기에 일본에 갔다. 아베 정권 아래에서 우익세력이 발호하고 반한 감정이 커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걱정스럽게 일본 땅에 도착했지만 일본의 시민들은 한국인들에게 친절했고, 일본의 동지들을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는 일본의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이하 ‘연대노조’)와 교류를 하기위해, 7월 4일(목)부터 7일(일)까지 일본에 방문했다.
건설노조와 연대노조의 교류
연대노조는 1965년 전국자동차운수노동조합까지 뿌리가 올라가는 오래된 노동조합니다. 1984년 전일본건설산업노동조합과 간사이지구레미콘지부가 조직을 통합하여 현재의 연대노조가 된다. 레미콘, 트럭 운수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으며, 업종별 지역별로 기업횡단적인 지부를 설치한다. 도쿄, 시즈오카, 오사카, 교토 등 17개 도도부현(광역행정단위)에 8개 지부 약 3,000명의 노동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상급단체가 없는 독자 노조이다.
연대노조의 중심에는 레미콘 운수노동자들이 있다. 일본의 레미콘 업체는 영세업체가 대부분이다. 레미콘 업체는 대기업인 건설사(거래처), 시멘트제조업체(구입처)에 끼어 덤핑판매를 강제당했다. 이에 노조는 산업정책으로 레미콘업체들을 중소기업협동조합으로 조직화하고, 가격 적정화 정책과 투쟁을 펴며 레미콘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산업평화정책을 쓰며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최저연봉보장을 약속받았고, 계속하여 투쟁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와 연대노조는 매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교류를 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레미콘 노동자들이 노조(건설운송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여의도 도끼만행과 같은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당시 일본의 연대노조 동지들은 함께 레미콘을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동지들에게 투쟁을 지원했고, 그 후 교류가 시작되었다. 2002년부터 시작된 교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공안탄압
그런 연대노조가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다. 이미 70여 명의 동지들이 구속되었다 풀려나기를 반복했으며, 아직도 12명의 동지들이 구속되어 있었다. 일본에 방문할 때마다 환대를 해준다는 느낌을 주는 동지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공안탄압의 영향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게다가 오사카의 노조 건물인 학동관의 센터장님이 우리가 오는 날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러야 하고, 공안탄압에 대응하며 우리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
둘째 날인 7월 5일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직접 본 일본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오전에 교토로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일본의 동지들이 웅성거렸다. 경찰버스들이 노조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차를 돌려 다시 노조 건물로 갔을 때는 무장경찰을 포함해 60여 명의 경찰들이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극우신문인 산케이 신문이 이를 취재하기 위해 함께 왔다.
공안탄압 이후 압수수색이 비일비재하여 더 가져갈 자료도 없다고 했다. 산케이 신문은 연대노조가 폭력적인 노조라는 취지의 보도를 일삼는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모습을 보이면 더욱 악선동을 할 것이 분명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함께 가던 몇 명의 일본 동지들이 내려서 경찰에 대응을 했다.
산케이신문을 대동해 압수수색을 하는 일본 경찰들
우리는 간사이레미콘지부의 타케 위원장과 유까와 부위원장의 재판이 있는, 교토지방법원으로 향해야 했다. 연대노조 동지들뿐만 아니라 각 시민단체 회원들까지 모여 있었다. 재판을 방청하는데 좌석 제한이 있고, 사측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서 재판 때마다 많이 온다고 한다. 일본 동지들의 배려로 건설노조 방일단은 모두 재판을 방청할 수 있었다.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인 두 명의 동지가 나타났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판사는, 동지들을 구속한 이유가, 사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위협을 가했고 공갈협박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거는 제출할 필요가 없다고 읽어갔다. 노조 측 변호사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방청석에서도 참지 못하고 야유를 했다. 젊은 판사는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하고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이렇게 재판이 이어졌다.
재판이 끝나고 두 명의 동지는 다시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돌아갔다. 법원의 공무원들은 건설노조 투쟁조끼를 입지 못하게 하고, 주변 건물을 찍는 것을 제지했다. 기가 차지도 않는 현장에서 판사와 공무원들을 쏘아보는 것만으로 항의를 해야 했다. 그래도 구속된 두 명의 동지가 한국에서 동지들이 왔다고 하니 크게 힘을 받았다고 전해들었다.
공동 항의행동에 나서다
셋째 날인 7월 6일 오전에는 나라 현에 있는 요시다 레미콘 공장에 방문했다. 나라 현 2개의 레미콘 공장에서 6명의 조합원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연대노조 동지들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정규직화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잘리고 해고되고 있다. 공장 건너편에서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하고 있으니, 사측 직원이 캠코더로 우리를 찍었다. 한국 같았으면 바로 욕이 튀어나오고, 달려가서 카메라를 막고, 공장 사무실에 쳐들어갔을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몇 년을 감옥에서 썩을지 모른다.
오후에는 오사카 부 경찰본부에 대한 항의 행동을 했다. 유명한 오사카 성 옆에 으리으리하게 솟은 경찰본부 건물. 그 아래 연대노조를 비롯하여 지역의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평화단체 등 60여 명이 모였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하며 항의를 이어갔다. 연대노조는 자신들의 노동조건 향상에만 갇혀 활동하는 노조가 아니다. 일본의 사회이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평화행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일본 정부에 찍혔다. 한편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연대노조의 탄압상황에 함께 대응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함께 하는 세력들이 많지 않으니 정부와 자본은 더 쉽게, 더 함부로 탄압을 가한다.
오사카 경찰 항의 방문
전후 최대의 노동탄압
마지막 날에 있었던 간담회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동지들 상당수도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상황이었다. 구속 사유 중에는 이러한 것도 있었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회사에 취업증명서를 요구했다. 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조합원이 정규직화를 요구하자, 회사의 날인이 찍힌 취업증명서를 요구하는 게 공갈협박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 경찰의 조직범죄대책과가 사건을 맡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날 간담회
한 사람에게 여러 개의 사건을 적용하며,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구속시키는 일들도 많다. 재판에서 보았던 타케 위원장도 그런 사례였다. 한편 구속되었던 사람들끼리 만나지 않고, 통화하지 않는 것이 보석의 조건이라고 한다. 조합원 가족들을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기도 한다. 우호적이었던 지역의 레미콘공장 협동조합들이 배신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탈퇴자도 많은 상황이다. 이러한 대규모의 노조 탄압은 전후 최대의 규모이다.
탄압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연대노조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연대노조는 일본 내에서 평화운동세력, 각종 시민단체, 지역 노동조합들과도 꾸준히 연대를 실천한 노동조합이다. 일본사회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정책이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고, 투쟁을 하는 세력들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연대노조의 동지들도 처음에는 오사카에서 G20을 치루기 위해 실시하는 일시적인 탄압으로 보았으나, 그 강도가 점점 심해지자 탄압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또한 노조탄압은 2017년 강행 추진된 일본의 ‘생각을 처벌하는 법’, 공모죄의 시범 케이스이기도 했다. 연대노조의 간부들이 통화하고 회의한 것을, 폭력행동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공모로 보고 처벌하기도 했다.
일본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투쟁
한국의 건설노조도 수차례 공안탄압을 받아왔다. 노조를 불온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운동세력들에 대한 탄압과 언론 통제가 심했다. 일본의 동지들은 우리에게 ‘공갈 친구’라고 농담을 하며 함께 싸우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현재 일본의 상황과 같은 노조 탄압을 겪은 적은 없다. 70~80년대 노동운동을 다룬 역사책에서나 보았을 법한 장면들을 일본에서 보게 되었다. 게다가 언론 통제로 인해 이런 탄압이 벌어지는 것을 일본 대다수의 시민들이 모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외교 갈등이 고조되며 무역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불매운동, 혐한시위처럼 대중적으로도 감정이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양국의 지배계급이 이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친일·매국노” 낙인찍기를 하며, 경제·외교정책의 무능·실패에 대한 자기반성 없이 지지율만 높이는 데 혈안이다. 또한 삼성·이재용 봐주기, 특별연장근로 등 노동개악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일본 아베 정부 역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군사대국화를 추구하고 있고, 이를 반대하는 평화운동, 노동운동을 억압하면서 우익세력이 발호하고 있다. 한일 갈등이 무역전쟁으로 이어지면 그 결과는 상호파괴이고 자본과 지배계급은 양 국의 노동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것은 한일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밖에 없다. 아베정권의 노조탄압에 맞서고 있는 일본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투쟁을 한국에서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동지들은 11월 한국의 노동자대회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남아있는 동지들이 걱정된다. 같이 어울렸던 동지들 중에 또 누군가가 구속될지 모른다. 함께 싸우며 현재의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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