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9

알라딘: 건너간다 이인휘 (지은이) 2017



알라딘: 건너간다

[eBook] 건너간다
이인휘 (지은이)창비2017-03-03






























8.3100자평(1)리뷰(5)

종이책 페이지수 324쪽

책소개
2016년 소설집 <폐허를 보다>로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치현실을 핍진하게 그려 절절한 감동을 안겼다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인휘가 12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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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가수 정태춘의 삶과 노래에 영감을 받아 쓰인 이번 소설의 제목은 정태춘이 98년 발표한 노래 '건너간다'에서 빌려왔다. 소설 속에는 정태춘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비롯, 총 10곡의 노래 가사가 인용되어 있다.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와 맞물려 흘러온 그 노래 자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은 정의.평화.자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어온 사람들의 면모를 노래의 힘과 함께 펼쳐놓는다.


목차


1부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2부 아, 대한민국
3부 생의 수레바퀴들
4부 먼산 먼길
작가의 말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인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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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났다. 
1988년 문학 계간지 『녹두꽃』으로 등단했고 
2016년 소설집 『폐허를 보다』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진보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과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를 만들어 오랫동안 노동문화 운동을 해 왔고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역임했다. 
『내 생의 적들』을 포함한 다수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중견 작가다. 
2019년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이며 
십 년 전부터 남한강이 흐르는 관덕마을로 내려와 해고자 쉼터 그린비네의 지킴이로 지내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수상 : 2016년 만해문학상
최근작 :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건너간다 2 (큰글자도서)>,<건너간다 1 (큰글자도서)>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만해문학상 수상작가 이인휘가 촛불을 밝힌 모두에게 전하는 노래
정의와 평화의 간절한 염원으로, 이제 우리는 이 시대를 건너간다!

2016년 소설집 『폐허를 보다』로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치현실을 핍진하게 그려 절절한 감동을 안겼다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인휘가 12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건너간다』를 선보인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가수 정태춘의 삶과 노래에 영감을 받아 쓰인 이번 소설의 제목은 98년 정태춘이 발표한 노래 「건너간다」에서 빌려왔다. 소설 속에는 정태춘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비롯, 총 10곡의 노래 가사가 인용되어 있다.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와 맞물려 흘러온 그 ‘노래’ 자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0년대 유신부터 80년 광주민주항쟁, 87년 6월항쟁, 그리고 오늘날의 촛불행렬까지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노래가 곡진하게 흘러왔다. 정의·평화·자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어온 사람들의 면모를 노래의 힘과 함께 펼쳐놓는 이 소설을 앞에 두고, 우리는 이제 이 시대를 건너갈 것이다.

폐허를 넘어 희망을 건져올리는 목소리

아픈 아내를 간호하며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나’(박해운)는 어느날 우연히 다시 찾은 CD 한장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듣다가 과거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그 노래는 세상은 변해야 한다고 노래한 가수 ‘하태산’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였다. 노동하며 한동안 소설을 잃고 살았던 ‘나’는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버린 하태산의 삶을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마음에 오래 담아두기만 했던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고투하지만 끝내 자신의 내면과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오고 만다.

폐허를 넘어서 희망을 건져올리듯 소설을 쓰면서 내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다. (…)
나를 쓰자,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하태산이 살아온 세월도 내가 살아온 세월이고 하태산이 겪은 수많은 곡절도 나 역시 겪고 살아왔다.(79면)

“세상은 늘 나와 상관없이 흘러”간다고 믿었던 ‘나’는 70년대를 지나며 “한 시대가 요동을 치면서 그 파장이”(63면) 자신에게까지 뻗쳐온다는 걸 처음 느꼈고 이내 80년 광주를 만나게 된다. 시대의 어둠이 각자 삶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의 촛불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지금의 촛불행렬을 바라보며 87년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분노를 품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6월항쟁 현장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두려움 없이 어두운 시대를 뚫고 나간 사람들의 절실했던 생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생의 순간마다 사람들 사이에 자리한 것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첫차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평화를 찾아 떠나는 작은 배의 심정으로 비를 맞거나 소외된 거리를 떠돌며 쉼 없이 흘러왔다.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갇혀 그 너머를 보지 않으려 해도 자유와 평등을 찾아가는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198면)

이 작품의 또다른 미덕은 소설 후반부에 묘사된 현재에 있다. ‘나’가 일하는 식품공장은 수많은 비리를 배경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CCTV를 설치해 매시간 노동자들을 감시하며 어떻게든 휴식시간을 없애고 청소시간을 줄여서라도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게끔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그런 와중 불평등한 급여 문제가 불거지고 일흔살을 앞둔 ‘왕언니’가 일인시위를 시작하지만 동료들은 그 모습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지만 ‘왕언니’가 박스 조각에 꾹꾹 눌러쓴 말, “사장님이 인간이듯 나도 인간입니다”(258면)라는 단순한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시위가 두명, 세명, 종내에는 모두에게로 퍼져가는 과정은,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연대의 힘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사람이 사는 세상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거라는 진실을 증명해낸다.

왕언니는 박스 조각을 방 벽에다 모두 붙여놓을 거라고 했다. 망령 들었느냐고 했던 남편과 공장을 그만두라고 다그쳤던 자식들에게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랑할 거라고 했다. (…) 비록 그녀가 사는 삶의 형태는 달라지지 않을지언정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생의 빛을 따라 여생을 걸어갈 것이다.(271면)

지금 우리는 우리를 뒤흔드는 지난날의 망령을 넘어 이 시대를 건너가길 염원한다. 엄혹한 시절을 뚫고 나간 사람들의 생 자체가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어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복원해낸 이 소설은 진짜 세상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그들이 세상 밖의 세상을 그리며 부르던 희망의 찬가는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 지금 우리 앞에 다시 놓였다. 이제 우리 모두의 노래를 새로이 시작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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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적들]에서 보여준 아픈 고백,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
그런 그가 이번엔 가수 정태춘을 통해 또 다시 뼈아픈 참회을 한다.
바다 2017-04-04 공감 (0) 댓글 (0)




결국은 건너 갈..

아주 어릴 때,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했다. 옛날 이야기든, 뉘집 며느리 흉보는 이야기든, 길 가 만물상 아저씨가 바람 난 이야기든 어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면 무엇이든 들었다.

할미 얘기 해줘.

뭔 야그를 해달라고 그라냐? 할미가 아는 얘기는 다 해줬구, 더 해줄라캐도 엄따.

그냥 얘기 해줘.

뭔 이야기를 할꼬?

손주년의 칭얼거림에 못이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셨다.

야마구친지 다마고친지 하는 앞잡이 이야기, 징집당한 사람들 이야기, 설사까지 나오다 질겁을 하고 도로 들어가게 했다는 일본순사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건너 온 시간은 그렇게 조마조마하고 허기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의 "얘기 해줘"는 엄마 몫이 되었다.

그 때는 조금 더 컸었고 조금 더 실감 나게 들었다.

얘는 무슨 얘기를 하라고, 책 읽어.

책 말고, 엄마 얘기 해줘.

엄마는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피난도 못가고 남산 밑에 숨어살던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많이 늙어버린 이모, 삼촌의 천진한 웃음이 보이는 것 같았고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건너 온 시간은 '살아남기' 였다.

요즘 아이는 내게 '엄마는 젊을 때 어땠어?'라고 자주 묻는다.

별 거 없었어. 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어떤 것 부터 입을 떼야할지 몰라서 별 거 없었다고만 말했다.

에이 시시하다. 엄마. 파란만장한 시기였잖아?

그래.



건너 간다.

이인휘의 소설은 그 시기를 오롯이 담고 있다. 호떡 공장에서 일을 하던 박해운. 그 사람이 살아 온, 건너 온 시간들이 쓰여있다. 어느 날 선배에게 받은 씨디를 우연히 듣게 되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들은 노래.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태춘이 불렀던 종로 장마.

그가 무대 위에 선 것. 그가 입을 열어 노래 하기 시작 한 것. 훠이~라는 소리 앞에 툭 하고 떨어져 내렸던 가슴 한켠.

찌릿한 것이 스쳐갔다. 시작부터 심호흡을 하게 된다.

그의 전작 "폐허를 보다" 를 읽고 나는 그런 말을 했었다.

<누가 그랬다. 더이상 "노동 문학은 없다. 문학 노동만이 남았다" 라고 말이다. 현장으로 들어간 작가보다 작가의 책상으로 올라간 노동이 더 많았다. 노동문학이라는 가검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벼린 날 선 진검을 든 검객이 나타난 셈이다> 라고..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은 차라리 노동운동의 역사이다.

손이 덜덜 떨릴만큼 사실적인 묘사와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지는 행적은 커다란 격랑의 한 가운데 선 사람의 고통과 고뇌와 매 순간 결단해야하는 참담함을 극명하게 보인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물을 수 없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으니까.

소설은 자전적이다. 그가 살아 온 과정, 그가 살아내는 현재와 맞닿아 있다.

자책하고 좌절하지만 끝내 놓지 못하는 그 가운데 '노동자'라는 뜨거운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낙인이 아닌 세상을 떠받치고 같이 밀고 나가는 한 축으로서 불려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을 위해, 아직도 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직도 죽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어디까지 왔니?

장승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다리까지 왔다.

어디..까지..왔니?

골목까지 왔다.

어디..까...쌕쌕..

아버지 왔다.



어디까지 왔을까. 묻고 또 묻다 정작 기다리던 사람이, 시간이, 세상이 왔을 때 까무룩 잠이 들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 묻는다.

'어디까지 왔지? 얼마나 더 가야하지?'

소설이 대답한다.

'조금 더 가면. 같이 건너 가면. '



소설은 가끔 숨차다. 순식간에 상황이 전개되고 사람들이 뛰어들고 헤어지고 다시 뭉친다.

그만큼 가쁘게 달려온 노동현장이다. 부분부분 낯익은 장면들도 있다. 얼마나 왔는지 숨고르며 뒤돌아 보는 일.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보는 일. 건너 간다를 읽으며 되짚는다.

세련되고 말끔하기보다 투박하고 거친 글. 그래서 이인휘답다.

그래서..함께 건너 갈 마음이 움직인다. 노동해방. 종국에 그렇게 쟁취되면 좋겠지만 조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다.

노동자의 힘. 사람의 연대. 얼마나 동력이 단단하게 채워졌는지 눈금을 세어본다.

일단 가자. 같이 가자.



결국은 함께 건너 갈 역사이며 현장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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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 2017-03-02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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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건너간다


작년 2월에 이인휘작가님의 소설집 「폐허를 보다」를 읽었는 데 이 작품으로 만해문학상을 받으신 거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새로운 장편소설「건너간다」가 출간되어서 읽어봤는 데 비정규, 계약직 노동자들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소중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모습이 여과되지 읺은 채로 등장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남의 일 같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어쩔수없이 묵묵하게 일을 하시는 분들, 부당한 대우에 맞서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싸우고 있을 사람들, 물론 좋으신 분들도 있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충분히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악덕 사장들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참담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훨신 전인 1980년대, 제가 태어나고 한참 자라던 1990년대, 그리고 6일 전까지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플래카드를 들고 부당하고 참담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을 때 저는 그저 분명히 현재의 모습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른다는 핑계거리를 삼아 마치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외면하였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아내가 아파 병원에서 오랜시간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고 그 걸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 호떡과 핫도그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작가님이자 「건너간다」에서는 정해운이 깨끗하지 않은 환경을 지닌 공장에서 충분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지키지 않는 사장때문에 고통을 받고 국정원에 불려갔다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오인받아 해고위기에 놓여있는 모습이 차라리 이 것이 소설이었으면 100% 작가님이 만들어내신 허구였으면 바랬습니다.
「건너간다」를 읽으면서 지금도 비정규직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마주봤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4대보험도 적용되고 시급도 최저임금에 가깝게 주시던데 제가 2008년 여름에 1달 반동안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S호텔에서 실습을 받으며 일을 할때 실습생이라는 명목으로 하루에 1만원씩 받았고 일하던 도중에 제가 내향성발톱으로 고생할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저를 짐짝 취급했던 것이 생각이 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구두를 잘못 고른 제 잘못도 있었고 같이 일하던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못했던 것도 있었지만) 너무 힘들고 억울해서 노동청에 제 사연을 올릴까도 했었지만(그 것을 본 친구의 만류로)못했고 실습이 종료되기 전에 진단서를 제출할 때 조차 그런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습니다. 그리고 실습이 끝나고 학교생활을 할 때에도 저의 행동이 아주 잘못된 행동이라도 된 양 저를 질타하고 무시하던 친구들의 눈빛과 말들이 저를 힘들게 했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딴 곳으로 새어나갔네요.
한 나라의 대표였던 사람이 불명예스럽게 떠난 지금,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 실감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왔듯이 지금 이 어두운 현실에서 다가올 빛으로 가득할 내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건너간다‘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건너가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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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2017-03-16 공감(11) 댓글(0)





민의가 헌법에 우선하는 촛불찬가



노동소설. 그리고 자전소설?

무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흥이 많았으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의 쓰라린 가난으로 이후 주욱 우울 모드를 유지하게 됨. 상급학교 대신 동대문 부근의 실 공장에 들어가 고생하다가 월남 갔다 온 셋째 형이 야간학교에 넣어줘 대학까지 다닌 나, 박해운.

대학 다닐 때 1980년 서울의 봄 겪음. 광주항쟁을 계기로 인간성의 환멸을 느끼고 입대.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공장생활 시작. 절대 노동운동을 위한 공장생활 아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아서는 기초적인 의식주 생활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자각. 이후 노동 강도가 어마어마한 타이어 공장(어디긴 어디야, 한국타이어 영등포 공장이지)에 들어가고, 여기서 노동의식 일깨움. 이후 노동운동 투신. 주로 노동문화운동에 전념하며 틈틈이 글을 씀. 그게 어여뻐서인지 주인공 박해운의 동의도 얻지 않고 잡지에 소설을 실어 등단함. 첫사랑은 실패로 돌아가고 교사 직업의 두 번째 여인과 결혼. 생활비는 아내가 벌어오고 자신은 노동문화운동에 헌신. 가끔 소설도 씀. 당연히 나이 들고 이에 따라 아내가 7년간 아픔. 아내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함(돈 벌이 빼고. 아니 그건 생략했는지도 모름). 아내가 건강을 찾고, 남한강 중상류지역으로 이주하며, 2년 동안 식품회사 제조공장에 들어가 주로 호떡 뒤집음. 노동문화운동을 한 이력으로 여러 소설가, 시인, 가수(싱어송 라이터)들과 교제.

자. 이게 책의 내용이다.

1980년대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물론 그 다음에도 획기적인 발전을 없었지만) 공장 노동자들의 급여는 정말 열악했다. 나도 그때 직장생활 해서 안다.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한다. 집세내고 먹을 거 사면 끝이라고. 인정한다. 근데 한 가지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는 건, 주인공의 20대 시절. 그니깐 아직 의식화가 되기 전, 그는 만날 라면만 끓여먹으며 지하 쪽방에서 구겨진 인생을 살더라도, 늘(물론 책 내용과 달리 ‘언제나’는 아니었겠지만) 여급이 서빙하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아가씨의 가슴을 주물럭거렸으며(20대 중반의 청년이), 단골 창부에게 생활의 곤고함을 해소하고는 했다. 의식화된 후에도 그의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는 고쳐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원래 선해서 결혼을 한 다음엔 결코 그런 일이 없었던 건 물론 백퍼 사실이겠지만, 결혼 전의 그런 생활방식이라면 아무리 급여가 많아도 비용을 다 충당할 수는 없다. 또, 대학 다니면서도, 서울의 최고 사립 고등학교를 나왔으니(그땐 서울에 5대 공립, 5대 사립이라고 고등학교도 다 서열이 있었다) 일단 괜찮은 대학에 다녔다고 가정하고, 거기다 그리 항문이 째질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대학에 보낼 정도라면 서열 낮은 학교가 아니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당시에 그렇게 흔한 아르바이트, 입주 과외 한 번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아니면 그렇게 쉽게 돈을 벌었다는 걸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든지. 그러니 박해운(하필이면 내가 빌어먹고 사는 회사의 아주 성실한 젊은 정비공과 이름이 같다)의 기본 정서는 허무와 무기력.

전두환의 서슬 퍼런 공포정치가 스모그처럼 하늘을 뒤덮은 1980년대 중반의 영등포와 구로공단에서 벌어진 노동운동을 통해 의식화된 박해운. 의식화는 행동 또는 운동, 싸움을 통해 공고화 한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박일해(박노해의 변형이겠지)가 쓴 시집 <노동의 아침>(역시 <노동의 새벽>일 거다)을 읽으며 노동문화가 가능하다는 걸 알아낸 ‘나’는 점점 가열차게 노동운동에 참여하지만, 역시 노동을 통해 얻는 밥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직업을 버리고 운동에만 몰두할 수 없다. 여기에 찬란하게 등장한 여인. 교사출신의 아내. 아내는 돈을 벌고, 남편은 하고 싶은 노동문화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 아, 생각 복잡해진다. 2017년에 쓴 노동운동 관련 소설을 2017년에 읽는 일. 거기다가 작가가 나와 거의 비슷한 시절을 산 사람임에야.
다시 분석. (나 이런 거 되게 싫어한다)

① 주인공, ‘나’ 박해운이 여태까지 살아 온 인생살이
② 식품공장에서 호떡 뒤집으며 아직도 노동운동이 유효하다는 주장
③ 노래를 잃어버린 하태산(정태춘인 건 얘기 안 해도 다 앎)이 노래를 되찾는 광경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인데, 문제가 그리 쉽지 않다. 맞다 쉽지 않다. 지금까지 열라 써내려갔던 걸 한 방에 싹 지워버렸다. 내가 시대를 정의할 수준도 되지 못하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건, 책을 읽은 감상을 쓰는 독후감이지 비평이나 논문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한 가지 작은 오류를 지적하자면, 책에서 주인공 박해운이 호떡 뒤집는 일을 하는 식품 공장의 작은 불만을 토로하면서, 2천 여 만원의 돈이 거론되는데, 그걸 작가는, 사장 입장에선 하룻밤 접대비 정도의 돈, 이라고 하는 장면. 시점이 2016년. 하이고, 손도 크네. 20대 중반부터 아가씨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며 술을 마셔왔으니 그 방면에서 나보다 훨씬 통달할 수준이겠지만. 중견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라고 일컫는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에게 하룻밤에 700만원 접대했다고 접대비 올리는 건 봤다. 회사 뒤집어졌다. 접대자인 영업사원이 그중 많은 돈을 삥친 거다. 소위 말하는 카드깡을 통해서. 노동운동 오래 하신 분이 어떻게 2천만 원을 그리 우습게 아는지, 참. 악덕 사장새끼도 자기 돈 아까운지는 안다. 그래서 직원들 달달 긁어가며 사탄의 아들 노릇을 하는 것이지.
하여간 난 주인공 박해운이 드럽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 다니며 자기가 돈을 벌어봤다는 얘긴 전혀 없고(그러면 역시 째지게 가난한 무당 엄마가 등록금을 내줬단 얘긴데 하는 짓이라곤 술 마시고 인생 허무하다는 얘기 뿐), 공장 다니면서는 본격적으로 맥주에 아가씨 젖가슴, 단골 창녀에 빠졌으며, 결혼한 후엔 아내의 수입에 의존해 자기 하고 싶은 일 다 해가는 거.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질투난다. 내 마누라가 날 벌어먹였다면, 나도 하고 싶은 일,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하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우여곡절 끝에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가 호떡 열라 뒤집으며 이젠 한국타이어가 아니라 뭔 식품의 악덕 사장에게 칼끝을 겨누는 작가. 이 악덕기업을 깨부수기 위해선 회사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정도는 인용했어야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누가 알아? 진짜 회사 사정이 어려웠는지. 이렇게 얘기하는 건, 작가의 시각 및 방법이 아직도 1980년대나 적어도 199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결코 이인휘에게 나쁜 감정, 없다. 어? 내 시각이 변한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이제 나는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노동운동가 박해운에게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것인지도.

자, 결론.
이 책? 한 마디로 말해서, 촛불 찬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광화문부터 시작해 숭례문까지 이어지던 촛불의 군집. 그 속에서 싱어송 라이터 하태산은 다시 노래를 되찾았고, 그건 시민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이번엔 진짜 이해 못할 것 하나.
작가는 주장한다. "민의가 헌법에 우선한다"고.
이거 정말, 진심으로 쓴 거야?




"민의가 헌법에 우선한다"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할 수 없는 말. 헌법이 민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헌법을 고치기 위하여 투쟁을 해야한다. 헌법을 수정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민의가 최고의 가치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건, 2017년 현재, 아웅산 수치나 김정은 또는 진심으로 시대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아나키스트 아니라면 이야기 할 수 없는 비민주적 발상이다. 더구나 우리의 현대사에선 투쟁하여 헌법을 바꾼 적이 두번이나 있지 않은가. 4.19와 6.29. 혹시 포퓰리즘이 최고의 선이라 웅변하는 것인지 (내가 백퍼 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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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7-09-27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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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록장 천이백칠번째.- 건너간다


나는 소설 속에서 두번이나 아주머니들을 멋대로 해석했다. 공장의 불빛에서는 돈 몇푼에 목을 매며 죽은 듯이 지내는 사람들로 묘사했고, 폐허를 보다에서는 한 여인이 절망적인 세상을 봤음에도 다시 공장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썼다. 나의 주관적인 오만한 생각이 그들을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규정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결혼한 사이일 때 남자가 아프면 여자가 병간호해 주는데 여자가 아프면 대체로 남자들이 병간호를 잘 안 해줌. 그러면서 자기 내조해주는 건 완전 당연한 걸로 생각하던데. 근데 연애 초기에는 잘 해줌 솔직히 사기 아니냐 ㅡㅡ

소설에 나오는 왕언니도 아무 일의 고됨도 모른 채 손주 손을 잡고 나들이하러 가다 호떡을 사려고 하는 삶을 원할지 모른다. 이 문제는 그녀가 출세하는 것만으로 해결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미 그것을 만들며 사는 사람의 고됨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최저임금보다 더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요행이 찾아 공장을 떠난다면, 다른 어려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일베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예처럼 잘 일한다고 하며 삶이 힘들다고 사회에 책임을 돌리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계급을 벗어나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문득 동생이 '플랜카드 걸고 1인 시위해도 소용없어. 누나가 뭔데? 아무도 누나 이야길 들어주지 않아'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만큼, 아무도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 아니 그보다 이해를 못 하는 건 형벌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람이 당연히 누릴 수 있을 권리를 못 누리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항의하는 이유는 그 가슴 속에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 안에 있는 용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촛불 시위를 할 용기를 돋구었으며, 여럿의 용기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일면 이인휘 소설가의 글을 왜 주변 사람들이 제대로 해석 못하는지 이해는 한다. 그 사람들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인휘 소설가는 소위 돈을 잔뜩 모아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글만 쓰는 그런 세련된 소설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공장에서 차별받는 아주머니 할머님들을 누님이라 부르고, 그녀들은 이인휘 소설가를 오빠라 부른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글을 썼던 것이다. 나도 고모가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일하고 있고, 외할머니께서는 약을 드시며 미아리촌에서 일하는 기생분들의 한복을 짓다가 최근 허리를 못 쓰시게 되어 병상에 눕게 되셨다. 그래도 이인휘 소설가를 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분을 차마 뵙질 못하겠다. 현장을 겪지 않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이 냉철한 마음으로 세상을 꿰뚫어보고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는 게 몇몇은 괴로운 것이다. 그의 소설에선 환상이 없다.



물론 그것은 기생충과 다르다. 소설의 제목은 '건너간다'이다. 소설에서 정태춘은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최근 관심을 받으려 하는 짓거리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힘들다 여기는 유투버들을 생각할 때,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처절함을 희망이라 부르는 것일까. 혁명이라 부르는 것일까.



내가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도 좀 꼰대같긴 한데. 그래도 환상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서 말한다.

세상이 니 머리와 니 얼굴로 성공하기란 존내 어려운 세상이다. 아, 돈은 좀 있네. 근데 그렇다고 아버지가 삼성전자 회장임? 그런 것도 아니면서 벌써 꼰대소리하고 친구를 몰아세우고 그러는 모습 보기가 안 좋다. 분수를 모른단 소린 안 하겠지만, 재벌들 얼마나 똑똑한지 아나? 제발 거울 좀 보고 정신차렸음 좋겠다. 어느 스님이 그랬지. 제발 거울에 때가 꼈음 좀 닦고 관리하라고. 페북질이란 말도 웃기지만, 스마트폰 꺼내는 충동 눌러도 충분히 자기가 하기 싫고 듣기 싫은 교육 받으며 생각 정리할 수 있다. 쓸데없는 환상 품지 마라. 메이져 편 든다고 니가 메이져 되는 게 아님. 나도 공감능력 딸리긴 한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지식을 쌓고 노력을 하면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너 자신을 알고 수양하기를 바람. 악플다는 인간들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듯.



노동하는 손이 과연 아름답냐고 이인휘 소설가가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나는 들었다. 쥐의 똥오줌이 아름다운가? 곰팡이가 아름다운가? 이에 답하려면 내 레벨로서는 많은 생각과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소설가 분이 페친이시지만 딱 불평 한마디만 하자면 난 화자가 왜 창녀촌을 가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러고서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것도 모순적이긴 하지만 남자가 힘들면 무작정 술과 여자를 찾는 방법밖에 없나? 당구라던가 다른 데서 스트레스 풀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계속 비슷한 화자가 반복되다 보니 살짝 질리는 면이 있다. 그나마 음악 가사나 책에 나온 구절이 흥미를 돋구는지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이 책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나마 최근에 쓰신 두 권의 책은 기존의 책들과 좀 다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관 안은 캄캄했다. 형은 내 손을 잡아끌어 자리에 앉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엿과 찹쌀떡과 사탕을 파는 판매원이 목판을 들고서 돌아다녔다. 형이 사탕을 사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대한뉴스가 스크린에 펼쳐지며 말들을 쏟아내자 충격을 받았다. (...)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가 전국토를 울리던 그 시절 우리는 학교 조회시간마다 '국기에 대한 멩세'를 외워 복창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그럴 때마다 재범이는 "퍽큐!"를 외쳤다.

혹시 모르지만 유신 좋아하시는 분이 글을 읽고 계실까봐 생략하긴 했지만 퍽큐는 그분의 사진에다 하셨다 합니다. 무튼 이 대목을 읽으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이 많아지네요 ㅋㅋㅋ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왕따시킬 틈도 없고 몸도 건강해져서 좋았다나요. (물론 이 말씀을 하신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죽어라 버신 돈으로 매우 좋은 학교를 다니셨다 합니다 ㅋ... 왕따는 안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두들겨 패던 시절이었고, 예전 학교 폭력이 훨씬 심했는데 지나고 나니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당시 대한민국 위장취업자 구속 1호였던 강원대 출신 박인균은 태백에서 광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보안사는 그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프락치를 시켜 탄광 폭파를 계획한 주범으로 몰려고 했다. (...) 박인균이 노동운동은 공장과 노동자를 함께 살리는 운동이라고 설득하자 프락치는 그의 머리를 쳐 미인폭포 밑으로 떨어뜨렸다. (.. ) 그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뒤 구타와 물고문 그리고 잠 안 재우기 고문 등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당했다. (...) 천주교에서는 정부를 향해 광산 간첩단 조작 사건의 진상 조사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이듬해 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묻혔다.

근데 이런 거 보면 차라리 난 광부같이 목숨 걸고 힘들게 일하는 직업은 돈을 좀 많이 줬음 좋겠다. 외국에서는 광부가 말 그대로 억소리 나게 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광부 연봉 평균이 35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 사고나도 왠만하면 죽지 않을 체력의 젊은이들 인력으로 쓸 수 있고 말이다. 쓰다보니 또 열받는데 자유한국당같이 국회 일 못하게 하는 국회의원들 월급 떼서 그 사람들한테 주면 안 되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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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미르 2019-06-30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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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책은 ‘건너간다’ 라는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에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갇혀 그 너머를 보지 않으려 해도 자유와 평등을 찾아가는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라는 구절이 매우 인상 깊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인휘 작가 쓴 책으로 ’박해운’이라는 작가가 과거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문제를 뼈아프게 느꼈던 경험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조금 조금씩 찾아가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식품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 공장의 사장은 CCTV를 곳곳에 설치하여 노동자들을 감시하여 그들을 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힘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 상황을 어찌하지 못하고 받아들였지만 작가는 사장에게 저항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작가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5.18 민주화 운동 때였습니다. 작가는 그 전까지 세상은 본인과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생각을 갖고 세상일에 크게 관심 있지 않았지만 5.18 직전 5.14에 학생들의 주도 하에 많은 민중들이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집회를 하는 것을 보고 세상일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작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결국 우리는 현재 전보다 더 발전된 노동 환경과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쟁취 하였습니다. 책에서는 임금문제 정도를 다루며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불평등을 완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의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각자 겪어온 고난과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좋게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것을 극복 못하고 더 피폐한 삶으로 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내기 생각하기에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 학교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면서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바람직한 교육을 위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들은 학업에 너무 열중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정말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교육개선은 바람직한 나라발전을 이루는 데에 첫걸음이다. 이것을 이룬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행복한 날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부정적인 무언가가 계속 서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를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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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is0601 2018-11-1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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